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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서대장
성도는 환난과 시험도 복이 되게 합니다 신32:9-11
신31:30-32:44은 모세의 증거의 노래입니다. 이중 31:30은 표제이고 32:1-43은 모세의 증거의 노래이며, 44절은 모세의 증거의 노래를 반포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오늘 본문은 태초부터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여 주신 여호와의 특별한 선택을 증거하고, 여호와의 사랑과 은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간과하지 말것은 모세의 증거의 노래는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노래한 것으로 이스라엘의 배교와 그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 예언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성도는 환난과 시험도 복이 되게 합니다]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말씀을 받은 날 바로 노래를 지어 백성들에게 가르쳤는데, 이것을 여호수아가 후에 기록한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최후로 순종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을 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메마른 영혼을 윤택케 하는 단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창조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에 인간은 마땅히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 영광을 인간인 통치자나 상급자나 목사나 장로나 성도가 대신 받으면 그것이 이단이며 하나님을 배신하는 우상숭배이기에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온전한 피난처가 되시며 보호자가 되시며 반석이 되시는 참 고맙고 든든한 믿을 만 한 분은 오직 주 한 분 뿐이십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향해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하고 때로는 원망하며 저주하기 까지합니다.
이러한 죄는 무지의 결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보호해주시고 어떻게 인도해주셨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인간은 단순한 피조물이 아닙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의 중심에 서 있는 귀하고 귀한 존재들입니다.
세계의 역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우리들은 유대인을 하나님께서 지금도 제일 사랑하신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 사명이 끝났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신약성도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사랑하시고 성도를 지키시기 위해 역사를 경영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위해 모든 일을 입안하고 계획하고 계십니다.
성도가 역사의 주인공이고, 세상의 중심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성도의 삶이 힘들고 시련이 많이 있는 것입니까?
오늘 주신 시련과 환난은 축복의 통로가 되라고 주님이 주시는 선물인가요?
우리에게 끊임없이 경고하고 경각심을 주고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이것들을 통해 성숙한 성도로 자라 강한 주님의 군사가 되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첫째로 성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9)
성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이기에 성숙한 성도로 자라 주님의 강한 군사가 되어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해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택하신 특별한 기업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많은 민족과 백성들 중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사 자기 소유로 삼으신 것입니다.
신7:6-7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중에 가장 적으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만 적용되는 특별한 선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여 주신 것입니다.
엡1:4 “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신약 성도가 무엇입니까?
성도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선택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선택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세상 사람과 똑 같아서는 안 됩니다.
흠 없고 온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온전하고 흠없는 예수님처럼 살 수 있는가?
단지 입술로만 예수의 제자라 말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예수를 존경하는 4대성인이라 인정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시게 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이신 예수를 본받아 예수처럼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불가능하다 말하지 마십시오.
바울을 보십시오.
고전11:1“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자 되라.” 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예수를 본받는 자 되었다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성자로써 하늘 보좌에만 있으니 너무 거리고 멀고 이루기 힘든 불가지경에 계시기에 인간들이 감히 하나님을 닮으려 하지 않는 것을 보시고 직접 인간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100% 인간이 되시어 약한 모습으로 살아내셨습니다.
그 약한 몸을 가지고 세상을 이렇게 살라고 시범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방법들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은 우리도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비결은 예수님을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갈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합니다.
오늘을 사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교훈이 큽니다. 너무 감동이 됩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 이라...”는 고백으로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성도는 반드시 거룩하고 흠 없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말하는 것이 주와 같고 생각하는 것을 주님처럼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주와 같이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별된 삶을 사는 사람은 순간 순간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이라면 이렇게 하실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인생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소유권이 자기에게 있다는 자존심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 내 몸은 더 이상 내 몸이 아니다. 내 안에 천지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계신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서 사는 삶이므로 일거수 일투족을 예수님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내 몸의 소유권이 주님에게 있으므로 주님 마음대로 쓰여져야 합니다. 하나님 값이란 최고가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피곤하다, 하기 싫다. 어렵다, 귀찮다. 안된다. 꼭 이렇게 해야하나...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없이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 우리 인생자체가 하나님의 것이니 그분이 임으로 쓰시도록 내어 드리는 것이 성도의 의무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순간 순간 세상을 살면서 이것이 최선인가? 묻고 그렇습니다. [네 나는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큰소리로 확실하게 고백하는 주의 백성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성도인 우리에게 끊임없이 경고하고 경각심을 주고 문제와 시험이 발생하도록 하는 것은 이것들을 통해 성숙한 성도로 강한 주님의 군사로 양육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둘째로 하나님이 동행하시면서 안전을 보장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10)
이스라엘 백성을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자기들을 지킬만한 충분한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위험에 처하면 흑암으로 지켜 주셨습니다.
