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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인간은 ‘기록’을 필요로 하였고, 그래서 ‘글’이 창조되었습니다. 물론 ‘말’이 먼저 쓰이기 시작했었죠. 아마 처음엔 단순히 인간끼리 보다 가까운 관계를 위해서 말과 글을 쓰기시작했겠지만 진작에 인간만의 문명을 위해서 그 것들은 중요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1’과 ‘0’만 으로 표현되는 디지틀(digital)이 이제 컴퓨터의 핵심 기술이 되면서 모바일폰(mobilephone) 등 현대 문명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망각’ 즉 ‘잊는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인간의 문명을 위해서 고질적인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만으로 안되어 ‘글’이 나오게 되었고 이제는 ‘디지틀’입니다. 디지틀 ‘메모리(memory)’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즉 거기에 한 번 기억시키면 결코 망각되거나 잊게 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 좋은 것 같지만, 실은 나쁜 것입니다. 특히 자연 속의 인간들에게... 얘를 들어 곁에서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 어느날 운명을 달리해야 했을 때 이제는 곁에 함께 있지도 않은 사람에 대한 과거를 잊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있을까요?
디지틀 문명 특히 거기에 근거하는 메모리는 어떤 면에서 좋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은 과히 혁명이라고도 볼 수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디지틀 메모리를 이용하여 자료를 남기고 또한 거의 누구나 그 것을 보며 정확하게 상기시킬 수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디지틀은 인간의 자연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석유 문명 덕분에 인간은 크레인 등 어마 어마하게 큰 힘을 낼 수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디지틀 문명의 컴퓨터나 인터넷의 힘으로 자연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조정할 수있다고 착각합니다만, 바로 인간 스스로의 자연성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바로 하나나 기껏 몇가지의 문제만 볼 줄 알 지 전체를 못보기 때문입니다. 신(神: god)을 창조하고 믿으면 될 줄 알지만 실제 신(자연)의 무한성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즈음 세계 테니스 경기인 ‘호주 오픈(Australia Open)’을 재미있게 보며 한편으로 많은 생각을 합니다. 드디어 스위스의 페더러(R. Federer)가 스코틀랜드의 머레이(A. Murray)에게 준결승 전에서 지고 떨어졌습니다. 이제 페더러의 은퇴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차고오는 젊은 선수들에게 언제인가는 정상의 자리를 물려주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순수한 인간만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 것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정상의 자리를 위해 적어도 지난 수십 년간을 오로지 운동만을 위하여 살아왔을 테니까요. 달리 이야기하면 각광받는 운동선수일수록 인간적인의 삶을 못살았을 테니까요.
한 가지 얘가 호주의 과거 수영선수 이언 쏘프(Ian Thorpe)입니다. 어릴때부터 전 세계의 수영 선수권을 휩쓸어서 한 때엔 놀라운 호주인이라고 유명했었습니다만, 어느덧 대중은 그를 잊게되고 그는 우울증에 걸려 자신의 삶을 가누질 못합니다. ‘돈’이 문제아닙니다. 한 때 수영으로 화려한 무대에 다시 서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기량이 넘치는 보다 젊은 선수들이 이미 세상엔 많이 있으니까요.
페더러도 앙드레 아가시(Andre Agassi)처럼 은퇴하여 그동안 번돈으로 후진양성에 기여하면 좋지않을까...
나는 잘 기억하는 편입니다. 어렸을 때 일어난 일들도 많이 기억하는 편이니까요. 그래도 디지틀의 메모리를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나도 살면서 많은 것을 잊어버리기를 즐겨 하니까요. 한 편으로는 디지틀의 정확함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나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즐깁니다. 그렇게 하나의 인간으로 살고있는 나에겐 아직 인위성이 많이 남아있는가 봅니다.
아무튼 잊지 않는다는 것은 부자연적입니다.
지금 인터넷 때문에 각광받고 있는 “강남 스타일”도 인터넷 때문에 언제인가는 잊혀지고 말것입니다. 그렇게 인터넷에서 소란스럽던 코니(Kony)가 몇달도 안되어 잊혀지고 말았듯이... 페이스북(Facebook)이나 트위터(Twitter)를 사회 망(social networks)이라고 합니다. 인터넷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졌지만 과연 인간이 그 망을 통하여 관계를 중요시하는 마음이 과연 얼마나 안정될까요? 오히려 그 사회 망때문에 잊을 것을 잊지 못하므로 우울증이 더욱 심해지지는 않을까요?
그렇게 ‘잊는다’는 것은 인간으로 부터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인간의 문명과 기록을 위해선 디지틀 메모리처럼 잊어버리지 말아야 하지만 인간 스스로는 망각 속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디지틀의 주체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과연 “어디에서 어디까지 잊을 수있을까”는 커다란 숙제로 남습니다. 개개인이 모두 다르니까요.
(2013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