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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는 들
오 정 희
나는 팔이 벽에 부딪쳐 맥없이 떨어져 내리는 서슬에 잠이 깨었다. 아마 잠결에 무엇인가 잡으려는 손짓으로 거칠 것 없는 허공을 헤매었음이 분명했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몇 시예요?”
나는 차갑게 식은 빈자리를 손바닥으로 쓸어보다가 문득 성마른 소리로 물었다.
첫 기차 뜨는 소리로 보아 4시 조금 지난 시각일 것이다. 지난밤의 사나운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루의 불빛이 방문의 위쪽에 붙은 유리를 통해 방안을 흐릿하게 비추었다.
서성이는 발소리와 함께 유리창을 가리며 남편의 얼굴이 검게 어른대다 사라졌다. 골진 유리에 남편의 얼굴이 터무니없이 커 보였다.
방안을 채운 박명 속에서 아이는 아무렇게나 던져진 듯 잠들어 있었다.
새벽 공기가 선뜻하리라는 생각에 나는 홑이불을 끌어당겨 덮어 주며 한쪽 뺨이 이상하게 부풀린 모습으로 엎드려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종잡을 수 없는 꿈에서 마치 등을 밀리듯 깨어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는 오늘 올 것이다. 그것은 약속보다 확실한 예감이었다. 그는 한 번도 이곳 내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에 온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종종 예감과 기대로 설레이며 새벽을 맞고 밤을 보내었다. 도마질로 스쳐간 칼날 끝에 내배이는 피에서도, 성급히 나타난 그 해 첫 나비의 서툰 날개짓에서도, 각질(角質) 속에 연한 초록빛으로 숨어 있는 나무의 눈을 보았을 때도, 늦봄이 다 가도록 전선줄에 매달려 누추히 찢겨져 가는, 정월 대보름날 어느 가난한 집 소년이 띄워 올렸을 종이 연을 보았을 때도 그가 오리라는 예감은 한 조각 파편처럼 반짝이며 가슴속 깊은 곳에서 눈을 떴다.
달칵달칵, 낚시 받침대의 조립나사를 죄는 금속성의 소리, 또한 마루에서 들려오는 서두는 듯한 발소리를 듣는 사이 예감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얼마나 자주 나는 이러한 짙은 예감으로 놀라 잠에서 깨어났던가. 일기예보만큼도 정확치 못한 예감을 나는 한 번도 불신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토록 절박한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공복의 위벽을 적시며 뚜렷한 무늬로 차 오르던 바륨 용액처럼 이물감으로 차 오르는 감정은 무엇인가. 나는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왔다.
“왜 일어났어?”
마루에 나란히 늘어놓은 낚싯대를 챙기던 남편이 숨겨야 할 일을 들킨 듯 조금 당혹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나도 같이 가겠어요.”
나는 짐짓 선하품을 깨물며 말했다.
남편은 내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시늉으로 눈을 껌벅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한 번도 남편의 낚싯길에 동행한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이 가겠다니까요.”
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고집스럽게 말하고는 남편의 대답을 듣지 않고 방으로 들어왔다.
남편이 신새벽에 낚시를 떠나리라는 것은 뜻밖이었다. 사흘 내내 비가 퍼붓고 조금 개는 듯하더니 어제 오후부터 일기는 다시 사나워져 밤새 비바람이 쳤던 것이다.
나는 방의 전등을 켜고 잠든 아이를 흔들었다. 아이가 짜증스럽게 잠투정을 하며 돌아누웠다. 그러나 나는 끈질기게 아이의 뺨을 토닥이고 어깨를 흔들어 일으켜 세웠다. 팬티 위로 조그만 잠지가 비죽 솟아 있는 것을 보자 잠깐 서글픔 같은 것이 가슴을 적셨다.
아이는 눈을 감은 채 한 팔을 내 목에 두르고 시키는 대로 오줌을 누었다.
“괜찮겠어?”
잠에 취한 아이의, 겨를 넣은 인형처럼 무겁게 밑으로 처지는 팔다리에 억지로 옷을 꿰어 입히는데 남편이 방안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말했다. 내게보다 아이에게 하는 말이었다. 남편의 눈길이 곧장 아이에게 멎어 있었다. 아이의 꿈을 꾸듯 멍청한 눈이 불빛에 부신 듯 깜박이며 낯설게 방안을 더듬었다.
마루에 나와서도 마치 방향지시계기가 고장난 로봇처럼 벽과 가구의 모서리에 함부로 부딪치며 비틀대는 아이를 나는 좀 잔인한 눈길로 지켜보았다.
남편은 손바닥만 하게 접힌 비옷을 가방에 넣고 우산을 찔러 넣은 뒤 무릎까지 차는 긴 장화를 신었다.