바다가 앞길을 막을 때 동풍으로 바닷물을 물리쳐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해 주셨습니다.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모세의 손이 들리는 이스라엘이 이기게 해주셨습니다.
만나로 먹여 주시고 반석에서 생수를 주어마시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어떻게 보호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먼저 호위하셨다 합니다.
이 말은 뱅뱅 돌다는 말입니다. 여왕벌을 지키기 위해 모든 일벌들이 여왕벌 주변을 뱅뱅돌며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빈틈없이 에워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택한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물샐틈없이 철통경계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음은 보호하셨다 합니다.
이스라엘을 세심하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첫 아이를 유치원에 처음 보내는 엄마는 아이보다 더 마음이 설렙니다. 이 아이가 울지 않고 다른 애들과 잘 어 울려야 할텐데... 준비물이 하나라도 빠지지 않도록 가장을 챙겨주고 또 아이한테 물어보고 또 확인합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 마음에 품으시고 그들의 작은 움직임까지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시는 깊은 배려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호위하시고 보호하시기에 많은 대적자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여 그 가는 길을 열었으며, 맞서던 자들이 이스라엘을 피하여 도망가게 된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보호하고 호위하여 지켜 주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을 주변 강국의 밥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무기가 없습니다. 오합지졸입니다.
거기에 조직도 안 되었습니다. 훈련도 안 되었습니다.
정신상태도 주인의식이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피동적 종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애굽에서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먹잇감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눈동자처럼 지켜 주셨습니다.
눈동자는 자기 신체 중에서 가장 예민하고 연약하며 중요한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장 애정어리고 가장 사랑스럽게 눈동자처럼 대해 주시는 것입니다.
즉 가장 귀한 최고의 사랑으로 즉 마음을 한시도 놓지 않는 세심한 돌보심으로 그들을 지키셨습니다.
시17:4“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
잠7:2“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리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눈동자같이 지켜 주시는 것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작은 먼지 하나라도 해가 되어 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보호하시는 사랑과 열정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동행하시는 그 큰 사랑과 열정에 감사하고 감격하며 온전한 충성으로 주님께 온전히 나를 드려야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성도인 우리에게 끊임없이 경고하고 경각심을 주고 문제와 시험이 발생하도록 하는 것은 이것들을 통해 성숙한 성도로 강한 주님의 군사로 양육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셋째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도들을 직접 연단하시기 때문입니다. (11)
1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직접 훈련시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강한 독수리로 만들기 위해 단련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인 성도들을 훈련시켜 왔다고 말합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가 날아야 될 때가 되면 자신의 보금자리를 훼손시킵니다. 그래서 새끼가 있을 자리를 없애는 것입니다.
때로는 새금파리나 철사같은 것을 밑에다 깔아놓습니다.
그때 새끼들이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다면 [세상천지에 별스런 부모도 다보지 하다 하다 새금파리에 철조망까지 안방에 쳐놓으니 정말 제정신 맞아, 정말 우리 부모 맞아? 어떻게 친부모가 저런짓을 하겠어?] 불평 할 것입니다.
한번도 날아보지 못한 새끼들에게는 작은 보금자리가 세상의 전부이고 그곳만히 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그 둥지를 헐어버리고 조금 남은 흔적에는 돌이며 새금파리, 철조망같은 도저히 깔고 앉지 못할 것들을 물어다 나르니 새끼들의 원망과 불평과 아우성이 하늘을 찌릅니다.
새끼들은 모르지만 어미는 이미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놈들아 거기서 날면 정말 멋진 세상을 비행할 수 있단다.
겁내지 말고 날개를 힘껏 저어보렴...
새끼들이 이 비행훈련을 마치고 나면 얼마나 멋진 독수리가 될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엄마 나 죽어요 살려줘요 제발 아이 씨 하는 새끼들을 등에 태우고 상공을 날아 오릅니다. 그리고 새끼들을 공중에 던져둡니다.
어머 어머 나 죽네 엄마 살려줘요 숨넘어가는 외마디 소리를 질러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날개짓을 하다가 추락하는 새끼 밑으로 기어들어가 안전하게 새끼를 등으로 받습니다.
아휴 죽을 뻔 했잖아요, 겨우 살았네 이제 다시 날 버리지 마세요.
요 녀석아 날개짓을 더 힘차게 쭉쭉 곧게 뻗어야 한다. 그래 고개를 세우고
땅을 보지 말고 저 멀리 앞산 너머 저 푸른 강 보이지 그래 그 먼곳을 봐
겁먹지 말고 그래 할 수 있어 우리 새끼 잘할 수 있어 그렇지 올라가면서 주의 사항과 잘못된 시정사항을 말해줍니다.
