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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슷비슷한 나날. 하긴 배 탈 때 사무실 근무때도 그랬고 퇴직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난 60여년 세월이 늘 이랬다. 그래도 내일은 좀 다르겠지, 다르겠지 하며 여기까지 왔다. 이즈음은 이곳저곳 아픈데가 많아지고, 소소한 일에도 깜짝 놀란다. 왜 이렇게 약해진거지? 뜨겁던 열정 대체 어데로 사라졌나. 부모, 자식, 친척 이런저런 잔걱정만 늘어간다. 산다는게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골똟이 생각에 잠기곤 한다. 무거운 것 내려놓고 편히 살자 하면서도 막상 생각뿐이다. 어쩌랴, 원래 인생이 이런 것을.....오늘은 오케스트라 연습일, 비록 잠시지만 그나마 트럼펫 연주할때라야 무거움을 내려놓을 수 있다. 저녁식사 일찍 마치고 연습실로 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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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연습은 연휴 기간이라 1시간 먼저 시작했다. 드보르작 <교향곡 제 9번 E단조, op 95 '신세계로부터'> 3악장, 2악장 순으로 연습에 들어갔다. 3악장은 전 악장 중 가장 늦게 시작한셈. 나는 평소 유명 오케스트라의 CD음반을 틀어놓고 연습을 하는데 그중 3악장이 가장 어려웠다. 스케르죠 3박자 리듬이지만 워낙 빠르게 진행되니 자칫 박자를 놓치거나 리듬이 뒤죽박죽이다. 하지만 막상 실전 연습에 들어가니 괜한 기우였다. 느린 템포로 연주하는데다 지휘자께서 육성으로 3박자 리듬을 직접 불러가며 지휘를 하시니 연주하기가 쉽다. 마지막은 정상 템포로 했는데도 전혀 문제가 안 된다. 오히려 다른 악장에 비해 쉽게 느껴질정도. 트럼펫의 경우 쉴새없이 연주해야하는 4악장이 가장 어렵고, 다음으로 1악장, 2악장, 3악장 순이다.
3악장은 경쾌한 빠른 악장이라 재미도 재미지만 도중 급격한 템포 변화가 있어 지루하지 않다. 2악장 잉글리쉬 호른의 솔로 연주야 워낙 친근하고 유명하지만 3악장의 오보, 플륫, 클라리넷 등 목관파트가 번갈아가며 연주하는 서정적인 선율도 너무 아름답다. 특히 1악장의 플륫 솔로 부분, 4악장 경우 바로 앞자리 클라리넷 샘의 솔로연주를 들을때는 마치 숲속 오솔길을 거닐듯 아늑한 기분에 잠긴다. 작은 행복! 그동안 악보보기에 바빠 몰랐는데 점점 여유가 생긴다. 이제야 비로소 다른 파트의 연주가 귀에 들어오고 마치 객석에 앉아 감상하는 기분까지 든다.
연습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4악장은 물론이고, 2악장 도입부 다섯 마디, 그리고 1악장 피날레 부분 등 트럼펫 주요 선율을 자신있게 연주 할 수 있도록 반복 연습할것. 사실 '신세계'는 다른 곡에 비해 트럼펫 연주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재미도 있고, 덩달아 의욕도 생긴다. 이럴수록 다른 파트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만 나로서는 연주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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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휴식을 마치고 오랫만에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0번 D단조, K466> 1악장 연습을 하였다. 피아노를 연주하시는 선생님이 마침 나오셨다. 역시 모차르트 곡은 음반 감상때나 직접 연주할때나 편안하고,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지만 연주는 까다롭다. 한 음 한 음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게 텅잉해야하고, 정확한 박자, 부드럽고 섬세하게 연주해야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곡은 베토벤 연주와는 전혀 다르다. 우선 베토벤 곡에 자주 나오는 스포르잔도나 포르테, 크레센도 디크레센도는 모차르트 곡에 거의 없다. 기껏해야 포르테 정도?
특히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는 아마추어들에게 흔히 보이는 기본기의 부족을 절감한다. 가령 어떤 음, 혹은 선율을 연주한다고 할때, 아무 생각없이 한다면 그 자체는 가능하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더욱 투명하고 섬세하고, 정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흔히 하는 말로 마구 내지르다간 음악이 구질구질해지고 여지없이 뽀록 난다. 이런 비유가 어떨까. 가령 맞선볼때 눈이 높은 상대는 온갖 것을 따지다 결국 사소한 이유로 툇자놓기 일수다.
즉 유난스럽고 까다로운 상대, 바로 모차르트 연주가 그렇다. 첫 음 낼때 호흡에 각별히 신경쓰지 않으면 텅잉이 깨끗하지 않다. 이게 끝이 아니다. 텅잉이 잘 되었다고 방심하다간 여지없이 실수다. 아랫배 긴장을 그대로 유지한채 호흡을 조심조심 내쉬어야한다. 하지만 경쾌하고 밝아야한다는것도 유념할것. 즐겁게, 통통 튀듯 가볍게, 그러면서도 강하고 부드럽게....어떤가. 이쯤되면 얼마나 까다로운지.....가볍게 봤다가 큰 코 다치는게 모차르트 연주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오늘 연습은 나로서 특별했다. 연습하는 내내 편안한 기분이 드는건 앞에서 말한것처럼 어느정도 익숙한 탓도 있지만 곡 분위기 때문이다. 연주를 한다는게, 특히 오케스트라 활동을 한다는게 이렇게 뿌듯할 수 있을까. 60중반 나이에 이만한 즐거움이 또 있을까. 연습하는 동안 새삼 단원 한 분 한 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 이런 분들과 함께 연주 할 수 있다니 내가 얼마나 큰 복을 받은건가, 정말 단원 모두에게 감사할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