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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시티:
공항에서 폴크스바겐등 일반택시는 당연히 외면하고 ( 택시기사가 강도로 돌변하기도 한다는 소문을
들었기로....) 오른쪽으로 끝까지 걸어서 바깥의 택시 창구에서 일행이 4인이라며 티켓을 끊어
(180페소) 택시를 타려니 기사들이 저멀리 더 앞으로 가란다
택시번호판이 S자로 시작되는 콜택시는 괜찮은데, L자로 시작되는 길거리 택시는 절대로 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하철도 소매치기가 들끓으니 이용하지 않도록 하고, 여행사 투어를 이용하라고 잘라 말한다.
★ [스크랩] 멕시코 여행정보 (2주일간의 멕시코 여행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 외국 윈도우에서 한글 사용하기
글쓴이: 영마샬 조회수 : 107.07.23 19:37 http://cafe.daum.net/beanangmego/Ehjy/41 쿄쿄...
좌좌 .. 멕시코 여행 정보입니다.
안녕하세요 원월드로 여행하고 있는 사회과부도 복민입니다
저는 9월 30일 깐꾼으로 떨어져서 근 2주간 멕시코 시티까지 버스로 이동하면서 여행했구요 다른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릴까 글을 남깁니다. 지난번 COOOOL 님이 남겨주신 정보가 참 유용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감사드리고~ 저도 보충해서 쓰렵니다.
형식은 일단 쿨님꺼를 따라할게요^^
1. 여정 & 버스 (숫자는 여행한 날자 수 입니다^^)
Cancun(Chichen Itza) 4 - Merida 1 -야간버스- Palenque 1 - San Cristobal 3 -야간버스- Oaxaca(Monte Alban)1 -야간버스- Mexico City (Teotihuacan) 4
멕시코는 정말로 버스가 잘 발달되어 있어요~ 버스 터미널 표 파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영어는 다 하구요~ 큰 도시에서는 꼭 버스터미널 가지 않아도 표 파는 곳이 있구요 버스 터미널들이 ADO회사 뿐 아니라 다른 회사 버스들도 거의 가까운 곳에 있으니까요~ 어디 도착하시면 다음 목적지의 자신이 생각하는 시간대와 버스를 체크해 두세요~ 멕시코 시티같이 큰 곳이야 모든 버스가 모든 시간대에 다 있겠지만.. 저는 주로 버스 선택할 때에 버스 등급 보다는 시간대에 맞는 버스를 타야했답니다.
UNO -특등석 우리나라의 우등버스보다 좋아요 (특히 밤차타면.. 호텔온 기분이에요)
ADO GL - 1등석 ADO보다 좌석 간 간격이 넓구요 의자도 좀 더 좋구요 음료수도 준답니다
ADO - 1등석 가장 문안한 버스인 듯 해요~UNO의 반 값보다 좀 비싸구요..(UNO가 그 만큼 비싼 거겠죠 -_-a)
그 외에 - ADO가 아닌 다른 회사의 버스들도 거의 ADO 버스의 시설과 비슷하구요.. 오히려 인기 없는 구간은 사람이 없어서 두 좌석 다 쓰고 더 맘이 편했어요 으하하
글고 멕시코 버스는 중간에 휴게소를 절대 안들려요.. 어디 들렸다 가도 바로 떠나기 땜에.. 염두해두시구 먹거리 준비하시구요.. 화장실은 버스 안에 화장실을 부담없이 이용하면 되지만.. ADO 밑의 버스는~ 화장실 시설이 좀.. 그러니 미리미리 볼을일 봐두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
2. 안전
제가 여행했던 도시들은 대부분 정말로 안전했구요. 멕시코 씨티는 위험수위가 상당한 것 같아요. 현지에서 사시는 한인분들 말을 빌리자면.. 깐꾼서는 도둑 걱정 하나 안하고 사신다 하구요.. 멕시코 시티에서는 몇년 씩 살아도 택시강도를 만나는 일이 꾀나 된다고 하네요. 전철이나 시장에서는 소매치기를 항상 조심하시구요.. 밤에는 안돌아 다니는게 젤 좋은 방법인것 같아요. 호스텔에서도 소깔로 광장 근처는 밤에 절대 혼자 다니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큰 현금을 안가지고 다니는게 젤 확실한 방법 같구요..
3. 물가
어떤 면에서는 놀랄만 하도록 비싸구요.. 다만 배낭 여행객으로 다닌다면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옆서,우편,건전지,전화세 등.. 공산품들은 미국과 같은 수준이거나 오히려 더 비싼 경우도 있구요.. 다만 특별히 기념품 안사고 저처럼 여행다니며 호스텔에 머물고.. 길거리 음식과 서민 식당서 식사를 하고~ 간단한 투어를 즐긴다면.. 생각보다 많이 저렴했어요.. (남미랑 비교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멕시코는 그래도 중남미서 젤 잘사는 나라고.. 밑에서도 이 곳으로 일해서 돈 벌러 정말 많이 오거든요~) 깐꾼 멕시코 시티는 좀 더 비싸지만... 식사 맛있는 것도 20페소 군것질 따꼬 등~ 3페소 보통 택시 15페소, 시설 괜찮은 호스텔 100페소 펜션 50페소.. 머 이런식이랍니다~
팁은 주기도 하고 안주기도 했는데.. 현지 분들 이야기로는 1~2 페소면 충분~~~ 하다고 하네요
현재 1페소가 딱 100원쯤 해서 계산하기 편했는데.. 환율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하네요
4. 멕시코 사람들..
제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좋고 친절한 사람들 뿐이였어요~ 전화도 걸어주고 택시도 태워주고.. 길 찾아준답시고 자기일 하던거 그만두고 따라다녀주고~ 제가 스페인어는 생존에 필요한 단어 몇개만 알고 있는데도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영어는 못해도 기본적인 단어 아는 사람도 많구요~
그리고 가끔 제가 신기해서(동양인이라곤 저 밖에..) 막 쳐다보고 그래서 좀 부담스러웠는데 씩 웃어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이 웃음으로 대해줬어요
다만 길 물어보면 엉뚱하게 알려주는 사례가 가끔씩 있었는데.. 현지 분들 말에 의하면.. 이 나라 사람들의 특성이 몰라도 괜히 도와주는 척 오버 하는 경오도 있고 괜히 장난으로 엉뚱하게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하네요... 길 찾을 때에는 꼭 2-3번씩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또 택시타면 뻔이 알고 있는 택시 요금을 2-3페소씩 더 받는 택시 기사들이 있었는데.. 웃음으로 따지다가 미안해하면 그냥 귀엽게 봐주고 팁으로 생각하고 줘버렸습니다^^a
5. 기후
멕시코는 일단 6월 부터 10월 말까지는 우기라고 합니다. 비 많이 오죠.. 제가 멕시코 온 이레로 비 하루도 안온적이 없었으니.. 허허.. 멕시코는 9월 하순부터는 가을로 접어든다 하네요.. 멕시코 시티나 산 크리스토발 이런곳은 밤에 정말 서늘 했구요~ 유까탄 반도는 가을이라 하는 데도 더워서 혼났습니다. 다만 비가 워낙 자주 와서 좋은 효과도 있더라구요.. 비가 일단 오면~ 땡볕도 피할 수 있고.. 기온도 좀 내려가기 때문에 견딜만 했어요. 비가 정말 왔다 안왔다 자기 맘대로에요~ 우산 꼭 챙기세요~ 글구 여름엔 모기 많다고 하던데 제가 여행한 기간 동안 모기 때문에 괴로웠던 적은 없네요^^ 유적지가서 조금 간지러웠던 경우 한 두번 제외하곤요~
6. 숙소
제가 들렸던 곳과 들었던 곳을 먼저 올릴게요
아 그리고 어디 도착해서 숙소 걸어갈 자신 없으면 저는 주로 택시를 이용했어요. 대부분 15페소고 큰 도시는 25~30 페소 달라고 하더라구요~ 론리를 보거나 해서 주소를 보여주면 정확히 찾아간답니다~
- Mexico City :
Hostel Catedral, Republica de Guatemala #4 (소깔로광장) ----130페소
여기는 쿨 님꺼 보고 가서 1박 했는데 괜찮았구요.. ISIC나 호스텔 연맹 카드 있어야 130이고 아니면 150 이랍니다. 전 여기서 좋았던게 Teotihuacan 투어를 210 페소에 했었는데.. 점심두 주고 멕시코서 젤 큰 성당(이름이 잘 생각이..)도 데려가 주고~ 외국 친구들도 꾀나 만나고.. 좋았던 것 같아요. 가이드가 영어로 설명도 잘 했구요
Teotihuacan 다른 여행자들은 편도 25페소로 왔다는데.. 이 호스텔에서 묵으시면 차라리 투어 하는게 훨 좋은거 같아요~ 일단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멕시코 시티 버스 투어도 30분 마다 있구요.. 110페소 입니다
일본인 펜션 -50페소
여기는 한국 여행자들이 묵었던 곳인데요.. 아침도 주고 괜찮다 하네요~ 주소는 지금 멜 보냈으니 받는데로 업뎃 할게요
- Oaxaca : Hostel PAULINA, Trujano #321 ---- 110페소
여기도 쿨 님이 알려주셔서 같는데.. 제가 멕시코서 묵은 호스텔 중에선 최고였어요.. 특히 아침에 계란도 멕시코 식으로 요리해주고~ 소깔로(광장)에서도 걸어갈만 하고~ 몬테알반 가기위한 호텔도 걸어서 5분이구요(호스텔서 물어봐도 되구요.. 론리에 나와있답니다 아 여기서 주위할 점.. 몬테알반 가실때(-왕복 24페소) 대부분 3시간후 돌아오는 걸로 적어주는데.. 시간 안지키면 12페소 더 내라고 하더라구요.. 근데 몬테알반 그리 크지 않고 박물관도 작아서 제 생각엔 3시간은 너무 긴 거 같아요~ 30분 간격이니.. 2시간 반 정도 후에 돌아오는 걸로 적으시길...-ㅎㅎ 제 경우엔 1시간 반만에 다 보고 30분 기다리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30분 전 버스 12페소 주고 탈 결심 했다가 스페인어 모르는척 계속 하니까 아저씨가 그냥 태워주더라구요~ 앞에 외국애덜은 전부 12페소 다시 냈어요 -_-a)
- San Cristobal :
이 곳은 호스텔 보다는 펜션 형식의 숙소들이 많은데요 대부분 40~50페소에 괜찮은 숙소를 구하실 수 있을 거에요~ 저는 외국애 만나서 걍 따라갔는데 정말 괜찮았구요.. 론리에도 안나와 있어서 -_-a 근데 론리 보면 짠득 나와 있는데~ 저렴한 펜션들 대부분 괜찮은거 같으니.. 하나 골라 잡으세요 ㅎㅎ
-Cancun :
깐꾼에는 호스텔닷컴에 가서 검색해보니 3개의 호스텔이 나왔는데요~ 쿨 님이 추천하신 Soberanis Hostel, Avenida 가 젤 좋은 것 같아요. 100페소 에어콘에.. 설도 그리고 위치도~ 다만 여기는 미리미리 예약을 해야하구요~
제가 같던데는 멕시코 호스텔이란 곳이였는데~ 100페소구요 자리도 많은 것 같구 위치도 나쁘지 않구요 다만 에어컨이 없어서 좀 밤에 더우실 걸요~ 하하 그래도 전 여기서 외국 애들이랑 여행정보 나누어서 좋았어요
또 제가 들렸던 모든 도시에서는 소깔로를 중심으로 숙소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그러니 숙소는 어딜가도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아요~
7. 제가 젤 좋았던 곳과 정보들..
1) Mexico City
정말로 볼 것 많은 큰 도시랍니다. 광장에 모여있는 성당. 대통령궁, 시장등의 구경거리와 과달루페성당, 초대형 마트들.. 다양한 멕시코인들.. ..@_@ 아 글구 멕시코의 가장 대표적 박물관인 Antropology 박물관은 꼭 들리셔야죠~ 글구 여행 다니며 여유가 있으시고 교회다니시거나 또 한인들의 사시는 모습을 저처럼 배우고 싶으신 분들은 한인회에도 연락해 보세요 / 한인회 5533-0466/5533-0457
아참 멕시코 씨티 에서는 다른 곳과는 달리 ISIC학생증으로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 곳도 많아요 글구 일요일에는 공짜인데도 많구요~ 참고하세요
2) Chichen Itza
최고의 마야 유적지랍니다. 춘추분에 일어나는 기적의 피라미드, 에코시스템, 마야인들의 공 경기장.. 등 대단하답니다. 꼭 공부하고 가셔서 보세요!! 특히 마야인들의 천문학, 과학 수학에 대해 경외심을... ㅠㅜ 피라미드 올라가실 때에 계단 주위하세요 어떤사람 크게 다쳤거든요.. 좀 슬펐어여.. 그 외에 유명한 유적지로 Tulum 과 Uxmal이 있는데요.. 대부분의 사람이 chichen itza를 최고로 뽑더라구요~ 다만 tulum의 해변쪽에 있는 점이 좀 특이할 만 하구요.. uxmal은 바야돌리드나 메리다에서 각각 40분 한시간 가야하는데... 꼭 다녀와야 한다는 점이 좀 ^^a 경유해서 빨랑케로 넘어가는 버스 없거든요
3) Teotihuacan
여기는 다른 유적과는 달리.. 규모가 엄청나게 크답니다. 다른 유적지처럼 생각하심 안되여! 아즈텍과 여러 문명의 기원이 되는 큰 문명이였져.. 태양의 신전에 직접 올라가볼 수 있다는게 가장 인상 깊었어요..(3번째로 큰 피라미드요~) 달의 신전에는 중간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거기 올라가서 보는 Teotihuacan의 전체적 모습이 가장 멋지답니다.
