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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 🌟
2024년 4월 14일 주일 예배
( 인도,설교: 정성욱 선교사 )
🌟 다 같이 기도함으로 4월 14일
주일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4월
둘째 주 주일을 허락해 주시고 전국
각지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에 다 함께
모여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시간 이곳에 임재하여 주셔서
저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받아 주옵소서!
그리고 저희들이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시는 말씀의 은혜받게
하옵시고 저희와 가족들에게 주의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오며
곧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찬송가
https://youtu.be/BJJC8qX5YMk?si=_aRppuD76SXmkmv0
🌟 교독문입니다.
시편 124편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 본문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분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으시길 축원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소아시아 일곱교회 중에서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주석과 자료 등을 인용하여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 라오디게아는
라오디게아는 빌라델비아 동남쪽 약72km,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약 160km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서 라이커스(Lycus) 계곡에 있는 여러 도시들 중
하나입니다.
또한 맞은 편으로 10km 지점에는 히에라볼리가 약 14km 지점에 골로새가 위치해 있었는데 이 세 곳은 바울 서신에서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골로새서 4장
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이곳의 특징은 교통의 요충지였을 뿐만 아니라 모직물 공업의 중심지였으며 '브루기아 가루'마 알려진 안약과 의학교가 있었습니다.
또한 활발한 금융 거래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물 사정이 좋지 않아 히에라볼리와 골로새로부터 항상 수로를 이용해 물을 공급받아야 했습니다.
한편 라오디게아 교회는 에바브라가 설립하였으며(골4:12,13) 골로새 교회와 함께 바울이 지도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계시된 그리스도
1)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
'아멘이시요'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아멘'은 문자적으로 '아멘인 자'를 의미하며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칭호로 나타납니다(사65:16).
이것은 70인역에서 '톤 데온 톤 알레디논'('진실한 하나님')으로 '진리의 하나님'(the God of the truth, RSV), '이름이 아멘이신 하나님'(the God whose name is Amen, NEB)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진리이시며, 신실하심을 시사합니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칭호가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 라오디게아 교회의 신실하지 못함에 대한 그리스도의 신실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1:5,6; 고후1:20, Mounce).
한편 '충성되고 참된 증인'은 '아멘이시요'와 동일한 사상을 내포하는 칭호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계시하시고 하나님이 신실하심을 증거하시기 위해 온전한 순종과 충성으로 구약의 모든 예언을 성취하셨음을 시사합니다(1:5,9;2:13;고후1:20).
2)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의 헬라어 '헤 아르케 테스 크티세오스 투 데우'에서 '아르케'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의 최고(最高)의 근원을 나타냅니다.
이 칭호는 그리스도의 또 다른 칭호 즉 '알파와 오메가'에서 '알파'에 해당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피조물 가운데 처음이란 의미가 아니라 창조자이며 창조의 근본이심을 나타냅니다(잠8:22ff.; 요1:1-3; 고전1:30; 골1:15; 히1:2,3). 또한 이 칭호는 그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을 시사합니다.
• 라오디게아 교회의 책망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본문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열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이 없음을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차다'는 것은 라오디게아의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약 16km 떨어진 골로새로부터 냉수를 공급받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더웁다'는 것은 인접한 히에라볼리의 온천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 신앙을 위한 열정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름의 시원한 냉수물은 갈증을
해소시키고 추운날 따뜻한 물은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건강을
유지시켜 줍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도 열심을 내어
차든지 뜨겁든지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 상태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지근한
신앙을 싫어하십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미지근하여'라는 언급은 '차다', '더웁다'는 말과 관련되어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 상태가 무익하고 무력함을 나타냅니다.