지난밤의 비로 떨어진 나뭇잎들이 질척하게 운동화 바닥에 묻어났다. 날은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지만 하늘은 짙은 색의 페인트로 칠해진, 앞으로 일어날 비극적 사건 혹은 주인공의 어둡고 음습한 열정 따위를 암시하는 듯한 무대의 배면처럼 비현실적인 색조로 새파랬다.
새벽 예배를 가는 듯 찬송가를 낀 젊은 여자가 단정히 고개를 숙이고 지나쳤다. 이어 역시 찬송가와 성경책이 들었을 게 분명한 구럭을 든 할머니가 허리를 두드리며 골목의 급한 경사면을 올라왔다. 남편의 고무장화는 물속인 듯 절벅거리는 소리로 골목을 채웠다.
예비군복을 입은 사내 둘이 낮은 소리로 두런대며 엇비켜 지나갔다. 갑자기 교회의 종이 울리고 이어 아우성치듯 높은 곳마다 낮은 곳마다 자리 잡은 교회의 종들이 울리기 시작했다.
업힌 아이는 얇은 옷에 한기가 드는지 등에 바짝 몸을 붙이고 목을 끌어안았다. 두어 발짝 앞서가던 남편이 입고 있던 여름 점퍼를 벗어 덧씌웠다. 아이는 다시 잠이 드는지 목에 감긴 팔에 느슨히 힘이 풀렸다.
낚시가방을 메고 바구니를 든 남편의 모습이 성큼성큼 앞서 길을 내려갔다. 허리께에 매달린 접는 의자가 그의 허벅지를 일정한 속도로 치며 흔들렸다. 목이 긴 장화는 각반처럼 정강이를 죄고 있어 실제보다 훨씬 키가 커 보였다.
택시가 마치 경보처럼 다급히 빈 거리를 달려갔다. 환한 불빛이 오히려 을씨년스러운 텅 빈 버스에서 매달린 손잡이가 춤추듯 흔들렸다.
“첫차에는 안경 쓴 사람을 안 태운다는데.”
택시를 세우는 남편의 곁에 바짝 붙어 서며 나는 비시시 웃었다.
배터에 닿을 무렵 희부연히 하늘이 밝아왔다. 한결 엷어진 청색의 대기에 두터운 안개 층이 느껴졌다. 날이 더울 모양이었다.
나는 선착장 옆의 구명가게에 들어가 카스테라와 사이다를 샀다.
“여기서 보자니 굉장하더군. 야영하던 패들, 아닌 밤중에 벼락을 맞은 거지.”
“중도(中島)에선 또 어땠는데‧‧‧…. 물에 잠기기 시작하니까 왜가리 떼처럼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앉았더라고‧‧‧….”
“헬리콥터가 떠서 실어 나르긴 하더만 떠내려간 사람도 꽤 있을 걸.”
노동자인 듯한 사내들이 소주에 삶은 달걀을 먹으며 강 쪽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선착장에는 서너 명의 사람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무료히 강물을 내려다보던 남편이 담배를 피워 물며 곁의, 역시 낚시가방을 멘 중년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글쎄요. 금정리 쪽에 가볼까 하는데 물살이 세서 그 쪽으로는 배가 못 뜬다는군요. 댐의 수문(水門)을 열었다던가요. 금정리로 가려면 천상 신대리 가는 배를 타고 산을 넘어야 할 형편이군요. 어디로 가시게요?”
“글쎄요. 이렇게 물이 흐르고 물살이 사나워서야 어디서나 별 재미를 보겠습니까? 허탕칠 게 뻔하지요. 허지만‧‧‧….”
남편이 말끝을 맺지 않고 반도 안 탄 담배를 물 위로 던졌다. 하지만 굳이 이런 날을 택해 낚시를 떠나기로 작정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지난밤 사납게 들이치는 비에 마루 유리문을 닫고 남편은 늦도록 낚싯대를 매만졌다. 나는 습기라도 찰까보아 그러는 게라고 짐작했을 뿐이었다.
“첫배 뜰 시간이 퍽 지났구먼.”
“수문을 열어놓아서 배가 하부리로 돌아온다니까.”
빈 리어카에 함지를 얹어 앞세운 아낙네 둘이 팔목시계를 흘깃거리며 발돋움질로 강 건너를 살폈다.
“이러다가 배가 안 뜨는 거 아냐?”
그녀들도 강 건너로 푸성귀나 과일을 받으러 가는 모양이었다. 금정리, 신대리, 하부리 등은 강 건너가 초행일 뿐더러 이 고장 토박이가 아닌 내게는 생소한 지명이었다. 더욱이 오늘의 낚시는 예정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배가 안 뜰 경우라는 것이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조바심을 자아내게 했다.
아이는 층계에 앉아 사이다를 마시고 카스테라를 씹었다. 방죽에 부딪는 물소리가 거셌다. 물은 탁하고 짙어 거의 들판처럼 보였다.
