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ject / Space
1950년대 베이컨의 회화에서 보여지는 입방체 공간 속 단일 형상은 전쟁에 소스라치게 놀란 인간 상태를 강력하게 보여주었다. 삶으로부터 기인한 형체뿐 아니라 책, 카달로그, 잡지 등 다양한 사진 자료에서도 영감을 얻은 그는 이를 벨라스케스가 1650년에
그린 이노센트 10세 교황 초상을 다시 작품으로 소화시키는 것에서부터
1925년 영화 배틀쉽 포템킨의 상처 입은 간호사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자신의 작품세계를 아우렀다.
<교황 이노센트 10세를 그린 작품, 왼편은 벨라스케스의 작품이고 오른쪽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이다 /
Diego Velazquez, Pope Innocent (1650). Francis Bacon, Study after Velazquez's Portrait of Pop Innocent , 1953>
'A horrifying perpetuum mobile' Study
for the Nurse in Battleship Potemkin, 1957
Man in Blue 시리즈에서 베이컨은 그의 연인 Peter
Lacy를 고립된 남성의 형상으로 묘사, 동성애에 대한 불안과 절망의 감정을 쏟아내었다. 다른 종류의 그의 프레임 구조는 평평한 캔버스 표면에 모호한 공간을 도입하며 주체와 공간의 관계를 재조정한다.
<Francis Bacon, Man in Blue V, 1954>
Sketch / Studio
베이컨은 작품 준비과정으로서 진행된 드로잉작업을
부인하였지만, 그의 죽음 이후 발견된 많은 스케치와 겹겹이 칠이 더해진 사진들은 그가 종이에 구상요소에
관한 아이디어를 테스트하였음을 밝혀준다. 적어도 특정기간 동안에는 말이다. 1950년대 중반은 베이컨에게 변신과
실험의 시간이었다. 멀리 여행을 다니고, 다른 딜러를 찾았으며, 그의 작품에 좀 더 두껍게 칠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캔버스에
형상을 위치시키는 다양한 방법들을 고안하였다.
전시장에서 보여진 스케치들은 크게 사진과 회화작품의 중간 단계역할로
그것들은 공간 선점, 형상을 향상시켰다. 베이컨은 그의 노트와
책의 맨 뒷부분에 주로 스케치를 하였으며 구상 작업에 대한 목록을 만들었다. 그는 또한 외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잡지, 예를 들어 권투 잡지, 포토저널리즘 책,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출간물 등에서 구상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는데 빈번하게
Eadweard Muybridge의 이미지 사전에서 전개시켜나갔다. 1960년대 중반 베이컨은
John Deakin에게 자신의 모임 구성원들 – George Dyer,
Lucian Freud, Isabel Rawsthorne 의 사진을 찍도록 위임하였으며 추후 이 인물들을 그의 작품 속 새로운 공간에
재배치 시키며 작업을 진행하였다.
Francis Bacon 'Figure with Arms Swung
Out', c.1957–61 / 드로잉 작품
<프란시스 베이컨(우)과 그의 연인 조지 다이어(좌) / 베이컨 작업실 속 다이어의 모습과 그의 초상 / 당시 29의
나이에 베이컨의 집에 좀도둑으로 들어왔다가 만나 동성애 파트너가 된 조지 다이어는 1964년부터 수년간 베이컨의 사랑을 받았다. 베이컨은 수줍음과 불안정이 결합된
다이어의 거친 남성성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조지 다이어는 1971년
파리 그랑팔레에서의 대규모 전시가 열리기 이틀전 베이컨과 같이 쓰던 호텔방에서 37세로 자살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다이어는 죽은 이후에까지 베이컨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Arena
베이컨에게 형상이 위치한 배경은 방안의
한 공간을 환기시키는 반면 확고히 추상적으로도 여겨진다. 1960년대,
소파, 블라인드, 그리고 문양이 들어간 카페트는
당시의 국내 환경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지만 환영으로 칠해진 공간을 다른 영역으로부터 떼어놓는다. 굴곡진
공간의 기원은 아마 베이컨의 아일랜드 고향집일 것이다. 그는 나중에
Farmleigh는 멋진 집이었고 그곳의 방 뒷면이 모두 커브형태를 취했다고 이야기 했다.
< Francis-Bacon-triptych-1967>
<전시장 내부에 걸려있는 Triptych 작품 모습>
Mirror / Image
1970년대와 80년대 베이컨은 그의 공간 전략을 좀 더 확장시켜 나간다. 비디오, 거울, 렌즈, 혹은 자신의 작품에 관한 책자들 등을 활용하여 형상이 인공적이고 복잡한 단계로 나타나질 수 있도록 자화상과
초상화를 통해 빈번하게 작업하였다. Three Figures and Portrait (1975)의 순환
구조는 광학 렌즈를 사용한 것처럼 작품의 공간 경험에 혼란을 가중시키며 형체의 일정 부분에 집중하고 또 이것을 왜곡시켰다. 이 시기에 그는 화면에 평평한 블랙 박스를 위치시켰는데, 이는 희미하게
나타나는 공허한 죽음을 표시한 것이라 여겨진다.
<Francis Bacon, Three Figures and Portrait, 1975>
리버풀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미술관을 돌며 워크샵을 진행했다. 워커미술관, 테이트
리버풀의 다른 상설전시장 등. 그러나 베이컨의 작품을 3번이나
보고서도 다시 글을 쓰는 이 시간, 울먹이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그리고 머리가 깨지듯 아픈 상태도 부인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완성해낸 것
일까? 색이 주는 화려한 신비감, 형상이 주는 공포감. 마치 무엇에 홀린 것 마냥 작품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인간적이라기보다
동물적인 외침에 가까운 그의 작품 속 형상들이 내던지는 비명을 들으며 작가가 이것들을 다시 시각화시키고, 캔버스 표면에 물질로 드러낸 것임을 생각한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매우 그로테스크한 인물들. 마가렛 대처 영국총리가 끔찍한 그림을 그린 작가라고 그를 외면하자 베이컨은
정말 무서운 것은 자신의 그림이 아닌 바로 대처 같은 정치가들이 만든 세상이라고 반박하였다고 한다. 자신에
대해 단 한 순간도 감추지 않고 모든 것을 정직하게 그러나 자신만의 규율로 절제되어 쏟아낸 그의 작품을 30여점
넘게 한 공간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축복이었다. 이번 워크샵의 가장 화려한 꽃이었다.
첫댓글 조금 더 작품을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풀어내야 할 것 같네요.
힘들지만 정리 해두면(자신의 노트에라도, 인터넷상에 공개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사람이 카피할 수도 있으니)
성장에 도움이 될 겁니다.
네 말씀감사합니다.
물론 쓰다 만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