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나의 이름은... 4
나의 이름은 샤이. 자이드라 제국의 시녀였었다. 이제는 자이드라라는 나라가 사라져 직업도 잃은 가녀린 소
녀같은 존재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내가 가녀린지는 모른다. 나보다 키다 훨씬 더 큰 검은 색 검을 들고 다
니는 나를 보고 갸날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나의 복수대상은 라이샤. 그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지 라이샤의 죽음. 그
것도 아주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만이 나만의 바램이다.
내가 그 녀석에게 증오를 가지게 된 일은 내가 모시던 황비님을 살해하면서부터다. 시녀였던 존재가 황비가
죽었다고 그렇게 난리를 칠일이냐며 말을 하면 나는 나 나름대로 할 말이 있다. 내가 태어나서 그런 대접은
처음받았기 때문이다. 시녀라는 직분을 지닌 나와 황비라는 직분의 가진 그녀와 나는 틈이 없었다. 진정한 친
구처럼 지내왔다는 것이다. 물론 아무도 없을때지만.
그녀는 정말 나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제일 친한 친구이고 오로지 기댈 수 있는 버팀목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나의 버팀목을 그 빌어먹을 라이샤놈이 무너뜨렸다. 제길...... 그 녀석 이름을 떠올리니 다시 화가 나기 시작하
는군.
퍽!
이제는 이런 것을 때려도 화가 풀리지 않는다.
퍽!
아무리 이 것이 라이샤라고 생각하고 때려도 내 화는 풀리지 않는다.
퍽!
그 녀석이 정말 아니기 때문이다.
퍼억!
좀 세게 치고 말았군. 카이젤 놈이 치워주겠지. 한숨이 나온다. 한낱 시녀였던 내가 왜 이런 칼부림을 하고
인간을 때려야 한단 말인가. 가끔씩 왜 내가 라이샤 그 놈을 죽이겠다고 마음을 먹었는지 후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후회는 후회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발전시키지 않았다. 단지 아쉬워하는 마음만이 내 가슴속에 있
을 뿐이다.
"......선택해라."
그 가증스러운 놈은 이렇게 말했다. 민트님이 돌아가시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나에게. 후....... 또 다시
화가 나기 시작한다.
"나랑 갈지, 아니면 너 혼자 있을지."
정신 나간 놈이다. 왜 나와 같이 가겠다는건가. 뒤가 무섭지 않다는 건가? 나란 존재는 아예 의식조차 안한단
말인가!
"선택은 네가 했다. 내가 강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을 내가 했다는 것일까. 내가 그때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 유
유히 사라졌지. 나에게 강한 증오만을 남기고.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있다. 이때까지 그 녀석을 죽이기 위한 일념으로 살아왔던 때였기에 이런 생각을
떠올린 적이 없었지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보기엔 그들을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그런데 어째
서 민트님을 죽이고도 눈물 한방을 흘리지 않은거지......? 설마....... 민트님이 스스로 죽여달라고 하신건가......
하핫...... 그런 바보같은 생각이......
있을 수 있나....... 그러실리가 없지...... 아무리 남편과 나라를 잃었......
아무래도 나는 선택을 잘못한 것 같다. 아무래도 민트님은...... 그 녀석의 도움으로...... 돌아가신 것 같다. 제
길!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제길!
콰앙!
벽이 무너진다. 카이젤녀석에게 또 잔소리 좀 듣겠군. 후......
하지만...... 이것은 나의 추측이다. 진짜로 그렇지는 않겠지. 제발 나는 나의 추측이 틀리기만을 바란다. 제발......
집이 보인다. 뒤를 돌아보았다. 큰 집이 보인다. 아까보았던 집과는 크기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집
이다. 난 몸을 돌린다. 앞에 있던 작은 집보다는 저기 저 큰 집이 더 마음에 들었다. 난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
다. 그러자 그 큰 집 앞에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는 것이 보인다. 내가 매우 바라던 상
대였던 것 같다. 갑자기 나의 몸이 이렇게 움직이는 것을 봐서.