실제로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히에라볼리로부터 끌어온 온천수와 골로새로부터 수로를 통해 가져온 찬물을 공급받는 과정에서 물이 미지근하게 됨으로 식수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여 마시는 자마다 느끼하여 토하여 버렸습니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이 미지근한 물을 토해 버리듯이 그리스도께서도 미지근한 영적 상태에 머물러 있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거부하고 버리겠다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부요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플루테카'는 현재 완료형으로 이제 완전히 부요한 상태에 도달했다는 의미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스스로가 부요하여 더이상 바랄 것이나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실질적으로 그들은 상당히 부요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는 매우 빈곤하고 곤고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서머나 교회와 대조를 이룹니다. 서머나 교회는 외적으로 가난하였으나 영적으로 부요하였던 반면에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 반대였습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본문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실상을 묘사한 것으로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
'곤고한 것'은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약탈되거나 파괴당했을 경우를 묘사하는 것으로(시137:8; 롬7:24) 그 어떤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러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영적 상태는 물질적 부와 정반대로 가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2)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
'가난'은 라오디게아인들이 금융업이 발달할 정도로 물질적인 부를 축척한 것과는 달리 영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섬길 수 없는 상태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며(2:9), '눈먼 것'은 라오디게아에 특수한 안약과 의학교가 있었던 것과는 달리 영적 시각 장애자로 분별력을 잃은 것을 의미하고, '벌거벗은 것'은 라오디게아의 검정색 양모가 유명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이 영적으로 벗은 모습임을 시사합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부요하다고 착각하여 전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본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앞절과 동일한 방법으로 라오디게아에서 유명하고 풍부했던 것을 예로 들어 그들의 영적 무관심에 대해 권면하고 있습니다.
• 회복의 길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으로 가난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불로 연단한 금, 곧 시련을 통한 믿음을 사서 영적으로 부요해지라고 권면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라오디게아는 광택있는 검은 양모 생산지로 유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양모가 아닌 '흰 옷' 곧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는 의의 옷을 입고 영적으로 수치스럽게 벌거벗은 것을 가리라고 권면하십니다. 한편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역의 특산물인 안약을 사서 치유하라고 권면함으로 그들의 영적 시각 장애를 치유하고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라고 권면하십니다(골1:27; 2:3).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하나님의 사랑은 주로 '아가파오'('사랑하다')로 표현되는데 본절의 '사랑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필로'로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문자적인 차이로 인해서 혹자는 '아가파오'가 하나님께서 은혜로 사랑하시는 모습을 나타내는 반면에 '필로'는 그리스도의 판단으로 사랑하심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필로는 '아가파오'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에서도 자주 '필로'와 '아가파오'가 같은 뜻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요5:20; 16:27).
한편 '책망'의 헬라어 '엘렝코'는 원래 '낮춤'을 의미하는 말로 '말로써 교훈하고 다스리는 것'을 나타내며(눅3:19; 딤전5:20), '징계'는 책망이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히12:5,7).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의 잘못을 방관(傍觀)하지 않으시며 사랑어린 책망과 징계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열심을 내라'의 헬라어 '젤류에'는 현재 명령형이며, '회개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노에손'은 부정 과거 시상입니다.
이 두 개의 명령문의 시상 변화는 '단번에 결정적으로 회개하고 지속적으로 열심을 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서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스테카'는 현재 완료 시상으로 이미 오셔서 준비가 완료된 상태를 의미하며 '두드리노니'의 헬라어 '크루오'는 현재 시상으로 지금도 계속해서 두드리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죄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인내와 사랑을 알리시는 모습으로 불신앙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초청과 약속의 말씀입니다.
한편 '문'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입니다.
(1)혹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는 새로운 세상으로 해석합니다(마24:33; 약5:9).
(2)혹자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합니다.
앞절에서 현재 회개하고 열심을 내라고 권면하였기 때문에 본문의 '문'은 현재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제를 나누어야 하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마음을 지칭합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본문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회개 촉구의 권면을 듣고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의 결과를 나타냅니다.
'먹고'의 헬라어 '데이프네소'는 교제를 나누며 즐기는 식사를 가리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할 경우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안에 거하셔서 그들과 더불어 교제를 나누시며 친밀한 관계를 이루십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은 현재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과 성령을 통해 교제하십니다(요14:23).
•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본문은 승리자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으심은 그의 왕적 지위를 시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에 앉음으로 왕적인 지위를 누리시는 것처럼 승리자에게도 그와 동일하게 권세를 허락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즉 이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할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1:6,9; 2:26,27; 5:10; 20:4-6; 눅22:28-30; 롬8:17; 딤후 2:12).
