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11. 주일 2부
시91:1-16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라
1절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시인은 자신을 ‘지존자의 은밀한 곳과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1). 여기서 ‘지존자의 은밀한 곳’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피난처와 요새를(2), ‘전능자의 그늘’은 하나님의 날개 아래를 의미합니다(4).
시인은 이 세상을 세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냥꾼의 올무 안’과 ‘심한 전염병 속’과(3) ‘치열한 전쟁터 한가운데’입니다(5-6). 이 세 가지 장소들은 모두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존자의 은밀한 곳과 전능자의 그늘안으로 들어와 거하는 자는 이 모든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하나님의 동역자로 쓰임받습니다(7, 9-11).
1.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1)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과 권세를 받아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며 자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실 미션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나라의 시간표안에서 주님을 따르는 동역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14-15).
2) 주예수님은 지금도 세상것들에 속아 거기에 집착하고 있는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30)
3)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으로서 그를 믿고 의지하는 인생들에게 그늘이 되어 주십니다. 그늘이란 보호하시고 감싸시고 인도하시고 동행하시고 울타리 되어 주시는 구체적인 주님의 은총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광야 시대 40년 동안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4) 특별히 시편 91편에서 눈에 띄는 표현은 “그늘”이란 표현입니다. 나보다 힘이 있고 나보다 능력 있고 나보다 권세 있는 그 누군가가 나의 그늘이 되어 주기만 해도 힘이 되고 의지가 됩니다. 하물며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고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가는 자라면 어찌 세상에서
다른 존재의 보호를 받으며 그 그늘에 거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2.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1)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의 그늘이 되어 주시는 전능자이신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실재 삶에서 믿고 의지하며 누리는 믿음의 사람들 되시기 바랍니다.
2)이런 믿음의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그늘을 항상 실제로 누리며 체험하고 전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면서도 나 자신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덤덤하고 냉랭하고 아무 체험도 없고 아무 실감도 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3)주님 재림하실 때 까지 세상은 마귀가 왕노릇하는 곳입니다. 전능하신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세상에서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적의 화살과 창과 칼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죽음의 위기에서 건지시되 완벽하게 보존하시고 막아 주시는 능력의 방패가 되시는 주님이십니다.
4) 하나님을 전능자로 모시고 따르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늘이 되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신32:11절의 말씀처럼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날개 위 아래에 얹어 보호하듯이 지켜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피난처 삼고 지존하신 전능자 하나님 아버지를 거처로 삼고 살아가기 원하는 성도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11절에 보면,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3. 주님을 자신의 피난처와 거처로 삼은 자에게 임하는 축복 (9-13절)
1)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그늘 아래 자유와 보호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는 순간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여 벗어버린 바로 그것, 즉 “자신을 덮을”것이 절실하게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9절과 같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이 바로 10절부터 나와 있습니다. 어떤 재앙도 내리지 않을 것이고, 그의 장막에는 어떤 재앙도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10).
2) 또 주님께서 천사들에게 명하셔서 우리가 주님따라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발이 돌부리에 부딪히지 않게 천사들이 두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11-12). 또한 우리는 사자와 독사를 짓밟고 다니며, 젊은 사자와 뱀을 짓이기고 다닐 것입니다(13).
3) 빌4:13절을 보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하셨습니다. 여기서 사실은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가 중요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자신의 피난처시라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9).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을 의지하는 사람, 무슨 일만 일어나면 다른 사람에게 가서 도움을 구하거나 돈을 의지하는 사람은 그러한 역사를 체험하지 못합니다. 오직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께만 피하는 자에게 이런 놀라운 일을 이뤄주시는 것입니다.
4) 그런데 12절은 특별히,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인용한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이 시험에 대해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의도대로 무조건 뛰어내리면 받아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의 의도적인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에서 온전히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결언: 이 믿음안에 있는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 (14-16절)
1)15절의 간구한다는 히브리어는 <이크라에니>라는 단어인데, 일시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계속적인 기도를 의미합니다. 이 말은 기도를 생활화 한 것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이미 생활화 한 사람입니다.
2) 그가 주님을 간절히 열망하며 주님의 이름을 알고 인정하기 때문입니다(14).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주님께로 피하며 주님만을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응답해주십니다. 그것도 아주 놀랍게 인도해주십니다. 그것이 오늘 시편 91편의 약속입니다.
3) 이것은 무조건 만사형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놀라운 축복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친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바로 자신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오늘 시편에 나와 있는 복을 받게 됩니다. 정말 놀라운 일들이 그 삶에 일어나게 됩니다.
이 능력의 주님, 사랑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삶 가운데에도 놀라운 일을 이뤄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