4) San Cristobal
저는 이 곳이 정말 좋았어요.. 고산지대의 미스테리한 안개와.. 많은 예쁜 색채들의 집들과 성당.. 그리고 젤 예뻤던 소깔로~ 많은 마야인들~ 아기자기한 시장.. 그리고 다른 곳보다 많이 싸다고 느껴지는 물가..(맛난 음식들 ㅎㅎ) 싸고 또 많은 인터넷 까페들... 근교의 전통마을을 못봤는데도 (제가 가려는날 폭우가 하루종일 와서리 ㅠㅜ) 3일이나 머물르게 되었죠.. 그리고 여기는 이상하게도 음악하는 애들이 많이 모이더라구요~ 혹 멕시칸 음악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그런 곳에 들리세요~
5) Cancun
세계적인 휴양지죠^^ 급조된 도시라.. 뭔가 부족한게 많지만.. 흰 모래의 예쁜 해변 만큼은 정말 무지 아름다워요 이슬라무헤스도 꼭 하루 잡고 다녀오시구요~ 호텔존의 해변은 관광객에게 철저히 오픈되어 있는 거니까... 호텔 묵지 안는다고 눈치보실 것 없을 것 같구요 ~ 맘껏 즐기세여~ 굳이 비교할 것은 없지만.. 저는 물가땜시 이집트의 다합에 좀 더 점수를 주고 싶네요 ㅎㅎ
6) Palenque
여기 도착하시면 유적지 가는 봉고가 7페소구요..(돌아올 때에도.. 세워달라는 데서 세워준답니다) 이거 잘 모르심 택시타심.. 무지 비싸져요!! 셔틀 버스 루이나스~ 돈데?? 막 이렇게 물으면 사람들이 어디서 타는지 알려주구요.. 가시기 전에 물 꼭 사가세요. 앞에서는 비싸게 파니까.. 가셔서 영어 투어 할 사람들 모아서 투어 하시는게 좋을 거 같아요.. 저는 3명 투어하는데 100씩 줬으니까.. 좀 더 모아서 싸게 하시구요^^ 여행사에서 폭포랑 묶어서 패키지로 파는데 괜히 하지 마시고요..ㅋㅋ 저는 유적지 보다가 길 잃어서 예뿐 폭포 보긴 했는데.. 글세요 ~ 어쨌든 제가 투어하면서 설명 들은 것 때문에 내용도 좋았구 볼 거리도 꾀 많아요 특히 발굴하고 있거나 발견되지 않은 많은 유적지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느낌이 상당히 다르답니다.
7) Oaxaca
산 크리스토발 메리다 이런 곳과는 다르게 도시의 분위기가 강하구요 차도 많이 밀리고~ 하하 몬테 알반도 볼 만 하구요~ 것보다는 도밍고 성당이랑 Arbol del tule 라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크다고 하는 나무도 꼭 가보시구요~ 밤에는 큰 성당들 앞에서 벌어지는 여러 행사들도 볼 만하구.. 아참.. 미술 전시들도 볼만하구... 좋답니다^^
8) 그 외에... 제가 못가봐서 아쉬운 곳은요...
다이빙으로 유명한 깐꾼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Acapulco
여자 여행자들이 많이 좋아라 한다는 예쁜 건물이 많기로 유명한.. TAXCO 와 GUABAJUATO...
그 보다 못가봐서 더 아쉬운 곳은...
Guadalajara 인데요...
이 곳은 교육 도시로도 유명하구요.. 큰 도시임에도 치안도 좋고.. 무엇보다도 잘생기고 예뿐 멕시칸들이 사는 곳이지요.. 북쪽으로 갈 수록 마야인과 인디오들과 다른 키도 크고 멋진 멕시칸들이 많은데.. 그 대표적인 곳이 이곳이거든요~ 제 멕시칸 친구 한 명이 여기 사는데.. 하두 멋진 넘이라 옛날에 다른 멕시칸들이 다 이런줄 알았거든요 ^^a 게도 거기가 고향이라 하더라구요.. 어쨌든..
아쉬운 것은 멕시코에 대해 너무 무지한 상태에서 여행을 하여 좀 아쉽구요... 특히 최소한 마야와 아즈텍 문명에 대해 공부하시고 여행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저 같이 원월드 티켓으로 무리하게 돌아다니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글을 썼구요..
멕시코에서 찍은 사진들은 모두 제 홈피에 올려놨구요 참고 하실 분들은 참고 하세요^^
마지막으로.. 쿨 님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외국 인터넷에서 한글 읽고 쓰는 방법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외국 윈도우서 한글이 안되는거는 당연하구요.. 꼭 설치를 해줘야 한답니다. 이미 다른 분이 설치된 컴을 만나면 운이 좋으신 거구요... 제가 멕시코 컴터에 꾀나 한글을 심어놨습니다 ㅎㅎ
일단 제가 다녀본 결과 대부분 98,me,xp를 사용하니까 두 경우를 설명 드릴게요
첫째
98,me의 경우는 간단해요
http://www.microsoft.com/windows/ie/downloads/recommended/ime/install.asp
가셔서 다운 받으시고 설치하시고 재부팅 하시면~
익스플로러 사용하실 때에 밑에 ko,ja 선택하는거 나오는데 ko 선택하시고 오른쪽 alt 누르셔서 한글 쓰기가 가능해지구요
xp의 경우에는
regional option에서 꼭 한글 키보드를 추가해줘야 하는데.. 여기서 Asia language pack이 설치가 되어 있는 경우에는 바로 추가가 가능하지만.. 아닌 경우에는 반드시 XP CD로 Asia language pack을 설치해주고 재부팅을 해야만 한글 키보드가 설치 가능하답니다. 그러므로 저처럼 장기 여행 하시는 분은 꼭 xp cd를 가지고 다니시라고 충고드리고 싶구요.. 겜방마다 관리자 권한을 안주는 경우는 한글 설치가 불가능 하니까 이 점 염두해 두시구요~
저처럼 돌아뎅기며 홈피 꾸밀넘 아니라면 차라리 98이 속이 편하죠 설치하고 재부팅만 하면 간단하니까..
설명이 너무 어려웠나요? 답글로 한분 이라도 자세히 설명 요청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한글 설치 방법만 사진 첨부하여 다시 올려 드릴게요
그롬^^
★ -테오티와칸 태양의 신전에 오르다-
필자 외에 몇 사람은 옷 속에 감춰서 그냥가지고 들어갔으나, 여기까지 와서 비디오를 안 찍을 수가 있나! 당당히 찍다가 요청이 있으면 아무 때라도 돈을 내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촬영했다.
첫눈에 보이는 테오티와칸은 뜨거운 태양 밑에 펼쳐진 광활한 잔디의 들판이다. 한 가운데 넓은 길이 북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아물아물하게 뻗쳐 나가고 그 끝머리에는 달의 피라미드가 작은 동산같이 저 멀리 바라다 보였다.
길 중간쯤 오른 편에 있는 해의 피라미드는 좀 더 앞쪽에 솟아있는 또 하나의 동산이 역시 멀리 바라다 보인다. 들어선 입구에서는 바로 길 건너에 돌담과 계단으로 이루어진 한 무리의 유적이 크게 다가왔다.
열댓 개의 작은 기단으로 둘러싸인 성채 시우다델라라고 불려지는 390m 사방의 넓은 경내에 작은 산봉우리 모양의 6층 피라미드와 커다란 4층의 기단이 동서로 서로 맞붙은 채 서있다. 이것이 케살코아틀의 신전이다.
AD 600년경 이곳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아스텍 사람들은 이곳에 길을 바둑판처럼 내고 신전과 궁궐 등 2만여 채를 짓고 살았다고 한다. 양옆으로는 크고 작은 피라미드가 줄지어 있는?사자(죽은 자)의 길?이 있다.
큰 길을 따라 한참 걸으면 거대한 태양의 피라미드가 있고 그 막다른 길에 달의 피라미드가 우뚝 서있다. 이 문화유적은 표고 약 2300m의 멕시코 중앙고원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가장 큰 고대도시를 형성하고, 그 전성기에는 20만 명에 이르는 인구가 살았다고 전해진다.
넓이가 23.5 ㎢에 달하는 격자형으로 설계된 도시구조인데 아직도 90%가 발굴되지 않았단다. 테오티와칸은 멕시코에서 가장 보존이 잘된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도시로 손꼽힌다. 북미대륙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멕시코의 동쪽에 위치한 거대한 고대도시이다.
AD 150년경에 세워져 1908년 복원된 70m 높이에 248계단인 해의 피라미드를 비롯해 많은 피라미드들이 산재해 있다. 볕에 말린 벽돌과 흙으로 만들어졌고, 그 위에는 자갈과 돌이 덮고 있으며 밝은 색의 치장 회반죽이 피라미드의 특이한 빛을 발산한다.
피라미드 내부는 미로처럼 방과 터널들이 이어져 있다. 그런데 태양의 신전(해의 피라미드)의 계단을 올라가려면 너무 가파르기 때문에, 너무 힘들면 달의 신전(달의 피라미드)은 올라가지 말라고 가이드는 알려준다.
아닌 게 아니라 해의 피라미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데에는 숨이 차고 힘이 든다. 이 피라미드는 4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높이 63m, 한 변의 길이가 225m로 하루에 3000명의 인력을 투입해도 완공하는데 30년은 걸렸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이곳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주변의 전망이 좋아서 둘러보면서 사진촬영을 했다.
다음에는 달의 신전을 향하여 오르는데 그곳역시 계단의 숫자는 태양의 신전보다 작지만 역시 오를 때에는 무척 힘이 들어서 땀이 주르륵 흐를 지경이다. 높이 42m, 한 변의 길이가 145m인데 정상에는 무게가 20톤이 넘는 대형조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사람들은 태양을 신으로 섬겼다. 저 태양이 시들어 버리면 인류의 종말이 올 것이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람의 뜨거운 심장을 저 태양신전에 바치는 일에 열중하였을 터이고, 자연히 많은 심장을 구하여 바치기 위해 이웃부족을 침략하다보니 과연 전쟁이 끝날 날이 있었을까 싶다.
지금처럼 과학이 발달하여 기계를 사용하던 시절도 아닌데 저 많은 돌들은 어디서 어떻게 조달하였으며, 기막힌 음양의 역학구조로 지어졌다는 저들의 지혜로움에 놀래지 않을 수밖에 없구나!
달의 신전은 태양의 신전과 함께 한 쌍의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달의 피라미드의 정상에서 바라본 사자(죽은 자)의 거리를 촬영을 했다. 산사람을 제물로 데리고 단까지 올라가 거기서 심장을 꺼내어 제단에 바치고 죽은 자를 들쳐 메고 돌아왔다고 하여 신전까지의 거리 이름을 죽은 자(사자)의 거리라고 한다.
족히 기만명이 양쪽 층계처럼 생긴 관람대에 앉아 신전에 바쳐지는 제물을 바라보면서 숙연히 도열해 앉아있었을 거리, 양쪽의 규모역시 입이 떡 벌어지게 한다. 사자의 거리는 달의 신전에서 남쪽으로 3.2km에 걸쳐 폭이 좁게는 43m, 넓게는 145m나 되는 길 양쪽으로 계단이 딸린 높은 둑들이 죽 늘어서 있다.
이 길은 달의 피라미드 꼭대기 제단에 올릴 제물용 인간들이 길게 줄지어 대기했던 길이었다고 한다. 제사장은 이들의 가슴에서 칼로 도려낸 심장을 제단에 바쳤다는 것이다. 그곳 테오티와칸에서는 가파른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리고, 오랜 시간동안 걸었기 때문에 배가 고파왔다.
★ 멕시코 음식문화는 원주민과 스페인의 식문화 결합이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Mac Cay라는 현지식 부패레스토랑에 들어가, 멕시코 전통복장의 악사 2명이 『베시매 무초』 등 흥겨운 라틴음악을 들려주는 생음악을 들으면서 먹고 싶은 음식을 실컷 먹었다. 특히 이 레스토랑에서 자랑으로 여기는 음식, 우리나라 상추쌈처럼 「또르띠야」에 각종 고기나 내장, 야채를 넣어 싸먹었다
멕시코 음식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특성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지닌다. 멕시코의 음식역사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려면 토착 원주민 시대부터 스페인 식민 통치 기간, 프랑스 음식의 영향을 받은 막시밀리안 기간을 거쳐 현재의 음식문화로 정착된 모든 기간을 인식해야 한다.
멕시코 음식문화는 한 마디로 원주민과 스페인의 식문화 결합이다. 스페인으로부터 보리, 쌀, 밀, 올리브, 포도, 인도의 향신료, 소, 양과 같은 새로운 음식 재료가 유입되면서 포도주와 식용유의 사용으로 식탁이 풍성해졌고 새로운 요리들도 개발되기에 이른다.
멕시코사람들은 우리나라 상추쌈처럼 또르띠야에 각종 고기나 내장, 야채를 넣어 싸먹는다. 원래는 스페인 정복 훨씬 전부터 만들어 먹던 또르띠야에 멕시코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선인장을 썰어 소금을 약간 뿌려 싸먹기 시작한 게 그 유래다.
다양한 음식 재료로는, 콜롬비아 시대 이전에 들어온, 토마토, 칠리 고추, 터키, 바닐라, 초콜릿, 옥수수가 있으며, 후에 스페인들과 프랑스인들에 의해 들어온, 유제품, 쇠고기, 닭고기, 밀, 양파, 그리고 마늘이 있다.
북 멕시코의 가장 잘 알려진 음식으로는 콩, 육포, 칠리(chilies), 그리고 밀로 만들어진 또르띠야(wheat-flour-tortillas)가 있고. 남 멕시코에서는 옥수수로 만들어진 또르띠야와 매운 소스가 유명하다. 남 멕시코에서는 상대적으로 육류를 적게 먹는 편이다.
또르띠야는 밀 또는 옥수수로 만들어진 팬케이크로서, 사람들이 가장 즐겨먹는 음식이다. 또르띠야는 말아서 소스에 찍어먹으며, 여러 가지 색깔의 또르띠야가 있다. 멕시코 음식에 나오는 소스를 「쌀사」라고 부른다.
식사 때마다 항상 나오며, 이것은 음식의 맛을 한층 돋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소스로는 싱싱한 야채로 만들어진 소스(salsa cruda), 토마토, 실란트로, 칠리로 만들어진 소스(salsa de tomato verde), 토마토소스(salsa de jitomate), 식초에 절인 칠리 고추, 그리고 잘라페노 고추와 토마토로 만들어진 소스(salsa de chilpotle)가 있다.
