逍遙遊 1-2 생각의 깊이가 만들어내는 차이 - 창의력
野馬也 塵埃也 生物之以息相吹也
天之蒼蒼 其正色邪 其遠而無所至極邪
其視下也 亦若是則已矣
且夫水之積也不厚 則其負大舟也無方
覆杯水於坳堂之上 則芥爲之舟
置杯焉則膠 水淺而舟大也
風之積也不厚 則其負大翼也無力
故九萬里 則風斯在下矣 而後乃今培風
背負靑天而莫之夭閼者 而後乃今將圖南
飜譯
아지랑이와 먼지는 생물들이
숨쉬면서 서로 내뿜는 것이다.
하늘이 푸른 것은 원래의
제 빛깔인가? 아니면 끝없이 너무 멀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인가?
높이 올라간 鵬새가 아래를
내려다 보아도 또한 그렇게 보일 것이다.
대개 물의 쌓임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방법이 없다.
한 잔의 물을 움푹 패인
웅덩이에 붓고 그 위에 풀잎을 띄우면 배처럼 뜨지만
웅덩이에 잔을 올려 놓으면
바닥에 닿는데 이는 물이 얕고 배가 크기 때문이다.
바람의 쌓임이 두텁지 않으면
큰 날개를 띄울 힘이 없다.
따라서 구 만리까지 올라가야만
바람이 그 아래 쌓이게 되어 鵬이 바람을 타게 된다.
푸른 하늘을 등에 진 채
가로막는 것이 없게 되어야 마침내 남쪽으로 날아가려 한다.
紬繹
생각의 깊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각의 여유를 말한다. 즉,
고정관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또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의
마음은 관념으로 가득 차있다. 태어나서 보고 배우면서 쌓아온 관념! 부모의
관념이 우리 자신에게 주입되고, 학교에서 선생님의 관념이 또한 우리 자신에게 주입되었으며, 모든 매체를 통하여 사회적 관념이 우리 자신에게 주입되었다. 그
많은 관념들이 우리 자신에게 주입되었기에 그러한 관념들은 우리 자신이 스스로 만든 것이라기보다는 수세기를 거쳐서 인간들이 만든 관념들이 우리 자신에게
주입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것을 죽은 생각(死念)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나 자신의 생생한 ‘thinking’을 해본 적이 없고, 다른 사람들이 만든 죽은 생각(死念)으로 ‘thought’만을 해왔던 것이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thinking’을 하지 못하고 ‘thought’만을 해왔던 우리의 삶! 관념은 틀이고, 구속이다. 우리는 여태껏 관념이라는 틀에 갇힌 삶을 살아왔다. 그 틀을 깨부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모든 관념을 깨부수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鵬새가 푸른 하늘을 등에 진 채 가로막는 것이 없게 되어 남쪽으로 날아가듯 우리는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세상! 미지의 새로운 세상!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 그것은 바로 인간의 창의적인 능력을 말한다. 물의 쌓임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방법이 없다. 관념이 많다면 물의 쌓임이 얕아 큰 배라는 새로운 세상을 띄울 수가 없다. 관념이 적다면 어느 정도 물의 쌓임이 깊어 그 깊이만큼의 배인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모든 관념이 없다면 물의 쌓임이 얼마나 깊은지도 알 수 없고, 거기에
띄울 수 있는 배의 크기도 가름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게 된다. 생각의 깊이! 생각의 힘! 그것은 곧 창의력을 말하는 것이고, 그 창의력은 관념이 없을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창의성(創意性)은 새로운 생각이 아니라, 남과
다른 생각을 말한다. 남과 다른 생각이 나만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고, 그 가치가 크게 다를 때 그것이 남들에게 인정되어 우리 자신에게 돈으로 환원되어 되돌아 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하향 평준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남들과 크게 다른 나만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의 원동력인 창의력은 우리가 쌓아온, 아니 죽은 생각(死念)이
아닌 새롭고 살아있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러한 창의력은 우리가 가진 관념이 없으면 없을수록 더욱
크게 만들어진다. 죽은 생각(死念) 또는 관념에 의한 ‘thought’가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고 창의적인
‘thinking”을 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러한 관념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옷을 모두 벗은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면 안 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경범죄에 해당하는 벌금을 낼 각오를 하고 옷을
모두 벗은 알몸으로 거리를 크게 활보하면 우리의 생각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우리가 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던 행위를 과감하게 해보면 우리의 생각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틀을 깨는 것이고, 죽은 생각(思念)으로 만들어진 관념을 깨부수는 것이다. 莊子가 이 이야기에서 말한 물의 쌓임이 깊어지고, 바람의 쌓임이
두터워진다는 것은 관념을 깨부수는 것이고, 관념으로 가득 채워졌던 우리의 마음에 그 관념이 사라지면서
만들어진 커다란 빈 공간이 생기면 그때 우리는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것이
바로 창의력이다. ‘thought’가 아닌 ‘thinking’! 그것이
바로 창의력이다. 그때 우리는 鵬새가 되어 구만 리 하늘을 날아오르고,
그렇게 멀리 느껴졌던 남쪽바다에 까지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된다.
鵬새는 鯤이라는 물고기가
변한 것이다. 鯤은 물고기의 알 또는 물고기의 새끼를 말한다. 즉, 鯤은 매우 작은 것을 의미한다. 鯤이 아주 작은 물고기라는 생각에
갇혀있으면 우리는 새로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莊子는 아주 작은 물고기라는 鯤을 작다고 여기지
않고 그 크기가 삼천리나 되는 큰 물고기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鯤을 다시 鵬이라는 새로 바꾸어버렸다. 그리고 鵬이라는 새는 구만 리를 날아올라가 아득히 멀리 있는 남쪽바다에까지 보내버렸다. 생각의 비약과 비약! 끝없는 생각의 비약! 한계가 없는 사고의 전환! 그것이 바로 창의력인 것이다. 우리가 鯤은 아주 작은 것이다라는 관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면 이러한 생각의 비약, 사고의 전환이라는 무한한 상상력을 가질 수가 없다. 기존의 관념이라는
틀을 깨부수고 鵬이라는 새와 같이 무궁무진한 새로운 세계로 날아올라가 무궁무진한 새로운 경험하라고 하는 것이 바로 莊子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그리고 그 시작이 그 동안 우리가 쌓은 기존의 틀, 관념을 깨부수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무궁무진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첫 발걸음이다.
모든 관념을 깨고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자! 莊子의 사고가 어디까지 뻗어갈 지 사뭇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