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산일지 [한라산]
○ 일자 : 2017. 2. 2.(목요일)
○ 장소 : 제주도 한라산 윗세오름
○ 동행 : 로스쿨 교수 7인
○ 한라산 등산
한라산 등산은 매혹적이다. 가고 싶어도 마음같이 쉽지 않는 곳이기에 더욱 간절하다.
2017. 2. 1. - 3.까지 로스쿨 교수 워크숍의 일정 중 하루가 힐링 타임으로 정해져, 우리 7인은 등산 조를 신청했다.
(사진 – 동행)
한라산 등산로는 정상까지 가는 길과 윗세오름 가는 길로 대별한다.
정상(백록담) 가는 길은 성판악에서 오르는 길과 관음사에서 오르는 길 2개의 코스가 있고, 윗세오름 가는 길은 어리목에서 오르는 길과 영실에서 오르는 길 2개의 코스가 있다.
20여 년 전에 광주지방변호사회 주관으로 영실에서 윗세오름까지 올라와 어리목으로 하산한 오랜 추억이 있고, 정상인 백록담은 2015년 여름 딸과 함께 올랐었다.
한라산의 정상을 보려거든 백록담으로 가고, 한라산의 경관을 보려거든 윗세오름으로 가라는 말이 있단다.
오늘의 산행 경로는 어리목 탐방안내소 – 윗세오름 – 영실 탐방안내소 코스이다.
(사진 – 한라산 등산로)
○ 어리목
신제주 지역의 호텔에서 08:30 출발한 버스는 09:10 어리목 버스정류소에 도착한다.
어제는 한라산에 눈이 내렸다는데, 오늘은 맑고 포근하다. 일행은 광장 휴게소에서 아이젠, 핫백 등을 구입한다. 생수 한 병과 김밥도시락 한 개씩을 배낭에 담고서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의 산행경로는 어리목탐방안내소(해발 970m)에서 윗세오름(해발 1700m)까지 도면상 4.7㎞, 2시간 소요 거리로 나와 있다.
(사진 – 어리목 등산로)
들머리부터 바로 나무 계단으로 시작하는 등산로는 숲속 계곡을 지난다. 계단길이지만 눈밭이 대부분으로 아이젠은 필수이다. 두꺼운 겨울 파카 안에 구스다운까지 껴입고 산에 오르니 배낭보다도 옷이 더 무거울 지경이다. 준비운동 부족에 숨이 차온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바람까지 없으니 겨울산행답지 않다. 어느새 얼굴에 구슬땀이 맺힌다.
남극탐험이라도 할 량으로 바지를 두 개나 껴입고 온 어떤 교수는 초입 얼마 지나지 않아 바지 한 개를 벗어 버린다. 에스키모처럼 치장한 나도 목 바람보호대를 벗겨내니 숨쉬기가 훨씬 순하다.
(사진 – 완전무장)
가볍던 배낭이 무겁게 느껴지자마자, 보온병을 꺼내 커피타입을 갖자고 뜨거운 물을 덜어냈다. 좀 가벼워졌나? 방풍 대비하여 옷과 장갑 모자 등 옷가지만 가득 채운 배낭이 무거울 리 없건만, 무거운 발걸음은 배낭 탓을 해댄다. 한 시간 반쯤 지나 숲이 거치고 능선 벌판이 나온다.
햇볕에 목로길 눈이 모두 녹았다. 아이젠을 벗는다. 산철쭉과 털진달래 군락이 있지만 겨울날씨에 제주조릿대 등 앉은뱅이 나무들만 목로길 양변에 듬성듬성하다. 뒤돌아보면 저 멀리 바닷가 풍경이 한여름의 해상(海上)을 묘사한 유화(油畵) 같다.
멍하니 걷다보니 등산화에 부착한 아이젠이 안보인다. 백코스로 허겁지겁 달려가니 아이젠 벗던 곳이 나온다. 아니, 여기서 아이젠 벗어 배낭에 넣었는데. 혼자서도 얼굴이 뻘게진다.
(사진 – 목로길)
몸이 가벼운 송 원장과 에너지가 넘치는 함 교수는 저 앞에 먼저 가버리고, 날렵한 김 부원장과 늘씬한 안 교수는 잘도 간다. 김 부원장의 진홍빛 스패츠가 퍽 색시하다. 연식이 오래된 김 교수와 나는 뒤쳐지면서도 사진 찍기에 바쁘다. 유통기한 걱정하듯 뒤따르는 정헌상 선생이 큰소리로 웃으며 사진을 찍어주는데, 스키선수들이 쓰는 번쩍비까 하는 선글라스가 잘 어울린다.