“베시매 무쳐”등 귀에 익은 생음악을 들려주던 그 악단들의 음악이 어느 정도 끝나갈 무렵 팁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데 우리일행 모두는 못 본체한다. 워낙 팁 문화에 적응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조금은 창피한 생각이 든다.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찾아다니고 있는 그 악단을 쫓아가서 그들이 들고 다니는 바구니에 미화 1달러를 놓아주었더니 "그라시아스!"하며 고마움을 표한다. 그 생음악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 세계 3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과달루페 대성당을 가다.
생음악소리를 뒤에 남겨놓고 전용버스를 타고 포르투갈의 파티마, 프랑스의 루르드와 더불어 성모가 발현한 세계 3대 기적지의 하나로 불리는, 멕시코시티 북쪽외곽에 있는 과달루페 대성당에 갔다.
1531년 12월 12일 테페약에 사는 한 무지하고 평범한 인디오,「후안 디에고」가 천주교로 개종하였다. 세례도 받지 못한 이 예비자 인디오는 새벽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테페약 언덕에서 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언덕 위에는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찬란한 옷을 입고 무지개 빛을 발하는 한 여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갈색 피부 검은 머리의 그 신비로운 여인은「후안 디에고」에게 "이곳에 성당을 세우라."고 말했다.
아스텍 인디오여성의 모습그대로인 그 여자가 성모 마리아로 발현한 것을「후안 디에고」는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언덕을 달려 내려가 「후한 데 수마라가」 주교에게 성모의 말을 전했다.
그러나 주교는 십 년 전에 자신들이 정복한 미개한 족속이고 게다가 그 족속 가운데에서도 정말 하찮은 자의 눈앞에 나타난 인디오여성이 성모라고는 결코 믿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갈색 피부라니 그러면 성모가 인디오란 말인가?
그 보고를 깨끗하게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몹시 실망한「후안 디에고」는 집으로 돌아가다가 문제의 그 여인을 다시 만났다. 주교의 불신을 전하자 성모는?확실한 증표를 너에게 줄 테니 내일 다시 이 언덕으로 오라.?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후안 디에고」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열병에 걸려 곧 죽을 것 같은 삼촌이었다.
다음날 아침 마음씨 착한 그는 고민하던 끝에 언덕위로 올라가 성모를 만나는 대신 삼촌의 종부성사를 청하러 신부를 찾아갔다. 그러나 신비의 여인은 길목에서 「후안 디에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인은 그에게 숙부의 병은 다 나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증표를 가지고 주교에게 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후안 디에고」의 망토를 닮은 인디오들의 전통복장인 틸마에 장미를 가득히 담아주었다. 그곳은 장미넝쿨 하나 없는 바위투성이 언덕이었고 게다가 때는 12월이었다. 후안은 신나서 장미를 가지고 다시 주교에게 달려갔다. 마침내 장미를 담은 틸마를 주교에게 건네자 주교는 깜짝 놀라며 무릎을 꿇고 절했다.
틸마에는 「후안 디에고」앞에 나타난 그 여인, 갈색 피부의 성모 모습이 사진처럼 생생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가 주교와 함께 있는 동안, 그 신비의 여인은 「후안 디에고」의 삼촌 앞에 나타나 병을 깨끗이 치유하고는 자신을 『과달루페의 성모』라 부르도록 명했다.
이 사건에 인디오들은 기이할 정도로 열광했으며, 이후 팔 년 동안 8백만 명 이상의 인디오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단다. 이 때문에 해마다 성녀 발현일이면 예수의 고행을 따르려는 신도들이 성당 입구부터 강단까지 무릎으로 기어 열정적인 신앙심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계속해서 과달루페 대성당은「후안 디에고」가 최초로 성모를 알현한 산꼭대기에 지어진 초기 교회와 아즈텍 인디오 거처에 지어진 예배당, 4번째로 성모를 알현한 후「후안 디에고」의 망토에 성모상이 나타난 곳에 지어진 건물, 단체 예배 자들을 위한 그룹전용 교회당, 교황청에서 지은 대중예배당, 대중예배당의 지반이 기울어지자 1973년에 새로 건축한 지금의 대예배당 등 모두 6개의 건물로 나누어져 있다.
이곳은 멕시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지주인 성소로 1533년 건축된 이래 수세기 동안 전 세계 성직자와 신도들의 순례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 남미의 가톨릭신자들까지도 이 성지를 한번 방문하는 것이 크나큰 소원이라고 할 만큼 지금도 성지로 숭앙 받고 있는 곳이다.
성당광장 앞에 막 도착하니 온갖 장사꾼들, 관광객들로 뒤범벅이 되어 혼란스러운 가운데 얼떨떨한 기분이 된다. 그러나 곧 순례자들 틈에 끼어 진행 중인 이 거대한 대예배당의 입추의 여지없이 운집한 신도들과 더불어 은혜의 기쁨을 나누었다.
우리부부는 그 입추의 여지없이 운집한 신도들 틈바구니를 과감하게 뚫고 성물가게에 들어가 성모마리아상을 기념으로 구입했다. 이 과다루페 대성당은 가톨릭신자가 아니더라도 꼭 가볼 만한 곳으로 과다루페성모는 이 나라에서 종교적 상징을 뛰어넘어서 정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곳이다.
과달루페 대성당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성모상이 나타난 후안 디에고의 망토」를 표구한 액자 밑을 이동보도를 타고 지나가며 아주 가까운 장소에서 감상하였다. 이 기막힌 순간의 흔적을 영원히 간직하고픈 여행객들의 숨 가쁘게 움직이는 손놀림에서 이루어지는 카메라 플래시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 멕시코시티의 중앙에 위치한 소깔로 광장으로 달려가다.
과달루페 대성당에서 나온 일행들을 태운 전용버스는 멕시코시티의 중심지에 자리 잡은 소깔로 광장을 향하여 달려갔다. 광장을 한 바퀴 순회한 버스에서 내린 일행들의 모습은 이렇게 지저분하고 어수선한 광장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 가득하다.
인디오 노인들의 꾀죄죄한 차림으로 광장 벤치에 퍼질러 앉아있는 모습, 동냥을 구걸하면서 아이를 들쳐 엎고 길에 서성거리고 있는 여인, 손님을 의자에 높다랗게 올려놓고 열심히 구두를 닦는 구두닦이 등 이런 멕시코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몹시 옹색해 보인다.
이들은 1968년 중진국으로서는 선두주자로 올림픽을 개최했을 뿐만이 아니라 1970년에 이미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세계 5대 산유국의 자태를 뽐냈다. 그뿐이랴! 지하철을 건설하는 등, 한때 우리의 모범이 되어왔던 멕시코가 이렇게 몰락해버린 모습을 보니 마음이 저려오면서 서글프다.
아스텍 문명을 말살하고도 부족해 그곳에 그 돌들을 재활용해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조성된 곳이 바로 소깔로 광장이다. 이렇게 서구문명에 쫓겨난 아스텍 문명의 주인공들의 억울해 하는 목소리가 주변으로부터 들려오는 듯하다.
대성당 북동쪽에서 발굴하고 있는 아스텍 문화의 유적지를 구경하고 대성당에 들어서니 정복자의 복음이 숱한 나그네 방문객의 혼란스러운 교감 속에 찬란히 빛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당은 그 웅장함이나 화려함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드는 성스러운 곳이다.
화려한 색채로 그려진 천장과 내벽의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오랜 세월에 마모되고 퇴색된 곳도 있지만, 화려했을 그 옛 시절의 흔적이 성당 가득히 남아있다.
"기반석" 또는 "배꼽"이라는 뜻의 소깔로 광장은 사방 240m의 너른 광장으로 1520년에 코르테스가 만들었다. 1843년 Santa Anna대통령이 독립기념탑의 기반석을 놓으면서 이름을 소깔로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보다 조금 작을 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너른 광장이며 중앙에는 늘 멕시코 국기가 휘날리고 있으며, 대성당과, 대통령궁전(Palacio Nacioal)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다.
광장 주위에는 역사적인 건축물 외에도 공공건물, 레스토랑, 호텔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마제스틱 호텔에서는 소깔로 광장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이와 같이 멕시코시티의 이 광장은 멕시코의 배꼽과 같은 존재다.
이 광장은 왼쪽으로는 대성당, 동쪽에는 국립궁전, 남쪽에 연방정부 청사가 자리 잡고 있는 스페인 식민시대의 전형적인 도심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 곳이 바로 스페인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정복해 나가기 시작한 신대륙의 거점이었다.
★멕시코의 간단한 역사
멕시코에 왔으니 멕시코의 간단한 역사를 살펴보고 가야할 것 같다. 이 나라의 역사는 이미 BC 2000년경 옥수수 농사를 기반으로 한 촌락이 각지에 발달하였으며, 기원 전후에 이르러서는 멕시코 중앙고원의 테오티와칸에 태양과 달의 거대한 피라미드가 구축되었고, 이것을 중심으로 도시가 건설되었다.
한편 남쪽에서는 멕시코만 기슭부터 오악사카계곡에 걸친 일대에 몬테알반의 사포테크문명, 유카탄반도에 마야문명이 꽃피고 있었고, 900년경에는 군국주의적인 국가가 설립되었다.
멕시코 중앙고원의 톨테크, 마야에 뒤이은 체첸이사, 욱스말 등의 후기 고전문명이 융성하였으며, 멕시코분지 일대에서는 아스텍제국이 일어나 1325∼1521년까지 약 200년간 테스코코호(湖) 주변을 도읍으로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1521년 8월 스페인 탐험대의 장군 코르테스에게 정복된 후 300년 동안, 스페인의『누에바 에스파냐』로서 부왕(副王)이 통치한 식민지 시대가 전개되었다. 이때 무기를 든 소수의 침입자들에 의해 얼마나 많은 원주민이 피를 흘리고 얼마나 많은 문화유산, 자연이 황폐화되고 말았을까?
이 나라가 얼마나 유구한 역사를 가졌으며 찬란한 문화와 전통, 아름다운 국민성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16세기는 식민과 포교의 시기, 17세기는 혼혈화가 진전된 시기, 그리고 18세기는 고유의 혼혈문화를 형성하여 독립의 기운을 북돋운 시기이다.
18세기는 고유의 혼혈문화를 형성, 독립의 기운을 북돋운 시기다.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은 1810년 9월 16일 혁명적 애국자인 미구엘 이달고의 유명한 『돌로레스의 부르짖음(Grito de Dolores)』을 계기로 기운이 일기 시작하여, 1821년 멕시코의 독립을 인정한 코르도바 협정에 의해서 성립되었다.
독립 이후 식민지시대가 끝나고 전제정치로부터 공화제로 이행하여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나,
중앙집권주의파와 연방주의파의 대립이 심하여 혼란에 빠졌다. 1846년의 실정은 미국과의 전쟁을 초래하여, 2년 후에는 영토의 북부를 상실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연방주의 파는 인디언 출신의 베니토 후아레스를 대통령으로 하여 자유주의 헌법을 반포하고, 정교분리를 단행하여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는 등 이른바 개혁(레포르마)을 달성하고 근대화를 지향하였다.
1861년 외채 지불문제로 무력간섭이 비롯되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막시밀리안이 괴뢰황제로 부임했으나 총살당함으로써 간섭정치는 종지부를 찍었다. 뒤를 이어 독재자 포르 피리오 디아스가 등장했으나, 대토지소유제 강화가 기폭제가 되어 1910년 11월 20일 멕시코 혁명으로 돌입하였다.
1917년 2월 5일 국가의 권리와 농민,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된 혁신적인 신 헌법이 시행되었다. 오늘날 멕시코의 근대국가로서의 번영은 이 신 헌법을 바탕으로 구축된 것이다.『아시엔다』라 불리던 대토지 소유제도는 농지개혁으로 무너졌다.
이후 1934년 취임한 대통령 카르데나스에 의하여 집단농장의 창설, 멕시코 노동자총연합(CTM)의 결성, 석유업의 국유화 등이 추진됨으로써 경제가 크게 발전하였다.
1970년대 중반 집권한 대통령 포르티요 때에는 주요 산유국 중 하나가 되면서 빠른 경제 발전을 보였다. 그러나 지나친 외채 부담과 계속되는 유가하락으로 인해 포르티요 이후의 대통령들은 재정 부담을 안게 되었다.
1994년 3월 차기대통령으로 유력시되던 집권 제도혁명당(PRI)의 후보 콜로시오가 유세 도중 저격되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2000년 7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계 야당인 국민행동당(PAN)의 빈센테 폭스(Vicente Fox)가 당선되어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71년 만의 역사적인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 멕시코시티
조나 로사지구 (ZONA ROSA).
독립 기념탑 동쪽에 위치,레포르마 거리와 인스루펜데 거리,챠블테베크 거리로 둘러싸인 세련된 번화가. 일류호텔,레스토랑,전문상점이 들어서 있다.
조칼로 (헌법광장) (EL ZOCALO)
멕시코 시티 발상지로 정식으로는 헌법광장(PLAZA DE LA
CONSTITUCION)으로 불리운다. 아즈카제국,스페인 식민지시대,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는 3대 수도의 중심부로 광장 주위의 바로크풍의 웅장한 건축물은 주말이나 축제때면 조명으로 채색된다.
카테드랄 (CATEDRAL METROPOLITANE)
라틴 아메리카 제일의 종교 건축물로 불리운다. 1573년 착공.
완성되기까지 250년이 걸렸으며 건축양식은 바로크를 주로 고딕, 르네상스, 신고전주의 등으로 다채롭다. 웅장한 바로크 장식 내부에는 최고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축복받은 제왕의 제단이나 무리료의 명화 등이 있다. 사진 촬영도 가능. 바깥쪽에 위치한 종교 예술 박물관에는 싯가 수백억에 달하는 보석이 소장돼 있다. 카테드랄우측 사크라리오(예배당) 정면벽화는 바로크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국립궁전 (PALACIO NACIONAL)
정복자 코르테스가 궁전으로 건립. 후에 개축한 것으로 현재는 대통령 집무실과 대장성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관람이 가능하다. 내부에는 계단이나 로비의 부조로 이루어진 대벽화, '독립의 아버지'이다루고 신부 무장봉기 당시의 종, '혁명의 아버지' 팔레스 대통령 기념실 등이 있다.
