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비젼을 우리에게 심어 주시지만 그 꿈을 이루어 가시는 방법도! 그 길도! 주님이 친히 이루어가심을 보게된다. 어머니의 신앙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19세때에 사람을 살리는 통로가 되길 마음속 깊이 그 비젼이 심어져있었다. 고3후반에 은행에 취업후 70여명 되는 동명원이란 버려진 중증장애아이들이 기거한 부랑아 일시보호소를 발견하게 된다. 그곳이 정말 예수님의 사랑이 절실한 곳이란 말할수 없는 부담을 갖고 모임을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5년여 계속 복음을 심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손과 발이 되려 그 어린 청년시절 열정을 쏟아부었던 기억이 새롭다. 소녀시절 늘 테레사 수녀님처럼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고픈 비젼이 품어지고 내가 은행생활을 통해 벌어온 수입이 우리 가정의 유일한 수입이었으므로 난 한푼도 손도 대지 않고 어머님께 그대로 갖다 드렸다. 집에 남아있는 부채르 갚아야 하고, 생활비, 오빠의 학비등.... 근무후 5년이 지난 뒤에 갑자기 어머님께서 자유를 선언해주셨다. 어머님이 결혼을 치뤄줄 능력이 없으니 지금부터 저축하여 결혼준비를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이제부터는 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셔서 꿈에도 소원인 공부를서울로 전근되어 야갼 종합반에서 일년 공부후 성균관대 중문학과를 입학할 수 있었다. 청소년기부터 심겨진 중국선교비젼의 준비를 위한 구체적인 걸음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이도 기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목포라는 지역에서 서울지점으로 전근을 간다는 것은 집안에 큰빽이나 배경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서울로 가야 여행원들이 결혼을 잘한다고 다투어 서울로 가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꿈도 못꿔보았는데 또 주님이 손잡고 이끌어 가셨다. 당시 목포지점장으로 황수남지점장님이 전근되어 오셨는데, 알고보니 크리스챤이셨고, 더구나 내가 동명원 사역을 하고있는줄 아시고 귀하게 여겨주셨다. 어느날 부르시더니 "성군은 공부를 더 하면 좋겠다"고 권면해 주셨고 나도 얼마나 바라던차였던 터라, 환경도 주어져서 거침없이 부탁을 드렸다. 바로 그자리에서 지점장님의 친구분들께(인사부장과 서대문지점장님께) 전화를 걸어주셨고 그후 머지않아 곧바로 서울 서대문지점으로 전근되었다. 꿈같은 일이 나에게 이뤄진것이다. 이렇게 서울생활이 시작되었고 신정동 이모님댁에서 신세를 지며 출퇴근하다, 여름쯤부터는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고자 은행과 밤에 하는 재수학원(상록학원) 근처의 도서관을 잡아 5-6개월 앉아서 밤을 지새우며 공부하다 새벽에는 새벽만 강의를 하나 더 듣고, 은행에 출근하여 근무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공부에 전념을 하게 되었다. 물론 고등학교 졸업후 곧바로 방통대에 진학하여 공부하고 졸업하였으나 오프라인 강의의 진수를 맛보고 싶었고, 꼭하고 싶었던 공부였기에 전혀 힘든줄도 모르고 넘 기쁘게 공부하였고 입학도 좋은 성적에 들어가고 싶었던 성대(야간의 서울대라 말했음)에 입학하게 되어 이것도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내가 졸업한 목포여자 상업고등학교에서는 대학입시와는 거리가 먼 수업이 진행되었으므로..... 주님은 늘 이렇게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셔서 항상 손잡고 인도해 가심을 내가 확신할 수 있도록 나를 돌봐주시고 손잡고 가주셨다.
물론 그 길로 선교를 곧바로 직행하지 못하고 30여년 동안 한국 전도 사역자로! 목회자로! 다듬어가셨다. 주님은 내가 이해하지 못해도 항상 옳으신 길로 인도해가시고 계심을 믿었기에 하루하루 주님주신 소명따라 살려 몸부림쳐 왔고 이제는 선교훈련도 마무리 하며 주님이 허락하신 그 날! 그시간에! 움직이려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큰딸 사라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을 뵈옵고 다시한번 감겨과 주님의 뜻을 헤아리게 되어 눈물로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리게 된다. 내가 십대부터 품었던 테레사드림!!! 세계의 굶주린 영혼들에게 빵과 복음을 나누는 일...... 이제 주님은 그일을 생각지도 못했던 크고 기묘한 방법으로 이루어가심을 보고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주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게 된다. 사라도 열망했던 비젼이 세계를 살리는 일이다! 불쌍한 민족들을 먹이며 주께 올리는 자가 되기를!!!! 그런데 이번에 합격한 하버드 국제개발학과가 바로 그런 지름길이었다. 정원이 65명에 불과하고 세계의 석학교수진들이 이 세계의 취약한 곳을 개발하여 어려운 사람들을 살리기 두되싸움을 하는 곳이고 유엔과 국제기구에 100% 연결되어 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코넬 로우스쿨과 병행 공부하여 동시학위를 받을까 기도중에 있다. 내갸 젊은 시절 그때에 비젼만 품고 나아갔다면, 너무도 하잘것 없는 몸짓으로 다가갈 수 밖에 없었기에 딸을 훈련시켜 하나님의 비젼을 이루어 가도록 알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기막힌 길로 인도하심을 경험하며 다시금 겸허히 주님을 높히며 찬양과 경배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훼판된 곳을 보고 살리며 세우는 일을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할 수 있도록 세워가시는 것이다. 작은 딸은 이미 19세에 선교사로 서원하고 중국에서 중의학 공부중에 있고! 큰딸은 국제개발 분야에서 일하며 본인의 주업은 선교사!라고 고백하며 준비하는 딸들을 바라보며! 또한 금년까지 근무하면 남편이 퇴직하게 되어 코이카를 통하여 실버선교사로 봉사의 삶을 살려준비하는 이 마당에 나는 영적인 직격탄을 발사하는 복음의 전사임을 각인하며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고 말씀이 흥왕해가는 영적 사역자로 세워져! 우리 모든 가족이 주님을 태운 나귀새끼가 되어, 주님만 영광받으시는! 끝까지 거룩하게 주님께 쓰임받는 생명의 통로만 되어지려 무익한 종은 뜨거운 감사의 눈물을 쏟게 된다. 어찌 우리가 주님의 크신 마음을 헤아리리요? 어찌 우리가 크 큰 주님의 마음을 담을 수 있으리요? 그저 무릎꿇고 주님의 행하심에 감사와 영광을 올릴 뿐입니다! 버러지 같은 인생을 이토록 생각해 주시고 그때 나 한명 헌신했다면 지금쯤 번아웃되어 있을법하나 주님은 30년동안 훈련하시어 온가족을 모두 선교사로 준비시켜 가신 것이다 주님이 행하심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보여주심에 가슴 터질 것 같은 감격을 주님께 올립니다! 첫째도 우리는 주님의 도구일 뿐이요! 둘쩨도 우리는 주님의 무익한 종일 뿐이요! 마지막도 우리의 사명은 주님을 따르는 길임을 명심하기에 주님가신 겸손의 길을 따라 가려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