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략)
“이리로 와.”
수갑이 채워진 두 손을 배 앞에다 모으고 천천히 형사의 책상 앞으로
걸어 나오는 영호는 거기 걸상에 앉았다 일어서는 철호를 향하여 약간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동생의 얼굴을 뚫어져라고 바라보고서 있는
철호의 여윈 볼이 히물히물 움직였다. 괴로울 때의 버릇으로 어금니
를 꽉 꽉 씹고 있는 것이었다.
형사는 앞에 와서 선 영호에게 눈으로 철호를 가리켰다.
영호는 철호에게로 돌아섰다.
“형님, 미안합니다. 인정선(人情線)에 걸렸어요. 법률선까지는 무난
히 뛰어넘었는데. 쏘아 버렸어야 하는 건데.”
영호는 철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는 옆으로
비스듬히 얼굴을 떨구며 수갑을 채운 오른손 엄지를 권총 방아쇠를 당
기는 때처럼 까불어서 지그시 당겨 보는 것이었다.
철호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그저 영호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내린 이
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돌아가세요, 형님.”
영호는, 등신처럼 서 있는 형이 도리어 민망한 듯이 조용히 말했다.
“수감해.”
형사가 문간에 지키고 서 있는 순경을 돌아보았다.
영호는 그에게로 오는 순경을 향해 마주 걸어갔다. 영호는 뒷문으로
끌려 나가다 말고 멈춰 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형님, 어린것 화신 구경이나 한번 시키세요. 제가 약속했었는데.”
뒷문이 쾅 닫혔다. 철호는 여전히 영호가 사라진 뒷문을 바라보고서
있었다. 눈이 뿌옇게 흐려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쏠 의사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은데.”
조서를 한옆으로 밀어 놓으며 형사가 중얼거렸다. 철호는 거기 걸상
에 가만히 걸터앉았다.
“혹시 그 같이 한 청년을 모르시나요.”
철호의 귀에는 형사의 말소리가 아주 멀었다.
“끝내 혼자서 했다고 우기는데, 그러나 증인이 있으니까 이제 차츰
사실대로 자백하겠지만.”
여전히 철호는 말이 없었다.
경찰서를 나온 철호는 어디를 어떻게 걸었는지 알 수 없었다. 철호는
술취한 사람 모양 허청거리는 다리로 자기 집이 있는 언덕길을 올라가
고 있었다. 철호는 골목길 어귀에 들어섰다.
“가자!”
철호는 거기 멈춰 섰다.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나 그는 하늘을 쳐
다보는 것이 아니었다.
하 하고 숨을 크게 내쉬는 철호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콧속으로 흘러
서 찝질하니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가자. 가자. 어딜 가잔 거야. 도대체 어딜 가잔 거야.”
철호는 꽥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거기 처마 밑에 모여 앉아서 소꿉질
을 하던 어린애들이 부스스 일어서며 그를 쳐다보았다. 철호는 그 앞
을 모른 체 지나쳐 버렸다.
“오빤 어딜 그렇게 돌아다뉴.”
철호가 아랫방에 들어서자 윗방 구석에서 고리짝을 열어 놓고 뒤지고
있던 명숙이가 역한 소리를 했다. 윗방에는 넝마 같은 옷가지들이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딸애는 고리짝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명숙이가
뒤져 내놓은 헌옷들을 무슨 진귀한 것이나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철
호는 아내가 어딜 갔느냐고 물어 보려다 말고 그대로 윗방 아랫목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어서 병원에 가보세요.”
명숙은 여전히 고리짝을 들추며 돌아앉은 채 말했다.
“병원엘?”
“그래요.”
“병원에라니?”
“언니가 위독해요. 어린애가 걸렸어요.”
“뭐가?”
철호는 눈앞이 아찔했다.
점심때부터 진통이 시작되었는데 영 해산을 못 하고 애를 썼단다. 그
런데 죽을 악을 쓰다 보니까 어린애의 머리가 아니라 팔부터 나왔다고
한다. 그래 병원으로 실어 갔는데, 철호네 회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나
가고 없더라는 것이었다.
“지금쯤 아마 애를 낳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명숙은 흰 헝겊들을 골라 개켜서 한옆으로 젖혀 놓으며 말했다. 아마
어린애의 기저귀를 고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좀전
에 아찔하던 정신이 사르르 풀리며 온몸의 맥이 쑥 빠져 나갔다. 철호
는 오래간만에 머릿속이 깨끗이 개는 것을 느꼈다.