국영 전당포 (MONTE PIEDAD NACIONAL)
18세기 레그라백작이 빈민구제를 위해 사재를 투자해 세운곳으로보석이나 귀금속을 싸게 사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타워 (TORRE LATINOAMERIOANA)
시내 어느곳에서도 보이는 시의 상징물.
높이 176m. 44층 건축물.전망대에서 보는 시내의 야경은 멋진 경관이다.
국립예술원 궁전 (Palacio de Bellas Artes)
이태리 칼라라 지역 흰 대리석으로 외관을 장식한 콘서트 홀 건물로 박물관과 극장 시설을 유치하고있다. 예술 궁전으로 칭할 수 있는 이곳은 1910년 멕시코 독립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1904년 부터 건축을 시작했다. 박물관의 2층,3층의 고전, 현대식 벽화는 멕시코의 유명한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에 의해 주도된 것이다.현재의 그림은 미국 록펠러 센터에서 요청했던 내용이나, 그림 내용으로 인해 마감 직전에 전시가 취소되고 삭제된 후, 화가에 의해 다시 이곳에 그려진다. 극장 내부에서는 오페라와 클래식 콘서트가 열리는데, 여기에 있는 스테인드 유리 커튼은 멕시코의 화산과 언덕을 표현한 것으로,유명한 티파니에 의해 설계된 것이다.
• 위치 및 가는 방법
알라메다 중앙 공원에서 10분 거리
• 입장료
성인 25달러 건물 외관 관람은 무료(공연이 없을 경우)
중앙우체국 (CORREO MAYOR)
이태리 르네상스풍의 건물. 내부의 화려한 장식이 눈길을 끈다.
2층 특별실에는 기념우표를 판매하고 있으며 3층은 우표박물관.
레포마 거리 (PASEO DE LA REFORMA)
시 중앙을 가로지르는 약 3Km 의 메인스트리트.
19세기에 맥시밀리안 황제가 파리 샹제리제 거리를 모델로 만들었다. 초록빛 가로수길 곳곳에 기념상이 있고 8차선도로 양쪽으로는 고급 레스토랑,상점이 줄지어 있다.
3 문화광장 (PLAZA DE LAS TRES CULTURAS)
트라테르코 단지내 광장. 아즈테카 제국이 코르테스가 거느리는 스페인군과 최후의 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아즈테카 신전유적,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산디아고 교회, 근대적인 고층 아파트군이 3시대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산 카를로스 미술관 (MUSEO DE SAN CARLOS)
베나 비스타 후작의 저택을 개수한 관내에는 토레트, 베라스케스, 렘브란트, 루벤스, 브뤼겔, 엘그레고, 앵글등의 회화가 전시되 있다.
챠플테페크 공원 (BOSQUE DE CHAPULTEPEC)
레포마 거리 남서쪽 끝에 위치한 대규모 수림공원. 원내에는 5개의 박물관,동물원,식물원,유원지,3개의 호수 등이 있다.
챠플테페크성 (CASTILLO DE CHAPULTEPEC)
아즈테카어로 '밧타의 언덕' 위에 솟아있는 성. 아즈테카 요새를 부수고 세운곳으로 미국과의 전쟁당시 멕시코군 최후의 요새였던 곳이다. 현재는 국립 역사 박물관(MUSEO NACIONAL HI STORIA)으로서 독립혁명시대의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국립 인류학 박물관
(MUSEO NATIONAL DE ANTRO-POLOGIA)
원내 북측에 위치한 건물은 유탄반도 우슈말 유적인 비구니 승원을
모방한 것으로 관내에는 국보급 아즈테카 달력을 새긴 바위,아즈테카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트란 모형,오르메카 문화 거석,마야의 세노테에서 출토된 귀금속,인디오 민속자료 등을 전시.
국립 근대 미술관
(MUSEO NATIONAL DE ARTS
MODERNO)
공원입구에 위치한 유리건물. 멕시코 르네상스는 민족주의에 불타던 수많은 회화의 거장들을 탄생시켰다. 관내에는 베라, 오로스코, 오고르망, 시케이로스, 타마요, 아토르 등의 작품을 항상 전시하고 있다.
과달루뻬 사원
1531년 12월9일 원주민 농부 Juan Diego 가 엘떼뻬약 언덕에서 금으로 장식한 푸른 외투를 입은 여자의 형상을 본다.그는신부에게 그가 본 것을 이야기하지만 신부는 믿지 않는다.그는언덕으로 돌아가 다시 여자의 형상을 보는데 이번엔 그 형상이 그의 외투에 찍히게 된다.그제서야 신부는 이야기를 믿고 성당 건립을 명한다.
1533년 지어진 성당은 수세기동안 멕시코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순례자들이 다녀갔다. 하지만 붕괴 위험이 있어 1976년 현대식 건물의 성당을 옆에 다시 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순례자들은 성당의 입구부터 강단까지 무릎으로 기어가며 신앙심을 나타낸다.새성당 강단 뒤에 여전히 디에고가 보았던 형상이 걸려 있다.많은순례자들이 정체없이 보게 하기 위해 움직이는 평면 에스칼레이터를 만들어 놓았다.구성당 뒤의 언덕에 오르면 멕시코 시가지가 다 보이고 반대편내려가는 쪽으로 여러 가지 선인장이 들어찬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지하철 La Villa 에서 북쪽으로 두 블럭에 위치한다.
테오티화칸 유적 (TEOTIHUACAN)
시 북동쪽 약 51Km 에 위치한 18평방Km 에 이르는 대유적지. 그 기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설에는 최고 고대문화의 하나인 오르메카 문화의 영향을 받은 토르테카족이 기원전 2세기경에 건조 하였고, 기원후 7세기에 와서는 인구 10만명에 이르는 번영을 누렸으나 14세기 아즈테카족이 침범하자 폐허화됐다고한다. 아즈테카족이 이 유적을 처음 본 순간 그 장엄함에 감명을 받아 테오티와칸(신들의 도시)이란 이름을 붙인것 같다.
죽은자의 길 (CALLE DE LOS MUERTOS)
유적을 가로질러 남북 4Km 에 이르는 돌로 만든 대로.
태양의 피라밋 (PIRANIDE DEL SOL)
햇빛에 말린 일억개의 벽돌을 쌓아 만든것으로 밑변 225m 높이 65m 의 피라밋은 신전의 기단으로, 이집트 피라밋과 같은 석실과 묘는 없다.
달의 피라밋 (PIRAMDE DE LA LUNA)
높이 46m 의 피라밋으로 퀘잘 파파로틀 (QUETZAL PAP
ALOTL 나베궁전)과 재규어가 다수 조각된 재규어 궁전이 있다.
퀘잘 코틀 신전 (TEMPLE DE QUETZALCOATL)
성벽에 둘러싸여 날개달린 뱀과 비의선의 두상이 서로 얽혀 있는 피라밋.
대학도시 (CIUDAD UNIVERSITARIA)
용암대지에 세운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군에는 다수의 벽화가 있다.
3대 민족문화를 상징화한 도서관에는 오골만, 교육과 문화를 담당하는 총장사무국의 시케이로스, 삶과 죽음과 4원소를 테마로한 의학부
의 에스펜스, 경기장엔 리베라 등, 그 웅대함과 채색의 강렬함에 놀라지 않을수 없다. 경기장의 북쪽에 위치한 사보텐공원(SARDI
N BOTANICO)에는 멕시코 전역의 사보텐이 심어져 있어 5월에 일제히 피기 시작한다.
★
*멕시코시티의 중심 소깔로 광장 ;대성당과 대통령궁
쏘칼로광장 대통령궁안의 멕시코건국과 식민지시대를 상징하는 벽화
*멕시코시티의 명동이라는 쏘나로사 Zona Rosa; 게스트하우스인 ‘ Hostel Mansion Havre
( Zona Rosa의 Havre 가 40번지);방에 2층침대 4개(8인실)가 놓여져 있는데, 다른 사람을 들이지
않는 조건으로 하루에 4명에 50$(미국) 씩 이틀에 100$를 주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쏘깔로 - 왕궁 - 대성당 - 미술관 - 디에고리베라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옥수수반죽을 얇게편 또르띠야에 고기와 채소를 넣은 ‘따코’를 사먹는데, 하나에 6페소(6백원) 정도 한다.
*멕시코 신앙의 중심지 과달루뻬 대성당
*차풀떼펙 공원내의 인류학박물관,코요아칸의 이달고 광장,
*시내돌아보기
Museo Nacional de Arte (국립미술관, 35페소) 는 건물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 청동과 대리석으로
된 이중계단이 3층높이의 반원형 창문이 에워싸고 있다.
뗌뽈르 마요르 아즈카의 대신전,공짜인 교육부 청사의 벽화,
Museo Nacional de Arte (국립미술관, 35페소) 는 건물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 청동과 대리석으로
된 이중계단이 3층높이의 반원형 창문이 에워싸고 있다
예술의 전당’
알라메다 공원은 나무와 분수와 조형물로 꾸며져 있는데 잡상인의 출입이 금지된양 한가로이
벤치에 앉아 빵으로 점심을 보충한다.
"디에고 리베라 벽화 미술관"
Paseo de la Reforma' 거리의 독립광장 ‘Angel de la Independencia’
도시 거리 투어 2층버스,1인당 100페소(1만원)
차풀떼펙공원
*떼오띠우아칸과 과달루뻬성당 1일 투어에 차량과 기사 및 가이드 포함 6시간에 4인합계
1,200페소에 (총계 12만원) 계약.
*떼오띠우아칸Teotihuacan ;‘올멕’과 ‘고전기마야’족을 이어 3번째로 멕시코 고원에 나타났던
‘떼오띠우아칸’족의 도시,12만명의 대도시는 온통 바위로 만들어진 계획도시,
태양의 피라미드’,"달의 피라미드"
훗날 생각하니 우린 2번 입구로 입장했으므로 1번 입구에 있는 ‘께뜨살꼬아뜰 신전’과 사자의 길
걷기 및 4번 입구의 ‘떼빤띠뜰라 궁전’등을 제대로 보지 못한것이 서운하다.
*Sala(구역) B와 C 사이 구석에 있는 창구에서 쿠바비자 대용인 Tourist Card 를 1인당 10$씩에 구입하였다.
항공권 구입시 Sala B에서 체크인 한다고 들었는데 실제로는 Sala F2에서 한단다
★ [멕시코시티] En Ciudad de Mexico, 긴장해라!!
2006.02.02
멕시코시티에 도착했음에도 여전히 2월2일이다.
머리를 이래저래 굴려봤는데, 여전히 왜 2월2일인지 이해가 안된다.
날짜 변경선은 영국에 있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넘어가자...
공항에 도착해서 공항 이민국(migración)에 도착하니 이민국 직원이 입국목적을 묻는다.
"내일 비행기를 바꿔 탈 예정이다."라고 했더니
이 황당하고 인상 더럽고 자존심 강한 이민국 직원이 체류 날짜로 1일을 찍어준다. 헉!!
내일 만약 비행기를 못타면 난 영락없이 불법체류자가 될 판이다.
마누라님은 한달을 찍어줬는데....
첫날이라 긴장을 풀 필요도 있고, 멕시코시티가 전세계적으로 위험하기로 소문난 곳이라
숙소를 한인들이 많은 Zona Rosa(쏘나 로사)에 정하기로 했다.
공항 택시를 타려고 물어보니 비용이 장난이 아니다.
지하철 역이 공항에서 가까운 듯 해서 공항밖으로 나가서 버벅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삐 어디론가에서 오고 어디론가로 사라진다.
택시들은 긴 줄을 만들고 있지만, 잠시도 멈추지 않고 움직인다.
우린 어디로 가야 하는 사람들인가?
길가는 아저씨 두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쏘나 로사에 어떻게 가요?"
뭐라뭐라 막 그러는데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겠다.
난 말하는 건 배웠지만, 듣는 훈련은 전혀 안되어 있다.
지하철을 타라고 하는 거 같은데, 두사람 사이에서도 서로 말이 다르다.
일단 대충 알았다고 인사를 하고는 지하철이 있는 곳을 물었더니
그냥 쭉 가라고 한다...
그리고는 우리 부부에게 지하철 승차권 두장을 건내준다.
아마도 자기 나라를 방문해준 우리에 대한 그사람들 방식의 환영 인사였을지도 모른다.
"정말 고마워요."라고 인사를 건낸 후 발걸음을 재촉했다.
처음 짊어지는 배낭이 별로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긴장되는 순간이다.
이제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 여행팁 ■
。멕시코는 원칙적으로는 90일 무비자가 가능한데, 요즘은 90일짜리를 잘 주진 않는다.
왠만한 경우에는 30일짜리를 주며, 90일짜리가 필요한 사람은 반드시 사전에 말을 해야만 한다.
。멕시코 입국시에는 종이쪼가리를 하나 주는데, 반드시 보관해야 한다.
그곳에 체류기간 등이 적혀 있다. 출국 시에는 그 종이만 넘겨주면 출국 심사가 완료된다.
여권에는 이민국에서 통과되었다는 표시 도장만 찍힌다.
이 도장 위치를 잘 기억해두었다가 다음 입국시에 보여주면 심사가 수월해진다.
。멕시코시티 지하철은 표를 하나 사면 전구간을 동일 요금으로 다닐 수 있다.
들어갈 때 표를 넣고 나면 표는 다시 나오지 않는다. 나올 때는 그냥 나온다.
。지하철 요금은 2 페소(약 180원)로 무척 싸다.
★ [멕시코시티]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 이 여정이라는 놈은
2006.02.02
너무 기나긴 2월2일이다. 하루를 너무 오래 사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내 몸의 생체 시계가 고장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지?
공항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올라타고 한참 긴장을 하고 있다.
어리숙해 보이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주변을 두리번 거리지도 못하겠다.
그러다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백인 청년하고 눈이 마주쳤다.
그 놈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간단한 대화를 주고 받다 보니 그 청년도 아르헨티나에서 온 여행자라고 한다.
물론 그 청년은 미리 와서 숙소에 자리를 잡은 상태여서 배낭을 메고 있진 않다.
