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시대 때는 여덟명, 소돔땅에선 세명, 광야시대에는 두명,
초대교회 때는 그래도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체험한 자가 120명 정도가 있었지만
그 후로 중세시대 천년동안은 구원받은 자가 거의 전무하였다고 성경학자들은 말합니다.
노아시대와 인구 수가 비슷하지만 그때보다 훨씬 더 타락한 지금 시대는
과연 그때보다 얼마나 더 구원받을 수 있을지 정말 두려울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많은 잘못을 할지라도 끝까지 참으시고 용서해주시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 예수를 기꺼이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내어주셨으며
오직 사랑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돌보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을 떠나 심판대 앞에 서면 그때는 오직 공의와 엄위로 우리를 대하시며
이 땅에서 살아온 행위와 그 결과대로 공평하게 판결하시는 정말 두려운 분이십니다.
지금의 교회는 성도들이 믿기만 하면,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고백만 하면
모두가 구원받았다고 가르치는 교회가 많습니다.
더 나아가 구원파처럼 회개하고 거듭났으니 이미 구원은 확정된 것처럼
기정사실화하는 교회들도 적지 않습니다.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요? 마귀들은 교회는 다녀도 자기 편에 속한 사람은
크게 관심이 없으며 오직 거듭나서 하나님 편에 속한 사람들을 끝까지 공격합니다.
왜냐하면 넘어뜨려 자기들 나라로 끌고갈 승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2장12절에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린도전서 10장12절에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또 바울은 '남은 구원하고도 자기가 구원받지 못할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귀가 거듭난 자를 주요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이 땅에서 확정된 것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의
기나긴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구원의 조건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잘못 알고 있다면
우리의 영원에는 치명적일 수가 있습니다.
천국이나 지옥은 우리의 영이 영원히 거할 곳이기에 잘못된 구원론에 속아 방심하다가
언젠가 천국에 이르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너무 억울하여 영원히 이를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미혹되고 현혹되어 잘못된 길을 가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구원받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한 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들은 그동안 각자 자기 교회 지도자의 신학적 기반에서 주장하는 구원론을
무조건 따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제라도 냉철하게 판단하여 조금이라도 성경에서 빗나가는 것이 있었다면
무조건 믿고 따르는 우를 범하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온 아담의 후손으로서 죄악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삼차원적인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본성이 악한 아비를 닮아 모두가 죄악 가운데 파묻혀 살아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고
모두가 멸망의 길을 속절없이 달려가는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아담은 범죄후 하나님과의 영적관계가 단절되어 육신으로 살아갔으며 그 후손인 우리들도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났으나 본질인 영은 소멸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는
단절된 채 죽어 있는 듯한 상태로 우리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저주 받은 바된 루시퍼의 졸개인 마귀들은 악한 영적 존재로
바깥 어두운 곳인 지옥을 담당하며 루시퍼의 명령을 따라 시공간을 초월하여
삼차원에 속한 이 땅에 파송된 존재입니다.
그들은 오직 우리 영혼(spirit)을 지옥으로 끌고가기 위한 것이 유일한 목적입니다.
이러한 마귀들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동시에 무지막지한 영적 파워를 가지고 있기에 우리들만의 힘으로 이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가느냐 지옥을 가느냐의 기준점은 우리들이 짓는 죄에 의해 결정됩니다.
즉 죄 가운데 거하여 살면 마귀의 편이 되며 죄를 물리치고 이기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공격과 합법적인 통로가 되지 않으려면 세상 죄를 이기는 삶을 살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 죄를 이기며 늘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정말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육신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마음을 두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 모두가 하나님이 보실 때는 죄가 됩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 육신이 본능적으로 원하는 것에 익숙하여
모두가 이러한 육신의 정욕에 끌려갑니다.
또 눈에 보이는 세상 모두가 매일같이 우리의 욕심을 자극하는데
우리는 이러한 안목의 정욕에서도 헤어나오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 보다도 내가 더 중심이 되어 자아를 실현하는데 집중하려고 했으며
자만과 교만 아집과 독선으로 일관하였으며, 명예와 권세와 세상의 이목에 더
치중하였습니다.
이러한 남보다 높아지려는 자존감 등등이 우리의 중심이 되었으며
이생의 자랑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은 이러한 굴레를 벗어나기는
정말 불가능해 보입니다. 결국은 내 힘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기에
모두가 죄에서 해방될 수도 없고 하나님께 더 한층 다가가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에서는 마귀의 공격과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에베소서 6장11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내 힘으로는 전신갑주를 입는 무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이 나를 장악하여 이끌어가야 가능합니다.
나 자신이 온전히 십자가에 죽지 않으면 성령이 나를 감싸고 이끌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악된 모든 것을 회개하고 거듭나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에 완전히 붙잡혀 충만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기에
절대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모두가 근본인 우리의 영(spirit)에서 시작되어
몸을 통해 머리에서 사고하고 판단하여 결정하게 됩니다.
천국에 있는 백성들은 이 땅의 육신이 아닌, 변화된 영적인 신령한 몸을 입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기에, 절대 죄를 짓지도 않으며
마귀의 공격이나 유혹도 없이 영원히 살게 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다는 것은 천국에서 영적인 신령한 몸을 입은
백성들과 유사하다고 비유해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러한 신령한 몸을 이 땅에서 성령의 역사로 입는다고 가정을 해본다면,
죄악된 우리의 육신이 죄와 무관하고 마귀의 공격이 불가능한 몸으로 변화되었기에,
정말 세상을 이기며 죄에서 벗어나 날마다 승리하는 저희들이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오직 기도하며 천국백성들의 신령한 몸과 같이 정결하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여 세상을 이기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자녀가 되어 천국에 합당한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며 주님 안에 거하며 날마다 성령충만한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구원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오늘도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