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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스님의 장군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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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5가해 스크랩 10-1 금강경5가해 청봉선사강설 11. 善現起請分 第二 (수보리가 일어나 법을 물음)
명심 추천 0 조회 37 14.04.24 14:0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금강경5가해10-1-1.zip

 

圭峰:正發問端이라

규봉:②는 바로 물음을 시작함이다


世尊이시여 善男子善女人發阿?多羅三?三菩提心하여 應云何住云何降伏其心하나이까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녀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켜서 마땅히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을 것이옵니까?”


淸峯:선남자, 선여인은 걸림이 없고 순조로운 마음과 바른 지혜의 마음을 일으켜 평탄심과 정혜심으로 일체공덕을 성취한 남녀, 또는 바르게 수행하는 남녀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은 위(뇩다라) 없는(아) 바른(삼먁) 진리(삼보리)를 일으킨(발) 생각(심)이다. 좀더 자세히 살피면 발은 생각을 일으킴이고, 아는 때묻음이 없음이요, 뇩다라는 비할 데 없는 최상을, 삼은 바른 지혜 곧 정견이며 먁은 넓고 두루한 일체이고, 보리는 지혜로운 깨달음이며, 심은 그 마음이니, 바른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켰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상정등정각의 마음을 낸 것을 말한다.

마음(心)이라는 근본 성품과 일으킨 마음은 구분하여 살펴야 한다. 근본 마음은 응무소주요 여여부동이고, 일으킨 마음은 이생기심이니 마음과 생각으로 구분하면 쉽게 이해하리라 믿는다. 따라서 이때의 일으킨 마음은 때묻음이 없고 비할 데 없는 최상승의 바른 지견으로 일체를 넓게 알아 성불 할 수 있는 그 마음인 것이다. 곧, 일체중생이 망령된 생각이 끊이지 않게 일어나 요동하고 집착하고 끄달림을 어떻게 수행하여 그 마음을 고요하고 밝게 머물(지킴)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시 더 나아가 어떻게 하여 위가 없는 보살도를 행하며, 청정한 반야바라밀다 법을 알아서 이로써 그 마음을 다스리고(항복:조복) 일체중생을 제도할까? 하는 것이다.


說誼:空生一見世尊端坐하시고 便不疑十方婆伽梵하여 仍發證同諸佛之心하여 直問云하기를 塵不得出由未得住心不解脫由未降心이니 云何得住하여야 不住六塵이며 云何降心하여야 得心解脫이리까 하니 不言我已發心이니 云何住降하고 而以善男善女言者諱却已悟之니라 人人分上不假修治어도 本自圓成이나 空生以此問者雖復本來金이나 終以銷成就이니 正同善財於福城東畔에서 初遇文殊하여 頓證法界이나 歷參五十三善知識하여 於一一善知識所에서 白言하기를 我已先發菩提心하니 云何學菩薩道修菩薩行이니라

설의:空生(수보리)이 세존께서 단정히 앉아 계심을 한번보고 문득 시방의 婆伽梵(佛)을 의심치 않아서, 모든 부처님의 증득하신 같은 마음을 일으켜 곧 묻기를 “육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머물지 못하는 까닭이며,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을 항복 받지 못한 까닭이니, 어떻게 머물러야 육진에 머물지 않으며, 어떻게 마음을 항복 받아야 마음에 해탈을 얻으리까”하니라. “내가 이미 발심했으니 어떻게 머물고 항복 받으리까.”라고 말하지 않고 선남자 선여인이라고 말한 것은 깨달음(자기의)을 숨긴 것이니라.

  사람들이 닦고 다스리지 않아도 본래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져 있으나, 공생이 이렇게 묻는 것은 비록 본래 금이긴 하지만 마침내 녹여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니, 이는 바로 善財동자가 福城 동쪽 언덕에서 처음 문수보살을 만나서 몰록 법계를 증득하고서도 五十三 선지식을 친견하여 곳곳의 선지식의 처소에서 사뢰어 말씀하기를 “내가 이미 보리심을 발하였으니 어떻게 보살의 길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행을 닦으리이까”한 것과 같으니라.

청봉착어:머물지 못하는 것은 경계에 끄달려 번뇌 가운데 허상에 집착하므로 들뜸이니 항복 받지 못함도 이와 같음이다. 수보리가 항복 받음과 머무름을 물은 것은 선재동자가 중생들을 위해 53선지식을 찾아 방편으로 법을 물으면서 중생을 위하여 스스로 깨침을 숨긴 것과 같은 것이다.

 

圭峰:曲分爲二하면 先擧當機이니 華嚴하되 忘失菩提心하고 脩諸善業者魔所攝持라하다 阿?多羅三?三菩提此云無上正?正覺이니 謂正智?智覺知眞俗하여 不偏不邪니라 後正申問이니 魏譯하되 應云何住云何修行이며 云何降伏其心인가 意云若人發菩提心已住何境界하고 脩何行業하며 妄心若起하면 云何降伏이니라令安住四心하고 脩六度行하여 於中降心하여 不令着相이니라 秦譯略修行者意云住道降心卽是修行謂四心六度皆名住脩降伏이라하니라 無着하되 謂欲願이요 修行謂相應等持降伏謂彼心若散制令還住라하니라 又十八住中一一皆以住脩降伏으로 釋之이니 故知約義雖三이나 而行是一이니라

규봉:자세하게 두 가지로 나누면

  먼저 해당되는 근기를 드니 화엄경에 이르되 “보리심을 잃고 모든 선업을 닦는 자는 마군이의 포섭한 바가 된다”고 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無上正?正覺(위없이 바르고 두루한 바른 깨달음)이라고 이르니 正智와 ?智로 眞(理)과 俗(事)을 깨달아 알아서 치우치지도 않고 삿되지도 않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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