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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후기 스크랩 삶=음악, 그리고 감동...피아니스트 김민정 독주회
반잔 추천 0 조회 24 07.09.11 18: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F. Chopin(1810-1849)            Waltz No.10 b minor Op.69-2

 

단조로운 멜로디, 일정한 반복이 있다. 삶에서도 그러한 단조롭고 일정한 반복적 리듬이 늘 함께 한다고 여겨진다. 그러한 삶이 굴곡 심한 삶 보다도 더 못난 삶은 결코 아니다.

 

조금 뒤로 나앉아 보다 객관적인 상태에서 살펴보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굴곡 심한 삶을 누리기보다는 단조롭고 일정한 반복이 있는 삶을 누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조롭고 반복적인 것이라 해서 보잘 것 없는 삶을 의미하진 않는다. 전체로 보면 분명 그러할 지 모르나, 실제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개개인의 삶은 수없이 많은 고민과 번민의 연속이 있다.

 

보다 객관화시킨 인간 삶을 볼 때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렇게 넓게 관조해 보는 시각을 가져 보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 자신의 삶이 결국 모든 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속에서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살펴 볼 성찰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늘 겪는 것이긴 하지만, 하필이면 음악회에서 나는 종종 성찰의 기회를 갖곤 한다. 굳이 내 삶의 짜잔한 군더더기는 아닐 지라도 지난 날 내 삶의 큰 줄기를 되새겨 보고 어떻게 사는 것이 보다 나은 삶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끔 음악은 이끌고 있다. 그러하기에 적어도 나에게 있어 음악은 일기와도 같은 솔직함과 반성이 있다. 비록 일기처럼 글로써 다 기록하진 못하지만, 그 성찰의 크기는 찌든 삶에 큰 여유를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R. Schumann(1810-1856)         Piano Sonata No.2 in g minor. Op.22

 

Ⅰ. So rasch wie moglich

 

큰 떨림이 있었다. 맑고 힘찬 기운이 섰다. 짧은 음들이 뒷음에 쫓기듯 서두르지만, 결코 소리가 앞지를 순 없다. 잠시동안의 쫓김 뒤에 찾아오는 여유와 다시 시작되는 치열함이 우리네 인생사와 닮았다.

 

반짝거리는 피아노 덮개에 비춰진 현의 떨림을 보고자 하나, 그 떨림은 보이지 않고 들리기만 한다. 보이지 않는 영역의 존재? 특정한 영역의 건반들만이 오늘의 주인공이기 때문인가?

 

빠르게 혼재된 요란함이 공간을 심하게 흔들 때, 문득 '나는 지금 어디에 존재하는 것인가'하는 철학적 의문이 슬며시 스며 든다. 무대 위에서 보여지는 공연과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는 나는 지금을 충실히 즐기는가? 갑작스레 이 공간과 분리된 내 이성의 성찰이 나로부터 떨어져버린 나의 존재를 느끼게 하고 있다.

 

Ⅱ. Andantino

 

출발의 요란함이 차분함으로 승화되어 객석과 무대를 지배할 즈음, 삶은 다시 나의 뇌리 속에서 치열함을 버리고 맑음으로 섰다. 무언가를 채움에 있어 혼란과 요란함보다는 여유와 비어 있음을 채우는 것이 더 알찬 것인지도 모른다. 비울 수 있었기에 더 알찬 희망이 보이지 않던가?

 

모니터를 위해 이곳에 있긴 하지만, 나는 모니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할 수 있는 이 시간을 즐기면서 사랑하고 있다. 음악공연에서 만큼은 선량한 비판자이기를 포기한 채 즐거움의 원천과 사색의 고요라는 호사를 누린다. 내 삶은 그러기에 충만할 수 있고 비움의 미학을 즐길 수 있다고 믿는다.

 

Ⅲ. Scherzo

 

다시 지나치게 빠르진 않지만 적지않은 빠르기의 연주들이 강한 톤의 비트를 객석으로 마구 쏟아낸다. 그 톤들이 제법 강함으로 느껴진다. 이런 강함과 대비될 수 있는 앞의 악장들이 존재하기에 각각의 악장은 우리의 삶과도 다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교되는 악장의 대비는 각각의 개성들이 넘쳐나는 우리네 삶의 그것과도 흡사하다. 그래서 음악은 어쩌면 인생을 담은 소리나는 그림인지도 모른다.

 

Ⅳ. Presto (Rondo)

 

무언가에  쫓기듯 서두르나, 이루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서두름 위에는 반드시 따르는 공허가 있고, 이런 공허 속에서 다시 재잘되는 삶을 본다. 퉁퉁거리는 음악들이 우리네 삶과 맞닿아 있음을 어느 순간 새삼 깨닫게 된다. 

