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군 일월면 주곡2리 감복동 이야기
1. 甘伏洞의 위치
주곡2리 감복동은 흥림산 동쪽산록에 위치한 마을로 동북쪽에 주곡1리 주실마을, 남쪽에 영양읍 황룡기, 서쪽에 청기면 정족2리 나방마을, 북쪽에 청기면 산운리 새뉘(새눈)마을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주곡2리 감복동 입구에 지방도 918번 재일로가 있으며, 도로 동쪽옆으로 장군천 이 흐르고 있고, 마을내에는 흥림산의 서쪽에서 발원하여 동쪽장군천에 합류하는 마을하천은 전형적으로 서원동류西源東流 인 감복동천甘伏洞川이 있다.
문화유산 자료로는 1700년 유학자 항재 이숭일선생이 유학을 가르치던 흥림정사가 있었다. 이 곳에는 옛날에 사용했던 빗살무늬기와 조각과 토기가 옛 터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현재는 '대명사'라는 암자가 있다.
2. 감복동(甘伏洞/甘福洞) 유래
흥림산 동쪽에 있는 마을로 물을 다스리는 물신(水神)과 땅을 다스리는 땅신(土神)이 있는 마을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1600년 무렵부터 감복동(甘伏洞)이 였으나, 1914년 주실(注室)과 법곡동(法谷洞)에 통합되어 주곡동이 된 후에 감부골, 감북골, 감북곡(甘北谷)이라 부르고 있다.
감천, 감내,감복의 '감'은 물신이요 땅신을 상징한다.
최남선의 「신자전」을 보면 신을 '검' 이라고 하였으니,여기 감은 검과 같은 뜻으로서 거북신앙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거북은 옛말로 거붑이요. 다시 이는 '검'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양산 민요 '왕거미 노래'의 거미-검-거북)
모든 삶의 가능성은 물과 땅에서 말미암는 것이니 땅신을 중심으로 함은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우리말 감내를 이에 가까운 한자로 대응을 두어 감천이라고 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감복동甘伏洞은 가마실의 사마-감과 같은 계열의 마을 이름으로 종교적인 뜻으로라면 물신과 땅신의 동네라는 말이 된다.
*감복동(甘伏洞)의 주산(主山) 흥림산(興林山, △766.7m)
최근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었다. 『여지도서』(영양)에 "흥림산은 현 서쪽 10리에 있고, 예전에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산을 미쳐 다 내려오기도 전에 비가 올 정도로 영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일어난다는 뜻의 '흥(興)'과 장마를 뜻하는 '림(霖)'으로 산 명칭을 부르게 된 배경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흥림산 부근에서 통일신라시대 절터와 기와조각이 발견되었는데, 기와조각에 흥림사(興林寺)로 표기되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산 이름의 한자 표기도 예전에는 '흥림산(興林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옛 군현지도와 전국지도 대부분에서 흥림산이 표시되어 있다. 그만큼 영양에서 중요시되었던 산으로 여겨진다.
3. 흥림산(興霖山) 기(記)
흥림산은 일명 흑림산( 767m) 또는 흑림산(黑霖山) 이라 이르기도 한다.
일월산 중간지맥이 일월면과 청기면 사이를 뻗어 내려온 거산이다.
예로부터 이 산은 산봉이 높고 잡목이 울창하여 바라볼 때 항상 검푸른 빛을 이루었으므로 흑림산이라 하였다
유래는 오래다. 이 산의 모습은 변하는 모양이 변화무상한데 오랫동안 가뭄이 계속하여 비를 갈망할 때는 구름이 산허리를 돌아서 터져 오르면 하늘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단비가 내리므로 흥림산(興霖山)이라 이르게 되었다 한다.
가뭄이 심할 때 산정에 검은 구름이 단비를 내리게 한다 하여 이것이 예로부터 이 산의 영험이라는 설이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산하의 사람들이 예로부터 旱期가 있든지 雨期가 있을 때에 이 산을 바라보았다 한다.
옛날에는 한발이 심하면 관가에서 처음에 사직단에 기우하고 그 다음에 이 산에서 기우하고 마지막에 일월산에 기우하는 것이 관례가 된 영험있는 산이다.
이 산의 서쪽 나방촌(羅方村)에는 옛날에 홍림사(興霖寺)가 있었다.
내가 작년(1160) 겨울에 조군을 따라 이웃에 집터를 잡았다. 이윽고 산과 익숙하게 되고 또 날마다 조군의 이야기를 들으니, 흥림산이 영혐함이 있다는 것을 더욱 믿게 되었다. 다음 해에 마침 큰 가뭄이 들어 무지개를 간절히 바랐다.
나는 산의 이름을 생각했기 때문에 구름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산의 모습이 타들어갈 뿐, 비가 올 기색은 막막했다. 그래서 내가 조군을 힐난하길, "그대가 '홍림'으로 이 산을 이름 붙인 것은 아름답다고 말할 만합니다. 그런데 한 해 동안 큰비가 내리느냐 가뭄이 드느냐에 따라 한때의 풍흥이 관계되며 한때의 풍흥은 실로 백성의 행불행에 관련됩니다. 이런 점으로써 말한다면, 그 가뭄과 큰비가 관계되는 것이 매우 중대하여 일개의 산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군자가 사물을 명할 때, 사실로써 이름 분이고 공허한 것으로 하지 않따니다.
지금 체험해 보니,'흥림'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산을 거짓되게 말한 것에 가깝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조군이 무안해하며 아무런 답변을 하지 못했다. 내가 다시 해명하길, "상심하지 마십시오. 예로부터 산천의 명칭 가운데 혹 그 주인의 현명함과 그렇지 못함에 따라 영화와 욕됨이 가해진 경우가 있으니, 예를 들자면 우계. 한림석*• 승지암* 등과 같은 호칭입니다. 이런 종류는 매우 많습니다. 혹 다른 날 이 산 아래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이 흥기할 수 있어서 상가의 임우가 될 수 있을는지요. 이것은 아직알 수 없는 일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군이 흔연히 웃으며 말하길, "홀륭합니다. 원컨대 그대는 이것을 기록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항재이숭일선생의 - 興霖山記 흥림산기> <국역 항재선생문집 P130~131 참조>
항재이숭일선생의 흥림산 遊山記유산기
- 興霖山記흥림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