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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복음 15장]
이 그림은 벨기에 안트베르펜 태생으로, 17세기 북유럽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 (1577-1640)가 그린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1614)>입니다.
후대에게 '바로크보다 더 유명한 화가'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루벤스의 이 작품은 높이가 4m가 넘는 대작(420.5×320cm)으로
벨기에의 7대 보물 중 하나로 꼽히는 명작입니다.
루벤스는 착한 소년 넬로와 충견 파트라슈의 아름답지만 슬픈 이야기를 그린 동화 <플란다스의 개>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플란다스의 개>는 영국의 여류작가 위다(Ouida)의 작품으로, 동화 속 넬로는 화가를 꿈꾸는 가난하지만 명랑한 소년이었는데, 우유 배달을 하던 할아버지가 쇠약해져 세상을 떠나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소년의 간절한 소망이었던 미술전에서 마저 낙선하자 실의에 빠집니다.
밀린 집세를 내지 못해 마을에서 쫓겨난 넬로는 눈보라치는 추운 겨울밤 그의 애견 파트라슈와 안트베르펜 대성당에서 그가 그렇게도 보고싶어 하던 어떤 화가의 그림을 우연히 볼 수 있게 되고,
크리스마스 날 아침 사람들은 성당의 그 그림 아래서 파트라슈를 끌어안고 얼어죽은 넬로를 발견합니다.
달빛에 비춰진.., 그날 밤 넬로가 본 그림이 바로 유명한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인물들이 흘러내리는 구도의 이 작품에서 중심점은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절제되고 극적으로 그려져 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肅然)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먹구름이 가득한 어두운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숨을 거둔 예수님의 창백한 몸 위로 밝은 빛이 떨어집니다.
피부를 드러낸 남자들이 하나같이 근육질인 것은 바로크 특징 중 하나입니다. 내려오던 흐름은 빨간 옷을 입고 사다리에 오른 발을 걸친 채 예수님의 체중 대부분을 지탱하고 있는 사도 요한에게서 절정을 이룹니다. 땅과 사다리로 지탱하고 있는 그의 맨발은 예수님 때문에 겪게 될 고난을 암시합니다. 그 옆, 사다리를 내려오면서도 아마포의 한 쪽을 잡은 푸른색 옷의 남자는 유대인의 장례식 관습대로 예수님의 몸에 바를 향유를 가져온 니고데모입니다. 화면 왼쪽에 붉은 모자를 쓰고 화려한 옷을 입은 남자가 예수님의 겨드랑이 쪽을 받치며 시신을 내리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는 예수님의 수난 이후 빌라도 총독에게 가서 시신의 장례를 간청하여 허락을 받아낸 아리마테아 요셉입니다.
그의 아래, 푸른 옷을 입고 슬픔에 찬 표정으로 예수님의 몸에 손을 뻗은 여인은 성모 마리아이며, 성모님 아래에 참회의 색인 보라색 옷을 입고 예수님을 쳐다보는 여인은 예수님의 이모 마리아 살로메이거나 마리아 야코피일 것입니다. 그 옆에 희망을 상징하는 녹색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아름다운 여인이 무릎을 꿇고 있는데, 그녀가 바로 수난 전에 예수님의 발에 매우 값진 향유를 부은 마리아 막달레나입니다.
화면의 주위는 슬픔과 어둠에 싸여 있으며 십자가를 에워싼 등장인물들은 제각기 다른 역동적인 자세를 선보임으로써 화면 구성에 긴박감을 고조시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된 같은 제목의 작품들이 상당히 정적인 반면, 이 작품에서는 인물들의 자세와 표정에서 비탄이 넘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장면이 신앙에서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구원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즉 이 장면은 "(그의 희생으로) 너희는 모두 구원받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나는 그저 낡은 붓을 들고 홀로 서서 신에게 영감을 청할 뿐이다" 라며 겸손해 하면서도 특유의 장대하고 화려한 예술을 펼쳐나간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쇄도하는 주문에 부응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공방을 운영하며 역사화와 종교화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인문주의적 고전과 각국 언어에도 능통하여 뛰어난 외교관으로 세인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목판에 유채로 그린 이 그림은 현재 벨기에 안트베르펜에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중세 시대 교역의 중심지였던 안트베르펜에 1559년에 건립된 대성당은 탑의 높이가 123m나 되어 중세 때는 "사탄이 안트베르펜을 지나가다 대성당의 첨탑에 긁혔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우아하고 날렵한 외관을 자랑하며 안트베르펜의 웅장한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