갑자기 나의 몸은 튀어나가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꼴보기 싫게도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면서. 그러다 갑
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뒤를 돌아본다.
그 곳에는 슬픈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의 그리운 사람이 보인다.
저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나는 갈등한다. 이대로 달려가 웃는 저 사람에게 갈 것인가 아니면 몸을 돌
려 저 뒤의 사람에게 갈것인가. 난 안절부절 못하며 두 사람을 계속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아직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 같다. 어떻게 한다...... 나는 계속 앞으로 가려다가 다시 뒤로 가려고 한다.
마음정하기가 어렵다. 대답을 안 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결정한다. 몸을 돌려 뒤의 슬픈 눈을 지닌 사람에게
간다.
내가 간다면 저 슬픈 눈이 기쁜 눈으로 바뀌길 바라며. 하지만 그녀의 눈은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슬픈
눈을 하고 있다. 마치 저쪽으로 가라는 듯이...... 하지만 나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저 슬픈 표정을 바꿔보
려 더욱 기쁜표정을 해본다. 하지만 소용없다. 그녀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진다.
내가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세상은 더욱더 어두워진다. 왜 그런 것일까. 의문점을 가지면서도 발걸음을 돌리지
못한다. 왜 일까. 짜증난다. 왜 일까.
어느덧 나는 그녀의 몸에 안긴다. 끝내 그녀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사라진다. 그녀가 사라진다. 검은 것들
이 나를 감싼다. 두렵다. 무섭다. 왜 일까. 짜증난다. 왜 무섭고 두려운 것인가.
그녀는 차차 사라져간다. 검은 것이 무섭고 두려웠지만 덜덜 떨만큼의 공포는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사라지
는 것이 나의 다리를 덜덜 떨게 만들었다.
그녀가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다. 다시는 이와 같은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다. 나는 크게 소리쳤다.
"안돼------------!!!!!!!!!!!!!!!!!!"
그녀는 이미 사라졌다. 소용없었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는다. 검은 것이 스물스물 나의 몸을 감싼다. 필요없었
다. 나를 감싸서 죽이든 말든 상관없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그녀의 유무였다. 검은 것이 나의 몸을 모
두 감샀다. 그러자 그 녀석의 얼굴이 보인다. 그 녀석은 가증스럽게도 웃고 있다. 나는 있는 대로 화를 내며
주먹을 내지른다. 하지만 타격은 없다. 내 몸은 너무 약했다. 왜 일까. 짜증난다. 왜 일까.
그 녀석은 더욱 더 가증스럽게 웃으면서 나에게 점점 더 멀어진다. 마치 자신을 잡아보라는 듯이. 나는 달린
다. 아니 달리려고 한다. 하지만 안된다.
검은 것이 나의 발을 잡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왜 일까. 짜증난다. 왜 일까.
사라진다. 가증스런 녀석조차 사라진다. 이제는 나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검은 것도 있군. 이 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더라......? 그래, 어둠이라고 불렀었지. 어둠...... 이제는 너와 항
상 같이 있어야겠군.
「사악하시군요.」
"별 수 없습니다. 의심을 하기 시작한 그녀를 붙잡기 위해서는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죠. 그렇게 생각지 않습
니까, 크리니스카이쳐님?"
「......내가 판단하기에도 최선의 방법이었소. 하지만 너무 가혹하지 않소? 그녀를 그토록 어둠의 자식으로 만
드려는 이유가 무엇이오.」
"저의 복수 달성을 위한 것입니다. 또한 그녀의 복수 달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요."
「마치 자신이 복수를 이룰 수 있다면 동료도 희생할 수 있다는 태도로군.」
"맞습니다. 동료도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죠."
카이젤은 더욱더 능글맞게 웃었다. 인간꼬마의 형상을 한 아이가 자신의 보라색 머리를 살짝 넘기며 한숨을
내쉰다.
「왠지 공감가는 말이군요. 저도 역시 드래곤의 제왕이긴 한가 보군요.」
카이젤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물론 입니다. 모든 드래곤들의 제왕이시여."
카이젤의 웃음이 오늘따라 보기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