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 07. 13
놀라운 두개골이다. 내 생각에 이보다 더 완벽한 데니소바인의 두개골은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 같다.
- 장-자크 후블린 막스플랑스 진화인류학연구소 고인류학자
▲ 1933년 중국의 한 노동자가 하얼빈 쑹화강 철교 부설 공사 현장에서 발견한 인류의 두개골이 88년 만에 빛을 봤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현생인류와 가까운 새로운 종인 호모 롱기라고 주장했기만 몇몇 고인류학자들은 데니소바인일 것이라고 반박했다. / 시준 니(Xijun Ni) 제공
한반도에 언제부터 인류가 살았을까. 정답을 결코 알 수 없는 질문이지만 고고학 유물을 놓고 보면 늦어도 7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발견된 충북 단양 금굴 유적지로 사람 뼈는 없었지만 아마도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을 것이다. 이밖에도 한반도에는 구석기 유적지가 여러 곳 있지만 현생인류가 아닌 고인류의 화석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얼굴 생김새를 알 수 있는 두개골 화석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불과 400㎞ 떨어진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30만~14만 년 전 살았던 인류의 거의 완벽한 두개골 화석(아쉽게도 아래턱은 없다)을 보고한 논문이 지난 6월 25일 공개됐다. 한 고인류학자의 말에 따르면 지난 50년 사이 보고된 두개골 화석 가운데 최고라고 한다.
중국 허베이지질대가 주도한 공동연구자들은 이 두개골의 주인공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인류라며 소재지인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용(龍)의 중국어 발음을 따서 ‘호모 롱기(Homo longi)’라는 학명을 붙였다. 그리고 호모 롱기가 네안데르탈인보다도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가깝다고 주장했다. 호모 롱기와 호모 사피엔스는 자매종이라는 것이다.
○ 놀라운 발견이 무명 학술지에 실린 이유
▲ 호모 롱기 두개골이 발견된 하얼빈은 한반도와 가깝다. 이 인류가 데니소바인이라면 데니소바인이 한반도에도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왼쪽 위는 데니소바인 화석이 발견된 데니소바 동굴이고 가운데 아래는 데니소바인으로 추정되는 아래턱이 발견된 티벳의 샤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추가 연구로 호모 롱기의 게놈이 해독돼 이게 사실로 입증된다면 21세기 고인류학 최대 성과라고 할 수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녔고 화석이 발견된 곳이 한반도 바로 옆임에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몇몇 국내 언론만 기사화했다. 아마도 논문이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학술지에 실렸기 때문일 것이다. 논문이 실린 학술지는 기사화 여부의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유명 학술지에 실려야 언론이 주목한다는 말이다.
하얼빈 두개골 화석 논문이 실린 학술지는 ‘혁신(The Innovation)’이다. 나 역시 처음 들어보는데 알고 보니 올해 창간된 학술지다. “우리가 이런 논문을 갖고 있는데...”라고 언질만 줘도 ‘네이처’나 ‘사이언스’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경쟁할 텐데 저자들은 뭐가 아쉬워서 고인류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화석을 보고하는 논문을 무명의 신생 학술지에 넘겼을까. ‘사이언스’ 7월 2일자에 실린 기사를 읽고 의문이 풀렸다.
이번 연구를 이끈 허베이지질대의 고인류학자 니지준 교수는 기사에서 “학술지 측에서 논문을 최대한 빨리 출판하고 우리의 새로운 연구방법을 존중해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논문 내용에 토를 달지 않고 무조건 실어주겠다는 곳을 찾다 보니 ‘혁신’이라는 무명의 신생 학술지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이들이 개발한, 네안데르탈인보다 현생인류에 가까운 인류라는 놀라운 결론에 이르게 한 연구방법이 어떤 것이기에 ‘네이처’나 ‘사이언스’는 물론이고 다른 여러 학술지들도 제안을 거절한 걸까.
