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남편을 돕는 것을 內助(내조)라 한다. 남녀의 역할 구분이 엄격했던 옛날부터 남자는 바깥일을 하여 식구들을 책임을 졌고 여자는 집안에서 뒷받침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래서 남편을 도와 크게 출세시킨 아내를 ‘내조의 女王(여왕)’이라며 칭송했다. 남편을 가정에서 도운(內助) 아내의 현명함을 이르는 이 말은 內助之功(내조지공)과 같은 말이고 줄여서 내조 또는 內輔(내보)라 하기도 한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曹操(조조)의 아들 曹丕(조비)가 文帝(문제)가 되고 왕후를 정할 때 한 신하가 반대하면서 올린 상소에서 유래했다. 조조가 세력을 떨칠 때 남군태수로 있던 곽영이란 사람에게 영특한 딸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곽영은 ‘내 딸이 여자중의 왕 (吾女中王也/ 오녀중왕야)’이라 자랑했다. 조조가 위왕이 됐을 때 딸 곽씨는 동궁으로 갔고, 조비를 왕세자로 정할때 여러 계책으로 공을세웠다.
문제가 즉위한 뒤에 황후를 정하는데 곽씨는 반대에 부딪쳤다. 곽씨가 미녀로 이름난 甄后(견후)를 참소하여 죽게 만들기도 하는 등 악행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사 삼국지의 위서와 후비전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조비가 곽씨를 황후로 삼으려 하자 왕실 경비의 감독관인 中郞(중랑) 잔잠이 나섰다. 옛날 제왕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 밖에서 도왔을 뿐만 아니라 안에서도 돕는 바가 있었습니다. 잔잠은 견후 살해의 경위 등으로 보아 곽씨가 내조의 공을 세울 수 없다고 보고 은근히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잔잠의 의견을 묵살하고 곽씨를 택했다. 오늘날 남자와 대등하게 사회 활동하는 부인도 많고, 집안에서 가사를 전담하는 남편도 많아서 외조라는 말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집 안에서 밖으로 일 나가는 사람을 도우니 이것도 내조 아니냐고 하겠지만 부인을 아직까지 안사람이라 하니까 내외조 구분은 어쩔 수 없다. 그렇더라도 남녀공학의 학교에서 여학생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어렵다는 사시, 공시에서도 합격자가 남자를 압도하니 내외라는 말도 바뀔지 모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