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雄 忠武公 李舜臣 語錄(성웅 충무공 이순신 어록)
聖雄 忠武公 李舜臣 (성웅 충무공 이순신 1545.04.28-1598.12.16)
勿令妄動 靜重如山 (물령망동 정중여산)
가벼이 움직이지 마라 침착하게 태산 같이 무겁게 행동하라
첫 전투인 옥포해전 발발직전 육군 수군이 연속 패하자 장병들에게 사기를 북돋아주기위한 명언
성웅(聖雄) 충무공 이순신 장군 어록(語錄)
從事肥己 如是不願 他日之事 亦可知矣(종사비기 여시불원 타일지사 역가지의)
자기 한 몸만 살찔 일을 하고 이런 일은 돌아보지 않으니 장차의 일도 가히 짐작된다
성웅(聖雄) 충무공 이순신 장군 어록(語錄)
而爲 遮遏海寇 莫如舟師 水陸之戰 不可偏廢
(이위 차알해구 막여주사 수륙지전 불가편폐)
바다의 왜적을 저지하는 데는 수군을 따를 만한 것이 없습니다
수군이나 육군은 그 어느 쪽이라도 없앨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발발 1년전 일본은 수전에 강하고 육전에 약할 것이므로 수군을 폐하고 육군에 전력을 기울이자는 신립의 논의에 반대하며
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是無國家 (호남국가지보장 약무호남시무국가)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입니다
만약 호남이 없다면 곧 나라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1593년 7월 16일(음력) 당시 사헌부 지평 현덕승(玄德升 1564-1627)에게 보낸 편지 중
三尺誓天山河動色 一揮掃蕩血染山河 (삼척서천산하동색 일휘소탕혈염산하)
석자 칼을 들어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강이 진동하며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1594년 장인 이무생과 태귀련이 만든 장도에 새긴 글귀
大將不可不和 讐賊不可從遣 (대장불가불화 수적불가종견)
대장된 자가 화친을 말할 수는 없을 뿐더러 이 원수를 놓아 보낼 수는 없습니다
고니시에게 회유당한 명의 수군 제독 진린으로부터 퇴로길을 열어주자는 말을 듣고 이에 반발하며
此讐若除 死則無憾 (차수약제 사칙무감)
이 원수를 갚을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을 앞두고 하늘에 맹세하며
戰方急 愼勿言我死 (전방급 신물언아사)
지금 싸움이 한창이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노량해전의 승리가 다가온 순간, 눈 먼 탄환이 가슴을 뚫자
丈夫出世 用則效死以忠 不用則耕野足矣 (장부출세 용즉효사이충 불용즉경야족의)
대장부로 세상에 나와 나라에 보탬이 된다면 죽음으로 충성을 다할 것이고 쓰임이 없다고 한다면 야인이 되어 밭을 갈면서 살겠다
32세 식년시 무과에 합격한 이후 무관 임용을 대기하며
今臣戰船尙有十二 (금신전선 상유십이)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8월 29일 진도의 벽파진으로 나아가 진을 쳤는데 경상우수사 배설이 군사를 버리고 달아났다
9월 7일 이때 조정에서는 수군이 무척 취약하여 적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충무공 이순신에게 뭍으로 올라와서 싸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회답 장계를 올렸다
自壬辰至于(자임진지우)
五六年間(오륙년간)
賊不敢直突於兩湖者(적불감직돌어량호자)
以舟師之拒其路也(이주사지거기로야)
저 임진년으로부터 오륙년 동안 적들이 감히 전라도와 충청도로 바로 쳐들어오지 못한 것은 수군이 그 길목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今臣戰船(금신전선)
尙有十二(상유십이)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出死力拒戰則猶可爲也 (출사력거전칙유가위야)
죽을힘을 다해 항거해 싸운다면 오히려 해볼만 합니다
今若全廢舟師(금약전폐주사)
是賊所以爲幸而由(시적소이위행이유)
湖右達於漢水(호우달어한수)
此臣之所恐也(차신지소공야)
지금 만일 수군을 전부 없애 버린다면 이는 곳 적들이 크게 다행으로 여기는 것으로 호남을 거쳐 한강까지 곧바로 쳐들어갈 터인데 신이 걱정하는 바는 바로 이것입니다
戰船雖寡(전선수과)
微臣不死(미신불사)
則不敢侮我矣(칙불감모아의)
전선의 수는 비록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또한
一夫當逕 足懼千夫(일부당경 족구천부)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1592년(선조25) 1월 16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 관할 장수들에 대하여 검열을 하고 있을 때이다
이 때는 왜군이 처들어 오기 3개월 전으로 우리 병사들은 언젠가 있을 왜적의 침입에 대비해 쉬지 않고 전비태세 강화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군관과 색리들이 마땅히 고쳐야 할 병선을 고치지 않았으므로 그들을 벌하여 곤장으로 다스렸던 일화가 있다
이순신,李舜臣(1545년4월 28일~1598년12월 16일) 조선 중기의 무신이었다
문반 가문 출신으로 1576년(선조 9년)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그 관직이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발포진 수군만호 조산보 만호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정헌대부 삼도 수군통제사에 이르렀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덕수 이씨 12세 손으로 1545년 4월 28일 한성부 건천동(서울 인현동)에서 부친 덕연군 이정의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문무를 겸비한 덕장으로 크게 이름을 날린 이순신 장군은 평생 각자 맡은 바 책임감을 중시했다
임진왜란때 일본 수군과의 해전에서 연전연승하여 나라를 구한 성웅(聖雄)으로 추앙받고 있다
생활강령
본 것은 본 대로 보고하고 들은 것은 들은 대로 보고하라 본 것과 들은 것을 구별해서 보고하라
보지 않은 것과 듣지 않은 것은 일언반구도 보고하지 말라
어록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둘의 늦은 나이에 겨우 과거에 급제했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마라
나는 14년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돌았다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불의한 직속상관 들 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몸이 약하다고 고민하지 마라
나는 평생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았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마흔 일곱에 제독이 되었다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 하지 마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고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물 세번 싸워 스물 세번 이겼다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갖지 마라
나는 끊임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뺏긴 채 옥살이를 해야 했다
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라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전쟁터에서 열두 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적을 막았다
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말하지 마라
나는 스무 살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또 다른 아들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섰다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