연구자들은 분석에서 주관성을 배제하기 위해 두개골의 55가지 특성을 수치화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하얼빈 화석과 기존 95개 두개골 화석을 비교했다. 그 결과 하얼빈 화석은 중국에서 발굴된 몇몇 화석과 한 그룹으로 묶였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보다 호모 사피엔스와 더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호모 사피엔스와도 확실히 달라 기존 중국의 화석 네 점과 함께 호모 롱기라는 신종으로 분류하며 호모 사피엔스와 자매종이라고 주장했다.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고인류 두개골을 발표하는 내용임에도 지명도가 있는 학술지들이 이 논문을 외면한 건 전문가들에게 검토를 부탁하면 논문 내용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는 답을 들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자들의 내건, 투고한 논문을 그대로 실어준다는 조건을 받아들이기에는 학술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명 학술지에 투고했을 때 논문 저자들은 아마도 하얼빈 화석을 신종으로 규정하지 말고 호모 사피엔스의 자매종이라는 주장도 거두라는 얘기를 듣게 될 것이다. 대신 데니소바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쪽으로 유도할 것이다. 여러 정황상 지난 2010년 게놈 해독으로 존재가 드러난 이래 많은 고인류학자들이 얼굴을 알고 싶어 한 데니소바인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만일 이렇게 논문 시나리오가 바뀌어 유명 학술지에 실렸다면 언론들이 ‘마침내 데니소바인의 얼굴이 드러났다!’는 식으로 대서특필했을 것이다. 아마도 ‘사이언스’가 연말에 선정하는 ‘올해의 10대 과학성과’에도 뽑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저자들이 이런 상황을 꺼린 건 데니소바인이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의 자매종이기 때문이다. 게놈 비교분석 결과에 따르면 70만~6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데니소바인 공통조상이 먼저 갈라졌고 50만~4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갈라졌다. 하얼빈 두개골이 데니소바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인정하면 네안데르탈인보다도 가까운 호모 사피엔스의 자매종이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도대체 하얼빈 두개골이 어떻게 생겼기에 이런 이상한 상황이 전개된 것일까. 하얼빈 두개골은 발견 과정부터 드라마틱하다.
○ 88년만에 세상에 공개돼
▲ 1933년 쑹화강 철교 공사 현장에서 하얼빈 두개골의 발견한 사람은 죽기 전 손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줬지만 강둑이라는 걸 말고는 정확한 발견 위치는 모른다. 화석 연구에서 결정적인 정보 하나가 빠진 셈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1933년 하얼빈은 일본 점령군이 세운 괴뢰정부인 만주국의 수도였다. 일본은 하얼빈을 가로지르는 쑹화강에 철교를 놓는 공사를 했고 한 중국인 인부가 강둑에서 두개골을 발견했다. 1929년 베이징에서 고인류 두개골이 발견돼 큰 화제가 됐기 때문에(훗날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된 베이징원인이다) 인부는 두개골을 일본인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잘 싸서 사용하지 않는 우물에 빠뜨렸다.
일본이 물러난 뒤 공산화와 문화혁명 등 극심한 혼란이 이어지자 일본에 부역한 게 드러날까 두려웠던 인부는 임종을 앞두고서야 자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손자는 할아버지가 얘기한 우물터에서 두개골을 찾았고 2018년 허베이지질대에 기증했다. 아쉽게도 인부는 두개골을 발견한 정확한 지점을 얘기하지 않았다. 화석의 결정적인 정보 하나가 빠졌다는 말이다.
허베이지질대 연구자들은 영국의 저명한 고인류학자와 호주의 연대측정 전문가와 함께 두개골과 쑹화강 철교 주변 지질을 조사해 이 화석의 주인공이 30만~14만 년 전 살았던 미지의 인류로 호모 사피엔스의 자매종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최근 공개한 것이다. 인부가 발견하고 88년 만에 빛을 본 셈이다.
