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참소라
저는 완도 출신인데
지금은 마천동 빌라에 살아요
비가 오면
입술 훔치다 달아난 남정네같이
몸 부딪던 파도를 기억해요
초록의 구혼
그녀가 내 가슴에 앉아
보라의 계절을 펼쳤다
방문객
베란다에 다리 걸고 울던 날
장맛비가 와인 잔을 걸어놓고 가셨네
견디면 우아한 날이 온다고
이것이 돌고 도는 물의 약속이라고
떠다니는 눈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고 있는 눈동자들
세상이 얼마나 많은 눈을 숨기고 사는지
양파 좀 썰어본 사람이라도 모를 거야
어떤 징조
비단구렁이 아래
기어가는
도시의 저녁
오늘 밤은 또 어떤 전설이 펼쳐질까?
꽃잠
돌 속에서 백 년을 기다렸어요
기다림은 가장 긴밀한 내통
나는 이제야 꽃잠*에 들어요
*꽃잠 : 신랑신부의 첫 잠
표절
아뿔싸!
그*가 떠나셨구나
이제는 너희 차례
자, 굴러떨어질 준비가 되었지?
* 그: 물방울의 화가 김창열 (1929.12.24~2021.1.5)
* 사진은 황주은의 그림 과정
공기 원근법
유리창 캔버스 위로
아침은 다가오고
손가락 끝에서 화가의 빛이 깨어나고
빗방울 옵스큐라
난간에 설치된 카메라
시간을 거꾸로 지켜보고 있다
우리의 찰나가
물방울에 기록된다
에덴의 서쪽
껍질을 벗고
타락한 천사가 되리
당신의 탐스러운 무화과 두 봉우리를 감싸고
애욕에 눈뜬 뱀과 같이
카페 게시글
디카詩
황주은 시인의 디카시
청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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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6
22.03.15 20:39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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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황주은 / 2013년 시사사 등단. 시집 『불의 씨 』
시와 반시 디카시 신인상 당선작
우와~
아름다운 디카시편들 입니다
작품들 넘 좋네요
강렬한 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