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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찬 수필 ‘젯밥’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 ||||||||||||
손경찬 대구예총 예술소비운동본부장이 수필 ‘젯밥’으로 제17회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친구와의 안동 여행에서 만난 헛제사밥을 고리로 고아로 자란 어린 시절 친구 집에서 얻어먹은 젯밥에 얽힌, 눈물을 훔치게 하는 추억을 다시 되돌아보는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 심사위원장을 맡은 양명학 울산대 국문학과 명예교수는 심사평에서 “손경찬 수필가의 수상작 ‘젯밥’은 문장을 빈틈없이 이끌어 나감으로써 자기만의 추억을 뛰어넘어 그 시대를 살아본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공감을 얻었다. 신변잡기를 가지고도 주정(主情)에 충실하여 만인을 같이 울게 해주는 작가의 능력이 돋보여 심사위원 전원 합의로 대상 수상작으로 올렸다”고 밝혔다.
손경찬 본부장은 그동안 사재를 털어가면서 예술소비운동을 전개하고 대구지역의 공연문화 활성화와 예술의 저변 확대를 위해 애써왔으며 시인, 수필가로 왕성한 문예활동을 벌여왔다. 또 ‘영호남수필문학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대구지역 수필가들에게 영호남 화합의 취지를 홍보하여 수많은 회원의 동참을 이끌어 냈고, 전북지회와 대구지회의 자매결연, 타 지역의 수필가들을 초청하여 시티투어를 하는 등 영호남수필문학협회 발전에 애써왔다.
시상식은 이달 12일과 13일 울산 진하 마리나리조트에 열린 ‘영호남수필문학협회 한마음 축제’ 현장에서 있었다. 한편 영호남수필문학협회는 문학 교류를 통해 정신적 공감대 확산과 문학인의 교류를 통해 지역갈등을 극복하고 상생과 화합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영호남의 문인들이 뜻을 같이해 만든 문인단체이다.
1990년 결성된 이래 지리산을 넘고 섬진강을 건너 오가면서 기관지 ‘영호남수필’을 출판하고 있다. 그리고 광주, 전남, 전북, 부산, 울산, 대구`경북 등 6개 지역을 순회하며 해마다 ‘영호남수필문학인 축제’를 열고 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문인들은 영호남 각지에서 모인 500여 명이었다. 대구지역에서도 김한성, 허정자, 전상준. 손숙희, 백정혜, 박기옥 수필가 등 30여 명이 동참했다. 이번 행사에는 기관지 영호남문학 23집 출판기념회도 함께 열렸다.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기자의 다른 기사
잿밥 / 손경찬 제사를 지내지도 않았는데 대낮에 음복 상을 받았다. 안동에 왔으면 헛제사밥을 먹어봐야 하지 않느냐는 친구의 말에 선뜻 따라왔던 것이다. 집에서 먹던 음복상과 그리 다를 것도 없다. 고사리 도라지 등의 나물들이 대접에 담겨 있고, 은은한 광택이 흐르는 놋그릇에 명태를 비롯한 전과, 어물과 육류를 꼬지에 꿰어 만든 적이 놓여있다. 제사 때가 아니면 잘 먹지 않던 탕을 보니 제사 밥이 확실해 보인다. 금방 익혀낸 듯이 상어고기와 고등어가 맛깔스럽지만 젓가락이 선뜻 가지가 않았다. 내게는 잿밥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열한 살에 고아가 된 나는 친구 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두서너 달씩 돌아가면서 친구 부모님들이 나를 맡아 키웠다. 정월 초쯤이었나 보다. 낮부터 내린 눈이 수북수북 쌓이던 그 날은 친구네 제삿날이었다. 눈처럼 하얀 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다. 그 시기에는 모두가 어려웠던 터라 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남의집살이에 일찍 눈치가 깨인 나는 평소에도 마당청소며 방청소를 알아서 했지만 쌀밥을 먹을 생각에 시키지도 않은 심부름까지 도맡아 했다. 12시가 되어야 지내는 제사까지 기다리는 것은 초저녁잠이 많은 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친구는 일찌감치 안방에 건너가 있었다. 남의 집 제사에 참석할 수 없는 나만 옷도 벗지 않은 채 이불을 덮고 누웠다. 전기를 아껴야 하기에 늦도록 불을 켜 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책이라도 읽으면 시간이라도 잘 갈 텐데 맹숭하게 누워 있자니 곤욕이었다. 이불을 뒤치락거리며 잠을 쫓느라 허벅지를 꼬집었다가 뺨을 꼬집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내리는 눈이 가는 시간의 발목을 잡는지 그날따라 시간은 더디기만 했다. 안방과 내가 누워있는 방 사이에 부엌이 있었다. 솥뚜껑 여닫는 소리, 칼질 하는 소리 하나 하나 내 귀에 들어왔다. 