○ 어금니가 닮았다
▲ 연구자들은 하얼빈 두개골의 주인공이 건장한 중년 남성이라고 추정하고 상상도를 그렸다. 정면은 원시적이면서도 동글해 온화한 인상을 주고 옆모습은 얼굴만 보면 현생인류같다. / '혁신' 제공
이제 하얼빈 두개골을 보자. 고인류학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낮은 이마와 툭 튀어나온 눈 위 뼈, 둥글다기보다는 네모에 가까운 커다란 눈구멍, 그 결과 넓적해진 얼굴, 앞뒤가 긴 두상 같은 특징에서 네안데르탈인이 떠오른다. 반면 현생인류는 이마가 높고 얼굴 폭이 좁고 앞뒤가 짧다.
위아래가 짧지만 폭이 넓고 앞뒤가 길어 하얼빈 두개골의 뇌용량은 1420㎖로 호모 사피엔스와 비슷하다. 네안데르탈인도 같은 이유로 현생인류와 뇌용량이 비슷하다. 하얼빈 주인공과 네안데르탈인의 뇌가 럭비공이라면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축구공인 셈이다. 30만~14만 년 전 동북아시아에서 네안데르탈인을 닮은 고인류가 살았다면 데니소바인이 바로 떠오른다.
하얼빈 두개골을 보고 이런 인상을 받은 건 전문가인 고인류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기사에서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고인류학자로 데니소바인 화석을 연구한 장-자크 위블랭 교수는 “놀라운 두개골이다. 내 생각에 이보다 더 완벽한 데니소바인의 두개골은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 같다”며 호모 사피엔스의 자매종인 호모 롱기라는 논문 저자들의 주장을 무시하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대의 고인류학자로 역시 데니소바인 화석을 연구한 벤스 비올라 교수는 “위턱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치아인 커다란 어금니를 보며 데니소바 동굴에서 나온 데니소바인의 커다란 어금니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고인류학자 마르타 미라존 라어 교수 역시 “호모 사피엔스의 자매종이라는 주장에는 회의적”이라며 “아마도 네안데르탈인의 자매종인 데니소바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호모 롱기 연구에 참여해 논문의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린 영국 런던자연사박물관의 저명한 고인류학자 크리스 스트링어 박사조차 기사에서 “내 생각에 아마도 데니소바인인 것 같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럼에도 논문에서 하얼빈 두개골이 전체적으로는 네안데르탈인보다 호모 사피엔스에 가깝다고 본 근거는 무엇일까. 얼굴 옆모습을 보면 네안데르탈인은 광대뼈와 입이 돌출돼 있지만 하얼빈 두개골은 호모 사피엔스처럼 평평하다. 또 네안데르탈인은 얼굴이 긴 반면 하얼빈 두개골은 현생인류처럼 짧아 얼굴이 동그랗다. 결국 하얼빈 두개골은 고인류의 특징과 현생인류의 특징이 모자이크돼 있다. 그래서인지 두개골을 바탕으로 그린 상상도를 보면 네안데르탈인보다는 덜 억세 보이고 심지어 ‘온화한 원시인’처럼 느껴진다.
