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선운사 만세루」는 선운사에 전해지고 있는 「대양루 열기」(1686년), 「만세루 중수기」(1760년)에 따르면 1620년(광해군 12)에 대양루로 지어졌다가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52년(영조 28)에 다시 지은 건물로 정면 9칸 측면 2칸 규모의 익공계 단층 건물이며 맞배지붕으로 현재까지 잘 남아 있다. 처음에는 중층 누각 구조로 지었으나 재건하면서 현재와 같은 단층 건물로 바뀐 것으로 전해지며, 이는 누각을 불전의 연장 공간으로 꾸미려는 조선시대 후기 사찰 공간의 변화 경향을 보여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세루는 변화하는 불교사원의 시대적 흐름을 적절하게 반영한 누각 건물의 예라고 평가된다. 만세루의 특징은 사찰 누각으로는 가장 큰 규모인 정면 9칸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존 사찰 누각은 대체로 정면 3칸이 주류이고 5칸, 7칸 규모도 있으나, 9칸 규모는 흔치 않다. 그리고 이 건물의 가운데 3칸은 앞뒤 평주 위에 대들보를 걸고 좌우 각 3칸은 가운데 고주를 세워 맞보를 거는 방식을 취했다. 이처럼 만세루는 하나의 건물 안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보를 걸어 구조적 안전을 꾀하면서 누각의 중앙 공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어칸 고주 마룻보는 한쪽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자연재를 이용하였다. 이는 일부러 가공한 것이 아닌 자연에서 둘로 갈라진 나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마치 건물 상부에서 보들이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이 건물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문화재청 홈피 문화재 설명 발췌문-
만세루의 내부를 보고 많이 당황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도통한 목수가 아니고선 이런 구조물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목재를 마치 떡 주무르듯 자유자재로 재주를 부려 집을 지을 수 있는 이 놀라운 재능이 경이롭기까지 하였다.
연장 탓하는 사람들에겐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과감하고 기묘한 기술력이다
이런 내공이 쌓일 수 있는 것은 목구조에 대한 완전한 해석 능력과 공학적인 탁월한 식견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오늘날 얕은 실력을 기반으로 겉모습만 번지르하게 들어내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수리기술자이든 기능자이든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한 분야에 몸 담고 있는 나로서 참말로 부끄럽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뭘 좀 안다고 뭘 좀 배웠다고 뭘 좀 봤다고 설레발 떨 게 아니다.
희귀해진 옛 조상들의 흔적을 좇는 일은 더욱 그러하다.
알고 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으며 경험했다고 섣부르게 나설 일도 아니다.
고 신영훈 선생님과 업무상 가까이에서 뵌 적이 있다.
충북 청주 중앙공원에 있는 루(이름 생각 안 남)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변형된 과정을 살펴보는 자문 중에 내 생각을 말하였다.
그때 선생님께서 "그렇게 함부로 아는 채 마라 충분하게 검토하고 생각해야 할 일이다." 라며 내게 따꼼하게 충고를 하셨다. 그 뒤로 난 어딜 가도 아는 채를 잘 않는다. 다만 그렇다 아니다라고만 하려고 한다.
오늘도 오래된 고택 현장을 지키고 있다. 건물을 해체하면서 모르는 기법과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던 현상들을 보면서
참으로 내가 안다는 것이 심히 미미한 것뿐이구나 속으로 몇 번씩 되새기곤 한다.
선운사는 고창에 위치한다.
고창은 고인돌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지역이기도 하다.
선운사를 비롯하여 고창읍성, 취석정, 미당문학관, 고창 갯벌, 동호 구시포 해수욕장, 운곡 람사르 습지 등
많은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2008년도에 지인과 함께 고창읍성-선운사-취석정-미당문학관을 둘러보았다. 고창은 내가 사는 지역에서 그리 먼 거리가 아니어서 가족과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이웃한 무주까지 묶어 떠나는 여행코스로 잡으면 일박 이일 코스로 적당하다.
현장에 매여 당분간 휴가는 꿈도 못 꾸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서 다시 한번 다녀오고 싶은 곳 고창이다.
요즘처럼 눅눅한 장마철엔 관광이 아닌 여행으로 다녀올 만하다.
여행 중에 빗길을 걷는 건 행운이다.
빗속에 조용히 숲길을 걸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오랜만에 속 깊은 얘기를 나누는 건 생각만 하여도 가슴 뛰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