강의 상류 쪽에서 조그맣게 배가 나타났다. 눈으로는 빤한 거리인데도 배는 거의 움직임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배추와 감자, 수박 따위를 실은 리어카와 장꾼들이 내리자 매표원이 기관실 앞에 팻말을 바꿔 걸었다. 신대리.
“산 넘어 가자면 한나절 춤인데.”
구멍가게에서 삶은 달걀을 먹던 사내가 투덜대며 내 뒤를 따라 배에 올랐다. 행선지가 금정리인 모양이었다.
선객은 별반 없었다. 기관실의 기름 냄새가 역하게 빈속을 뒤집었다.
맞은편에 앉은 아낙네들이 선하품을 깨물며 눈물이 비어져 나온 눈귀를 눌렀다. 조금 떨어져 앉은 남편은 누르고 탁한 물에 시선을 박고 있었다. 얼굴이 거칠고 꺼무스르했다. 내 얼굴도 역시 그러리라는 생각으로 나는 얼굴을 쓸어보며 눈이 가 닿는 곳 기관실 벽에 붙은 구명조끼와 구명튜브 사용법을 보았다. 몇 번이고 되풀이 읽고 그림을 보았으나 문어발처럼 늘어진 줄의 어디를 잡고 어디를 죄어야 깊은 물속에서 떠올려질 수 있는지, 센 물살을 거슬러 살아남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또한 아무리 배 안을 둘러보아도 구명조끼나 구명튜브로 짐작되는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의자에 올라앉아 물을 내려다보던 아이는 뱃전에 튀어 오르는 물보라를 잡으려고 난간을 잡고 배의 바깥쪽으로 깊이 몸을 숙였다. 발끝이 들리자 남편이 사납게 종아리를 잡아 내렸다.
얼마나 사람들은 서로의 죽음을 원하는 것일까. 나는 항상 사고(事故)의 불안에 시달려 왔으나 그것은 오히려 불의의 사태에 대한 기대, 우발적 죽음에 대한 기대가 아니었을까.
“수몰지구야, 그전에는 동네가 있었다는데 잠기는 통에 지금은 나무뿐이야. 물 때문에 자꾸 침식돼서 머잖아 없어질 거라더군.”
남편이 배가 비껴 지나치는, 강 가운데의 밋밋한 둔덕의 포플러 숲을 가리켰다. 포플러 잎을 뒤흔드는 새소리가 어지러웠다. 배는 스치듯 가깝게 섬을 지나쳤다. 나무뿌리들이 물살에 허물린 땅의 단면으로 지렁이처럼 생생하고 연한 빛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 보였다.
숲을 지나자 강의 대안에서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하얗게 눈에 들어왔다. 바람은 안개에 갇혀 흐르지 않았다. 배가 신대리에 닿자 아이는 깡충걸음으로 뛰어내렸다.
“어디로 가실랍니까?”
배에서 내려서도 줄곧 남편과 나란히 걷던 중년 남자가 산을 따라 난 길이 갈라지는 곳에 멈춰 섰다.
“글쎄요. 애도 있고 하니 적당한 데 자릴 잡죠 뭐. 어차피 오늘 낚시 재미란 뻔한 거니까.”
남편이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요?”
나는 종종걸음으로 남편을 따라 걸으며 물었다.
신작로를 두고 오른쪽은 산, 왼쪽은 논과 밭, 그리고 강이었다. 강 쪽을 살피며 두리번거리던 남편이 논둑길로 접어들었다. 봇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발밑에서 맑게 들렸다. 논둑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남편은 잠깐 망설이는 듯하더니 아무것도 심지 않은 빈 밭을 가로질렀다. 흙이 차져서 자꾸 운동화에 무겁게 매달렸다. 빈 밭을 지나니 파밭이었고 그 아래가 물이었다. 버려둔 걸까, 아니면 씨를 받기 위해 남겨둔 걸까. 더러는 눕고 더러는 썩어 가는 굵고 억센 파가 발밑에서 으깨어졌다.
펀펀한 자리를 고르던 남편이 파밭에 비닐 돗자리를 꺼내 깔았다. 아직 해가 돋지 않아 버드나무와 백양나무의 성근 그늘이 어느 쪽에 드리울지 알 수 없었다. 아이와 나는 소꿉장난을 하듯 신을 벗고 돗자리 위에 올라앉았다. 그러고는 잠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무연히 지나온 강께로 눈을 주었다. 강 가운데 섬은 올 해진 명주처럼 흰 안개가 부드럽게 풀려 흐르고 있어 한층 멀어 보이는 탓에 마치 신기루처럼 보였다.
물가로 내려간 남편은 장화를 절벅거리며 수초를 치고 받침대를 박았다.
안개 속에 스밀 듯 불그레한 기운이 감돌았다. 해가 돋고 있는 것이다. 새벽의 한기가 갑자기 가셨다.
