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自笑 (스스로를 웃다) ♣
- 다산 정약용 -
1
취한 듯이 깬 듯이 반평생 보내느라
이 몸과 이름에 반대자들만 가득해졌네.
진흙 가득찬 세상에서 방향 늦게 돌렸고
하늘 가득 그물인데 경솔히 날개 폈지.
齊山에 지는 해를 누기 동여매 멈출 건가
맹렬한 바람에 楚水를 제멋대로 갈 수 있나.
형제라고 운명이 반드시 다 같지 않겠지만
세상 물정 어둡고 어리석은 선비는 자신임을 웃노라네.
2
간소한 옷차림도 바로 너를 속인 것이고
10년을 쏘다녔지만 다만 지쳐 무너졌을 뿐.
지혜야 만물에 비쳤어도 어리석게 대책도 없었고
이름이야 온 사람에 울렸으나 훼방만이 뒤따랐네.
미인은 대체로 박명하다는 기록 안 보았던가
눈 흘겨 보는 자가 친지에 있다는 것을.
뱀비늘과 매미날개에게 끝내 무얼 기대하리
우습구나, 나의 생애 마침내 어리석었지.
3
의로운 길과 어질게 사는 것 희미하여 헷갈리고
그 길 찾으려고 약관 시적 처음엔 방황했다오.
망녕되이 세상 일 모두 다 알겠다고
나라 안 책이란 책은 자세히 모두 보려고 했다오.
태평 시대에 하필이면 활에 다친 새기 되어
남은 목숨 이제 그물에 걸린 고기 신세로구려.
천년 뒤라도 누가 있어 나를 알아 줄는지
마음 잘못 세운 게 아니라 재주 얕기 때문이라네.
4
뜬세상에 사귈 사람 몇이나 될거나
조정 사람 잘못 알고 진정으로 대했다오.
국화 그림자 아래서는 시로써 이름나고
조정 문단 속에선 잔치 모임 잦았다오.
천리마 꼬리에 붙은 파리는 좋게 보고
개미가 비늘 기어올라도 용은 그냥 놔둔다오.
세상의 온갖 꼴들엔 홀로 웃음지으며
東王公의 공중에 떠오른 티끌 속에 내버려 두자꾸나.
5
강직함 깊이 깨달으면 세상 살아가기 어려워
광대들이 떼로 모여 유학자들 비웃어대지.
뜨거운 속마음 전혀 없이 잗다란 봉록이나 다투고
높은 벼슬아치 섬기면서 얼굴빛은 아닌보살이라네.
붉은 살구나무 숲에선 술도 마시고
이끼 낀 집에 앉아 책을 들어 보기도 했네만
배를 삼킬 큰 고기도 큰바다 못 만나서
낚시를 덥석 물어 낚싯대에 매달리네.
6
金華거나 玉署거나 티끌 세상 인연 풀어버리고
소내와 鐘山(운길산) 노니런 흥취 아득하네.
아내 불러 뽕나무밭 더 넓히고
아이들 기다려 채소밭 가꾸게 했네.
하늘이 점지한 복록 인색하기 그지없어도
땅이 만든 벽촌에는 풍년이 들기도 한다네.
세상의 어떤 일이 오늘의 술마심만 같으랴
내일 일 생각함이야 미친 짓이지.
7
괴로움에 지쳐 20년을 방황했더니
꿈속에 얻은 것조차 깨고 나면 사라져.
사방에 퍼진 뜬이름 모두 지나간 자취
벼슬길 떨어지자 남은 것은 빠진 머리.
예날엔 顧賀를 양자강 좌측의 희망이라 여겼는데
지금은 蔡陵이 농西의 수치스러움 되었네.
운명이 기구하단 생각일랑 당장은 하지 말자
마음 따라 구름 가듯 또 물이 흐르듯 살아가리.
8
불행히 궁액을 당해도 보내려고만 말라
진정으로 그 궁액 이겨내야만 영웅 호걸이지.
재가 된 韓安國을 누가 돌아보랴만
강 건널 때는 언제나 呂馬童을 만난다네.
총애 받건 욕을 먹건 莊周의 春夢이요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杜甫의 취중 시에 있지.
어젯밤 바다 위에 세차게 내린 비로
잡다한 나무숲에 온갖 꽃들 붉게 폈겠다.
9
루손섬 . 자바섬의 담배가 동으로 동으로
바람 타고 불려오기 쑥대 연기 날리는 듯.
늘그막의 湯木邑이 장기현이 되었는지
상전벽해 조금 겪은 머리 짧은 영감이네.
물고기 굴조개랑 상에 가득 박한 녹봉 아닌가 봐
대와 솔로 정원 두르고 맑은 바람 부는구나.
천권 책 읽었다 한들 어디에 쓸 것인가
구덩이에 빠져서도 탈없이 지내니 바로 너의 공이로다.
10
나불대는 주둥이 쇠도 녹인다는 말 할머니도 아는데
떼지은 주먹 돌팔매에 놀라지 말자꾸나.
사람들이 겁나서지 나야 밉지 않을 텐데.
하늘의 뜻이 참으로 그렇다면 누구를 한탄하랴.
북극에 뜬 별들은 어제와 똑같은데
서강의 물결은 어느 때나 그치려나.
막다른 길목에서 이 마음 좁아질가 겁나서
바다쪽 사립문에서 우두커니 서성거리네.
※ 다산이 장기 귀양지에서 자신이 살아온 모습을
뒤돌아보며 고향을 그리워한 시이다 ※
첫댓글 그가 쓴 목민심서는 진정한 통치 메뉴얼이죠.
그 목민심서를 베트남의 호치민이 머리맡에 두고 읽었답니다.
그 호치민은 영원한 호 할아버지로 존경의 대상으로 후대의 기억에 남아있답니다.
실학을 집대성한 그가 호남의 어느 곳에서 자신을 웃으며 이 시를 썼답니다.
그가 비록 현실세계에선 소외됬어도 그가 남긴 저서는 참으로 우리민족에게 많은 지평과 지향을 제공합니다.
좋은글을 귀한시를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다산선생같은분이 이시대에 있다면 이어둔세상도 밝아지련만 ...호치만같은 지도자가 우리나라에 있다면 우리정치도 많이 바뀌였을 겁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