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은 누군가가 그 점을 짚으면서 위로 아닌 위로를 해왔던 일을 떠올린다. 그때 속으로 짜증이 났던 것까지 기억난다.
“만 나이로 치면 열 살도 채 못 되었을 때에…….”
현진건은 그때 입 밖으로 말소리를 내지 않는 채로 ‘만 나이는 무슨 만 나이?’ 하고 그에게 내심 항의했었다.
‘반만년 문화민족인 우리가 왜 일본놈들한테서 유래한 개념을 쓴단 말입니까! 만 나이는 일본말 만연령滿年齡을 우리말 방식으로 옮긴 신조어입니다. 본래 동양에서는 태어난 해를 한 살로 치고, 그 다음해부터 한 살씩 보태는 나이 셈법을 써왔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지낸 기간을 한 살로 인정해 왔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태어난 이듬해에 두 살이 됩니다. 그것이 우주의 이치에 맞지요. 서양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뿐이면서도 진건은 마치 실제 발화를 하는 양 상대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만큼 진심이었다. 진건의 눈길이 느껴졌는지 상대도 ‘응?’ 하는 표정을 지었다. 진건이 소리 없는 말을 이어갔다.
‘서양에서는 출생 이후 365일을 지나면 그제야 1세로 칩니다. 태어나서 1년을 생존해 있었다는 인식이지요. 셈법이 그러니까 출생 후 6개월 된 아이의 나이를 0.5세로 봅니다. 그렇다면 어머니 뱃속에서 살아 있었던 10개월은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까요? 살아있는 기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주 비인간적이지요. 만 나이 셈법은 생명을 존중하는 사상이 못 됩니다!’
진건의 얼굴이 점점 상기되어간다.
‘만 나이? 말도 되지 않는 발상입니다. 단기 아닌 서기를 쓰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우리 나이를 버리고 만 나이로 사람 연령을 셈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보다 일찍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서기 1902년부터 만 나이를 썼습니다. 1895년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바꾸면서 양력을 도입한 것은 세계적 추세에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라 하겠지만, 우리끼리 쓰는 나이 셈법을 일본놈들 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제가 대안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아기가 어머니 태중에서 보낸 시간을 1년으로 봅니다. 태어나는 순간을 1세로 한다는 이야깁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1년이 지나면 2세로 합니다. 서양식 나이보다 오롯이 한 살 많은 나이셈법이지요.’ (미주)
진건의 속마음이 그러고 있는 줄 모르는 채 상대는 저 하고 싶던 말을 마저 했다.
“만으로 열 살도 아직 못 되었을 때에 어머니께서 별세를 하셨군요……. 이걸 어쩌나!”
마지못해 진건은,
“예…….”
하고 대답했었다.
진건은, 인자한 표정으로 한참 자신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사라진 유리창을 아내가 대신 채워오는 환상을 바라본다. 그가 아내 이순득과 부부의 연을 맺은 일도 어느덧 3년 전의 과거사가 되었다. 결혼할 때 이순득은 열아홉, 현진건은 열여섯이었다. 그런데 대구 인교동 처가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진건은 화촉 촛농이 채 마르기도 전에 서울 보성고보 유학길에 올랐다. 1915년 11월 23일이었다.
이듬해 7월 대구로 돌아온 그는 다시 집을 떠나 일본 동경 세이소쿠正則 예비학교와 세이죠오城成 중학교에 다녔고, 올봄에 영구 귀국하는가 싶었지만 겨우 석 달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중국으로 가고 있다.
‘나보다 스무 살 많은 맏형은 러시아 유학, 열여섯 살 많은 둘째형은 일본 유학, 여덟 살 많은 막내형은 중국 유학 ….
아버지의 자식들에 대한 기대는 참으로 하늘을 찌를 지경이야. 나도 막내라고 해서 집에 가만히 놔두실 양반이 아니시지. 처음에는 서당에 보내어 한학을 깨우치게 하고, 다음에는 당신이 직접 운영하신 대구노동학교에서 수학하게 하고, 이어 서울 유학에 일본까지 ….
내가 세이죠오 중학의 군사교육 분위기를 견뎌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버리자 실망하신 눈치가 보통이 아니었는데, 정건 형한테서 중국으로 보내라는 연통이 오자 얼씨구나 신이 나셨지. 어린 막내며느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으신가 …?’ (계속)
(미주) (윤석열) 정부는 '우리 나이'를 없에고 '만 나이'를 쓰도록 강제하는 '만나이 통일법(행정기본법 및 민법 일부개정법률)'을 2023년 6월 28일부터 시행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