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맞선 가거도의 노선장
고기를 잡아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고흥산 선장에게는 이 한 척의 배가 모든 것이었다.
초속 58m의 강풍에 15m를 넘는 파도, 사상 최악의 태풍 한가운데서 6시간 동안 거친 파도와 싸워 이기고 배와 함께 무사히 귀환한 늙은 어부가 있다.
목포 남서쪽 150km,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지난 태풍에 이곳의 배는 모두 부서지고 고흥산(64세) 선장의 자그마한 어선 해두호(3톤)만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
다른 어부들은 모두 배를 잃은 것이다.
기상관측 이래 가장 강력한 제12호 태풍 프라피룬은 작년 8월 31일 서해 남쪽 머나먼 외딴섬을 덮치고 있었다.
이날 새벽 바다에 그물을 치고 항구로 돌아온 고흥산선장은 태풍이 가까이 왔다는 소식에 동료 어부들을 육지로 내려 보내고 다가오는 태풍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가거도에 있는 배 35척 중 이미 26척은 육지에 올려진 상태였고, 8척은 방파제 뒤에 닻을 내리고 태풍에 대비하고 있었다.
태풍이 불 때면 목포항이나 흑산도 항으로 피항을 해야 하지만 고선장과 몇몇 어민들은 태풍이 빗겨갈 것이라는 예보를 믿고 피항하지 않았다.
그러나 태풍은 가거도 정면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른 배들과는 달리 해두호는 기중기로 육지에 올려놓기에는 큰 배에 속했다. 그렇다고 피항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설사 육지에 배를 올려놓아도 무사할 수 없을 것이라고 고선장은 생각했다.
해두호는 고선장이 8년 전 조그마한 나무어선을 팔아 그동안 모은 돈을 보태 마련한 것이다. 2남 5녀를 길러내고 현재는 26세의 막내딸과 함께 살고 있는 고선장 내외에게는 이 배가 모든 것이었다. 배가 파손되면 고기를 잡아서 나오는 돈으로 하루하루를 근근히 이어가는 이들 가족에게 생계를 이어갈 길이 없다.
“굶어 죽으나 바다에 빠져 죽으나… 차라리 배를 몰고 바다로 가자. 바다에 떠 있으면 배는 상하지 않는다. 내가 죽으면 배도 죽고 내가 살면 배도 살 것이다.” 고선장은 바다로 나가 태풍을 기다렸다.
오전 8시. 서서히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하면서 제12호 태풍 프라피룬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파도, 아니 바다가 통째 넘실대며 높이가 점점 높아졌다. 바다는 10여 미터 솟구쳐 방파제를 훌쩍 넘었다. 방파제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고흥산선장은 우선 해안선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해두호의 닻 3개를 모두 내려 배를 고정시켰다. 그리고 파도에 휩쓸려 나갈 것을 우려해 겉옷을 벗고 맨몸으로 섰다. 고선장은 방향타를 잡을 때마다 늘 끼던 한 짝뿐인 낡은 스키장갑도 벗어버렸다. 방향타를 잡은 손이 미끄러져 방향이 바뀌어 파도가 배의 측면을 치게 된다면 그것으로 끝장인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파도의 방향은 북서, 고선장은 방향타를 움직여 뱃머리를 정확히 파도 방향에 맞췄다. 고흥산선장은 엔진 출력을 최대로 올리면서 거대한 파도를 향해 정면으로 맞섰다.
“파도가 칠 때 정면으로 배를 몰고 들어가지 않으면 날아가버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배를 타기 시작한 고선장의 뱃사람 경력 40년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배가 견딜 수 있을까.’ 태풍이 몰아온 파도에 정면으로 부딪힐 때, 해두호의 뱃머리는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로 솟아올랐다. 뱃머리가 90도까지 상승해 고선장은 배 후미로 밀려 내려갈 뻔했다. 배는 30초 동안 계속 하늘로 솟구쳤다가 30초 동안은 다시 수직으로 떨어졌다. 고선장은 오른손으로 방향타를 고쳐잡고, 왼손으로는 기어를 후진으로 바꾸어 엔진 출력을 높여 배가 앞으로 나가지 않도록 제자리로 갖다 놓았다.
어느덧 오전 10시 20분이 되었다. 파도는 방파제 끝 쪽에 있던 40톤급 신광호와 승일호를 침몰시켰다가 그것도 모자라는지 배 두 척을 번쩍 들어올려 육지로 내동댕이쳤다.