강의 맞은 쪽. 우리가 떠나온 시는 세 개의 봉우리를 이은 족두리의 형상으로 눈에 잡혔다. 그리고 가운데 제일 큰 봉우리의 이마로 반짝 햇빛이 얹히는 중이었다. 시의 끝, 구릉으로부터 하나의 움직이는 띠가 나타났다. 기차였다. 스름스름 서행(徐行)으로 진입해 오던 기차는 기적을 울리며 사라졌다. 꺼멓게 입을 벌린 굴이 한 토막씩 천천히 기차를 삼켰다. 기차는 산굽이를 돌아서야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나는 결코 보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차가 사라진 뒤에도 오래도록 시커먼 굴속을 바라보았다. 날 밝기 전 시발역을 떠난 것으로, 이 시로 들어오는 첫 기차였다. 나는 아이에게서 그때까지 입고 있던 남편의 점퍼를 벗겼다. 남편은 떡밥을 주먹만큼 한 크기로 뭉쳐 흐린 물속에 던져 넣고 낚싯대를 연결했다. 찌를 달고, 긴장한 탓인지 입술을 빨며 바늘에 미끼를 꿰었다.
해가 조금씩 퍼지고 안개가 걷히자 갇혔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수면은 비늘처럼 잔 굽이로 밀렸다.
찌가 자꾸 비스듬히 기울어 물에 눕자 남편은 신경질적인 손놀림으로 낚싯대를 채어 밥을 다시 끼웠다.
퐁당퐁당 돌을 던져라, 누나 몰래 돌을 던져라.
벌써 지루해진 아이가 잔돌을 주워 강에 던지며 노래를 불렀다. 남편은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내저어 아이를 나무랐다. 그러나 아이는 계속 돌을 던지며 갓 배운 노래를 소리높이 불렀다.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냇물아 퍼져라, 멀리멀리 퍼져라.
나는 아이의 버릇없음에 대해 자주 남편을 비난했다. 그럴 수 없을 때가 곧 오게 되는 거야. 남편은 경구(警句)조의 한 마디로 늘 아이를 옹호했다.
강의 하류에 위치한 군용 비행장에서 요란한 프로펠러 음으로 떠오른 헬리콥터가 머리를 스칠 듯 배를 보이며 낮게 지나가자 아이는 와아 함성을 지르고 만세를 불렀다. 헬리콥터는 완만한 예각을 그리며 시의 북쪽으로 사라졌다. 두 번째 기차가 지나갔다.
“몇 시예요?”
나는 물가의 남편에게 고개를 길게 빼어 물었다. 남편의 주의는 온통 찌에 쏠려 있어 미처 듣지 못했는가 보았다.
해는 완전히 퍼졌다. 흙탕의 물에 햇빛은 깊이 침잠해서 다만 뿌옇게 미세한 흙가루만을 떠올릴 뿐이었다.
사흘을 내리 퍼부은 비였다.
그는 지금쯤 기차를 타고 있을 것이다. 산은 보랏빛의 어둠을 벗고 밝은 녹빛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포플러 숲 그림자가 물 속에 잠겼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논둑길을 걸어갔다. 아이는 맨발인 채 흙의 감각이 좋은지 깨금발로 앞서 뛰었다. 아이의 뜀박질이 자칫 곤두박질을 칠 듯 위태로웠다.
논둑에는 클로버가 많이 피어 있었다. 아이가 한아름 따온 꽃으로 목걸이를 엮고 조그만 손가락마다 반지를 해 끼우고 양팔에 시계를 채웠다. 아이는 부챗살처럼 손가락을 벌리고 노래를 불렀다. 클로버 줄기에는 진딧물이 끓었다. 풀물인지 진딧물의 분비물인지 알 수 없는 자국이 손톱 사이에 푸르게 배었다.
“몇 시예요?”
나는 슬픔을 누르고 아이에게 물었다.
“다섯 시 십 분입니다.”
아이는 팔을 높다랗게 치켜올리며 자신 있게 답했다. 다섯 시 십 분, 아이가 만사 젖혀놓고 텔레비전 앞에 매달리는 초능력의 로봇 만화영화가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알루미늄 컵과 병을 든 아이는 나뭇가지로 발 밑을 헤치며 녹빛의 논두렁 사이로 사라졌다.
바람이 불어 벼가 눕고 다시 일어난 벼 사이로 아이의 노란빛 모자는 저 혼자 떠돌 듯 찰랑찰랑 가볍게 떠서 흔들리며 멀어져 갔다.
한참을 가던 아이가 불안한 듯 돌아섰다. 엄마 여기 있다. 나는 손짓으로 아이를 안심시켰다. 모자 차양이 이마를 가리워 웃는 입모습만 보였다.
