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부활하셨지만, 예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행1:9)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지만, 계셔도 계시지 않게 된 야속한 사건이 승천입니다. 승천 때문에 부활은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이 되었습니다. 부활과 승천은 신비한 사건인데, 신비만 남고 현실 세계엔 아무 것도 남는 게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와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로마 사람들을 위해 건설하는 도시 동사 현장에 억지로 끌려가야하고,(마5:41) 과중한 세금 때문에 풍년 때에도 배고프고, 남편이나 아비를 잃은 여자들은 기지촌 막달라에서 몸을 팔아야 합니다. 엿같은 상황을 향하여 아무리 욕을 쏟아내어도 한은 켜켜이 쌓여만 갑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지만, 땅의 상황은 예나 제나 다르지 않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져서 하늘과 땅이 결코 만날 수 없는 세상입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선 도무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땅의 현실 속에 계셨던 서른 해는, ‘타는 목마름으로’ 억겁의 시간을 견디던 사람들이 자기 눈물로 입술을 축인 찰나의 서늘함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더 이상 땅에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는다면, 역설적으로 지금껏 인류가 경험한 가장 큰 고통은 예수님에게 받은 ‘희망고문’일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땅에 계셔야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땅에 계셔야한다는 것, 이것이 제자들과 온 인류의 간절한 상소문의 요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동문서답입니다. ‘기다리라’하십니다.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 선지자들을 잡아먹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하십니다.(눅13:34)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 즉 성령을 기다리라 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요14:16~17)
기다리라는 것은 제자들에게 땅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의 무덤같은 땅에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사셨던 것처럼 땅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사람에게 임하면, 그는 다시 태어납니다.(요3:5~7) 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예수를 닮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포로에게 자유를, 눈 먼 자를 눈 뜨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셨던 것도 성령이 예수님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였을 때,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눅4:22)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로서 새 인생을 시작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19)
성령께서 임하면, ‘나 같은 죄인’도 예수님처럼 된다 하십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셨지만, 뭇 죄인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그들이 예수님처럼 새 인생을 산다면, 예수님의 부재로 인한 땅의 문제는 해소됩니다. 성령이 임한 뭇 죄인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1:23)
교회가 존재하는 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땅에 계시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지만, 교회가 존재하는 까닭에 땅에 하늘이 포개집니다. 땅에 하나님나라가 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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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호수 주변 핀 겨자꽃 _ 2015년 2월
이게 진짜 그럴까 싶습니다. ‘나 같은 죄인’들에게 ‘성령’이 임하면, 예수님의 부재로 인한 땅의 문제가 진짜 해소될까요? 스스로를 작고 하찭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마치 사람이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눅13:18~21)
겨자는 한해살이풀입니다. 한해살이에 지나지 않는 풀이 나무가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 하십니다. 또 ‘가루 서 말’은 거의 23kg의 밀가루에 해당됩니다.(창18:6) 100명 정도가 식사할 수 있는 분량이랍니다. 가루 서 말은 여자 한 명이 반죽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니지요. 예수님께서는 100명이 먹을 수 있는 분량의 반죽을 발효시키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 하십니다. 한해살이풀이 새가 깃들일 수 있는 나무가 되고, 100명을 먹일만한 발효된 반죽이 가능한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 하십니다.
‘나 같은 죄인’들의 사정은 어슷비슷합니다. 겨자씨처럼 작고, 누룩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면 한해살이풀이 새가 깃들이는 큰 나무가 되고, 진리의 영이 임하면 100명이 먹을 만큼 큰 반죽을 발효시키는 누룩이 됩니다. 겨자씨같고 누룩같은 ‘나 같은 죄인’은 너무도 작지만, 성령이 임하면 겨자씨 같은 사람이라도 뭇 사람들을 품을만한 넉넉한 사람이 됩니다. 누룩처럼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도 뭇 사람들을 먹일만한 큰 능력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소 과장된 표현으로 겨자와 누룩을 치켜세우십니다.
교회가 땅에 있다면, 부활과 승천은 제로섬게임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들이 모여 교회를 이룬다면, 승천하신 예수님은 여기 땅에도 계십니다. 주여 어서 오소서.
첫댓글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역설적인 진리 안에 있지요.. 높아 지고자 하면 낮아지고, 스스로 낮추면 하나님이 존귀하게 하시고, 또 산상수훈중에 팔복이 그렇지요... 주님을 지금은 볼 수는 없으나 내안에 계심을 믿는 우리는 주 안에서 자유로운자 입니다.
민들레교회가 작으나 큰 교회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