자기는 Zócalo(쏘깔로) 광장에 머무르고 있는데 주변에 호스텔이 많다고 한다.
그 동네가 위험하다고 들었는데라고 물으니, 그렇지 않다네...
뭘 믿어야 할까?
하여튼 가깝고 가격도 괜찮다고 해서 여정을 변경시켰다.
쏘깔로로 가자...
지하철에서 나오니 플랫폼에 우리같은 커플이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고 버벅거리고 있다.
말을 걸어보니 그사람들 역시 숙소 문제로 고민 중이다..
벌써 해는 떨어진 상태라 빨리 숙소를 구하는게 좋다.
아르헨티나 청년을 따라서 병아리 마냥 멕시코시티의 초보자 4명이 따라붙는다.
사실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을 믿고 따라가는 행위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우리는 운이 좋았지만 운이 나쁘면 강도를 만나서 팬티만 남기고 몽땅 털릴 수 있다.
내가 지금 여행을 다시 한다면 절대 따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를 빠져 나오자마자 우리 입에서는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나온다...
쏘깔로 광장에는 Catedral이 있는데, 야간 조명을 받아서 광경이 기가 막히다.
한국에서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웅장하고도 화려한 건축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지금은 그걸 구경할 여유가 없다...숙소를 찾아야 하니까.
청년이 이끄는 데로 가서 보니 호스텔이 하나 있는데,
청년 말로는 자기 숙소는 아닌데 괜찮은 곳이라고 추천해준다.
우리 초심자 4명은 그냥 그곳에서 머무르기로 한다...
달리 방법이 없다.
날은 저물었고, 도시는 위험하다...
■ 여행팁 ■
쏘깔로 광장의 Catedral San Cristobal 뒷편에 있는 Hostel Mundo Joven은
중앙 홀에 식당을 운영하고 윗층은 호스텔로 사용한다.
보안이 철저하고 각자 카드키가 있어야 출입이 가능하다.
먹을만한 아침을 제공하는 점은 좋지만 숙소가 좁고 침대라 그다지 편하지 않다.
개인 락커를 사용할 수 있어서 짐을 보관하기는 편하다.
일인당 U$12 로 상당히 비싼 편이다.
★ [멕시코시티] Zocalo 광장
2006.02.03
드디어 날짜가 바뀌었다.
새로운 날이여, 정말 오랜만이다. 내 얼마나 그대를 기다렸던지...
우리 여행의 새로운 날이 밝았다.
이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껴야 할 시간이 제대로 다가왔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갔는데, 아이들이 홀에 가득하다.
어디서 한꺼번에 견학여행 비슷한 걸 온 모양이다.
신기한 얼굴로 동양인인 우릴 쳐다보는 애들도 있고, 전혀 관심조차 없는 애들도 있다.
그 사이에 끼어서 밥을 먹고 난 후 아침에 약간 여유가 있어서 동네 구경을 나섰다.
아침의 쏘깔로의 여유라는 말은 우리같은 여행자들이나 아님 노인들, 거지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사람들은 서둘러서 지하철로 빨려 들어간다.
마치 괴물이 통째로 사람들을 삼켜 버리는 거 같다.
쏘깔로 광장은 거대한 멕시코시티만큼이나 무척 큰 광장이다.
아침에는 이렇게 조용하지만 저녁이 되면 사람들이 북적거리면서 활기를 띌게 분명하다.
어느 중남미 광장이나 마찬가지지만 쏘깔로에는 San Cristobal(산 끄리스또발) 성당이 있다.
그리고 그 뒷쪽으로는 과거 마야 시대의 유적지도 함께...
안타까운 것은 이 지역의 지반이 현재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당이나 마야 유적지뿐 아니라 주변 건물들은 조금씩 기울어져 가고 그리고 금이 가고 있다.
유지보수를 하고는 있지만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남미의 거의 모든 성당들은 유명한 관광 명소임과 동시에 예술 작품 중 하나이다.
그걸 신앙심에서의 발로라고 해석하기에는 뭔가 석연찮다..
성당에는 현지인 몇몇이 주변을 왔다갔다 하고 있지만 관광객들은 보이질 않는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으니까...
한 정장을 입은 아저씨가 성당을 물끄러미 올려다 본다...
★ 멕시코여행 (멕시코시티) 4 -1 - 알라메다, 국립예술관, 팔라시오 포스탈, 레포마 거리 (2006년 12월)
11시쯤 만만한 식당, 카페 데 블랑카(Cafe de Blanca)에 자리를 잡는다. 바깥 거리가 바로 보이는 창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입구에서 오른쪽을 돌아 두 사람이 앉는 두 자리에는 각각 멕시코와 멕시코 시티의 입체 지도가 창에 붙어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 어차피 여행책을 들여다보고 그 날의 일정을 점검하다보면 지루할 여유도 없겠지만 지도를 보면서 '여기 갔다 왔다', '여기는 오늘 갈 거다'등 얘기를 나누는 것도 재미있다. 푸짐하게 나오는 빵을 골라 먹으면서.
어제 맛있게 먹은 칠레 로요나(Chile Rollona)를 시키려고 하니 어제의 특식이어서 없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작은 종이에 따로 인쇄되어 끼여진 당일의 특식 메뉴가 눈에 보인다. 무엇을 시킬 지 감이 없을 때는 특식 메뉴를 시켜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가이드책등에서 메뉴가 대강 어떻게 요리되는 지를 먼저 알아보고 주문하면 나중에 놀랄 일은 덜 할 것이다. 문 핸드북과 손바닥만한 간이 단어장(사전)에 요리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나와 있어 꽤 도움이 되었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채소 수프와 그린 타말레(Green Tamale)를 34페소에 시켜먹고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오늘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우체국과 국립 예술원을 확인하고 차풀테펙 공원으로 가서 멕시코 인류학 박물관을 갈 예정이다.
아직 걸어보지 않는, 싱코 데 마요(5 de Mayo) 바로 윗길인 타쿠바(Tacuba) 거리를 서쪽으로 따라가면서 우체국(Palacio Postal)로 향한다. 볼리바(Bolivar)거리를 지나니 타쿠바 거리에 노점상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장신구, 관광 기념품, 옷가지들을 파는 노점들을 흥미롭게 들여다보며 한 블록 정도를 더 가니 국립예술관(Museo Nacional de Arte)와 그 앞의 플라자 톨사(Plaza Tolsa)가 나온다.
20세기 초까지의 멕시코 예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는 이 박물관은 상당한 규모의 르네상스 양식을 띠고 있다. 플라자 톨사에 멋진 기마상이 세워져있는데 스페인왕 칼로스 4세의 동상이라고 한다. 원래는 소칼로에 있었는데 레포마 거리로 옮겼다가 다시 이 곳으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옛 식민지 통치국의 왕의 동상인데, 아마, 그들 마음 같아서는 이 곳에 세워두는 것도 탐탁하지 않았을 듯 하다. 기마상이 아주 훌륭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슬픈 역사가 암시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플라자 톨사에서 알라메다 공원을 끼고 있는 센트랄 라자로 카데나스 거리(Eje Central Lazaro Cardenas Sur)까지는 약간 다른 상품들을 판매하는 노점상들이 많았다.
시장을 나오기 전 프리다의 포스터를 구입한 후, 화려한 인테리어로 유명한 우체국(Palaco Postal)을 들른다. 과연 듣던 대로이다. 그 섬세하고 화려한 모습에 이 곳이 우체국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건축양식을 맘껏 살린 창구에서 남편이 아버님께 엽서를 보내는 것으로 보아 우체국은 확실하다. 혹자는 고급스런 디자인의 이 4층짜리(실은 3층 같았다.) 건물은 우체국 이상이어야 한다고도 주장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멋진 건물을 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우체국으로 활용하는 것이 괜찮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누구든 이런 곳을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테니까. 이 곳에서 우편을 보내면, 그래서 품위까지도 배달이 되는 것일까...
우체국을 나와 센트랄 라자로 카데나스 거리를 지난다. 아름다운 국립미술관(Palacio de Bellas Artes)이 나온다. 빈틈없는 우아함을 자랑하는 웅장한 대리석 건물, 감탄하면서 바라본다. 몇 번의 사진을 찍고 미술관 앞 광장과 연결된 알라메다 공원으로 걸어들어간다.
알라메다 센트럴을 빠져나가니 힐다고 역이 나오고, 그 맞은 편으로 아주 오래된 듯한 산 히폴리토 성당(Templo de San Hipolito)이 나온다. 센트로 히스토리코에서 벗어나 힐다고 오거리에서 혼자 오래된 멋을 풍기고 있다. 제대로 보존의 손이 가지 않은 듯 퇴색된 이미지를 풍긴다. 앞 쪽의 두 기둥과 돔, 광장에 세워진 조형물까지 왠지 각도가 맞지 느낌도 든다. 하지만 바쁜 전철역과 혼잡한 레포마 거리에서 유유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제부터는 레포마 거리(Paseo de la Reforma)를 따라서 걸어간다. 가는 길에 혁명기념탑이 있어 다시 들르기로 한다. 주말에는 돔의 전망대에 올라갈 수 있다고 나왔기 때문에 한 번 시도하려고 했다.
아쉽지만 전망대를 접고 레포마를 따라서 독립기념관으로 향하기로 한다. 힐다고 역을 지날 때 전철을 타고 바로 챠풀테벡 공원으로 갈까라고도 고심했지만, 레포마를 따라서 독립기념탑을 지나 공원으로 걸어가 보자고 결정했다. 계속되는 행군에 고생하는 발이 조금 불쌍은 했지만 그냥 걸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기대이상으로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레포마 거리, 아주 멋있었다. 우리 둘 다 주저없이 레포마 거리가 이제까지 걸어본 세계의 모든 거리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거리라는 것에 동의했다. 세계의 모든 거리라고 하니까 아주 거창한 느낌이 들지만. 염치없이 가 본 나라도 많지 않지만. 그래도 그 거리가 그렇게 좋았다. 나보다 많이 다녀본 남편,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 파리와 런던의 곳곳을 걸어본 남편도 주저없이 이 곳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레포마 거리는 멕시코 시티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주요 도로중 하나인데 센트로 히스토리코에서 조나 로사(Zona Rosa)를 지나고 챠풀테펙 공원으로 연결이 된다.
도보 거리는 이런 예술 작품들이 장식을 했다면 도로 중간중간에는 영웅들을 기리는 기념탑(동상), 크리스토발 코론 동상(Monumento a Cristobal Colon)과 차우테목 동상(Monumento a Cuauthemoc)을 세워두었다
★ 독립기념탑, 차풀테펙 공원, 국립 인류학 박물관, 레포마 거리 (2006년 12월)
멕시코 시티 독립기념탑(Monumento de la Independencia), 차풀테펙 공원(Bosque de Chapultepec), 인류학 박물관(Museo Nacaional de Antropologia e Historia)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지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독립기념탑(Monumento a la Independencia)이다. 문핸드북 가이드책을 장식한 독립 기념탑, 예상했던 것만큼 멋있었다. 역광으로 비치는 햇살에 기념탑 꼭대기의 천사상이 눈부셨다.
1910년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서 건립되었다는 45미터 높이의 기념탑, 탑 꼭대기에는 앙헬(Angel)이라고 부른다는 황금 천사상이 있고 네 모퉁이에는 법, 정의, 전쟁과 평화를 상징하는 여인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들은 모두 기품있게 네 모서리를 지키고 있다. 그 조금 위로는 멕시코 독립 영웅들의 조각이 새겨져 있고 기념탑 안에는 그들이 영웅으로 모시는 이달고 신부, 이그나시오 알렌데, 후안 알다마등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사방의 도로 한 가운데 넓다란 원형의 터를 마련하고 그 가운데에 독립 기념탑을 세웠다. 높지는 않지만 그 곳으로 가면, 그래서 사방의 확 뚫린 전망이 멋지게 펼쳐진다. 그 곳을 지나는 차량들은 로터리때문에 조금 돌아가야하지만 마다하지 않을 듯 하다. 이 곳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념탑과 더불어 펼쳐진 네 방향의 도로를 시원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모두 좋았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레포마 거리에서 로터리를 지나 기념탑까지 가는 횡단보도가 없다는 점이다. 보행자가 알아서 잘 살핀 후 건너가야한다.
사방을 두어번 두르면서 기념탑의 조각도 살피고 그 곳에서 펼쳐지는 전망도 즐겼다. 네 모퉁이의 조각상을 보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째 그 곳의 조각상들이 멕시코 시티의 현지인들과 닮은 것이 아니라 유럽인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멕시코를 구성하는 유럽계, 히스패닉계, 그리고 인디오계중 유럽인의 비중은 틀림없이 14%정도로 작다고 들었는데... 식민지를 건립하고 아직까지도 본토인들보다 경제적, 정치적 우위에 있는 그들의 숨겨진 힘이 또 느껴졌다면 억지일까…
그러고보니 이 기념탑은 아주 중요한 요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이제 챠풀테펙 공원이 나올 것이고 남쪽으로는 조나 로사가 펼쳐질 것이다.
조나 로사쪽 방향에는 여러 사람들이 대형 별을 놓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형형 색색의 반짝이는 금박을 입히고 있었는데 크레인이 동원된 것을 보다 높이 매달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마 12월 31일 새해맞이를 위한 준비인 것 같다. 멕시코 어린이들이 곧잘 하는 것처럼, 저 대형 별을 어딘가에 매 놓고 내일 자정 때 터트리려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정말 장관이겠다.
기념탑을 돌아본 후 다시 레포마 거리를 걸어 챠풀테펙 공원으로 향한다.
챠풀테펙 공원(Bosque de Chapultepec)으로 가는 레포마 거리는 여전히 멋있고 볼거리가 많았다. 상시 전시하는 예술 작품도 멋있었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전시한 예수 탄생을 기리는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예수 탄생을 재현한 작품을 적어도 20여개는 본 듯 한데 모두 다른 재료와 모두 다른 이미지를 풍기는 작품들이었다. 예수 탄생이 큰 의미를 지니는 그들의 종교 문화, 혹은 종교가 생활화된 문화를 잘 볼 수가 있었다.