▲ 연구자들은 두개골의 55가지 특성을 수치화해 통계처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하얼빈 화석과 기존 95개 두개골 화석을 비교했다. 그 결과 나온 계통도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가운데)과 호모 사피엔스(맨 오른쪽)는 약 100만 년 전 갈라졌다. 호모 롱기(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그 직후인 약 95만 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와 갈라져 자매종이 됐다. / '혁신' 제공
논문에서 비교하는 특징 대다수가 너무 전문적이라 의미를 이해하진 못했지만 아무튼 55가지 모두를 고려했을 때 고인류의 특징보다는 현생인류의 특징이 살짝 우세해 현생인류의 자매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롱기와 호모 사피엔스 공통조상은 약 100만 년 전 갈라졌고 호모 롱기와 호모 사피엔스는 약 95만 년 전에 갈라졌다. 간발의 차이다! 게놈 염기 서열 비교를 통해 추정한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분기 시기인 70만~60만 년 전인 것에 비해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논문 저자들은 하얼빈 두개골과 함께 과거 중국에서 발굴된 화석 네 점도 호모 롱기로 분류했다. 이 가운데 하얼빈 두개골과 가장 가깝게 나온 게 티벳 고원 샤허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16만 년 전 아래턱뼈다. 그런데 하얼빈 두개골에는 아래턱뼈가 없다. 위턱뼈뿐인 두개골에서 추측한 가상의 아래턱뼈와 비교해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결론을 내렸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위블랭 교수는 “이 분석 결과를 보고 의자에서 거의 미끄러질 뻔했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16만 년 전 아래턱뼈가 데니소바인이라고 주장한 논문이 지난 2019년 ‘네이처’에 실렸고 국내 언론에서도 크게 다뤘다. 중국과학원이 주축이 된 다국적 연구팀(논문 공동 교신저자 가운데 한 명이 위블랭이다)은 아래턱의 형태가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하면서도 어금니가 꽤 큰 이 뼈의 주인공이 데니소바인일 가능성이 클 것으로 추측했지만 이를 입증하지는 못했다. DNA를 추출했지만 완전히 파괴돼 있어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대신 콜라겐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분석해보기로 했다. 게놈 염기 서열에 따르면 콜라겐 1알파2 단백질의 996번째 아미노산이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는 아르기닌이고 데니소바인은 라이신이다. 어금니 콜라겐 분석 결과 라이신이었다. 이 결과가 데니소바인임을 증명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논문의 제목을 비롯해 다들 데니소바인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번 논문에서 저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호모 롱기로 분류한 것이다.
▲ 지금까지 게놈 분석을 통해 데니소바인으로 확증된 화석은 손가락뼈 하나와 어금니 세 개뿐이다. 그 결과 지금까지 알려진 데니소바인의 유일한 신체 특징은 커다란 어금니다(맨 왼쪽과 왼쪽에서 두 번째). 네안데르탈인의 어금니 크기는 현생인류와 비슷하다(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맨 오른쪽). 이처럼 신체 특성의 차이가 염기 서열에 따른 분류학상 거리와 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조심해야 한다. 만일 게놈 정보가 없었다면 데니소바인을 네안데르탈인의 자매종으로 묶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체 특징을 수량화한 뒤 통계처리해 화석을 분류한 이번 연구결과에 신뢰가 가지 않는 이유다. / 'PNAS' 제공
‘그렇게 보존 상태가 좋다면 DNA를 추출해 게놈 분석을 시도해보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뜻밖에도 연구자들은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너무 귀한 화석이라 조금이라도 손상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2010년 데니소바인 게놈 데이터는 콩알만 한 손가락뼈에서 추출한 DNA에서 얻은 것이다.
▲ 중국 티벳 샤허에서 발견된 아래턱뼈 화석으로 커다란 어금니가 박혀 있어 데니소바인으로 추정되고 콜라겐 아미노산 분석 결과도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번 논문에서 저자들은 하얼빈 두개골과 가장 가까운 호모 롱기라고 주장했다. / 네이처 제공
고인류학은 고게놈학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 게놈 정보는 고인류학을 혁신시켰다. 그리고 요즘은 화석의 실체를 밝힐 때 형태의 차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에 대해 조심하고 있다. 처한 환경에 따라 특정 형질의 진화 속도가 다르고 같은 종이라도 개체 사이의 차이가 꽤 크기 때문이다. 화석을 손상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게놈 분석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여러 고인류학자들이 인정하지 않는 형태 비교 기법으로 얻은 결과를 담은 논문이 ‘혁신’이라는 이름의 학술지에 실렸다는 게 왠지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강석기 /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동아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