나는 벼포기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아이의 빨간 셔츠를 눈으로 좇으며 무릎을 싸안고 앉았다.
물살에 찌가 자꾸 누웠다. 남편은 지친 빛도 없이 낚싯대를 거두어 날과 찌의 줄을 조정하고 미끼를 갈아 끼웠다.
나는 물가로 내려가 남편의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바구니도, 물에 담가놓은 어망도 비인 채였다.
“심심하지?”
“아뇨.”
짤막하게 대답하고 나는 탐색하는 눈길로 남편의 손을 바라보았다. 입질도 안한 미끼를 그토록 자주 갈아 끼울 이유는 없을 것이다.
봄내 여름내 물가를 찾느라 검게 그을어 투박해 뵈는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날카로운 갈고리에 떡밥을 끼웠다.
남편이 언제부터 낚시를 다니게 되었던가, 그닥 오래된 것은 아니었으나 기억이 아리송했다. 어느 날 제시간에 퇴근해서 돌아오는 그의 손에는 한 벌의 낚싯대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은밀하고 절박한 그리움으로 남편을 떠나고 있었다.
나는 낚시에 흥미를 느낀 적도, 따라나선 적도 없었기에 남편이 이러한 모습으로 앉아 해를 보내리라고는 상상해볼 수 없었다. 남편 역시 혼자 있는 시간의 내 모습을 알 리 없는 것이다.
다만 잠결에 보게 되는, 어둠 속을 도둑처럼 빠져나가는 뒷모습과 바구니에 담긴 수초의 비리고 미끈한 감각, 몇 마리의 죽어 있는 물고기, 죽은 물고기의 표피로 내솟는 점액질의 투명한 막, 옷에 묻은 뻘흙이나 민물고기의 핏자국 정도가 내가 남편의 낚시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뻘흙의 자국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아 빨래에는 늘 애를 먹었다.
발 밑에서 물이 찰싹거리고 있었고 운동화가 이내 젖어들었다. 더러운 물거품 속에 싱싱하게 부푼 부레와 아직 선연한 빛의 내장이 밀렸다. 남편이 발로 밀어 물 속으로 흘려보내었다.
해가 꽤 높이 솟아 있었다. 포플러 숲 그림자가 한결 짧아졌다. 더웠다.
그러나 남편은 정수리에 햇빛을 쨍쨍히 받으며 앉아 있었다. 머리칼 밑으로, 관자놀이께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통 안 잡히네요.”
“물이 불어서 그래, 물살이 세면 낚시가 안 돼.”
“자릴 옮겨 보지 그래요.”
“밑밥을 넉넉히 깔았으니 좀 기다려 보지.”
기차가 지나가고 있다.
“몇 시예요.”
나는 남편의 팔뚝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열시 사십 오 분이군.”
기차는 이십 분 연착인 것이다. 그 이십 분이 내게 구원으로 생각되었다. 그는 이십 분간의 유예를 갖는 것이다. 최소한 이십 분 가량은 헛되이 낯선 거리를 기웃거리며 방황하지 않을 유예. 열린 창마다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선풍기는 뻑뻑히 목을 꺾으며 힘들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끈끈한 바람에 함께 허덕이며 그는 아마 이쪽을 보고 있을까. 한유하게 낚싯대를 드리운 우리를 볼까. 아, 이십 분, 두 시간, 이틀이면 어떠랴, 나는 해(年)를 두고 그를 기다려왔던 것을.
나는 줄곧 그를 기다려왔다. 그 기다림은 하도 절박하면서도 만성적인 것이어서 나는 오히려 그것이 생리적, 원천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애는 어딜 갔지.”
남편이 눈으로 기차를 좇으며 물었다.
“개구리를 잡으러 갔어요.”
남편이 주머니에서 선글라스와 모자를 꺼내 썼다. 뒷머리 털이 모자의 죔고무줄에 눌려 꼿꼿하고 쇠줄처럼 단단히 목덜미를 덮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는 구겨진 옷과 당혹한 표정으로 어느 정도 나그네의 냄새를 풍기며 피로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로 역사(驛舍)를 들어설 것이다. 나는 항상 마음속으로 그를 불렀다. 어서 오세요, 아니 제가 갈까요, 깃털처럼 가벼이 얹히겠어요. 나는 그를 너무 오래 기다려왔으므로 어떤 장식적 의미, 구체적인 모습 따위는 전혀 떠올릴 수도 설명할 수도 없었다.
정물처럼 앉아 있는 남편의 주의를 햇빛이 유리곽처럼 투명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은 마치 발가벗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편이 깔고 앉은 등받이 없는 조그만 의자의 알루미늄 다리가 반 남아 진흙 속에 묻혀 있었다.