고선장은 그때 일을 이렇게 회상한다. “배 몬 지 40년이 넘었는데 자신감이야 있었지. 하지만산더미같이 높은 파도가 끝도 없이 몰려오니 겁도 나더구먼.”
정오가 되자 태풍의 위력은 한층 더 거세졌다. 고선장은 배가 파도와 부딪히면서 물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 뱃머리를 확인하면서 계속 남동향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심한 물보라로 이미 계기반의 나침반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방파제 뒤에 있던 배 6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갑자기 천둥치는 듯한 소리가 나고 방파제가 80m나 파도에 휩쓸려 나갔다. 방파제가 무너지자 육지에 올려놓은 배도 형편은 마찬가지였다. 배란 배는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
해안에 나와 고선장의 사투를 지켜보던 주민들은 선박용 마이크를 통해 “배를 버려요” 하고 간절하게 외쳤다. 그러나 이제는 배를 버리고 물속으로 뛰어들 수도 없었다. 고선장이 태풍과 싸우는 동안 해안에서 이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어느덧 가거도 전주민이 해두호를 지켜보고 있었다.
주민들은 해두호가 파도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으면 “아,” 그러다가 다시 물 위로 떠올라 아직도 방향타를 놓치지 않고 있는 고선장이 보이면 모두들 “와” 하고 환호를 질렀다.
고선장의 부인 임복진(63세)씨도 해안에서 남편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인양해 놓았던 배가 강한 파도와 강풍에 부서지면서 날아온 파편에 맞아 늑골이 6개나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다.
10여 명의 청년들이 잠수복을 입고 대기하고 있었다. 해두호가 파도에 휩쓸리면 바다에 뛰어들어 고선장을 구할 참이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청년들은 기꺼이 바다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었다. 배가 보이지 않을 때마다 바다에 뛰어들려는 청년들을 마을 노인들이 한사코 붙들고 늘어지는 비장한 광경이 되풀이됐다.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태풍과 6시간의 사투를 벌인 고선장은 오후 4시 30분이 넘어서면서 서서히 약해지는 파도를 느꼈고, 그제서야 어깨와 허리가 제 몸이 아닌 듯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가거도를 통째로 짓이겨놓은 태풍은 오후 6시쯤 고선장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서서히 북쪽으로 꼬리를 감췄다. 그제서야 고선장은 배를 항구 쪽으로 움직여 올 수가 있었다. 가거도 주민들은 배에서 내리는 고흥산선장을 얼싸안고 만세를 불렀다. 어촌계장 정석규(43세)씨는 “태풍에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마을은 잔치 분위기였다”고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볼일 볼 재간이 있어야제. 그냥 바지 입은 채로 해결했지. 허허허.” 그때의 악몽 같은 6시간의 기억을 더듬는 고선장의 얼굴에는 오래전 추억을 이야기하듯 대수롭지 않다는 웃음이 묻어났다. “그물 건지러 가야제.”
해두호는 섬 전체 주민의 희망이다. 고선장이 해두호를 살려내지 않았더라면 가거도 주민들은 지난 추석 차례상에 그 흔한 생선 한 마리 올려놓지 못할 뻔했다. 주민들은 고선장의 출항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만선을 기대한다.
행정자치부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 제12호 태풍 프라피룬으로 인해 모두 1400억 원의 재산피해가 났다고 한다. 그중 가거도에서 난 피해액은 방파제 파손액을 제외하더라도 무려 100억 원이 넘는다.
당시 태풍으로 해두호를 제외하고는 마을 배 대부분이 파손됐다. 피해 규모가 작은 어선의 경우에도 1000만 원의 수리비가 소요되고, 완파의 경우에는 7000~8000만 원을 들여 새로 건조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배들은 수리비를 대출받아 복구되었지만 국가에서 약속했던 수리지원비가 언제 나올지 몰라 주민들의 시름은 커지고 있다.
한편, 날아온 배 파편에 다친 고선장의 부인 임복진씨는 목포 한국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 지난해 11월 중순에 퇴원해 현재는 많이 회복한 상태이다. 고선장 또한 해두호를 타고 태풍과 싸울 때 어금니를 너무 꽉 다물어 이가 많이 상했다. 현재도 그는 치과 치료를 계속 받고 있다.
(200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