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역사소설 태종 이방원 174
노상에서 마주친 왕자와 세자
물럿거라 왕자 나가신다
세자 양녕이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사이 나룻배가 파주 임진리에 닿았다.
짐 꾸러미를 짊어진 부보상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갔다.
양녕이 말을 끌고 뱃전을 나서려 할 때였다.
"저하, 소인이 뫼시겠습니다."
세자 양녕이 쥐고 있던 말고삐를 붙잡았다.
나룻배에 동승했던 사나이였다.
"네가 누구냐?"
"저하를 모시고 싶어 개성에서부터 따라나선 김인의라 하옵니다. 거두어 주소서."
사나이를 바라보았다.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모습이 선한 얼굴이다.
시선이 마주쳤다. 착한 눈이다. 느낌이 좋다.
양녕은 말고삐를 사나이에게 넘겨주었다. 짧은 순간이었다. 김인의가 말고삐를 잡았다.
견마잡이가 생겼으니 외롭지 않았다. 인의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양녕이 마산역(馬山驛)을 지날 무렵이었다. 마주오던 일단의 행차가 있었다.
30여명은 족히 됨직한 인원이었다. 시종과 시위 군사를 거느린 예사롭지 않은 행렬이었다.
"저하, 어찌하오리까?"
지나칠 것인지 수인사를 나눌 것인지 난감했다.
견마잡이로 등장한 인의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쪽은 세자다. 이 나라의 임금에 이은 2인자다. 하지만 행색이 초라했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저쪽은 요란하다. 시종과 시위군사가 있고 휘장이 있는 8인교다.
"인사를 못 받을 이유도 없지 않으냐?"
외면한다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길을 내주며 비켜선다는 것은 세자의 체통에 걸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자의 몰골이 처량하고 행색이 누추하다. 무엇보다 세자의 체통이 말이아닌 것이 맘에 걸렸다.
인의가 말을 세웠다. 세자 양녕은 마상에서 옷매무새를 고치고 위엄있게 수염을 쓰다듬었다.
비록 부왕의 노여움 때문에 한양으로 쫓겨가는 신세지만 양녕은 아직 이 나라의 세자다.
임금을 제외한 모든 신민들로부터 문안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왕자님이라 했소, 썩 비켜나시오
어느 놈이 감히 왕자님의 행차를 가로 막느냐? 썩 비키지 못할까?"
마주오던 행차를 맨 앞에서 인도하던 호위 군사가 깃발을 휘날리며 달려왔다. 눈알을 부라리며 고함을 쳤다.
'세자는 물럿거라 왕자가 나가신다'가 된 꼴이다. 이 모습을 마상에서 지켜보던 양녕이 빙그레 웃었다.
세자전과 왕자전은 분리되어 있었다.
오늘날처럼 권력상층부가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당시에는 수하들이 상대의 수장을 잘 알지 못했다.
"누구라 했느냐?"
"왕자님이라 했소. 썩 비켜나시오."
"왕자 누구냐?"
"왕자라면 왕자인지 알지. 무슨 군말이 그리 많으냐. 썩 비키시오."
시비를 벌이고 있는 동안 행차가 다가왔다. 뒤따라오던 가마도 멈췄다.
앞에서 4명, 뒤에서 4명이 메는 8인교였다. 왕실에서 사용하는 소연(小鷰)이었다.
가마 문이 열리며 왕자가 내렸다.
가마에서 내린 왕자가 양녕이 타고 있는 말 앞에 다가와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갖췄다.
다음. 175에 계속
첫댓글 헤어나오지 못하는 여자의
품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