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복음의 증인이 되라
06/20목(木)행 10:34-43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여 주신 증인인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행 10:41).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거짓되이 증언하는 자로 판명될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이 정말로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지 아니하셨을 터인데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증언했기 때문입니다”(고전 15:14-15). 하나님은 죽은 후 내세의 삶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영생, 죽음 저편이 실제입니다. 만일 부활 신앙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은 가장 불쌍한 존재입니다.
지난 세월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세상의 것들이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은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집니다. 진짜 인생은 영원(실재)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고전 15:19). 이 세상의 삶이 전부라면 예수 믿는 자가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했기에 보혈의 효력이 있습니다. 예수 부활은 택한 사람만 믿어집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믿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흗날에 살리시고 나타나 보이게 해주셨습니다. 그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여 주신 증인인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와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행 10:40-41). 부활이 믿어진 자의 증거는 내 속에 주님이 계신다는 것이 믿어지고, 보이고, 느껴집니다. 예수가 내 주인이 되면서부터 믿어집니다. 부활의 증인, 전도는 내 속에 계신 주님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죽은 사람에게도 산 사람에게도 다 주님이 되시려는 것이었습니다”(롬 14:8-9).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입니다. 내 속에 계신 주님이 인식되고 깨달아져야 합니다. 부활의 증인이 믿어진 사람은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을 말하지 않겠다. 다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외치지 않겠다 하고 결심하여 보지만 그때마다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렘 20:9).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 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도구로 살아가는 자의 삶입니다.
And...
주님을 힘입어 살면 주님이 살아계시고 내 속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이 믿어집니다. 그래서 죄 사함에 대한 확신이 생깁니다. 죄 사함의 확신이 없으면 하나님께 나가는 담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시험 거리가 됩니다. 사단이 조롱할 때 나의 죄를 인정하고, 이미 하나님께서 그 죄를 사해주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선포합니다. 내게 확신이 있을 때만 사단이 죄를 빌미로 나를 건들지 않습니다.
육체의 질병이나 어려운 환경을 통해 마귀가 역사할 수 있습니다. 병원에 갔는데 병명을 알 수 없다든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든지,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 등은 마귀의 역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면 육체나 환경의 눌린 것에서 해방됩니다. 특히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가 있습니다. 가난의 대물림이라든지, 하는 일마다 안 되는 것, 자주 아픈 것, 정신적 질환, 반복되는 일등은 마귀의 역사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주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분을 주인으로 삼을 때 해방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면 영적 눌림(저주)에서 해방됩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음으로 나의 저주가 끊어졌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나 자신에게 선포할 때 저주가 끊어집니다.
신앙 상담을 하면서 안타까운 일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경험된 지식으로 갈등하는 것을 봅니다. 주님이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면 그 말씀을 묵상합니다. 왜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는지, 염려할 때 어떤 상태가 되는지, 묵상해보면 염려는 하나님에 대한 불 신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의 주인은 우주를 만드시고 통치하시는 분인데 그분을 신뢰하지 못하니 나의 환경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인격 대 인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그분이 하시는 일은, 그분의 속성은? 하나님에 대해 알고 그분이 항상 임재하심을 믿고, 그분이 하시는 일에 대해 고백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나’ 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이 쌓여갑니다. 그 비밀들이 모이면 하나님을 신뢰함의 깊이가 깊어집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오늘도 하나님의 하루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힐링 동산에 맨발로 오릅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정자에 여러 사람이 맨발로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들과 합류하게 되면서 한 분이 이 산을 쓸고 계신 분이 목사님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쑥스럽지만 제가 그 장본인입니다. 라고 자신을 밝히고 하나님께서 이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셔서,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한 분은 불교, 한 분은 방학 중, 한 분은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자연스레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공통적인 의견은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목적도 없이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감동을 주었다고 합니다.
종교가 다른 분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그분들의 종교를 인정해주고, 하나님을 믿는 나의 삶이 그들과 다른 점을 이야기할 때 대화가 이어지게 됩니다. 내가 아는 하나님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말하게 하심에 따라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물론 성령이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산에 오를 때 이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여기에 오시는 분들의 마음이 평안하기를 기도한다고 했더니 그중 한 분이 어쩐지 이 산에 오면 무섭다는 생각보다 마음이 평안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분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즉각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고,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내 삶을 이끌어 가십니다. 날마다 내가 죽고 주님이 사심을 나타내는 우리 모두 부활의 증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이 오셨네
https://youtu.be/s3v4LnOsqHw?si=Meqn5oti3lfOXrx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