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김포문학상 우수상 당선작
비누
박소미( 김포시 풍무동 유현로 51)
아무리 아침을 닦아도 길이 불투명 합니다
햇살은 등만 달구고 손이 시근거립니다
골목마다 시궁창 냄새로 미끈거립니다
집안에서 털어낸 안개는 역류하고 환풍기가 물거품을 건져냅니다
대문 안은 안녕 합니까
천 갈래 물길 속에서 골똘합니까
무수한 알리바이로 얼룩져 있습니다
누군가 무례한 계략을 오래 쓰다듬어서 뭉뚝한가요
어떤 날 불온한 기도를 굴리면 둥근 각에 찔리나요
어슴새벽 여자는 속옷에 배인 밤꽃냄새를 다 덮었을까요
심장을 문질러도 눈동자는 눈물을 가두고 녹아내리지 않습니다
안방에서 마당을 지나 대문까지 검정 발자국 또렸합니다
하이힐이 아카시아 향을 일으키며 골목을 빠져나갑니다
눈치 빠른 구름은 비를 뿌리고 개운합니까
손등은 비 소리만 적셔도 투명해집니다
또 다른 음모를 묻혀도 좋습니다
주름진 죄목을 들쳐보며 말라갑니다
중심부터 닳은 뒤축처럼 기울어져갑니다
좀 더 철두철미 할 수 없었니
그녀는 자꾸만 미끄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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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문학상 심사평>■
순간을 이미지화하는 독특한 시각과 발상
詩는 어느 날 찾아온 낯선 ‘나’와 같다. 현실에서 삶에서 문득문득 조우했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이면서 그토록 ‘나’여야 했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詩는 ‘나’라는 존재의 모색이면서 끝내 만나야만 하는 진심(眞心)이다. 이처럼 詩는 삶의 경험 속에서 건져낸 정신의 순수한 울림이어야 할 것이다.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 모두 삶의 국면을 다듬어진 이미지로 풀어낸 수작이었다. ○○○의 <비누>外 4편, ○○○의 <줌(zoom)>外 4편, ○○○의 <첫차>外 4편은 저마다 개성으로 수준이 높았다.
<비누>는 ‘비누’라는 재료의 본질적인 질감과 물성을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무수한 알리바이로 얼룩져 있습니다/ 누군가 무례한 계략을 오래 쓰다듬어서 뭉뚝한가요’에서 보듯 낯선 이미지를 충돌시켜 조형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곳곳의 묘사도 치열하고 실험적이고 전위적이어서 강한 흡인력이 매력으로 작용했다.
<줌(zoom)>은 ‘흐린 배경을 뒤로하고 홀연 도드라져 빛나는 피사체/ 진경은 그 적막한 심상에 맺히는지/ 나는 서둘러 그 순간을 박제하는 것이다’ 기억에 각인되는 순간을 이미지화하는 독특한 시각과 발상이 이채로웠다. 낯익은 한 남자의 시각적 관찰에서 카메라로, 기억으로, 우주로 확장시키는 상상력은 선명한 주제의식과 함께 압도적이었다.
<첫차>는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음직한 ‘장례식장’ 경험을 내밀화해 서정성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종로에서, 덕수궁에서 우리 한 번 마주친 적 있을까/ 흰 국화꽃대궁 끝에 떨어질 듯 매달린 저 눈빛’에서 보듯 타인조차 구면이 되는 연대의식이 살가웠다. 또 ‘덧니’ 소재가 보여주는 공감대는 따뜻한 시선으로 내다보는 삶의 본질에 대한 빼어난 직관이다.
이 세 분의 작품에서 대상작을 뽑기 위해 시를 다시 읽으며 숙고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결국 첨부된 다른 작품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시가 가져야할 성찰적 요소를 두루 갖춘 ○○○의 <줌(zoom)>을 대상작으로, 우수작을 ○○○의 <비누>로 선정했다. <줌(zoom)>은 소재를 간결하게 이끄는 문장, 주제와 부합된 서사 구성, 깊이 있는 체험의 육화가 다른 두 편에 비해 탄탄했다. 우수작 <비누>는 어휘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주제의식이 진중하지 못한 점이 걸렸다. <첫차>는 한 편으로서는 손색이 없었으나 첨부된 다른 시들과의 응축에 대한 큰 편차가 아쉬웠다.
수상자에게는 축하를, 예심을 거친 모든 분께 응원을 보낸다. 대대로 너른 들녘과 풍부한 자연이 있는 김포의 상징처럼 문학이 내내 삶의 중심에서 나부끼길 기원한다.
- 본심 심사위원: 시인 윤성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