말라리아를 앓고 난 다음날처럼 맥은 하나도 없으면서 머리는 비상히
깨끗했다. 뭐 놀랄 일이 있느냐 하는 심정이 되었다. 마치 회사에서
무슨 사무를 한 뭉텅이 맡았을 때와 같은 심사였다. 철호는 호주머니
에서 담배를 꺼내어 물었다. 언제나 새로 사무를 맡아 시작하기 전에
하는 버릇이었다. 철호는 일어섰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어딜 가슈.”
명숙이가 돌아보았다.
“병원에.”
“무슨 병원인지도 모르면서.”
철호는 참 그렇다고 생각했다.
“S병원이야요.”
“…….”
철호는 슬그머니 문 밖으로 한 발을 내디디었다.
“돈을 가지고 가야지 뭐.”
“……돈.”
철호는 다시 문 안으로 들어섰다. 우두커니 발부리를 내려다보고서
있었다. 명숙이가 일어섰다. 그리고 아랫방으로 내려갔다. 벽에 걸어
놓았던 핸드백을 벗겼다.
“옜수.”
백환 짜리 한 다발이 철호 앞 방바닥에 던져졌다. 명숙은 다시 돌아서
서 백을 챙기고 있었다. 철호는 명숙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철호의 눈이 명숙의 발 뒤축에 머물렀다. 나일론 양말이 계란
만치 구멍이 뚫렸다. 철호는 명숙의 그 구멍 뚫린 양말 뒤축에서 어떤
깨끗함을 느끼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철호는 명숙에 대한 오빠로서의
애정을 느꼈다.
“가자.”
어머니가 또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철호는 눈을 발밑에 돈다발로 떨구었다. 허리를 꾸부렸다. 연기가 든
때처럼 두 눈이 싸하니 쓰렸다.
“아버지 병원에 가? 엄마 애기 났어?”
“그래.”
철호는 돈을 저고리 호주머니에 밀어 넣으며 문을 나섰다.
“가자.”
골목을 빠져 나가는 철호의 등뒤에서 또 한번 어머니의 소리가 들려
왔다.
아내는 이미 죽어 있었다.
“네, 그래요.”
철호는 간호원보다도 더 심상한 표정이었다. 병원의 긴 복도를 휘청
휘청 걸어서 널따란 현관으로 나왔다. 시체가 어디 있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무엇인가 큰일이 한 가지 끝났다는 그런 기분이었다. 아니 또
어찌 생각하면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은 무거운 기분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좀처럼 생각이 나질 않
았다. 그저 이제는 그리 서두를 필요도 없어졌다는 생각만으로 철호
는 거기 병원 현관에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윽고 병원의 큰 문을 나선 철호는 전찻길을 따라서 천천히 걸었다.
자전거가 휙 그의 팔꿉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멈춰 섰다. 자기도
모르게 그는 사무실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여섯시도 더 지났을 무
렵이었다. 이제 사무실로 가야 할 아무 일도 없었다. 그는 전찻길을
건넜다. 또 한참 걸었다. 그는 또 멈춰 섰다. 이번엔 어느 사이에, 낮
에 왔던 경찰서 앞에 와 있었다. 그는 또 돌아섰다. 또 걸었다. 그저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자는 생각도 아니면서 그의 발길은 자동 기계
처럼 남대문 쪽을 향해 걷고 있었다.
문방구점. 라디오방. 사진관. 제과점. 그는 길가에 늘어선 이런 가게
의 진열장들을 하나하나 기웃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있는지 하나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던 철호는 또 우뚝 섰다. 그는
거기 눈앞에 걸린 간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장기판만한 흰 판에 빨간
페인트로 치과라고 써 있었다. 철호는 갑자기 이가 쑤시는 것을 느꼈
다. 아침부터, 아니 벌써 전부터 훌떡훌떡 쑤시는 충치가 갑자기 아팠
다. 양쪽 어금니가 아래위 다 쑤셨다. 사실은 어느 것이 정말 쑤시는
것인지조차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철호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았다. 만 환 다발이 만져졌다.
-이범선, <오발탄> 현대문학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