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2 지리산 ‘천의 얼굴’ 담는 박환윤 지리산 사진작가 박정원 박정원 님의 블로그 더보기 입력 : 2010.03.21 10:38 Url 복사하기 블로그담기 추천하기 한국에 산악사진 전문작가가 몇 명이나 될까? 대략 5~6명 꼽기도 하고, 20명 내외 꼽는 사람도 있다. 보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몇 명 되지 않은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리산 사진작가’ 박환윤(78)씨는 그 중에 대표적인 한자리를 차지하는 인물로 꼽힌다. 그는 지리산에 한번 들어가면 보통 며칠씩 산다. 어떻게 보면 ‘산의 정기를 제대로 받아야 사진이 나온다’는 나름대로의 철학을 굳건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영하 20℃ 이하로 떨어질 때도 그는 사람덩치 만한 배낭을 매고 지리산으로 향한다. 산의 차가운 기운이 목구멍부터 엉치뼈 끝까지 ‘쫘르르’ 전달될 때는, 단지 차갑다는 느낌만이 아니라 두려움까지 들 때가 많다고 한다. 산의 음습한 기운을 수없이 느끼는 것이다. “조물주와 독대한다는 자세로 산을 대해야 합니다. 그 모습은 만날 때마다 변하고 계절마다 요술을 부리죠. 인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쉽게 질리지도 하지만, 자연은 끝이 없고 무한하죠. 그 자연의 대표가 산이죠. 산은 천의 얼굴이고, 정성을 들이고 모셔야 작품 하나를 건질 수 있습니다. 성공했을 때, 그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아마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박환윤씨가 지리산에 올라가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보통 그의 배낭무게는 20킬로가 훨씬 넘는다. 그런데 그는 왜 유독 지리산에만 집착할까? “산의 깊이면에서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지리산에는 독특한 냄새, 향기가 느껴집니다. 반면 설악산은 바위가 많아 자연의 포근한 맛보다 남성의 우락부락한 느낌을 줄 때가 더 많죠. 그래서 지리산을 어머니의 산이라 부르고, 설악산을 남성적인 산이라 하죠.” 그는 세상 모든 것엔 과정이 있다고 말했다. 자연에도, 배움에도 순서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순리를 무시할 땐 무서운 재앙이 가해지고, 배움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 창조적 상상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진은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취미, 소질, 직업이 일치된 사람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아요. 사진 작업할 때도 어떤 사람은 심미적 감각, 즉 보는 눈은 좋은데 취미가 없어 안 되고, 또 다른 사람은 열심히 사진은 찍는데, 작품은 시원찮은 경우가 많아요. 소질이 있는 사람이 과정을 충실히 소화해내면 얼마나 훌륭한 작품이 나오겠어요. 삼위일체 되는 게 바로 금상첨화 아니겠어요.” 고교 물리 교사로 정년퇴직한 지도 20년이 다 돼간다. 퇴직 전이나 지금하고 달라진 점이라곤 산에 더 열심히 들어가 사진 작업하는 일밖에 없다고 한다. 퇴직 전에도 보통 1년에 100일 이상, 방학 시작하면 바로 산으로 달려가 그냥 산에 매몰돼 살았다. 부인의 불만을 뒤늦게 깨달아서 일까? 한 4년 전부터 부인과 함께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말은 안 해도 ‘부부 이심전심’을 느끼면서 즐겁게 등산하고 있다고. 이 老사진작가는 40년 이상 작업을 해오면서 개인전 3차례, 초대전 2차례만 열 정도로 작품에 대해선 까다롭다. 지난 2002년 칠순 지리산 사진집이 나왔을 때도 그는 “여기 진정 내 마음에 드는 작품에 불과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 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 2007년 1월 말 개인홈페이지를 개설하면서 지난 2002년 칠순 지리산전 등을 포함, 그 동안 발표해왔던 작품들을 모아 올렸다. 박환윤.com으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그는 관객들의 반응을 기다리며 조심스럽게 꿈도 내비쳤다. “내 남은 열정을 팔순(80)전에 바치겠다”며 老사진작가가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