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커피를 아주 좋아합니다. 사실 어렸을 때에도 커피를 마시는 했지만, 그때는 완전히 설탕 맛에 마셨던 것 같습니다.
둘, 둘, 둘이라고 하지요? 커피 둘, 프림 둘, 설탕 둘. 환상의 조합이라고 하는데, 어렸을 때는 커피는 아까워서 하나, 프림은 둘, 그리고 설탕은 많이 넣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누나는 설탕을 넣지 않는 것입니다. 설탕을 넣지 않아야 개운하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호기심에 마셔보았지만 이 쓴 커피를 왜 마시나 싶었습니다.
역시 커피에는 설탕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난다고 하면서 누나가 커피 맛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여전히 커피를 즐겨 마십니다. 그런데 어렸을 마셨던 달달한 커피는 전혀 마시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쓴 것을 왜 먹냐고 할 정도로 진한 커피를 많이 마십니다.
어제도 커피를 진하게 한 잔 내려 마시면서 문득 어렸을 때를 떠올려 봅니다.
그때의 입맛과 지금의 입맛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얼굴도 변하고, 목소리도 변하고, 또 입맛도 변합니다.
하긴 사람을 구성하는 세포는 영원하지 않고 계속 벗겨지고 다시 태어난다고 하지요.
그래서 그 이전의 세포가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약 11개월이랍니다.
따라서 11개월만 지나면 우리는 11개월 전과 전혀 다른 세포를 구성하는 사람과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됩니다.
그만큼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우리들을 구성하는 세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어디선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지만, 우리들의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 사랑 역시 변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할까요?
“저 사람이 변했어.”라고 말하면서 변화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변하는 것을 ‘그럴 수도 있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처도 덜 받게 됩니다.
변하지 않는 분은 오직 한 분, 주님뿐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언제나 한결 같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 안에서 우리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오늘 우리들이 기념하는 수호천사 기념일도 주님의 사랑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천사 한 분을 정해 주시어 그를 지키고 도와주게 하신다고 하지요.
그 천사가 바로 수호천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께 불평불만을 자주 던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심하고 그 사랑이 변한 것처럼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호천사까지 보내주셔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계속해서 유지하시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인천교구 조명언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첫댓글 커피는 적도지역에서 자라나는 식물이라고 합니다 대부분괴일은 과육을 먹지만은 유독 커피는 과육은 버리고 씨를 먹는 과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볶아서 그 향을 먹는것이 맞을것입니다. 카카오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의 입으로 오게된것은 선진국에서 미개한 그곳에서 인건비도 안나올만큼
아주 형편없는 가격으로 사오는 일종의 약탈상품입니다 지금은 간혹 공정무역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