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두환의 음본세-7
문화행정 (文化行政 culture administration)
정두환 (문화유목민)
“... 오늘날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기분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합리적 경영의 자리에 감성 경영이 들어선다. 오늘의 경영자는 합리적 행동의 원리와 결별한다. 그는 점점 더 모티베이션 트레이너를 닮아간다. 모티베이션Motivation은 기분Emotion과 결부되어 있다. 두 단어 모두 움직임Motion을 표현한다. 긍정적인 기분은 모티베이션의 강화를 위한 효소가 된다. ...” 한병철의 책 『심리정치』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지금 시대 기업의 중요성 특히, 기업경영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지금의 세상은 감성에 방점이 있다. 열심히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하는 목적이 더욱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불과 얼마 전 시대에 최고의 직업군으로 꼽혔던 공무원과 선생님의 인기가 점점 떨어지는 이유는 엄격한 규율과 상명하복, 그리고 무한 책임을 요구하는 사명감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공직 생활과 거리를 멀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대를 조금 찬찬히 들여다보면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과 사회에 요구하는 것이 서로 비켜가는 느낌이 많다. 서로를 향한 조금의 이해가 필요하다. 이 이해는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의 조류에 따라 1970년 전후에 등장한 분야가 예술경영이다.
예술경영(藝術經營)
여기에는 두 가지가 복합되어 있다. 예술과 경영이 만나는 것이다. 우선, 예술(藝術)의 정의를 사전에서 살펴보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인간 활동과 그 산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국어사전은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방점은 ‘아름다움과 창조’에 있다. 또한 경영(經營)은 ‘사업이나 기업 등을 계획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함.’으로 정의하기에 방점 또한 “계획적 관리 운영”에 있을 것이다. 이 창의성과 계획성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을 '예술경영(art management)'이라는 영역으로 현대 사회가 새롭게 만들어 냈다. 이는 “예술단체나 기관의 경영으로, 과거에는 예술이 행위 위주였지만 현대는 예술 행위가 관객, 사회와 밀접한 것이 될 수 있도록 경영을 도입하고 있다. 그 결과로 예술경영은 예술의 품질과 예술기관의 서비스를 향상시키고 고객의 가치를 창조하며 사회에 기여하도록 돕고 있다. 예술경영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다양한 요소를 소개한다.”고 예술경영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이를 조금 더 살펴보면 용호성의 책 『예술경영』에는 ‘예술경영 art Management’과 유사한 용어로는 ‘예술행정 arts administration’, ‘문화행정 culture administration’, ‘문화경영 culture Management’ 등이 있다고 소개한다. 이는 유사한 것 같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어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이 예술경영이 현대 사회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직군으로 알려지고 있는 이유는 다양하다. 이해를 높이기 위해 먼저 BTS를 보자. K-한류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이들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들이 ‘잘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들을 발굴하고, 키워내어, 세상에 어떻게 선보일 것인지, 무엇을 선보일 것이며, 어떻게 이들의 행보를 걸어가게 할 것인지는 BTS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 이 전체의 큰 계획을 그리고 모든 퍼즐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흔히 ‘기획사’ 또는 ‘Management’라 부른다. 한 팀을 운영하거나 적은 일정 또는 작은 행사는 기획사가 손쉽게 움직일 수 있지만, 이들의 더 큰 미래를 그리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조직화된 구조’ 즉 ‘System’에 의해 움직여야 가능하다. 이러한 일들을 서로의 영역에서 책임지고 만들어가는 것을 ‘예술경영’이라 할 수 있다. 예술경영을 쉽게 풀어보면 ‘예술가의 예술 활동 영역을 더 깊고, 넓게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그 결과물을 관객들에게 더 많이 알려, 관객과 만나는 기회를 다양하게 펼쳐 예술의 상품성을 극대화하는 영역’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영예술(經營藝術)
경영예술은 어떤 영역일까? 이는 영역이라기 보다는 경영을 예술 행위와 같이하길 바라는 희망 사항이 담겨있는 언어다. 글 머리에 이야기했듯이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앞으로의 경영을 “합리적 경영의 자리에 감성 경영이 들어선다.”로 예언하였다. 지극히 ‘이성’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자리에 ‘감성’이 들어온다는 것은 매우 모험적이고 위험한 일이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소비층의 감성을 매우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 기업이다. 이는 경영 관계자가 소비자의 감성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회사가 흔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합리적 선택만이 필수적이던 시대와 다르게 합리적 선택을 위한 창의성을 요구하는 것이 지금의 시대이니 말이다. 경영인들이 점점 어려운 숙제를 풀어가야 하는 숙명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문화행정 culture administration’을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높은 복지와 수준 높은 문화를 요구한다. 특히, 복지분야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으므로 인하여 다양한 정부 정책도 많이 만들어 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문화분야는 아직도 일부분의 국민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인식이 강하여 전 국민들의 관심이라기 보다는 해당분야에 활동하는 사람과 관심있는 일부 국민들의 이야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정책이 바르게 세워지고 문화행정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면 국민의 문화복지 분야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자리잡을 수 있으며 결국, 이는 전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되는 것이다.