타악타악 막대기로 풀숲 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지 몰랐다. 아이가 돌아오는 걸까, 나는 일어났다. 남편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햇빛이 사슬처럼 금속성의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남편은 풀숲을 향해 오줌을 누었다. 풀벌레들이 후드득 튀어 날았다. 나는 물가를 떠나 빈 밭을 지나며 둘레둘레 아이를 찾았다.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밭의 가장이로 쇠비름풀들이 돋아 있었다. 나는 주저앉아 그것을 뽑았다. 무른 땅인데도 뿌리는 연한 이파리와는 달리 불가해한 힘으로 땅 속에 얽혀 있었다.
나는 흙 속에 손을 묻은 채 한동안 동물의 내장처럼 견고히 유연하게 얽힌 뿌리를 바라보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흙이 손가락 사이로 감겨들었다.
신작로 쪽으로 경운기가 한 대 부옇게 먼지를 피워 올리며 털털거리는 요란한 소리로 지나갔다.
논둑길로 아이가 나타났다. 뺨이 붉게 달아 있었다. 나는 아이를 향해 곤두박질을 치듯 뛰었다.
“쟤네들이 잡아줬어.”
아이가 개구리가 든 컵과 몇 마리의 조그만 풀벌레가 든 병을 내밀었다. 아이의 뒤에는 아이 또래이거나 조금 위일 성싶은 서너 명의 사내애들이 서 있었다. 나는 고맙다 라고 정답게 말했으나 그 애들은 냉담한 시선으로 흘깃거리고는 패를 지어 봇도랑에 발목을 빠뜨리며 팽그르르 잔돌을 던지거나 막대기로 풀숲을 뒤지며 내 앞을 비켜갔다.
병은 짙은 갈색으로 어두워 벌레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아이는 후후 입김을 불어넣고 조심스럽게 받쳐들었다.
반바지 아래 거의 허벅지까지 진흙이 묻고 무릎에는 길게 긁힌 상처가 나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등을 돌려대었다.
아이는 앞서 가는 사내애들을 의식했음인지 잠깐 거부하는 시늉을 했으나 그 애들이 물가로 내려가 모습을 감추자 잠자코 업혔다.
병 속에서 파드득거리는 풀벌레의 안타까운 날개짓, 개구리의 불안한 몸짓이 바로 귀 밑에서 들렸다. 나는 돗자리 위에 올라앉아 아이를 무릎에 안았다. 아이의 눈이 졸음으로 몽롱히 풀렸다.
성근 백양나무 이파리 사이의 햇빛이 아이의 얼굴 위에 내려앉자 아이는 손등으로 눈을 가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아이의 손에서 병과 알루미늄 컵을 빼내었다. 아이는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손아귀에 힘을 주었으나 곧 손가락에 힘이 풀렸다.
나는 아이를 펀펀한 자리에 눕히고 막대에 꽂은 우산을 땅에 힘껏 두드려 박았다. 해를 역광으로 받도록 우산을 기울이자 아이의 몸 위에 제법 긴 그늘이 드리워졌다.
남편이 튀어오르듯 벌떡 몸을 일으키며 낚싯대를 잡아챘다. 반짝이는 움직임이 허공을 가르며 싱싱하게 퍼드득거렸다.
“뭐예요?”
나는 짐짓 호들갑을 떨며 물가로 내려갔다.
“대단찮아, 피라미야.”
남편은 시덥잖게 대꾸했으나 꼼꼼하게 입 안쪽에 박힌 바늘을 빼내고는 어망에 넣었다. 기차가 지나가고 있다.
“몇 시예요?”
나는 물었다. 남편은 대답하지 않았다. 미끼를 단 낚싯대를 받침대에 걸고 마치 조준하듯 방향을 잡았다. 긴장으로 이마의 힘줄이 두드러졌다. 필시 선글라스 속의 눈꺼풀도 경련하고 있을 것이다.
군대시절 명사수였다는 남편이 조준하는 사정권 안에 들어 있는 건 마악 굴 속으로 꼬리를 사리며 들어가는 기차였을까.
“역엘 나갔었어?”
담배에 불을 붙여 물며 남편이 지나가는 말처럼 예사롭게 물었다.
“아니요, 아, 아마 나갔었을지도 몰라요.”
나는 변명하듯 덧붙였다.
“난 늘 산책을 좋아하는 거 알잖아요. 왜 그래요?”
“버스 타고 지나가다가 대합실에서 나오는 당신을 본 것 같아.”
그것은 어제의 일일까, 그저께의 일일까, 아니면 한 달 전, 혹은 일 년 전의 어느 날일지도 몰랐다.
찌가 약하게 흔들린다고 생각한 순간 남편의 팔이 힘있게 머리위로 들리고 반짝이는 것이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발 밑에 떨어졌다. 손바닥만한 붕어였다.
수초 위에 사뿐히 앉았던 잠자리 한 마리가 서슬에 가벼이 날아올랐다. 물방울이 튀어 유지(油紙) 같은 날개에 잠깐 무지개가 서리는 듯했다.
