계획이 변경되어 6월13일 일요일 6.10민주올레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wiking님과 함께 어제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출발지인 구 남영동 대공분실은 1호선 남영역 1번 출구로 나와서 수도서림 골목으로 우회전 해서 90미터 정도 가면 우측에 보이는 검은 건물입니다. 참고로 그 옆에 롯데리아 본사가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그냥 보기에 대기업 본사건물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2005년 경찰 인권센터로 바뀌어 일반에 공개되었다고 하는데, 완전 공개는 아니었습니다. 1층 수위실에서 방문의사를 밝히고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확인 후, 본 건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전예약제는 아닙니다. 6층 사무실로 가니 직원 한 분이 나와 5층 조사실로 안내합니다. 87년 박종철 열사가 돌아가신 509호 현장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침대와 책상이 있고, 욕조와 세면대 위에 영정과 꽃다발이 놓여있습니다. 부식방지를 위해 입구에 유리창을 설치했습니다. 3평 정도 되는 조사실이 오피스텔처럼 15개 정도 쭉 늘어서 있는데, 509호만 그대로 나머지 조사실은 리모델링 한 상태였습니다. 4층에는 박종철 기념관이 있습니다. 스무평 남짓한 공간에 87년 6월 항쟁에 대한 자료와 박종철 열사의 사진, 소지품, 편지, 사건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관람을 하는 20여분 동안 관람객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평일 근무시간에만 개방이 되어 많은 시민들이 찾아오기에 제약이 있지 않느냐고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런저런 이유를 말씀하시는데, 딱히 납득은 되지 않았습니다. 주말에 개방해서 시민들이 많이 찾아와 보고 느끼고 갔으면 하는 바램으로 13일 일요일인데 민주올레 참가자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협조요청을 해 두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오늘 자 신문에 경찰 인권센터가 홍보부족 등으로 사람이 찾지 않는다는 기사가 나오더군요.)
인권센터를 나와 서울역 광장까지 인도를 따라 걸었습니다. 때이른 무더위에 30분 정도 걷는게 꽤나 힘들었습니다. 개인별로 물을 충분히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작년 5월29일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 행렬이 서울역에서 끝내지 못하고 남영역 근처까지 와서야 마친 걸로 기억이 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에서 사랑하는 시민들과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길이었습니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전국노점상전진대회가 막 시작되는 중이었습니다. 디자인 서울 덕택에 점점 더 생존권을 위협받는 분들입니다. 구 서울역사는 외관보존을 위해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라 외관이 가림막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림막을 따라 서울역에 대한 사진자료들이 있어 구경하는데, 중요한 87년 역사현장 사진은 한장도 없고, 박정희 대통령 사진만 즐비했습니다. 서울역 광장은 1987년 6월26일 민주평화대행진이 벌어진 곳으로 서울에서만 25만명이 시위를 벌였습니다. 3일 뒤 노태우가 직선개 개헌을 골자로 한 6.29선언을 강제했을 정도로 국민적 힘이 최대치로 분출된 시위였습니다. 이 곳은 1980년 서울의 봄과 서울역 회군의 역사현장이기도 합니다.
지하도로 내려가니 한결 시원합니다. 남대문 방향으로 나와 남대문시장 지하통로를 지나 신세계 앞 분수대에 도착했습니다. 6월10일 국민대회를 시작으로 시내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났고 특히 한국은행, 신세계 앞쪽에서 치열하게 격전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횡단보도가 없어 다시 지하도로 내려가 명동입구로 향합니다. 패션의 거리답게 벌써부터 여름 최신 옷차림들이 거리를 수놓습니다. 눈의 즐거움보다 배고픔이 앞서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게눈 감추듯 점심을 해치웠습니다. wiking님이 술한잔 해야겠다고 하길래 술 먹고 더위에 또 걸으면 정말 퍼진다고 만류했습니다.
민주화의 성지라고 일컫는 명동성당입니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을 알린 분들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었고, 6월10일부터 5박6일간 학생시민들의 철야농성이 성당과 신부님들의 보호 아래 진행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이곳은 이후에도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고 정권이 부당한 권력을 행사할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권력에 대해 준엄한 경고를 했습니다. 최근에 새롭게 뜨는 민주화의 성지가 있다고 합니다. 봉은사. 월드컵 기간에 이 곳에서 붉은악마의 응원이 펼쳐진다고 하네요.
명동성당 바로 앞에는 한국YWCA 본관건물이 있습니다. 79년 엄혹했던 시절 집회시위가 철저히 통제되어 위장결혼식을 올려 민주화를 외쳤던 곳입니다. 골목길로 80m쯤 내려가니 향린교회 표지판이 있고 다시 왼쪽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향린교회의 작지만 무게감이 느껴지는 건물이 나옵니다. 1953년에 설립된 이 교회는 사회적 참여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 민주적 운영방식으로 유명한 교회입니다. 87년 5월27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발기인 대회가 치뤄진 곳으로 입구 기둥에 민주화운동기념 표지판이 붙어 있습니다.
다시 큰길로 나와 시청방향으로 가는데, 더위를 피하기 위해 지하도로 들어섰습니다. 을지로3가역과 을지로입구역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지역특산물판매 점포들이 쭉 들어서 있는데, 실제 운영을 하는 곳은 2-3곳에 불과합니다. 장사가 안되는건지 지자체가 관심이 없는건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을지로입구역에서 다시 지상으로 나와 걸으니 바로 구 미국문화원이 나옵니다. 85년 5월23일 당시 대학생인 함운경, 김민석의 주도로 미문화원 도서관을 점거하고 광주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과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현재는 서울시청 별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청 뒤쪽으로 돌아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지하도로 길을 건너 성공회대성당에 다다랐습니다. 이 곳은 87년 6월10일 국민운동본부 주최 국민대회가 열렸던 장소로 6.10민주항쟁의 신호탄 되었습니다. 당시 김성수 성공회 주교의 집전으로 4.13호헌조치 철회를 위한 미사가 진행되었고, 신부님들이 가두행진을 벌이려다 경찰과 충돌했습니다.
서울광장은 87년 6월9일 연세대 이한열 군이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중상을 당해 7월5일 숨지고, 7월9일 '민주국민장'이 거행된 곳입니다. 이한열 열사는 박종철 열사 사건과 함께 정권의 잔인함과 부도덕성을 드러내고 전 국민적인 분노를 이끌어 낸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22년이 흐른 후, 서울광장은 다시금 이 땅의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와 국민적 분노를 분출한 장소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서울시청광장은 5월부터 10월 주요행사기간 저녁시간대에 시청 문화과가 문화행사 명목으로 매일 사용신청을 해논 상태라고 합니다. 때문에 일반적인 절차로 서울광장을 사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지요. 광우병 촛불시위 이후 정권과 서울시는 시민들을 두려워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집단광장공포증이라 할만 합니다. 광장은 보여주기 위한 곳이 아니라 소통하고 즐기는 곳인데 비정상이 정상이 되고, 정상이 비정상이 되는 사회입니다.
중간에 식사시간을 빼고 1시간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이번 6.10민주올레의 제일 큰 장애물은 더위입니다. 다행히 주말에 더위가 조금 수그러진다고 하는데, 모자, 손수건, 썬크림, 생수 등 준비를 단단히 해야 즐거운 올레가 될 것 같습니다. 남영동 대공분실 못보신 분들이 많으실 텐데 이번 기회에 꼭 참가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