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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청교도의 성쇠와 칭의 교리
1. 칭의의 고백
신학상의 칭의의 고백은 인간의 삶의 핵심, 곧 인간의 삶과 하나님관계에 영향을 끼친다. 칭의의 고백은 교회의 설교와 믿음 생활의 실존과 진보, 인간의 안전의 근원 그리고 인간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정의한다.
칭의 교리가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법
첫째 칭의가 복음의 신비- 즉 은혜에 의한 신령한 계시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칭의는 이중적으로 교만을 꺾는 것이다. 칭의는 신앙적 판단력의 도움이 없이는 절대로 추측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지성의 교만을 꺾는다. 그리고 칭의는 모든 인간의 죄 가운데 절망적이며 무기력하다고 가정함으로 도덕적 교만을 꺾는다. 그래서 이 교리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한다.
둘째로 칭의는 점진하는 신비이다. 트레일러의 말로 칭의 진리는 신성의 삼위일체 인격들, 성부의 독생자의 성육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취하사 순종과 희생으로 세상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율법과 공의에 치루어진 배상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계시하는 성경의 신성한 권위는 모두 이 배상의 전가와 적용에 의한 죄인의 칭의 교리에 집중된 진리의 수직선을 이루고 있다. - 칭의를 부정하는 것은 다른 진실들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셋째로 칭의는 죄를 깨달은 인간의 교화된 양심만이 감지할 수 있는 신령한 신비이다. 칭의 교리는 인간 양심에 대한 실제적 지식이다.
넷째로 칭의는 생명을 주는 신비이다. 즉 양심의 참된 평화가 소망과 사랑과 기쁨과 확신의 근원인 것이다.
다섯째로 칭의는 부정되는 신비이다. 행위에 위한 칭의는 타락 이래 인류의 자연 종교였다. 청교도들은 펠라기안주의, 알마니안주의, 반종교개혁 카톨릭은 복음에 대한 철저한 대적자들이라고 집합한다.
그러나 칭의 교리의 쇠퇴는 이성주의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고 도한 복음적인 경건에 대한 오래된 적의를 어느 정도 완화시켰다고 주장 하였으나 역시 그 오래된 적의가 쇠퇴의 원인이 되었다.
2. 칭의의 요점
루터는 출판물에서는 선언적이고 열정적이었으나 강의실에는 덜 그러했다, 그의 관심은 언제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죄인들을 의롭다 하신다는 것을 복음의 핵심으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칭의는 인간의 어떻게 나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가? 나는 구원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제2세대와 3세대에 위치한 청교도들은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와 역사와 영광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관심을 추가 했다.
종교개혁자들의 칭의에 대한 7가지 요점요약
1.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대에 마주하여 하나님께 스스로 답변해야 한다, 교회는 이일로부터 그를 보호할 수 없다.
2. 모든 사람은 본성과 실행에 있어 죄인이며 하나님의 율법이 관련하는 한 비 준행자이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진노와 퇴짜밖에 기대할 수 없다.
3. 칭의는 범죄한 죄인을 용서하시고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자녀로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사법적 행동이다.
4. 칭의의 원인은 인간의 노력이나 인간의 주도가 아니라 은혜이다.
5. 칭의의 근거는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리적 의와 피 흘리심이다.
6. 칭의의 수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7. 믿음의 열매, 즉 믿음의 실재의 증거는 분명한 회개와 선행의 삶이다.
이러한 칭의에 대한 논쟁은 카톨릭과 알미니안 주의자들과의 과정에서 발전하게 된다.
1. 칭의의 근거: 트랜트 종교회의에서는 칭의를 용서와 용납을 더한 내적 갱신, 즉 갱신이 용서의 근거라고 정의하였고 이어서 칭의의 유일한 형식적 원은 수단적 원 원인인 세례를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의라고 확인하였다. - 이들의 주장은 자신 안에 순수하게 의롭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고- 우리 죄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
알미니안 주의자들의 견해는 믿음이 그 자체에 있어서 사실상 개인적인 의이므로 믿음이 “ 의로 간주된다”고 생각했고 복음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새 율법으로 보았다.
이들은 칭의의 근거를 자신에서 찾고 인간의 교만을 만족시키고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가로챈 것이다.