조금 더 레포마를 타고 걸어가니 로타리가 또 하나 나오고 그 중앙에도 동상이 세워져있다. 화살을 멋지게 겨냥한 여인상인데 라 디아나 카자도라(La Diana Cazadora), 사냥하는 여인상이라고 한다. 분수와 잘 어울려 도심 특유의 멋스러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 더 챠풀테펙 공원으로 가다보면 오른쪽 방향으로 아주 세련된 건물이 하나 나온다. 이 건물이 바로 토레 마요(Torre Mayor)인데 센트로 히스토리코내의 토레 라티노아메리카나(Torre Latinoamericana)보다 더 높은 건물이라고 한다. 전망대도 갖추어져 있다고 했는데 시간이 된다면 들러보고 싶었다. 우선 사진만 찍어두고 챠풀테펙공원으로 계속 걸어간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무슨 행사가 벌어지는 듯 했다. 공원 입구 문앞에 헛간을 지어놓고 볏짚으로 꽤 넓은 무대를 마련해두었다. 자세히 보니 가축도 몇 마리 보인다. 우리가 들어갈 때는 잠잠했지만 곧 무슨 이벤트가 벌어질 것 같았다.
인류학 박물관이 공원의 어디에 위치했는지 정확히 모른채 우리는 공원의 동쪽 입구를 통해서 공원안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확인하니 차풀테펙 전철역이 있는 입구였다. 조금 걸어가니 조그마한 광장이 나오고 그 뒷쪽으로 숲에 파묻힌 멋진 성이 나온다. 꼭대기의 모습만 우아하게 자랑하고 있는 카스티요 데 차풀테펙(Castillo de Chaputepec)성이었다. 놓치기 아까운 성이었지만 아직 인류학 박물관도 찾지 못 한지라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발이 아파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조금 더 걸어가 연못이 바라보이는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둘 다 지쳐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연못을 바라보며 공원의 시원한 공기를 한 5분여 즐기고 다시 일어났다.
지도에서 찾은 인류학 박물관 쪽으로 향하니 사람들이 북적댄다. 장터 구경, 사람 구경으로 다시 신이 나기 시작했다. 어릴 때 종종 먹던 솜사탕부터, 다분히 불량식품으로 분류될 군것질 거리, 어린이들의 장난감, 기념품, 먹거리 정말 재미있는 장터였다.
- 차풀테펙 공원을 가로지르는 레포마 거리
하지만 애타게 찾던 인류학 박물관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반대쪽 연못 라고 데 차풀테펙(Lago de Chapultepec)을 따라 걸어가니 공원을 빠져나가는 작은 문이 보인다. 경비원이 지키는 그 문을 빠져나오니 다시 레포마 거리이다. 그 거리 반대편에 인류학 박물관이 있었던 것이다. 시간은 벌써 5시가 넘었다.
인류학 박물관 앞에도 여러 노점상들이 손님을 찾고 있었다. 그 가운데 황금색 옷을 입을 한 황소상이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우스울 수가. 바로 독립 기념탑의 천사상을 본떠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네들의 유머 감각이 기특했다.
그렇게 두 시간을 채 못 남기고 우린 국립 인류학 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 e Historia)으로 들어갔다. 관람료는 1인당 40페소.
인류학 박물관을 다녀온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고 추천하는 이 곳은 정말 대단한 곳이었다. 박물관을 싫어하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곳 같았다. 박물관을 싫어하더라도 한 번 가보아야할 세계에서 몇 안되는 곳이다. 박물관내에 전시된 유물들과 작품들도 대단한 규모이지만 박물관 건물 자체도 아름다운 하나의 작품이다. 커다란 지붕을 받치고 있는, 비까지 내리게 한다는 박물관 마당 앞의 큰 기둥에서 보이는 독특한 조형미는 여간해서는 찾기 힘들 것이다.
박물관을 무척 좋아하는 남편과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전시된 유물 하나하나를 살폈다.
1층의 12개 살라(Sala, 홀)에는 아시아인이 아메리카로 넘어온 시대부터, 멕시코의 고대 문명을 총괄하고 있었다. 모든 살라의 전시품이 인상적이었지만 그들의 뿌리 문명, 아즈텍을 되살린 메히카(Mexica)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많은 유물이 남겨진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유물들의 의미가 잘 살아나도록 그렇게 인상적으로 전시해 놓은 구성감각도 정말 칭찬하고 싶었다.
태양력을 나타내는 대형 원반 조각 앞의 전시 공간은, 그 곳에 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그 때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길 만큼 멋지다.
그들이 사용했던 도구, 그릇류, 그 문명의 핵심 지역을 재현해 놓은 모형들 모두 훌륭했지만 가장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은 옛 문명인들이 만들어놓은 수백점의 인물상 혹은 신을 재현한 조각상들이다. 아기 손만한 크기에서Coatlicue Godess같은 대형 조각물에서 그 때 사람들이 대략 어떻게 생겼을까부터 그 때의 사람들은 무엇을 중시했을까라는 문화적인 투영까지 할 수 있어서이다. 그런 것을 되짚어 보는 것이 흥미롭다.
몇 백년 전에 이 땅에서는 저 사람들은 저런 의상을 입고 저런 작업을 하며 지냈구나.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루 일과가 어떠했을까. 한 평생이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들은 행복했을까. 그들에게 행복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과학이 부족했던 그들은 많은 것을 주술에 의지하고 많은 것을 스스로의 힘에 의지하며 살았겠지. 이런 생각으로 나는 그 박물관에서, 멕시카 홀에 깊이 빠져든다.
- 코아틀리쿠(Coatlicue) (어머니 신)
- 태양의 돌
당연히 두 시간이 안 되는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기다렸던 마야홀은 시간이 부족해 갈 수가 없었다. 현재 인디오의 삶을 재현해놓았다는 2층도 대부분 놓쳤다. 안타까웠지만 할 수 없었다.
문을 닫기 5분여를 남겨두고 전시장 밖으로 나오니 벌써 많이 어두워져있었다.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에 새겨진 조각들이 이쁘게 조명을 받은 모습을 바라보다가 기념품을 파는 상점 입구에서 남편을 만났다.
기념품을 파는 상점 입구에 화장실이 있다. 박물관 안에는 입구에서 오른쪽에 있는 끝 홀의 2층에 화장실이 있었다. 다른 곳에도 있겠지만 그 곳만 두 번 갔다. 멕시코 시티에서 경험한 다른 여느 화장실보다 깨끗해서 좋았다.
다시 찾아 오기 위해, 혹은 나중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라고 여러 정보를 메모해둔다. 일요일이나 휴일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평일 6시에 이후에 입장하면 150페소를 내야한다고 되어있었는데 그게 연말 시즌에만 그런 것이지는 잘 모르겠다.
전체 26홀의 전시장이 있는데 아래 층에 역사적인 의미를 되살리는 전시장을 마련했다. 다만, 오른쪽 제일 첫 번째 홀은 유물 전시가 아닌, 현대 미술 작품 전시관이었다. 괜찮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니 시간이 있다면 확인하면 좋을 것 같다. 다만, 시간에 쫓겨 선택을 해야한다면, 현대 미술 작품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되겠다.
각 전시장의 배경 문명에 대해서는 영어로 상세하게 설명을 해 두었고 주요 유물에 대해서도 간단한 영어 안내가 되어있다. 또, 영어로 진행되는 오디오 안내도 있다고 한다. 사진은 플래쉬 없이 찍는 것만 허용이 된다.
박물관을 완전히 빠져나오니 바로 앞의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어눅해진 거리에서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외국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인류학 박물관 바로 근처에는 전철등이 없어 버스나 택시를 탈 요량이 아니라면 근처의 전철역까지 걸어가야한다.
우린 둘 다 걷기를 무척 좋아했으므로, (더 중요한 것은 택시를 타기가 싫어서) 다시 레포마 거리따라 동북쪽으로 걷는다. 조나로사를 향해서.
주변에 우리처럼 걷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 멕시코 시티에 대한 공포증이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포마 거리가 또 한 번 우리를 감동시켰다.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동안 거리에 멕시코를 알리는 사진작품을 전시해놓았기 때문이다. 감탄할 만큼 아주 잘 찍어진 사진들이었다. 그 사진에 넋이 빠지면서 무서움도 점점 사라져갔다.
그 길은 또 아주 낭만적이기도 했다. 오후에 걸었던 레포마에서도 데이트하는 기분을 맘껏 즐겼는데 어두운 저녁의 레포마도 그런 기분을 선물해주었다.
공원이 끝나는 지점에서 조나로사로 가는 길까지는 조금 빨리 걸었다. 전시도 끝난 데다가 사람들도 더 없는 것이었다. 다행히 조나 로사(Zona Rosa)의 시작 지점까지는 금방이었다. 하지만 아직 조나 로사의 중심부에서는 많이 떨어진 듯 했다. 어느 호텔의 바깥 로비에 들어가 저녁을 먹을 식당을 찾기 위해 지도를 편다. 조나로사에 오면 저녁은 한국식당 우래옥에서 먹자고 일치감치 얘기를 했기때문에 그 위치만 찾으면 된다.
우래옥까지는 어두운 주택지같아 별 다른 재미는 없었지만 그렇게 거리가 멀지는 않았다. 함부르고(Hamburgo)거리에 있는 우래옥 2층 식당에 자리를 잡고 불고기를 시킨다. 오래간만에 먹는 한식이다. 일인당 110페소에 맛난 저녁을 먹었다.
식당을 나와 젊음의 끼가 살아넘친다는 조나 로사의 중심부를 찾아 남쪽으로, 동쪽으로 향한다. 플로렌시아 거리를 지나니 슬슬 사람들이 보인다. 가이드책에 안내된 대로 동성연애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카톨릭이 생활 속 문화로 배어든 이 나라에서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거리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동성연애자임을 가리지 않고 마음껏 활보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일이다. 종교때문에 자아 정체성이 억압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들의 탁월한 유연함에 감탄을 보낸다.
조나 로사를 걷다보니 다시 레포마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 펼쳐진 눈부신 독립기념탑에 감탄을 연발하게 되었다. 낮에 바라본 독립기념탑도 좋았지만 환한 조명을 받은 기념탑은 정말 눈부셨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다시 근처로 다가가 사진을 연달아 찍고 불빛이 밝은 밤거리를 바라보며 그 시간을 즐기고, 아직도 풍선을 달기 위해 크레인을 동원해 작업하고 있는 사람들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조나 로사로 돌아왔다. '분홍색 지역'의 뜻이라는 조나 로사, 구석구석을 즐기다가 이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명으로 구성된 밴드가 락음악을 공연하고 있는 여피스 스포츠(Yuppie's Sports) 빠로 들어간다. 밴드 가수의 가창력때문이었는지 미모때문였는지 다른 빠에 비해 이 곳은 사람들이 꽤 많다. 마가리타를 시킨 후 그 분위기를 즐긴다. 마가리타 두 잔에 팁까지 100페소 정도였던 것 같다. 유리잔부터 맛까지 상당히 미국식이었지만 이제까지 시도한 다른 마가리타보다 양이 많아서 좋았다.
조나 로사를 이렇게 즐기다가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전철을 타기 위해 인서젠테(Insurgentes)역으로 향했다. 전철은 12시에 끊어진다고 나와있었다. 우리는 한 번 갈아타야했기 때문에 조금 일찍 출발했다. 놓치면 택시를 타야했으므로
★ 멕시코여행 (멕시코시티) 5 -1 - 토레 라티노아메리카, 비베로스 공원, 플라자 산타 카타리나 (2006년 12월)
2006년의 마지막 날, 9시가 조금 못 되어서 일어났다. 이제까지의 강행군을 생각한다면 그래도 이른 시간이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9시 35분즘 아침을 먹기위해 카페 엘 파퓰라(Cafe el Popular)로 향한다. 역시나 식당앞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서 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미국식 콤보 아침 식사가 제공되지만 깨끗하게 포기한다. 시간이 금이라는 명언하에. 그리고 어제 아침을 해결한 카페 데 블랑카(Cafe de Blanca)에 자리를 잡는다. 이 쯤되면 아무리 좋은 평을 받는 카페 데 블랑카도 지긋해지기 시작하지만. 어쩔 수 없다. 계란 요리와 빵을 먹는 듯 마는 듯 하며 아침을 해결했다. 이틀째 같은 메뉴, 햄이 들어간 오믈렛을 시킨 남편의 아침은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무난했다. 서비스로 주는 빵 종류도 다른 곳보다 많은 데다가 일단 가격이 쌌기 때문에 크게 불평하지 않고 식당을 나섰다
주말에는 북적댄다는 토레 라티노아메리카(Torre Latinoamerica)를 가 볼 수 있겠다 싶었다. 멕시코 시티의 전망을 가장 확실하게 불 수 있다는 곳이다.
마데로 길(Madero)을 따라 서쪽으로 가는데 볼리바 거리(Bolivar)를 지나니 섬세한 조각이 눈에 띄는 오래된 건물이 나온다. 멕시코 황제 이투비데의 이름을 따라서 이 투비데 궁전(Palacio de Iturbide)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한 때는 호텔이었는데 지금은 은행과 전시관이 들어서있다고 한다. 우리가 지나갈 때도 마침 '멕시코 탄생'(Nacimientos Mexicanos - Mexican Births)이라는 인상적인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토레 아메리카 입장료는 40페소였던 것 같다. 손목에 두르는 종이띠를 주는데 나중에 끊느라고 애먹었다. 전망은 애기 듣던 대로 였다. 넓다란 유리창으로 사방의 전경이 쫙 펼쳐진다. 네 방향으로 탁 트인 커다란 유리창 덕에 생각지도 못 했던 멕시코시티의 풍경을 맘껏 즐길 수 있었다.
위에서의 전망은, 멕시코 시티를 정복한 스페인들이 도시 계획을 위해 정십자형 도로 위주로 건설했다는 사실을 아주 잘 받쳐주었다. 멕시코 시티의 규모에 놀라고 그것을 놀라게 잘 보존하는 그들의 힘에 다시 한 번 놀랐다. 37층, 그렇게 높지 않는 건물에서 내려다본 멕시코 시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 수많은 건물 중에 위에서 내려보았을 때 가장 예쁜 건물을 고르라면 단연코 국립미술관 팔라시오 데 벨라스 아테스이다. 내려보아도 너무나 아름다운 건물이다.