(사진 – 사제비동산. 정 선생)
안내 도면에는 사제비동산, 사제비샘 등이 있는데, 따사로운 겨울날씨, 청명한 하늘, 포근한 공기, 저기 보이는 백록담 정상의 아름다움 등 즐거운 산행길에 취해 길목 이름도 챙기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만세동산에서 바라보는 백록담 남쪽 화구벽은 한라산의 아름다운 풍광 중에서도 백미(白眉)로 여겨진다.
(사진 – 만세동산 전망대)
○ 윗세오름
어느새 윗세오름에 도착한다. 2시간 예정인데, 우리는 3시간에 도착한다. 12:20 도착. 춥다고 엄청 걱정하고 준비한 산행 준비였는데, 이곳까지의 산행은 바람도 없는 늦봄의 산행같이 포근하다. 편하게 올랐지만, 한편으로는 한라산의 눈꽃을 보지 못함이 아쉽다.
대비소 매점에는 컵라면 사기 위한 대기 줄이 장사진이다. 컵라면 먹는 것도 겨울 산행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휴게소 앞 계단식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점심을 먹는다. 컵라면, 도시락, 막걸리, 소주 등등 먹거리도 여러 가지이다. 까마귀도 밥 달라고 인파에 파고든다. 호랑색의 고양이도 사람의 손길을 애원하듯 우릴 쳐다본다.
(사진 – 윗세오름)
오늘처럼 청명한 날 한라산에서 바라보는 제주 앞바다는 바로 저기이다. 뒤에서 어떤 교수가 소리친다. “어, 바다가 산 위에 보이네!” 소주에 알딸딸하셨거나, 느닷없는 시를 뱄어내는 골치 아픈 인생이든지.
백록담의 목 부근에 해당한다. 정상가는 길을 폐쇄한 곳이기에, 여기서는 정상을 바라만 본다. 폐쇄한 것이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나와 같이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여기서 하산한다고 -
(사진 – 윗세오름)
○ 영실
내려가는 길은 영실로 가는 코스를 잡다. 13:20.
오래전 돌길을 걸었던 기억만 남아있는데, 지금은 목로 계단길로 잘 포장되어 있다. 좀 급한 내림막이지만 최단거리이다(영실 탐방로 입구에서 윗세오름까지 3.7㎞).
하산 10분 거리에 노루샘 표시(지금은 물이 말라 있다)가 있고, 조금 지나면 ‘윗세족은오름 전망대’가 우측 언덕에 있다(‘족은’은 작은이란 뜻). 나무계단 길 따라 전망대에 오르니 오늘 없었던 바람이 매섭다. 역시 제주는 삼다도(三多島)의 섬 제주이다. 아무리 포근한 날씨지만, 근본은 변함없다고 한라산 신령임이 일깨워 주신다. 앞서가는 교수님 말씀, 요즘은 사다도(四多島)란다. ‘중국인’이 추가되었다나.
(사진 – 윗세족은오름)
해발 1,500m 표시석에 이르니 한라산 계곡의 명품(名品) 병풍바위와 오백나한 안내판이 있다. (영실에서 올라간다면 해발 1,500m 지점까지 급경사 계단이 있고, 그 위부터는 평평한 길이다. 조금 더 올라 광활한 장소가 ‘선작지왓’이라고 불리는 경관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오르막은 힘들어도 내리막에서 바라봄은 한가롭다. 내리막 내내 병풍바위와 오백나한 등 영실기암이 영실 초입지까지 배웅해준다.
(사진 – 영실기암)
버스정류소에서 기다리던 일행 교수님들이 영실휴게소(해발 1280m)까지 마중 나와 반긴다. (대형버스는 휴게소까지 오지 못하고 2.5km 거리의 저 아래 영실관리사무소 버스정류소에 대기한다). 얼마나 지루했으면, 여기까지 마중 나왔을꼬! 게으른 산행을 나무라는 듯, 민망하다. 15:30. 안내도면에는 한 시간 하산길인데, 우리는 두 시간에 하산했다.
청명한 날씨에 겨울등반답지 않게 얼굴이 벌겋게 익어버렸다.
2017. 2. 3. 이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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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향산일지 이네
늙어서 읽으면서 추억을 되새기게 --
학교 로스클 교수진 멘버들이였군요 고생했네 ^^*^^
멋지네~나도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