행정분야는 어쩔 수 없이 수동적이다. 오죽하면 융통성이라는 불확실한 말을 할 때 행정의 정점에 있는 행정 공무원을 “융통성 없는 사람”의 대명사로 꼽겠는가? 하지만, 행정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되는 부분이 훨씬 많다. 권한은 없는데 책임은 주어지니 결과적으로 행정하는 입장에서는 법대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법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법을 해석하여 집행하는 입장이 수동적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무원사회에서 행정을 예술처럼 할 수 없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요즈음 말로 해석하면 ‘적극행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요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이유는 공정성의 문제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 완전하게 일치되는 것이다. 당사자가 해당되면 당연한 것이, 타인에게 해당하면 혜택이 되는 것이다. 내가하면 로멘스가 타인이 하면 불륜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면 공정성의 시비에서 한치도 자유로울 수 없기에 공무원들은 소극적 행정을 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공무원 전체를 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체적인 흐름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공무원들께서는 오해는 마시라!. 이러한 가운데서도 적극행정의 모습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필자는 여기서 문화 분야의 적극행정 즉, ‘문화행정 culture administration’의 한 예를 살펴보겠다. 본 책 지난 5월호에 필자가 작성한 ‘부산 음악, 청년 음악인에서 희망을 보다.’에서 올 2023년 부산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합창단 (시즌단원) 단원 모집 결과를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작년에 처음으로 시도한 시즌단원 제도의 문제점과 보완점을 이야기하며 희망적인 미래를 말했다. 이르긴 해도 그 첫 번째 결과물이 지난 6월 13일 부산시민회관에서 나왔다.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부터 모든 진행 과정을 부산시에서 주도적으로 개입하여 부산시가 책임지는 모습으로 일을 추진하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날 공연은 2023년 부산오페라하우스 시즌 합창단/오케스트라 단원과 공개 오디션을 통해 합격한 솔리스트만으로 구성된 연주였다. 이 공연을 위해 시에서는 가장 먼저 운영위원(예술총감독을 겸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합창지휘자, 협력감독) 3인을 먼저 선발하여 이들이 중심이 되어 단원 모집을 위한 오디션을 보게 하였으며, 이들이 선출한 단원들을 직접 연습시켜 무대에 올린 것이다. 모든 책임을 부산시가 감당하며 이를 위한 예산을 비롯, 모든 조건을 하나씩 만들어 나갔다. 예술가는 예술 행위에만 전념하고 부산시에서는 적극적인 행정지원으로 이들과 협업하였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며 희망적이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부산의 음악 미래는 매우 밝다고 할 것이다. 한 번의 성공을 보고 단언할 수 있느냐는 말에는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 공무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있다. ‘전례(前例)’ 즉, 이전에 있었던 사례를 이야기한다. 좋은 전례가 있으면 다음은 시민의 몫이다. 적극적인 문화행정을 통하여 좋은 전례를 만들었으니 국민이 계속 좋은 시정(市政)을 요구하면 시의 정책은 좋은 쪽으로 가게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희망적이라는 것이다. 부산시 스스로가 적극적인 문화행정을 통하여 성공할 수 있는 방향을 보았는데, 지속적인 적극행정을 하지 않을 명분도 없지 않은가? 좋은 것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는 우리 시민의 몫이다. 다시금 한병철로 돌아가자 “우리는 정말로 자유롭고자 하는 것일까? 우리는 자유롭지 않아도 되려고 신을 발명하지 않았던가? 신 앞에서 우리는 모두 빚(Schuld. 이 단어는 죄를 의미하기도 한다)을 진 존재다. 그런데 빚은 자유를 파괴한다. ··· 우리가 빚이 없다면, 즉 완전히 자유롭다면, 우리는 정말로 행동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행동하지 않아도 되려고, 즉 자유롭지 않아도 되려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영원히 채무자로 머무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행동하지 않으려고 적극적인 행동에서 한 발 뒤로 빠지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할 일이다.
이번 예술인들과 부산시의 적극행정을 바라보며 우리에게도 좋은 사례들을 많이 만들어 더욱 살 맛나는 도시, 희망적인 도시를 만들 책임이 모두에게 있음을 더욱 가슴에 새기는 기회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