12시가 조금 넘어서 코요아칸 지역 가까이의 비베로스(Viveros)역에서 내린다. 코요아칸 중심부에서 대략 1km정도 떨어진 시민들의 공원 비베로스 데 코요아칸(Viveros de Coyoacan)이다. 이 곳도 예상하지 못 했던 멋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산책을 하다, 자연과 예술과 사람이 어울려진 그 멋진 공원을 빠져나왔다. 아마 멜초르 오캄포 거리(Melchor Ocampo)거리로 나온 듯 하다. 남서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짙은 황색의 교회가 자리잡은 플라자 산타 카타리나(Plaza Santa Catarina)가 나온다. 일요일이서 그런 지 교회에는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 예배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십여명은 문 밖 간이의자에 앉아 있었다.
엄숙한 그들을 피해 공원 한 켠 그늘에 자리를 잡으려던 순간 바로 앞에 멋진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안티구아 산타 카타리나(Antigua Santa Catarina). 이 카페는 이번 여행에서 발견한 가장 멋진 카페가 되었다. 강한 파란색이 살구색과 잘 어울려진 외관은 시작일 뿐이었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 공원이 멋지게 바라보이는 2층의 창가쪽에 자리를 잡는 순간, 이 곳을 그대로 떠다가 LA에 옮기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거기다가 칵테일 메뉴까지 너무 앙증맞은 것이었다. 다양한 과일주스가 섞인 마티니를 한 잔 시키면 한 잔이 서비스로. 덕분에 대낮에 우리는 마티니를 두 잔씩 마셨다. 메론 마티니를 시켰는데 너무 잘 넘어가 한 잔씩 더 시킨 것이다. 70페소에 잘 만들어진 칵테일을 두 잔이나 즐겼다. (4잔 140페소) 거기에 약간 출출한 배까지 달랠 겸 칠레 로요나를 시켰다. 카페 데 블랑카에서 특식으로 나온 것을 한 번 먹어보고는 계속 찾아다닌 칠레 로요나였다. 이 카페의 칠레 로요나는 싸한 맛까지 살아있어 좋았다. 그 매콤한 맛을 달래줄 아보카도까지.
★ 멕시코여행 (멕시코시티) 2 - 소깔로, 대성당, 그 주변 (2006년 12월)
발걸음을 재촉해야함에도 혁명 기념관이 숙소 근처였는지라 떠나기 전 다시 한 번 둘러 보기로 한다. 어제 밤 흥겨운 야시장이 벌어진 곳이다. 낮 에 본 혁명 기념관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대리석으로 웅장하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돔형 전망대를 올렸다. 전망대는 주말에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독재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1910년에서 20년까지 계속된 혁명을 기리는 기념관, 그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판초 비야를 비롯한 다섯 명 혁명 영웅의 영혼까지 옮겨두었다고 한다. 지하에 작은 박물관이 있는 듯 했지만 무거운 배낭에 갈 길이 바빠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어제 온 길과는 다른 길로 해서 일다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알바라도(Av Puente de Alvarado) 길이었는데 사거리에서 50m 정도 더 걸어올라가니 고전양식의 샌칼로스 박물관(Museo San Carlos)이 나온다. 이전에 누군가의 개인 저택이었는데 유럽의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안을 관람할 것은 아니고 그냥 건물 내부만 잠깐 구경할 거라며 어설픈 바디 랭기지로 안내원을 설득했다. 멋진 기둥이 사방으로 둘러진 타원형 뜨락은 작았지만 고풍스러웠고 우아했다. 전시된 작품들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여기까지 다시 올 시간은 없을 테지만 마음으로나마 다음을 기약하고 발걸음을 계속한다.
멕시코 시티 여행 비디오에서 보았던 이자벨 호텔로 가기 위해 이자벨역에서 내렸다. 이자벨 호텔까지는 10분 정도 걸어가야했는데 가는 내내 전자 제품등을 파는 수많은 상점들을 구경하느라 지루하지 않았다. 조금씩 더 걸어갈 수록 센트로 히스토리코의 멋을 풍기는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자벨 호텔이라고 쓰여진 세로 간판을 보고 신나서 달려가듯 로비로 들어갔는데 우리가 찾는 욕실 딸린 더블룸이 없다고 한다. 이럴수가. 여기만 믿고 있었는데. 방은 320페소였던 것 같다. (200페소 안팎의 공동 욕실 더블룸은 남은 방이 있다고 했다). 비록 거기 머무를 수는 없었지만 이자벨 호텔의 로비를 조금 구경하다 나왔다. 넓어서 좋았고 고풍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림들이 많아서 좋았다. 그림의 떡인지라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호텔을 나섰다. 바로 근처에 아미고 호스텔이 있었는데 물어 보니 공동 욕실의 방만 있다고 한다. 성수기때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12월말 이 무렵에는 공동 욕실 호스텔은 방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은 듯 했다. 고맙게도 아미고 호스텔의 매니저 아저씨가 영어로 두 어군데를 추천해준다.
곧바로 아저씨가 추천해준 호텔이 있는 센트로 히스토리코 중심 거리로 향한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한 호텔은 방이 없다고 했고 캐나다 호텔은 체크아웃 시간에 방이 빌 수 있으니 대기명단에 이름을 적어놓으라고 했다. 배낭은 가벼워지지 않는데 방을 구하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거의 진이 빠질 때쯤 캐나다 호텔의 한 건물 건너 위치한 싱코 데 마요 (5 de Mayo)거리의 리오하 호텔(Hotel Rioja) 에 서 방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격도 저렴했다. 비록 전망은 없었지만 욕실 딸린 더블룸이 280페소. 첫 호텔보다 훨씬 싸고 위치도 훨씬 낫다. 방에 들어가기까지 아까운 시간 1시간30분 정도를 로비에서 무작정 기다려야했지만, 그리고 주간에 업무를 보는 호텔 직원들이 불친철했지만, 그런 것을 가릴 형편이 안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무엇보다도 위치가 너무 좋았다. 센트로 히스토리코의 바로 중심이었고 알렌데 전철역도 멀지 않아 어디든 이동하기가 좋았다.
서둘러 배낭을 내려놓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방때문에 2시간 가까이 걸어다닌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점심은 마 제스틱 호텔 (베스트 웨스턴 호텔 , Hotel Majestic))에서 먹기로 바로 결정한다. 소깔로 전경이 멋지게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12월이라 바람막이 비닐을 대어놓았지만 여름에는 확 트인 전망을 맘껏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와 사람들로 복잡한 소깔로 광장(Zocalo, Plaza de la Constitucion). 웅장하고 화려한 대성당(Cathedral Metropolitana)과 멋지게 펼쳐진 대통령궁(Palacio Nataional), 역시 대단했다. 멕시칸 맛이 많이 풍기지 않는 부페 점심과 마가리타를 마시고 팁까지 200페소를 낸 후 소깔로 광장으로 내려온다.
이 멋지고 활기 가득한 소깔로 광장을 맘껏 걸어보고 싶다. 역시 각종 기념품, 악세사리들을 파는 간이상들과 인디언 춤을 추고 팀을 받는 춤꾼들이 많았다. 천천히 즐기며 공원을 가로질러 간다. 소깔로의 재미를 흠뻑 즐기고 디 에고 리베라의 벽화로 유명한 대통령궁(Palacio Nataional)으로 향한다. 5시에 문을 닫는다기에 이 곳부터 서둘러 보아야한다. 여권으로 신원 검사를 거쳐야하고 입장료없이 들어간다. 사진은 플래쉬 없이 찍어야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햇빛이 충분한 낮시간에 관람하는 것이 유리할 것 같다.
들어서자마자 계단 벽을 장식한 웅장한 벽화가 눈을 사로잡는다. 멕시코 역사를 가장 잘 표현한 중앙 벽화이다. 슬프지만 역동적인 멕시코의 역사가 파노라마식으로 그려져있다. 천천히 그들의 역사를 되짚는 마음으로 벽화를 감상한다. 계단을 올라 중앙 벽화를 지나면 2층에는 역사의 한 면 한 면을 이어가듯 그린 벽화가 관람객을 기다린다. 보다 자세하게 멕시코의 긴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테오티와칸등의 고대 문명만큼, 스페인에게 정복당한 역사도 더불어 화려한 색채로 그려냈다. 섬뜩하고 잔인한 면도 잊지 않고 말이다. 그 슬픈 과거를 기억하기 위함일까.
실내로 들어간 곳은 꼭 한군데뿐이었는데 간이 회의실 같았다. 그들의 정치 행위를 감시한다는 의미인지 천정에는 똑바로 뜬 사람의 눈이 조각되어있었다. 이 회의실을 지나자 대통령궁의 관람은 사실 끝이었다. 확 트인 앞마당을 멍하니 내려보다가 다시 소깔로로 나왔다.
다음은 소깔로 북쪽에 있는 대성당(Cathedral Metropolitana)이다. 예전에는 세례도 받은 천주교도였지만 지금은 들어서도 아무 감정이 없는 성당. 하지만 이 웅장함에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장려함과 엄숙함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로 정중앙홀에서는 미사가 진행중이었고 내부로 들어가는 긴 복도 한켠에는 고백성사도 진행되고 있었다. 지친 듯한 사람들이 조용히 않아 자신들의 고백성사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생활에서 이 믿음은 내가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것일 듯하다.
중앙을 지나 성당의 동쪽 복도로 가서 다시 한 번 내부를 둘러보고 있으니 정장 차림의 중년 멕시코인이 인 당 120페소에 성당의 지붕으로 올라가는 투어를 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렇잖아도 점심을 먹을 때 성당 지붕에 올라간 사람들을 보았기에 올라가는 길을 찾던 참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투어를 하지 않는 이상 지붕으로 올라갈 수는 없다고 한다.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점심 때 호텔에서 소깔로를 내려다보았으므로 그의 제안을 사양했다.
성당을 나오니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소깔로와 대성당 동쪽에 위치한 템플로 메요(Templo Mayor)로 가려고 한다. 마네다 골목을 힐끗보니 사람으로 인산인해이다. 두 서너개의 볼거리가 있는 저 거리도 지나가보아야하는데... 맘만 그렇게 먹고 우선은 지나친다. 템플로 메요로 가는 그 짧은 길은 여러가지를 파는 길거리 상인으로 가득했다. 우리 시장에서 흔히 보는 생필품도 있었고 관광객을 겨냥한 기념품도 많았다.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저녁을 거를 수는 없기에 낮에 봐 두었던 Taqueria Beatriz로 가기로 한다. 언제나 현지인들로 붐빈다는 이 곳, 그 작은 식당이 낮에 잠깐 지나칠 때도 복작거렸는데 저녁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먹어보고 싶었지만 기다리기는 싫어 책에서 찾은 칸티나 El Gallo De Oro로 향한다. Moon Handbook사의 멕시코 시티책에서는 old-style 칸티나라고 소개했는데 별로 추천할 곳은 못 되는 곳 같았다. 조금은 외진, 볼리비아(Bolivia)와 카란자(Carranza) 거리에 있는 식당이었는데 넓은 홀에 현지 사람들 몇몇이서 반주를 즐기뿐 아주 한산했다. 저녁으로 먹은 엠빠나다(Empanada of cheese and spinach)와 수프, 그리고 마가리타도 고만고만한 맛이었다. 마가리타는 이제까지의 잔 중에서 가장 작은 칵테일 잔에 나왔다. 저녁은 팁까지 124페소.
★ 멕시코여행 (멕시코시티) 3 -1 - 테오티와칸, 달의 피라미드
거대한 고대 문명 도시 - 테오티와칸(Teotihuacan)
오늘 금요일은 멕시코시티 북동쪽에 위치한 고대 문명 도시 테오티와칸(Teotihuacan)에 가기로 한다. 멕시코 시티에서 50km 정도 떨어진 이 고대 도시는 1세기에서 3세기에 걸쳐 건설되었고 인구는 20만 정도로 추정이 된다. 멕시코의 고대 문명 중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지역으로, 당시대 유럽의 로마 문명에 비할 정도로 성대했다고 한다.
테오티와칸은 멕시코 시티 여행을 생각할 때부터 마음에 담고 있었던 곳이라 아침부터 무척 설레었다. 그래서였는지 놀랍게도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잠이 깬다. 아침은 간단하게 먹기 위해 호텔 바로 건너편에 있는 24시간 오픈 카페 엘 파퓰라(Cafe el Popular)에서 먹기로 한다.
비교적 멕시코 전통맛을 죽이고 서양식 메뉴와 입맛에 맞춘데다가 가격도 저렴해서 식당 이름처럼 인기가 많은 곳이다. 늘 사람들이 밖에서 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기에 혹시나 했는데 다행히도 식당안을 들여다보니 마침 빈 자리가 있다. 자리를 앉혀주는 미국 식당과는 달리 멕시코 식당은 대개 자기가 직접 자리를 찾아 앉으면 된다. 남은 한 자리를 잽싸게 차지한 후, 남편은 계란 오믈렛 콤보 요리를, 나는 수프, 기억나지 않는 음식 하나와 쥬스를 시킨다. 왠만한 메뉴마다 따라 나오는 빵이 여기는 마침, 크기도 크다.
콩요리가 곁들여진 계란 오믈렛, 과일, 그리고 커피까지 나오는 남편의 콤보요리가 가격도 40페소 정도로 아침으로는 정말 괜찮은 듯 했다. 다음에 오면 꼭 이렇게 시켜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생각한다. 먹은 것도 많지 않은 듯 했는데 나의 아침은 팁까지 75페소.
북부 터미널로 가기 위해서 소깔로 전철역으로 향한다. 전철 5호선 (황색 라인)의 오토버스 데 노테(Autobuses de Norte)역이 바로 북쪽 도시와 서쪽 도시로 향하는 버스들의 출발점, 북부 터미널(Terminal Norte)이다. 두 번을 갈아타야했지만 다행히 9시 15분경, 그렇게 늦지 않은 시간에 오토버스 데 노테(Autobuses de Norte)역에 도착한다.