한편 '보좌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토 드로노'에는 '위에'를 의미하는 전치사 '에피'가 아니라, '안에'를 의미하는 '엔'이 사용되어 단순히 보좌에 앉는 것뿐 아니라 그 이상의 명예와 권세를 주시며 참여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시사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권면을 받아들이고 회개하여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누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적인 통치를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아멘 할렐루야 마라나타
하나님께서는 주를 위해 헌신한
우리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를
위해서 이렇게 좋은 것을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그리고 보충 설명으로
두 명의 메시지를 더 가져왔습니다.
"부자 교회, 부자 신자 그래서 안락한 상태에 있는 교회가 라오디게아다
환경이 너무 좋으면 오히려 신앙에 해롭다
이들이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이유는 경제적으로 부요한데다가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다
환난과 핍박과 고난도 없다
시험과 가난과 이단도 없다
영적으로 잠자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가짜 믿음에다 영적으로 벌거벗었으며 소경인 상태라 진단 받았다
돈도 있고 평안도 있으니 하나님을 갈급하게 찾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고 자칫 하나님이 개입하면 오히려 연단을 받을 수 있으니 거리를 두려는 생각까지 한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정도로 명맥만 유지하면 된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서 이렇게 가르친다
우리는 아무 고난도 없으니 하나님께 복받은 백성이다.
평안하고 안일함에 깨어날 줄을 모른다
버가모나 사데나 두아디라 교회도 합당한 신자가 몇 명은 있었는데 이 교회에는 한 명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가난하고 고난받은 서머나와 두아디라를 향해 손가락질 할 것이다
우리처럼 잘 믿어서 하나님께 복을 받으라고 간증한다
(마치 이시대의 기복주의를 보는것 같다.)
"나는 부자라서 풍족하여 부족함이 없어요"라는 그들의 자랑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그들이 영적으로 가난한 자라고 정반대로 평가하신다
소경에 벌거벗은 상태에 가짜 믿음을 가졌다
실제로는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모습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탄식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는 12명의 제자와 70명의 제자로 된 두 무리가 있다
12명이 1선 방어라면 70명은 2선 방어이고 따라다니는 일반 대중들은 3선 방어다
그런데 2선 방어가 무너진 적이 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다" (요 6:64)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요 6:65)
이 말씀을 듣고 2선 제자들이 대부분 떠나가는 일이 발생했다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제자 중에서 떠나 갔다고 하니 이들은 70명의 제자들일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신 때는 유대인들이 줄기차게 예수님의 메시아에 대한 의문과 질문으로 긴장이 고조되던 때였다
제자들이 많은 흔들렸을 것이다
심지어 주님은 12 제자들에게도 "너희도 가려느냐?" 슬픈 질문을 하셨다
이때 그나마 주님을 옹호하고 나선 제자가 베드로였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제자들이 떠나간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이유를 예상해 본다
첫째는 제자들 중에도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완전히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심은 그들의 인생을 완전히 주님께 걸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조금만 틈이 있어도 신뢰를 거두어 버린다
두 번째 이유는 제자들이 자격지심을 가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생각보다 많은 신자들이 믿음의 시험에서 넘어진다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나?
왜 하나님은 내게 응답하지 않으시나?
왜 하나님은 내게 이런 고난을 주시나?