그러나 신교는 칭의는 중생하는 것, 또는 성화의 개시, 칭의의 근거였다. 더불어 칭의의 유일한 형식적 원인이 전달된 하나님의 의가 아리나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라는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율법의 계율들을 지키시는 적극적 순종과 율법의 형벌을 받으시는 소극적 순종 사이에 구별을 짓고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 이 양국면 모두의 그리스도의 순종을 우리에게 전가함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효과적으로 부르신 자들을 값없이 의롭다고 간주하시며 칭의를 주입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를 용서하시고 더 나아가 그들의 인격들 의롭다고 간주하시어 기쁘게 받아 주심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의를 받아 그 안에서 안식할 뿐이다. 이 믿음도 그들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2. 중생과 칭의: 카톨릭 : 칭의가 중생 없이 존재할 수 있고 믿음이 선행 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개혁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공격하며 ‘선행이 구원을 가져올 수 없고 구원이 선행 없이 너그럽게 주어진다면 선행을 할 이유가 없다는 전형적인 율법주의자의 가정에 비배되는 것이었다.
알미니안 주의자들 칭의는 믿음이 궁극적으로 분석해 볼 때 인간의 활동일 뿐만 아니라 행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즉 선행의 은혜가 비록 필수 조건이기는 하지만 사실상의 원인은 되지 않고 칭의의 믿음은 독자적인 성취라는 것이다.
청교도들의 대답: 1> 종교개혁자들의 ‘유일한 칭의 도구인..믿음이.. 칭의된 그 사람 안에 ...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구원 성취에 필요한 모든 다른 은혜들도... 동반한다.
2> 칭의의 믿음이 중생을 포함하는 효과적 소명을 통해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다는 것을 강조했다- 즉 성령의 주권적 역사를 통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활력 있는 연합이다.
3> 칭의의 언약적 관계이다. 언약 신학이라고 청해지는 것을 발전시겼다. (은혜언약-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생과 구원을 거저 제공하셨고 사람들이 이 구원을 받으려면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되도록 하셨고 영생을 얻기로 예정된 자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자원하여 믿도록 해 주신다는 것이다. 웨스트 민스터 고백 신앙고백 )
- 언약의 개념은 소중히 여겼던 이유- 언약의 개념이 하나님의 신자들을 구원하신다는 약속을 하나님의 선민들을 믿음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목적과 연결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언약의 개념이 하나님의 구원 목적 단계들인 황금사슬 가운데 칭의의 위치를 부여하기 때문, 셋째로 자기 백성의 중보자이시며 연합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뚜렷하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3. 청교도 내의 그릇된 진술들 막기 위해 발전시킨다.
1> 칭의가 영원 전부터, 즉 믿음이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교정으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은 영원 전에 모든 택한 자를 의롭다 하시기로 예정하셨고.,. 그렇지만 그들이 의롭다 함이 되는 것은 성령께서 실제로 적당한 때에 그리스도의 은혜를 실시하심으로 비로소 실현된다.
2> 하나님께서 칭의를 받은 자들의 죄를 간과하신다는 것이다. (도덕률폐기론) 이들은 행위 언약으로서의 하나님의 율법과 삶의 법칙으로서의 하나님의 율법간의 구별과 칭의와 자녀로 삼으심, 또는 하나님의 신자에 대한 심판자로서의 관계와 아버지로서의 관계에 대한 구별이다. -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범죄한다 해도 칭의권 상태에서 떨어지게 되는 일은 없다. 그러나 그 범죄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분노를 당하게 된다.
3. 칭의 교리의 왜곡
영국에서 칭의 교리의 왜곡이 일어나고 그리고 청교도 사이에서도 칭의 교리 본연의 영향력을 점진적으로 빼앗아 버렸다.
알미니안주의 와 리차드 박스터의 신도덕률주의이다.
- 첫 번째 주장: 인간의 믿음 활동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었다.
- 두 번째 주장: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 그리스도의 적극저이며 소극적인 순종에 의한 구속의 획득과 성령에 근거한 구원의 적용 간에 직접적인 상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알미니안의 대답은 그리스도의 속죄가 모든 사람의 구원을 가능하게 했으나 반드시 현실상의 어느 누구나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대속의 개념을 폐기하는 것을 뜻했다.
세 번째는 은혜 언약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택된 자에게 “내가 ... 할 것이고 너는....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시는 효과적인 부르심에 의해 일방적이며 무조건적으로 부과한 관계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것에 대한 알미니안의 대답은 은혜 언약이 현재의 믿음을 조건으로 현재의 용서를 주고 믿음의 지속을 조건으로 최후의 구원을 주는 새로운 율법이라는 것이었다.
네 번째는 믿음이 본질적으로 굳은 신뢰하는 것이다. 알미니안의 대답은 믿음이 본질적으로 의지적(어떤 일을 행하기 위해-즉 그리스도가 마련한 새 율법에 의해 살기 위해 전념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다섯 번째는 칭의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라는 것이었다. 알미니안들은 믿음자체가 칭의 근거로(새율법에 대한 순종) 의이며 하나님께서 그렇게 받아들이신다는 것 이었다.
