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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의 국민 작가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적 주제를 그린 작품
이 책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로 오랜 무명시절을 거쳐 최근에야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작가 루카스 요더와 불리한 조건을 이겨내고 일류가 된 유대계 여성편집자 이본 마멜, 엘리트주의와 동성애에 빠진 비평가 칼 스트라이버트 그리고 완고한 구닥다리 독자 제인 갈런트. 이들 네 명을 소재로 글쓰기와 출판에 관계되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구상과 집필에서 시작하여 원고의 편집과 출판 그리고 작품에 대한 비평과 언론의 반응은 물론 독자의 감상으로 정리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필치로 이채롭게 펼쳐낸 네 개의 챕터로 구성된 작품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자신을 모델로 한 루카스 요더의 입을 통해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것은 재미보다는 이야기의 호소력이라고 하며, 자신의 토지와 물리적 환경에 초점을 맞춘 자신의 이야기가 하나의 구성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인물과 플롯의 전개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편집자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전통적인 이야기꾼인 작가와는 다른 예술관을 지닌 비평가의 시선을 통해서는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으며, 독자를 통해서는 비평가와는 다른 시각을 지닌 대중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는 생각의 차이, 판단의 차이를 그대로 노출시킴으로써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또 다른 층위의 생각의 단계로 올라서게 해 준다.
책 속의 주인공인 루카스 요더는 미즈 마멜이 발굴하기 전까지는 작가라고 할 수도 없는 인물이었다. 9년에 걸쳐 네 권의 책을 내지만 실패한 작가의 전형이라 할 만큼 무명의 시절을 보낸다. 다섯 번째 소설부터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며 시리즈의 완결작인 <파문>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지만, 비평가의 혹평에 이은 판매부수 격감과 저널지의 [이달의 책] 선정 무산 등 갖은 악재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태에 빠진다. 그러나 그의 편집자인 이본 마멜은 자신의 위치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작가를 다독이며 힘을 실어준다. 결국 그녀의 변함없는 지원으로 루카스 요더는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한 몸에 받는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오랫동안 출판사의 편집자로 지낸 미치너인지라 책의 유통구조나 출판사의 전반적인 체계를 꿰고 있어 책의 내용이 더 생생하게 와 닿는다.
한편, 이본 마멜의 남자친구로 자존심이 강한 래트너라는 핸섬보이가 루카스 요더와 배치되는 남자친구로 등장하는데 그는 뛰어난 문학적 형상을 지녔으면서도 언젠가는 걸작을 쓰겠다며 애인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갈시키며 허송세월만 보내다 결국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타고난 재능는 덜하지만 그의 그랜즐러 연작을 24년간 한결같이 소설에만 집중한 루카스 요더는 작가의 본보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비평가 칼 스트라이버트와 편집자 이본 마멜의 레스토랑에서의 논쟁은 비평적 양심이 무엇인지를 뛰어넘어 걸작이나 대문호가 조작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칼은 자신의 책을 출판하기 위해 소신을 버리고 편집자의 권고대로 내용을 떼었다 붙였다 한다. 더불어 책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그는 더욱 활개치는 비평가가 된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걸작이나 작가 중에도 과대포장 된 작품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미국의 저명한 비평가 헤럴드 블룸은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이며 왜 읽는>라는 글에서 우리가 글을 읽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떤 글을 읽어야하고 왜 그런 글을 읽어야 하는지를 밝힌바 있다. 그 이유는 깊이 있는 지속적인 독서만이 <자율적인 자아>를 온전하게 확립해 주고, 또 그 자아의 주체성을 증진시키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는 사무엘 존슨 박사의 말을 빌려 독서의 주요 목적이 <우리의 정신에서 상투적인 것을 씻어내는 것>에 있다고 한다.
우리가 몸으로 체득하는 직접적인 경험은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 삶에서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상상의 경험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 상상의 경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독서이고, 우리는 독서를 통해 우리의 과거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며 그 해방을 통해 더 많은 감수성을 지니고 더 많은 통찰과 지혜를 지닌 사람으로 거듭 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은 바로 반성(反省)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결과이며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더욱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화한다는 것, 곧 자기 확대로 나아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제임스 미치너는 책의 서두에 혹여 책의 사건이나 인물이 어떤 특정인을 떠올리더라도, 그것들은 모두 허구라는 우려의 말을 적었다. 작가도 사람이다 보니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하고 상상한 것들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었으리라.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실존 인물이나 사건들이 모티브가 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는 실존했던 작가들의 이름이 많이 거론된다. 그래서인지 더 재미있었고 더 유익했으며, 역시 제임스 미치너는 사물이나 사람의 장점을 바라볼 줄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훌륭한 이야기꾼이 될 수 없다”고 한 미치너의 말에서 우리는 그가 낯선 땅과 낯선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눈을 뜨고 어떻게 귀를 기울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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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미치너 : 1907년 뉴욕에서 태어나 스워스모어 칼리지와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에서 수학했다. 졸업 후에는 콜로라도 대학과 하버드 대학 등에서 강의를 하고, 맥밀런 출판사에서 사회학 분야 편집자로 일했다. 또한 태평양 전쟁 당시에는 해군 소령으로 복무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경험의 축적을 바탕으로 마흔이 다 된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첫 작품부터 크게 주목받으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미 해군의 역사 편찬위원으로 남태평양에 파견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1946년의 처녀작 『남태평양 이야기』는 그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주었다. 이는 로저스앤드 해머스타인의 유명 뮤지컬 『남태평양』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미치너는 30여권이 넘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으며, 이 중 많은 작품들이 영화화되어 호평을 받았다. 20세기 미국의 국민작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 대학은 30여개에 달했다.
미치너의 다른 작품들로는 하와이 섬의 형성 과정과 그곳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하와이』, 미 우주 개발 계획의 역사를 배경으로 다섯 남자와 그들의 가족 이야기를 그린 『스페이스』, 고대 카리브 해의 인디언 문명을 정치 권력 및 사회 경제학의 관점에서 다룬 『카리브 해』등이 있다. 제임스 미치너는 1997년 텍사스 주 오스턴에 잇는 자택에서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