그리곤 또 다시 공중에 던져줍니다. 그러기를 수십번 수백번 하는 동안 이제 새끼의 날개에 힘이 들어갑니다. 점점 비행거리가 멀어집니다.
엄마 엄머 나 잘했지... 이제 나는 잘하는데 동생은 나보다 훨씬 못하지 그지 그지 그지 하며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둥지에 내려놓고 둥지 옆에서 벌벌 떨고 있던 동생을 업고 또 창공을 차고 올라갑니다.
그래서 저 푸른 창공에서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태풍이 몰아쳐도 상승기류를 타고 구만리를 날 수 있는 자유로운 비행사가 될 때까지 반복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어미 독수리는 마침내 훈련을 통해 독수리다운 독수리, 강한 독수리로 키워내게 되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참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느 농부가 독수리 새끼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리 농장에 넣어 같이 키웠습니다. 이 독수리는 어미 오리가 자기 엄마인줄 알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오리처럼 소리를 꽥꽥 지르며 수영훈련을 하다가 맥주병이라고 놀림을 당하며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지 왜 나는 수영도 못하지 하며 자기신세타령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 날 독수리떼가 오리 농장을 덮쳤습니다.
새끼 독수리는 벌벌 떨며 한쪽구석으로 숨었습니다. 나도 저 새처럼 날았으면 좋겠다 합니다. 그 다음날부터 날개를 퍼덕여 봅니다. 담장을 올라갈 수 있습니다. 다른 오리들은 야 너 정말 높이뛰기 잘 한다 .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인줄 알았더니 높이뛰기는 잘하네 하며 처음으로 친구들이 인정을 해 줍니다.
이제 지붕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던 중 독수리 떼가 또 다시 습격을 했습니다. 지붕에 있던 독수리 새끼가 오리농장으로 숨으로 들어갑니다. 그 모습을 본 독수리대장이 야 임마 너 소속이 어디야 왜 우리가 찜 해놓은 곳을 네가 건드려? 하며 새끼 독수리에게 다가 옵니다. 아 아 아닙니다. 살려 주십시오. 저는 못난이 오리입니다.
뭐 오리라고 너는 우리와 모습이 똑같잖니. 너는 독수리야. 자 이제 우리와 함께 날아보자. 그동안 오리들에게 보여 주려고 열심히 훈련한 탓에 날개에 힘이 있습니다. 지붕으로 날아오르더니 이제 창공을 독수리떼와 함께 자유롭게 비행합니다. 대장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여기 오리농장은 제 고향이니 좀 봐 주세요. 저 고아 되었을 때 오리엄마가 절 사랑하며 잘 키워줬거든요.... 키워준 은혜를 갚고 떠나갑니다.
못난이 오리는 이제 독수리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오리농장을 한바퀴 돌며 작별인사를 하고 시베리아로 날아갔습니다.
물론 우화입니다만 오늘 말씀과 너무 잘 어울리는 이야기입니다.
우린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엄청난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독수리의 훈련방법처럼 하나님은 하늘 백성을 끊임없이 연단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 예수님의 제자답게 , 성령님의 전된 성도답게 길러 내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성도들을 우리 주님 돌보시되 우리가 보다 완전하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성실히 연단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연단은 때로는 감당치 못할 만큼 가혹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무섭고 두렵고 피하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참 고마운 분이시므로 적절히 연단하시되 결국에는 그 연단이 도움이 되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연단이 주어질 때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아 신앙적 , 인격적으로 더 한층 성장하는 기회로 삼아야합니다.
만일 연단의 과정에서 우리가 포기하거나 낙오하거나 변절해버린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히12:11“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합니다.
연단의 고정에서 부딪치는 위기의 순간은 어미 독수리가 그 발아래로 날아들어 새끼를 엎어 위기를 모면하게 하듯이 우리 주님께서 그 강한 팔로 잡아 주실 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이 성도인 우리에게 끊임없이 경고하고 경각심을 주고 문제와 시험이 발생하도록 하는 것은 이것들을 통해 성숙한 성도로 강한 주님의 군사로 양육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도에게 환난과 시험이 복이 맞습니까?
첫째로 성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9)
둘째로 하나님이 동행하시면서 안전을 보장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10)
셋째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도들을 직접 연단하시기 때문입니다. (11)
성도는 하나님께서 하나님값을 주고 사신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된 백성입니다. 그러기에 그 보물같은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지키시려고 호위하시고 눈동자처럼 최고의 극진한 사랑과 열정으로 보호하시되, 성도다운 성도 하나님의 백성다운 백성, 예수의 제자다운 제자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하기 위해 오늘도 손수 우리를 연단하시고 훈련시키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어렵고 힘들고 무섭고 두려운 모든 시험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만드시는 우리 주님의 연단인줄 바로 알고 하나님의 경고를 감사로 받아들이는 성도 되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