낚시 바늘은 목의 안쪽부터 머리를 뚫고 깊이 박혀 있었다.
남편은 살을 찢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찬찬히 오랜 시간을 들여 은빛 날카로운 갈고리를 뽑아내었다.
붕어가 한 마리 흰 배를 뒤집고 흘러가고 있었다. 어쩌면 종이배 같기도 했다.
물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아니면 센 물살에 휘말려 죽은 걸까.
어망 속 피라미의 몸놀림이 둔해졌다.
입에 거품 방울을 물고 있었다. 남편은 언제부터 낚시를 시작했던가. 내가 그를 기다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러한 감정의 과장, 극적인 형태, 도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혐오했다.
기차가 지나간다. 해는 더욱 높아졌다.
포플러 숲은 물 속에 드리웠던 자기의 그림자를 거두었다.
때때로 나는 이제는 더 이상 젊지 않은 여자로 낯선 저녁 거리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아니면 눈물자국으로 얼룩진 얼굴의 사내아이의 손을 잡고 우두커니 서 있는 내 모습을 보곤 했다.
땅바닥에서 축축히 습기가 올라왔다. 해가리개를 세웠음에도 아이는 땀을 흘리며 자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등 밑으로 손을 들이밀었다. 땅에서 올라온 습기 때문인지, 땀을 흘리고 있는지 축축했다.
햇빛이 머리칼께에 위태롭게 머물고 성긴 머리칼 사이로 머리속살이 희게 드러났다.
“배 안 고파?”
남편이 물었다.
“아뇨.”
나는 고개를 젓고는 해가리개를 옮겼다. 그늘은 벌써 아이의 이마께에서 콧등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나는 중천의 해 위치를 가늠하고 우산을 똑바로 세웠다. 밝은 산에 가끔 짙은 빛의 얼룩으로 그림자가 드리우는 건 구름이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썩어가는 파 냄새가 유황내를 풍기며 피어올랐다.
겨드랑이와 정강이로 땀이 흘렀다. 남편의 남색 티셔츠 겨드랑이 부분이 펑 젖어 있을 것이다.
아이가 괴롭게 몸을 뒤채며 눈을 떴다. 그리고 잠깐 낯설고 서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잠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오기까지의 어지러운 선회(旋回)에서 빠져 나오려는 노력으로 눈을 깜박이고 허공을 휘저었다.
아이는 컵과 병 속을 들여다보았다. 햇빛 아래 방치된 컵 속에서 수분이 말라 건조한 표피로 개구리는 헐떡거리고 쨍 갈라질 듯 뜨겁게 달아오른 병 속에서 풀벌레들은 더 이상 퍼득이지 않았다.
“이젠 제 집으로 보내주자.”
나는 아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개구리를 꺼내어 덤불 속으로 던졌다. 아이의 얼굴이 분노와 적의로 일그러졌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남편이 아이를 불렀다. 나무 이파리로 피리를 만들어 삘릭삘릭 불고 어망을 열어 비스듬히 누운 피라미와 힘겹게 입질을 하는 붕어를 보여주었으나 아이는 종내 시무룩한 얼굴이었다.
기차가 허덕이며 지나갔다.
“몇 시예요?”
“벌써 두 시가 넘었군.”
아, 나는 뜻모를 탄성을 낮게 내뱉으며 맞쥔 손을 비틀었다.
“너무 더워요. 이젠 돌아가요. 애가 몹시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남편의 눈은 이미 찌의 움직임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나는 남편이 내 말을 거의 듣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남편의 눈은 두꺼운 선글라스 속에 숨어 안타까움으로 끊임없이 비틀리는 내 손의 안간힘을 보고 있었다.
그는 땀과 먼지에 젖어 단조롭고 특징 없는 거리를 헛되이 헤매고 있을 것이다. 줄곧 물처럼 흐르는 땀에도 불구하고 살갗 밑에 한기가 드는 것 같았다.
비행기가 괴조(怪鳥)처럼 낮게 떠서 머리 위로 날았다.
아이는 만세를 부르지 않았다.
배들은 드문드문 엇갈려 강을 가르며 지나고 강 가운데 포플러 숲에서 흰새 떼가 날아올랐다.
“이젠 돌아갑시다.”
남편은 낚싯대를 접었다. 나는 말없이 돗자리를 걷고 우산을 접었다.
우리는 올 때처럼 빈 밭을 가로질렀다. 새벽에 남긴 남편과 내 발자국이 꾸들꾸들 말라가는 흙 속에 작은 균열을 보이며 찍혀 있었다. 흰 마스크를 쓰고 논에 약을 치던 늙은 농부가 밭을 건너오는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분무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흰 입자들이 녹빛의 기름진 이파리에 묽은 액체로 흘러내렸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낯선 거리에서 머뭇대지 않고 돌아갈 채비를 할 것이다. 저물녘이면 그가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 불 밝힌 식탁에 앉으리라.
