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은 참으로 귀한 시집이다. 지난 주 토요일 억수같이 비 내리는 날 화성 팔단면에 위치한 헌 책방인 '고구마'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어렵게 발견한 문익환의 두 번째 시집이다.
나는 이 시집외 11권의 다른 시집들을 사들고 돌아오면서 내내 《꿈을 비는 마음》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수원역에서 승차하여 왕십리역에 하차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1시간 20여분, 이 작은 시집에 들어 앉은 시편들과 해설까지 읽는데도 모자라는 시간이었다. 그 만큼 문익환목사의 이 시집에 푹 빠져들었다.
특히 문익환시인은 윤동주, 송몽규와 동시대, 같은 마을, 같은 학교에서 수학한 인물도 인물이지만, 그의 현대사의 이력은 누구나가 다 아는 재야 인사로서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기에 관심이 많았다. 더욱이 초기 시들을 접할 길 없었는데, 이 시집을 만나니 이 보다 반갑고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문익환을 목사로서가 아니라 시인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문익환을 향한 나의 기억을 뒤 바꿔 놓은 동기물이 바로 이 시집 《꿈을 비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가슴 멍먹해징을 곧 느겼다. 오늘날 존재하는 이 화려한 수사적인 보편적 인간들과 시인들과 그리고 종교인들의 허울과 그들의 민낯을 여실히 발견할 수가 있었다. 마치 탁본을 떠서 보여주듯이 선명한 실상을 느끼곤, 아무 말, 아무 표정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시인으로서와 평론가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남은 인생을 어떤 말과 어떤 글과 어떤 행위를 어떻게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모두가 물질이란 올무에 갖혀서 양심을 팔고, 진리를 외면한 채 거짓과 권모술수에 능숙능란한 생애를 살아가는 비양심적인 죄인들임을 부인하면서 살아가는 이 시대에 나는 어떤 물음에 어떤 거룩한 해답을 내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하면서도 거룩한 질문에 봉착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오늘날의 시인들은 그리고 종교인들은 마치 모두가 가짜처럼 행세하면서 살아가는 듯 한 이미지를 지울 수가 없다. 시에는 이야기와 사건과 사상, 생명력이 없고, 종교인들에는 탐욕을 지식으로 경건치 못안 경건으로 가리운 명분만이 마치 권력을 쥔 한량들처럼 행세하고 있을 뿐이다. 이 시집을 구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니, 마음 같아서는 이 시집의 시편들을 다 베껴 독자들에게 읽히고 싶지만 그것도 여의치가 않아 참으로 답답하다. 일단 짧은 시 두 서너 편이라도 소개하는 것이 도리인듯 하여 이곳에 소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