그런데 알미니안의 주장들이 청교도 대열로 조금씩 잠식해 들어왔다.
알미니안 청교도는 존 구드윈 / 불 감독 (야고보로 바울을 해석) 이들은 새로운 율법주의를 낳게 되었다. 이들의 사상은 현재 꾸준하게 도덕적 노력을 하는 것이 내세의 구원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역사에 의하는 믿음의 의미는 망각되었고 회심과 확신의 경험은 영혼에 위험한 ‘광신’으로 처리되었고 현재의 칭의는 더 이상 중요하거나 흥미 있는 논쟁이 될 수 없었다.
유럽대륙에서 사우머 신하교의 ‘신 감리교도들’의 중재신학 을 발화, 스코트 존 카메론과 모이스 아미라우트 - 아미랄드 주의 (칼빈주의와 알미니안 주의 얼치기) - 리차드 박스터가 지지(1690 박스터주의- 신도덕률주의)
이들은 은혜 언약과 무한적(보편적) 대속에 대한 알미니안 견해를 채택하나 특별선택, 효과적 부르심, 궁극적 보존에 대한 칼빈주의의 신앙을 그대로 보유한다.
박스터의 견해는 자연신학에서 나왔다.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나 당시의 정치사상들과 일치되어야 한다고 주장(정치방식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은 통치자로 생각되어야 하고 성경은 그의 법전의 부분으로 생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이중적인 의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새 율법의 제정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의와 참된 믿음과 회개에 의해 새 율법을 순종하는 우리 자신의 의이다. 믿음은 곧 하나님의 새 율법인 복음에 대한 실제적 순종이기 때문에 의에 의해 전가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최초의 법전이 도덕률의 수행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비록 새 율법에 의해 의로우나 옛 율법에 관련된 그의 결점들 때문에 매 순간 용서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것들은 정치 구조 개념들에 박스터의 아미랄주의의 구원론과 조화를 시킨다.
이들은 칭의의 근거와 형식적 원인에서 그리스도 자신의 의(도덕 율법의 계율과 처벌을 완성하심)를 우리에게 전가함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논리적으로 “ 하나님께서 두벌 지불 요구를 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도덕률 폐기론과 관련된 것 같다.
이 박스터의 논리에 대한 답변으로 트레일은 1> 박스터의 체계는 로마서 5장12절 이하에 제시된 두 번째 아담 그리스도의 대표적 지위와 명백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백성에게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는 근거는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간의 이 독특한 연합관계에 있는 것이다. 2> 박스터의 체계는 너무 인위적이고 영적으로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정함과 죄의식의 무거운 짐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는 죄인이 편안함을 얻는 것은 자신의 믿음이 새 율법에 의며 복음적인 의라는 것을 상기함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박스터의 신학에 대한 평가에서
1) 정치적 방식은 그 자체가 합리주의 적이다. 그는 신학에 어색한 덮개를 만들려 한 것이다.
2) 죄에 대한 정치적 관념은 죄를 법률상의 범죄와 유사한 위반과 범죄로 나타난다.
3) 그리스도를 그의 백성들의 우두머리로 보기보다 하나님의 정부의 우두머리로 보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 죄를 사면 받음을 얻는 원인으로 보다는 필수 조건으로 보고 죄의 사면 자체를 개인적 용서 로보다는 공적 특사로 보는 정치적 관념은 주 그리스도를 매우 멀어 보이게 하며 구주보다는 심판자와 더 흡사하게 보이게 한다.
4) 믿음을 신하의 충성과 위탁으로 보는 정치적 관념은 자기 절망적 의로의 중요성을 시야에서 놓쳐버린다.
5) 하나님에 대한 정치적 관념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을 상실한다.
이 이론은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를 하나님의 변치 않는 특성의 계시보다 열등한 것으로 만듦으로 바지가 하나님의 도덕적 존재의 온전한 본질이라는 사상 - 후 시대의 자유주의에 의해 명시된 사상의 문호를 연다.
그는 억지로 성경을 연역적 형틀에 맞추는 정치적 방식의 최초의 합리주의로 사실상 죄에 대해서는 교훈주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아리안주의, 믿음과 구원에 대해서는 율법주의 그리고 하나님의 죄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의 씨앗을 심었다.(후에 그가 목회한 키더민스터 교회가 유니테어리언 교회가 된다.)
칭의 교리의 쇠퇴는 전체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한 청교도의 통찰력을 쇠퇴하는 초기 단계이다.
4. 휫필드의 설교
휫필드는 강력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주장하고 의지하라고 설교한다.
믿음에 의한 칭의의 성경의 복음에 대해 완전히 알고 있어 표현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그에 의해 영국 기독교의 새장을 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