선착장에는 사람들이 둥글게 몰려 있었다. 거적에 덮인 시체는 방죽의 화강암 포석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거적 밖으로 미처 덮이지 못한 흙 묻은 머리칼과 발이 비죽 드러났다. 강물은 둔하고 단조로운 소리로 연안을 핥았다.
아이는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사람들 틈에 고개를 내밀고 물러설 듯 다가설 듯 멈칫거리며 시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남편은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비켜섰다.
“남자군, 몇 살이나 되었을구.”
“낚시꾼이래, 시내 사람인 모양이지.”
익사체의 한 발은 거의 물에 잠겨 농구화의 뻘흙을 물살이 상기도 씻어내고 있었다. 한쪽은 맨발이었다. 조금 부은 듯 푸른 기가 도는 흰 발은 거의 무성(無性)의 것으로 보였다.
익사체는 햇빛 아래 불가사의한 모습으로 조용히 누워 있었다.
나는 늘 기다렸다. 깊은 밤 어두운 하늘을 보며 살별이 떨어져 내리기를, 가슴을 시리게 꿰뚫고 지나가기를, 살별의 꼬리, 빛의 한 조각이 가슴으로 흘러들기를, 이승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그리움처럼 그를 기다려왔다.
“배를 기다리는 거예요. 배에 실어 지서로 옮겨야 하니까요.”
“염천에 시체 치우기 욕보네.”
“이 노릇도 못해 먹을 노릇이에요.”
앳되어 보이는 순경이 비위가 뒤집힌다는 듯 역한 얼굴을 돌리며 침을 뱉었다.
“사람 죽은 게 시체지 별건가.”
멀찌감치 물러서 강의 상류 쪽을 보던 늙수그레한 순경이 달관한 어조로 말했다.
배가 닿고,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익사체 주위로 또 한 겹 둥글게 진을 쳤다. 앳된 순경이 배에 올라가 바닥에 미리 시멘트 부대종이를 두둑이 깔았다. 순경 세 사람에 의해 익사체는 물먹은 판자 쪽처럼 무겁게 휘며 거적째 들어올려졌다.
익사체가 배로 옮겨진 다음에도 사람들은 누웠던 자리에서 무언가 찾아내려는 듯 집요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포석에 젖은 물기로 그의 형체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내 뜨겁게 달아오른 화강석 바닥에 물기는 스미며 더러는 수증기로 피어오르며 그의 형태는 변형되고 무너지고 사라졌다.
그는 외계인처럼 사라졌다. 배는 벌써 포플러 숲을 돌고 있었다.
발동선 소리에 놀란 새떼가 포플러 이파리를 흔들며 하얗게 날아올랐다.
신대리 선객과 짐을 실어갈 배는 좀체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기와는 무관한 익사체 때문에 공연히 한 차례 배를 기다리는 것을 투덜대었다.
무료해진 아이는 바구니 속을 들여다보았다. 수초와 죽어 가는 물고기의 몸에서 풍기는 비린내, 몇 마리의 붕어와 피라미는 죽어 있었다. 물마른 곳에서 퍼덕이다가 함부로 떨어뜨린 비늘이 수초에 묻어 무의미하게 반짝거렸다.
아이와 나란히 머리를 맞대고 바구니 속을 들여다보던 남편이 그중 작고 비늘이 많이 떨어진 피라미 두 마리를 엄지와 검지로 집어 올려 강물에 던졌다. 그것은 하나의 점으로 느릿느릿 흘러가다 이윽고 시계(視界)에서 사라졌다.
아이는 선착장 방죽에 올라앉아 발장난을 치고 있었다. 볼품없이 가느다란 다리는 진흙으로 얼룩져 더럽고 무릎의 상처에는 굳은 피로 꺼멓게 딱지가 앉아 가는 중이었다.
남편은 선글라스를 벗고 눈가를 닦았다. 남편의 시선이 줄곧 아이에게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남편과 아이의 시선의 끈끈한 얽힘을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마치 짐승이 새끼를 품듯 감상이나 의지와는 무관한 본능적인 애정으로 목이 메이면서도 가끔 아이에 대해 이상할 만큼 차가워지는 자신에 당황하곤 했다.
아이가 차츰 우리를 배반해갈 동안 우리는 아이로 인해 다투고 절망하고 화해하게 되리라.
나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의 손목에는 상기도 시든 클로버의 꽃시계가 감겨져 있었다.
“몇 시예요?”
나는 아이의 섬세한 목에 팔을 두르고 절망적으로 물었다.
아이가 가벼운 손짓으로 나를 밀어내며 손목을 눈 가까이 들어올렸다.
“다섯 시 십 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