그래,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나 보다
하나님은 나를 택하지 않으셨나 보다
이런 자격지심을 가지고 무너진다
70명의 제자들 중에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도 한때 단기 선교로 파송되어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사람을 고치고 복음을 전파했던 경험을 가진 제자들이었다
70명 중에 많은 제자가 물러갔지만 나중에 갈릴리 출신으로 구성된 120명의 초대 멤버를 다시 회복시켰다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통하여 사역을 이어가신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에 인생을 걸었을 것이다
라오디게아는 부자라서 하나님이 간절히 필요하지 않다
그들의 인생을 주님께 걸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다
다만 죽어서도 영생하고 잘 살기 위해 생명책에 이름을 올릴 정도의 신앙은 유지하고 싶다
영적으로 살았다고 칭찬 받은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는 가난하고 고난을 받는 교회다
영적으로 죽은 사데나 에베소, 라오디게아는 부자 교회에 속한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그들은 가난한 마음을 갖기가 힘들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이런 상태를 좋게 생각한다
너무 광신자가 될 필요도 없고 너무 날라리 신자라는 평판을 받아서도 안된다
현대 교인들의 다수가 중간 상태라는 것이 종말의 징조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고 행복하면 복받은 신자에 속한다
다수가 생각하는대로 따라가면 평안하다
주님께 인생을 걸지 않으면 주님께서 우리를 모른다 하실 것이다
생명의 길은 좁은 길이며 협착한데 대충 중간 길은 없다고 하신다
그래서 현대 교회는 위기다
이들이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각성을 할지 미지수다
하지만 주님은 계속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니 그사랑 한량없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3:17).
라오디게아 교회는 교인 수가 꽤 많았을 것이다. 재정도 든든했던 것 같다. 마치 현대의 중 대형교회들과 같지 않았을까? 교인들은 숫자가 많고 재정이 많은 교회에 속한 것에 긍지를 갖는다. 교회는 부자이기에 부족한 것이 없다. 그 교회에 속한 자들은 화려한 찬양대, 비싼 장식들, 웅장한 건물, 조직적인 운영 체제, 온갖 종류의 활기찬 행사들을 보며 우쭐하여진다. 각 교인들도 만족이다. 자녀들도 명문대에 들어가고 사업도 잘 풀린다. 다들 건강하며 사람들도 잘 모이고 서로 격려하고 붙들어준다. 어려움이 생기면 같은 교회 식구들이 힘닿는 대로 돕는다.
그러나 그들에게 없는 것이 있다. 복음이 없다. 예수님을 사랑함이 없다. 공동체 그 자체가 예수님보다 더 앞서 있다. 성령의 열매가 없다. 회개의 아픔이 없다. 마음의 가난함이 없다. 죄와 피 흘리기까지의 싸움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유일한 구원의 길로 외치지 않는다. 십자가의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영원한 부활과 기업에 대한 참된 준비가 없다. 주의 재림에 대한 예비함이 없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그리스도를 제대로 섬길 수 없는 상태에 있었으며 영적으로 분별하지 못하는 눈먼 상태였다. 그들은 스스로 부요하다고 착각하며 안일에 젖어 있었다. 주께서 말씀하신다. 현실에 안주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아!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이 시대의 교회를 보며 라오디게아 교회를 닮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성도들 역시 라오디게아 교회의 교인들처럼 착각 가운데 살고 있다. 정말로 우리는 주의 사랑과 십자가 복음 앞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달려가고 있는가?"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지금까지 주석과 자료 등을
참고하여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교회에 대해서 알아 보았습니다.
우리는 라오디게아, 사데, 버가모, 에베소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서머나 교회는 대환난에서 목베임으로
순교하는 교회라고 하지요.
우리 모두는 대환난에서 휴거 되는
빌라델비아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영상도 올렸지만 이번에 제주도 선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가 빌라델비아 교회라는 많은
사인들을 주셨습니다.
제주도 선교 영상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우리 교회는
노아와 노아의 방주이고
휴거 되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이며
에녹 같이 휴거 되는 교회입니다.
이처럼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성도분들도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
처럼 휴거 되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드리겠습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은혜의 주님, 오늘 함께 예배드린
모든 성도들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휴거 방주의 문이 닫히고 있사오니
모두 속히 노아의 방주에 탑승하게
하옵소서!
또한 등과 함께 기름을 준비하여
휴거 되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이
모두 되게 하옵소서!
휴거를 믿고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사역자들로 쓰임을
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정을 받아 주의 날에 에녹과 같이
첫 휴거자들로 들림 받게 하옵소서!
특별히 기도하옵기는 주의 날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휴거 되게
하옵소서!
믿음이 없는 가족들에게도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짐승의 표를 거부하고 구원을 받게
하옵소서!
저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오며
곧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