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오후에
봄날 오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오늘 오전까지 요 며칠간 무척 바빴다. 중간고사 문제를 출제하고 또 검토하느라 그 좋아하는 잠까지 줄여야 했다. 점심 식사 후에 완성된 문제를 담당 교사에게 넘겨주면서 이제야 제출 기한에 쫓기던 압박감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자리에 앉으니 나른하게 눈이 절로 감겨온다. 잠시 의자에 몸을 기대고 눈을 붙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일과 시간에 잠을 자는 모습이 동료에게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귀에 에어팟을 꽂고 밖으로 나갔다. 지난 3월 2일에 근무지를 이곳으로 옮기고 여유를 가지고 이곳저곳 뜰을 거닐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교사(校舍)는 왕(王)자로 지어져서 건물 사이사이로 여러 군데 넓은 공간이 나고, 그곳은 화단을 만들고 나무를 심고, 앉아 쉴 수 있는 벤치도 군데군데 놓아두었다. 참 아담하고 실속 있는 교정(校庭)이었다. 잠시 벤치에 앉아본다. 화단 한 켠으로는 박태기꽃이 진한 분홍빛을 발하며 가지마다 꽃망울을 잔뜩 달고 있다. 그 옆으로는 라일락이 화사한 자줏빛 꽃을 피우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한곳 넓은 공간에는 느티나무 광장이 있다. 느티나무 여덟 그루가 우뚝 솟아 있다. 갓 돋아난 이파리는 연녹색으로 나뭇가지를 수놓으며 바람따라 술렁거린다. 느디나무가 드리운 그늘에는 둥근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다. 이런 아담하고 좋은 곳을 나는 어찌하여 한 달이 넘도록 오지 않았을까? 그저 책상 앞에 앉아 할 일 없이 시간만 축내고 있던 내 모습을 돌이켜 본다. 정작 소중한 것은 가까이에 있다는 명구(名句)가 문득 떠오른다. 이제 주변의 소중한 것도 좀 누려보고 또 음미하면서 살 참이다. 느티나무 아래 앉아 원탁에 팔꿈치를 괴고 눈을 감는다.
올해로 교편을 잡은 지 34년째에 접어든다. 참 오래도 이 길을 걸어왔다. 이제 교직에 있을 날도 머지않다. 두 해가 채 남지 않았다. 나와 같이 이 길을 걸어왔던 친구 중 반쯤은 명예퇴직을 하고 이미 교단을 떠났다. 그들은 현재 자신만의 일들을 한다고 그들 나름대로 한참 바쁘게 살고 있다. 그동안 못한 취미 활동을 하고, 골프를 치러 다니고, 전국 명산 탐방을 하고, 텃밭을 경작하고, 악기를 배우고……. 어떤 칙구는 코로나19가 어서 물러가 주기를 고대하며 여권만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나도 명퇴를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최첨단 정보화기기를 활용하는 시대에 쌍팔년 때의 교육 방식이 그대로 통할 리 만무하다. 옆에 있는 젊은 동료에게 묻고 부탁하는 것도 정도 껏이지 비서를 부르듯이 시도 때도 없이 부탁할 수 없는 일이다. 쉼 없는 자기 계발과 새로운 지식의 업그레이드가 없으면 도태되기 십상이다. 그래도 내가 맡은 교과가 국어라서 다행이다. 교수법(敎授法)에 있어서는 변화가 필수적이겠지만 교육의 내용에는 변화의 폭이 그나마 적은 편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정년까지 가기로 생각을 굳힌다. 현재 이 나이에서 내가 학교를 떠나서 무엇을 하겠는가? 날마다 배낭 메고 등산을 갈 수도 없고 아니면 텃밭에 매일 붙어 살 수도 없다. 골프를 안 배웠으니 골프장에 갈 일이 없고, 돈이 없으니 해외여행도 그림의 떡이다. 평생 배운 것이 이 짓이니,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것이 교직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늙다리 선생으로 최소한 학생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지난 2월 중순 학교 이동 인사발령장을 들고 이 학교를 찾았을 때, 업무분장 희망조사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그중에는 담임을 희망하느냐고 묻는 난이 있었다. 나는 잠시 작성하기를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줄기차게 담임을 해왔다. 담임을 맡는 것이 더 수고롭기야 하겠지만, 교사의 보람도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비희망’에 표시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현재 내가 늙었지만 담임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역량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육십을 넘은 이 나이에 담임을 신청하면 그건 노욕(老慾)에 가까운 것이다. 요즘 학생이나 학부모는 좀 유능한 늙은 교사보다는 다소 경륜이 부족하더라도 젊은 교사를 좋아하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인 것이다. 젊은이는 늙은이보다 상대적으로 50점을 더 따고 들어가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데가 어디 있겠는가? 마음은 있어도 때로는 그만두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러고 며칠이 지난 뒤에 교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담임을 원하지 않는 게 맞느냐고 했다. 업무분장 희망조사서에 ‘비희망’으로 기록했다고 대답했다. 교감은 10여 년 전에 한 학교에서 고3담임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보았던 나는, 매사에 의욕적이고 적극적이었는데 혹시 잘못 기입했나 의심스러워 확인 전화를 했노라고 했다. 사실대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실 나이만 육십을 넘겼지 마음이나 의욕은 예전과 똑 같다. 그러나 아이나 학부모는 늙다리 담임을 원하지 않는다. 좀 서툴러도 젊은 담임을 선호한다. 이제 아쉽긴 하지만 담임의 자리를 후배 교사들에게 양보하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교감이 말했다. 요즘 젊은 선생들 아무도 그런 양보 원하지 않는다. 지금 2학년에 여덟 명 모두 여교사라 고민인데 청일점 담임으로 들어와 수고해 줄 수 없느냐고 부탁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승낙했다. ‘못 이기는 척’했을 뿐이지 마음은 온통 환영 일색이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이랴! 그리하여 나는 화사한 꽃밭에 늙은 나비로 날아들 수 있었다.
목하 2학년 3반 담임으로 열심히 담임의 일을 수행하고 있다. 아이들도 순하고 인사성이 밝다. 청소 시간에 교실에라도 가면 옆으로 쪼르르 몰려와 말을 건네고 사진을 같이 찍자고 난리다. 아하, 이 아이들이 내가 마스크를 껴 나의 본모습 못 보아서 이러는구나. 내가 마스크를 벗으면 도망가 버리려나? 우리는 마스크를 낀 채 사진을 찍는다. 처음 서너 명이 찍으려던 사진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우르르 몰려들어 십여 명으로 늘어난다. 나는 현재 참으로 행복하다. 교직을 택한 게 참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교사가 아니라면 언감생심 어찌 이 다 큰 처녀애들이 내 옆으로 와서 말을 걸고 사진을 찍자고 할 것인가? 냄새가 난다고 근처에 오지도 않을 것이리라.
5교시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교정으로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이제 봄날 오후 사색의 나들이를 접어야 한다. 나는 6교시 문학 수업을 위해 교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2021.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