뚬벅뚬벅 칼질은 탕 끓일 무 써는 소리, 통통통 도마 치는 저 소리는 무 채 써는 소리, 나도 따라 칼질을 한다. 문틈 사이로 전을 부치는 기름 냄새가 기어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침 넘어 가는 소리가 이불을 제치고 나왔다. 혹여 아주머니가 들었을까 숨죽여 돌아누웠다. 안방과 부엌사이의 작은 문이 열리고 상 차리는 소리가 났다. 냄새를 보니 문어도 한 마리 삶았나보다. 어물이 들어가고 전이 들어가고, 친구의 ‘와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쇠고기 산적도 들어가는가 보다. 나는 누워서 제사상을 그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메밥이 들어간다는 아주머니의 소리가 들렸다. 기름이 조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을 한 숟가락만 떠먹어도 행복하겠다며 군침을 삼켰다. 떠들썩하던 친구와 동생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절을 하고 있다. 조금 있으면 음복을 할 것이고. 나는 부르기만 하면 단박에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시 부산한 소리가 들렸다. “경찬이 깨워서 밥 먹여라” 안방에서 아저씨의 말이 들렸다. 그 소리는 부처님 말씀보다 더 컸고 감사했다. 나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났다. “자는데 그냥 자게 놔두소, 내일 아침에 먹이지요” 밥을 푸는 아주머니의 그 말은 천둥소리처럼 나를 무참하게 주저앉히고 말았다. 내 집이라면 안 잔다며 뛰어나갈 수 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우는 소리를 내 놓을 수도 없었다. 이불을 덮어쓰고 베개를 입에 물고 흐느껴 울었다. 일찍 가신 어머니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쌀밥으로 시작된 눈물은 어머니에게로 갔다. 낮부터 내리던 눈은 그침 없이 내렸다. 쌀밥 냄새를 풍기며 친구가 들어와 누웠다. 금방 코를 고는 친구 옆에서 나는 밤새 한 잠도 자지 못하고 베개가 푹 젖도록 울었다. 눈 내리는 소리가 밤새 뚜렷하게 들렸다. 아침을 준비하는 솥뚜껑 소리가 들렸다. 소복이 쌓인 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침햇살에 반짝였다. 나는 언제나처럼 헛간 앞에 세워둔 빗자루를 찾아 마당을 쓸었다. 밤새 내린 눈은 빗자루를 얕보고, 나는 쌓인 눈에게 화풀이를 했다. 눈은 내가 흔드는 빗자루에 훨훨 다시 하늘로 올랐다. 아주머니는 전에 없이 아침부터 괜한 심통을 부리는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셨다. 벌건 내 눈을 보며 눈병이 들었느냐며 깜짝 놀라셨다. 눈과 입 주변이 벌겋게 되어 있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밥상에는 어젯밤 그들이 먹었던 제사 음식들이 놓였다. 내 몫이었던 쌀밥이 상에 올라오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퍽 쏟아졌다. 왜 우느냐는 친구의 말이 풀무질이 되어 재속에 숨어 있던 울음을 거침없이 토해내게 만들었다. 쌀밥을 뜬 숟가락이 입에 들어갔지만 울음이 북받쳐 씹을 수도 없었다. 대성통곡을 하는 나를 모두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 혼자 속 끓이며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이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까마득한 그 날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있다니. 음복 상을 앞에 두고 멍청히 앉아 있는 나를 본 친구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권한 것 같은지 공연히 미안해했다. 나는 나물이 담긴 놋대접에 밥을 얹고는 깨소금이 뿌려진 간장을 넣어 쓱쓱 비볐다.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잿밥을 입이 미어지게 넣고는 고등어 살점을 뜯으며 맛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제야 친구도 밥을 비볐다. 이 제사 밥이 어린 나를 밤새도록 울게 만들었던가. 그 밤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적셔진다. 헛헛한 웃음을 날리며 눈을 식당 밖으로 보이는 월영교로 보낸다. |
첫댓글 회장님의 글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잿밥' 을 여러번 읽어 보았습니다.
글속에 담긴 많은 이야기가 가슴 절절히 다가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않았는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