전철역에서 나오면 북부 터미널이 바로 보여 찾기는 쉬웠다. 안내책의 설명에 따라 터미널에 들어서서는 북서쪽으로 향한다. (전철과 연결된 터미널 입구에서 왼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된다.) 커다랗게 방향을 적어놓은 매표소의 간판을 따라 가다보면 작은 글씨로 적어놓은 테오티와칸 안내판이 보인다. 터미널 끝에서 두 번째 부스이다. 작은 글씨의 Autobus Teotihuaca을 찾으면 되고 버스표를 발매하는 사람에게는 피라미드라고 하면 된다. 인당 28페소였다. 시간이 9시 25분이었는데 9시 15분 버스가 아직 출발하지 않았으니 빨리 버스 승강장으로 가라고 한다. 인원이 차지 않으면 이렇게 기다리는 것인가 보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뜨니 버스가 어딘엔가 정차를 하고 있다. 옆에 앉은 멕시코인들이 "피라미드"라고 말해준다. 멕시코 시티 교외 지역을 볼려고 열심히 차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잠이 들고 말았나보다. 그 사이에 버스는 벌써 테오티와칸에 도착한 것이다. 시계를 보니 책에서 안내된 것처럼 1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우리가 내린 곳은 테오티와칸 서쪽 세 입구 중 제일 남쪽에 있는 제 1문(Puerto1)으로 향하는 입구였다.
입구에 들어가기전 선인장으로 울타리를 세운 넓은 주차장을 건너가는데, 그 주자창 가운데에 20m는 됨직한 기둥에 서커스하듯 사람들이 매달려있는 것이 보인다. 원주민 의상을 입고 그들만의 음악에 맞추어 곡예를 벌이고 있다. 뒤에서 피리를 사라는 상인과 얘기를 하는 남편을 기다릴겸 그들의 장기를 잠깐 구경했다. 약간의 팁을 주고 드디어 안으로 들어간다. 입장료는 40페소였다.
입구에 기념품, 모자, 일회용 사진기등을 파는 상점들이 쭈루룩 우리를 맞아주었다. 제일 끝 상점에서 20페소에 생수 두 병을 사고 바로 앞 쪽에 있는 작은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그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는 20평 남짓한 박물관이었는데 무엇보다 유골을 발견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손을 뒤로 묶인 채 생매장 당한 듯한 희생자들, 아마 그들이 섬기는 자의 장례식 때 함께 매장되었나보다. 평생 노예로 일하고 이렇게 생명을 빼앗긴 기구한 사람들, 말도 안 되는 신분을 나누어 마음대로 인권을 유린한 인류 역사의 서글픈 한 모습이다.
처음 방문한 곳은 남쪽에 위치한 성(Ciudadela)이었다. 피라미드는 없었지만 대규모로 지은 요새 동쪽 끝으로 절(Templo de Quetzalcoatl)를 만들어놓은 곳이다. 높지 않는 절의 계단 양끝과 각 층에는 각종 숭배신들로 장식해두었다. 비디오에서 본 기하학적 모양을 한 비의 신도 눈에 띄었다. 공사 중이어서 접근은 불가능해 바로 앞 요새 꼭대기에서 눈으로만 감상을 했다.
넓은 요새를 가로질러 사람들이 산 부락지를 둘러본 후 달의 피라미드와 해의 피라미드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계속 한다. 조금 걷다 보니 지도에서 본 샌후안강(Rio San Juan)이 조그만 골이 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다리 위에는 마찬가지로 마스크, 피리등의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이 두 어명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리를 지나자마자 왼쪽, 오른쪽으로 두 부락지가 나왔다. 먼저 작은 오른쪽 부락지를 확인한 후 왼쪽으로 난 골목길로 걸어들어갔다. 제법 규모가 큰 Conjunto Noroeste del Rio San Juan과 Edificios Superpuestos였다.
그 옛날에 이 곳에 사는 것은 과연 어땠을까? 지나가는 관광객으로 보기엔 정감있는 돌담집들이지만 부산하게 사람들로 북적대었을 이 곳은 많이 불편했겠지. Conjunto Noroeste del Rio San Juan를 지나 계속 북쪽으로 향하면서 받침대 콤플렉스인 Edificlos Superpuestos(Superimposed)에 도착한다.
처음으로 테오티와칸의 유적지 안으로 들어가본다. 미로같은 곳을 한참을 돌아가니 정말 깊게도 파 놓은 우물이 있다. 지름은 1m도 안 될 것처럼 작아보였는데 무척 깊게 파 놓았다. 이 곳에 빠진 모습을 상상하자 그 갇힌 어둠의 공간이 느껴서 갑자기 오싹해졌다.
이 콤플렉스에서는 멀리서 해의 피라미드가 보였다. 장장 4km라고 하는 죽은 자의 거리(Calzada del Los Muertos), 그 중간 위치에 있는 해의 피라미드가 저렇게 보이긴 하지만 거기까지 갈려면 아직 한참 걸어가야겠지. 아직 지치지 않은지라 거리 양쪽의 유적지를 교대로 확인해가며 북쪽으로 전진했다. 재미있게 이 돌담길, 저 돌담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바로 앞에 커다란 선인장 나무가 보인다. 몇 해전 피닉스의 선인장 공원에 가서도 못 본 선인장 나무이다.
문양이 특이한 유적지의 사진을 계속 찍으며 해의 피라미드로 향한다.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놀랍게도 70% 정도는 여기 멕시코인들로 보였다. 아마 지금이 비수기가 맞기는 맞나보다.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상대적으로 적었을 뿐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불어나고 있었다.
이 넒은 유적지, 단 둘이서만 걷고 싶은 욕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달리 보면, 그 시대 번성했을 당시의 이 도시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남편의 말에 공감도 생긴다. 이렇게 사람들로 시끌법적했었을 것이다.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말을 하고 다른 관심을 가지고 살았을 테지만.
걷다보니 해의 피라미드가 옆으로 나온다. 테오티와칸 제 2문의 입구였기 때문에 상인들과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우리는 우선 달의 피라미드를 오르고 점심을 먹은 후 해의 피라미드로 오르기로 했다. 혹시 그 때가 되면 한차례 사람들이 빠지고 조금 한산해지지 않을까라는 기대와 함께.
다시 20여분을 걸어 달의 피라미드 바로 앞, 달의 광장(Plaza de la Luna)에 도착했다.
피라미드를 향해 보는 왼쪽(피라미드 서남쪽)에 몇 개의 건물들이 들어서있다. Palacio de Quetzalpapalotl, Palacio de los Jaguares, Templo de los Caracoles Emplumados라는 이름의 작은 궁전이나 절들이었다. 아무리 봐도 추상화로 보이는 몇 개의 벽화가 보인다. 길게는 1900년전에, 짧게 잡아도 1400년전에 그려졌을 벽화들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어떤 의로로 저 그림을 그리고, 저 기둥을 세웠을까. 지붕에는 왜 저런 모양의 돌을 올려놓았을까. 혼자만의 답없는 상상을 해 본다
이제 달의 피라미드를 오른다. 이제까지 걷기만 한 여행이라 많지 않는 계단도 야속해 보인다. 하지만 빼놓지 않고 올라가리라. 단마다 쉬면서 올라가 드디어 달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다다랐다. 속이 확 트인 느낌이다.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도, 이리 저리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도 아랑곳없이 마음은 왠지 넓어지는 느낌이다.
★ 멕시코여행 (멕시코시티) 3-2 - 해의 피라미드, 타일의 집, 산프란시스코사원 (2006년 12월)
20여분쯤 사방을 바라보고 그 시절의 영광을 느껴보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내려온다. 점심은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에서 작가가 추천한 테치난코(Restaurant Techinanco)식당에 서 먹기로 한다. 제 1~2문과 동쪽 입구인 5문 근처에도 식당이 있다고는 하지만 가정식 스타일의 맛난 음식이라기에 먼 거리이지만 가기로 한다. 책에 안내된 도로 (Ring Road opposite de la Luna)만으로는 못 찾을까 걱정을 했는데 마침 남편이 달의 피라미드에서 식당의 간판을 보았다. 무엇이든 잘 살피는 남편이 고마웠다.
우선 제 3문을 통과해서 밖으로 나와야한다. (다시 들어갈 때는 입장표가 필요하므로 잘 챙겨두어야한다.) 한 15분쯤 걸어가야하는데 우리처럼 걸어가는 사람이 없어 약간 이상하기도 했고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대낮이고 차들도 많이 다니고 바로 유적지 근처이니 강도를 만날 일이야 좀처럼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자갈로 포장된 도로에는 차가 조금 느린 속도로 달린다. 덕분에 양 옆으로 난 산책로로 가지 않고 도로 가장자리로 걷는다. 햇볕을 피하기 위해서다.
10분 넘게 걸어갈을까. 삼거리가 나온다. 링도로 (Road Ring)을 따라 내려가는 것이라면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면 된다. 그 식당만 있는 줄 알았더니 가는 길에 다른 식당도 여럿이다. 선인장으로 울타리를 친 집이 있어 사진을 찍어두고 우리가 찾았던 테치난코(Restaurant Techinanco)로 들어간다. 사람들로 북적댈 줄 알았더니 왠 걸, 식당이 텅 비었다. 하긴, 오늘 길에 우리처럼 걸어오는 사람을 아무도 못 보았으니.
주방으로 향하는 한 벽에는 온통 마스크로 덮여져 있었다. 이들이 내 식사를 가만히 훔쳐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햇볕이 잘 들어와 따로 불을 켜지 않는 실내는 나름대로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오래된 의자에 촌스런 탁자보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 곧 나이 드신 할머니가 나오시더니 웃으며 아무데나 앉으라는 몸동작을 보여주신다.
남편은 책의 추천따라 Moles (Chili-based sauces) 소스가 가미된 (치킨?) 엔칠라다를 시키고 나는 튀긴 타코와 수프를 시켰다. 실은 나와보니 타코가 튀겨져있었는데 타코앞에 적혀진 'fr'로 시작하는 단어의 뜻을 몰랐던 것이다. 남편의 몰레 소스 엔칠라다는 정말 기가 막힌 맛이었다. (나) 몰래 시킨 것이 맛까지 기막혔다고 해야할까. 이제까지 먹어본 멕시코 음식 중에 단연 최고였다. 곁들여 나온 아보카도 살사, 수프도 정말 괜찮았다.
그렇게 배가 많이 고픈 것도 아니었으니 확실히 시장기로 점수를 매긴 것은 아니다. 이 식당의 음식 맛이 아주 좋은 것이었다. 역시 추천할 만하다. 식사하는 중에 두 무리의 손님이 더 왔다. 다행이다. 이런 맛 좋은 식당은 장사가 잘 되어야한다.
다시 10여분을 걸어 테오티와칸으로 돌아온다. 이제 해의 피라미드로 갈 시간이다. 우리의 희망과는 반대로 사람들은 더 많아졌다.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이 꽉 찬 곳도 있었다. 게다가 바람이 몹시 불어 모자에 대해 각별한 신경을 써야했다. 위험하기도 할 뿐더러 사람이 많아 모자를 쫓아갈 여유도 없을 것이다.
아래 모서리의 길이는 각 222m이고 전체 높이는 70m라는 해의 피라미드는 원래은 붉은 색으로 칠해져있었다고 한다. 해가 질 무렵에는 노을 빛을 받아 장관이었을 것 같다. 두 번째 단에 올라서는 계단의 혼잡을 피할 겸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AD100년 전후에 수백만톤의 돌로, 금속 도구나 바퀴도 없이 지어졌다는 이 피라미드. 자갈길과 돌담길을 한 순간씩 음미하면서 아무도 없는 둘째 단을 걸어보았다.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그래도 정상에서 내려다본 광경은 멋졌다. 하지만달의 피라미드와 비교를 한다면 전망 자체는 그보다 못 하다. 달의 피라미드는 해의 피라미드보다는 낮지만 사자의 거리를 정면으로 내려다보면서 달의 광장에 늘어선 다른 신전들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규모에서 해의 피라미드가 장엄했지만 왠지 전경이 훌륭한 달의 피라미드가 더 정이 간다.
피곤했는지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내내 졸았다. 센트로 히스토리코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전철을 탄다. 어느 전철역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스페인 정복자들이 무너뜨린, 지금의 소깔로의 고대 신전들을 재현해놓았다.
이제 저녁을 먹을 차례. 역시 호텔 근처에 눈여겨 보아두었던 카레 라 블랑카(Cafe La Blanca)로 가기로 한다. 론리 플래닛과 문 핸드북 두 곳에 모두 추천이 된 곳이다.
야채를 많이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또 야채수프를 시키고 남편과 치즈 안칠라다를 나눠먹기로 했다. 남편은 거기에칠레 레예노(Chile Relleno)를 시켜먹는다. 이번 여행에서 내게 두 번째로 맞는 음식이었다. 우리 나라의 고추 튀김같은데 고추가 상당히 크고 매콤한 소스가 얹혀져 있어 내 입맛에 아주 잘 맞았다
저녁을 먹고 센트로 히스토리코를 조금 더 돌아다닌다. 소깔로에서 서쪽으로 대여섯 구간을 지나 타일의 집(La Casa de los Azulejos)을 발견한다. 산본 백화점과 산본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는 멋진 건물이었다. 이 곳만큼 분위기를 잘 살린 산본 레스토랑은 못 본 것 같다.
이 건물 전체는 알 수 없는 기묘한 벽화와 천정의 타일 장식와 적절한 조명, 화려한 멕시코 정식 의상을 입은 레스토랑 종업원들등으로 아주 흥미로웠다. 물론 건물의 특징인 외관의 타일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바로 맞은 편의이글레시아 데 산 프란시스코(Iglesia de San Fransisco)의 성당은 밤에도 너무 예뻤다.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운명은 외관만큼 운이 닿질 앉는가보다. 자꾸 가라앉고 있다고 한다. 이전부터 가라앉아서 벌써 세번째 지은 건물인데도. 이마저 가라앉는 그 운명을 피할 수 없나보다. 성당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리에서 몇 계단 아래로 내려가야했다. 방금 무슨 행사가 있었던 것인지 마당에는 장미 꽃잎이 산발 흩어져 있고 젊은이들이 계단에 앉아 만연 미소를 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