 

아주 부드럽고 물 흐르듯 스스럼없이 흐르는 소리들 그 속에서 절제된 애끓음을 발견못한 아쉬움이 진하다. 그런 것들이 더 조화로울 수 있어야 우리 삶과도 더 닮을 수 있을 텐데...... 그리만 되어 준다면 우리는 좀 더 많은 공감을 토해낼 수 있고, 그 공감이 무대를 울려 가슴 벅찬 소리를 재창조하게 될 터인데......

 

소리를 느낀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마음으로 공감한다면 그 순간부터 음표와 악기가 하나되고, 여기에 연주자와 관객의 마음이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더 이상의 설명이 불필요한 깊음과 감동이 보여지고 상상으로 이어지는 또하나의 연주가 될 것이다.

 


F. Liszt (1811-1886)              Harmonies Poétiques et Religieuses No.7

 

Ⅶ. Funerailles

 

저음의 무거움이 무대 위를 짓누른다. 점점 더 깊어지는가 싶더니 진중함이 소리로 전해진다. 괴로움인가? 신음들이 깔리면서 그 사이 사이로 조금씩 고음들이 비껴 소리친다.

 

마침내 그 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인 듯 싶으나, 다시 느림이 시작된다. 그러나 저음의 소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여유롭지는 않으나 차츰 밝아져 오는 여명같은 느낌이랄까? 그것만이 남았다.

 

아직도 말러의 음악들을 이해하지 못해 말러의 음반을 스스로 피하고 있는 나, 괴롭고 힘듦이 있을 것이란 내 선입견 때문인지도 모른다. 말러라는 이름에서 풍겨지는 마지막이란 느낌과 그의 음악이 들려주는 스산함과 무겁고 음울함이 나로 하여금 선뜻 접근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지금 연주되는 곡은 그것과는 달리 대비가 살아 있고, 상당히 긍정적인 정서의 힘이 느껴지는 곡이다. 비록 잠시 그 음울한 분위기가 무대를 장악하긴 했지만......

 

말러의 곡은 감정의 기복이 차츰 차츰 순차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과 극단, 극단과 중도 등이 혼재되어 있기에 파격에 가까운 급격한 변화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선뜻 내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오랫동안 익숙해져 온 질서와 조화라는 틀이 무너지는 느낌이어서......

 

그러나 조화가 무엇인가? 그것은 잘 어우러짐이고 그 잘 어우러짐에는 그 어떤 배척과 편견이 없는 상태여야 한다. 불편한 동거일지라도 그 속에서 벗어난 내가 되고 보면 그것은 어쩌면 조화로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조화로움을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더 큰 안목이 필요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 연주되는 소리들은 복잡과 효과음적인 강열함과 갈등이 뒤섞여 있다. 개인의 삶을 누구나 객관적으로 보면 비슷한 듯 보이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다양함과 치열함이 살아 숨쉬고 있듯이, 이 곡도 그러한 다양성과 변화 그리고 치열함이 질긴 생명력으로 버티고 있다. 약간의 평화와 안도가 그 가운데에 숨을 튀어두고 있기도 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칠 즈음 천지가 진동하듯 떨다가 갑자기 멈춰 버렸다. 그리고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D. Kabalevsky (1904-1987)        Piano Sonata No.3 Op.46

 

눈으로 이해하는 것은 깊은 사색이 필요하고, 소리로 이해하는 것은 사색 이전에 가슴으로 먼저 이해하기에 우리는 음악을 더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복잡 미묘한 생각없이 얼마든지 가슴만으로도 즐길 수 있기에......

 

Ⅰ. Con moto

 

쉬운 음들이 살그머니 피어 오른다. 밝음과 순수함이 생명력을 얻는다. 건반과 그것을 두드리는 손, 더 거슬러 올라 연주자의 마음, 좀 더 거슬러 오르면 작곡자의 마음을 따른다.

 

특별히 강열한 연주자의 모션은 없을지라도, 관객을 흡입하는 마력은 없을지라도, 편안함과 평화가 스민 연주이기에 그것만으로도 연주자의 가치는 빛이 된다.

 

굉장히 어려울 것 같은 손 동작에 비해 그 표정은 너무 편안하고 밝다. 그러나 아쉽게도 객석에서 무대 위의 열정을 엿보기가 쉽지 않다. 무대에서건 아님 다른 일에서건 누군가의 열정을 발견한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다. 그러나 오늘 공연에서는 열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열정을 보여주는 연기가 부족함이 아쉽기만 하다. 가슴 벅참으로 뿜어져 나오는 열정이 보고 싶었다.

 

Ⅱ. Cantabile

 

때로는 가위자 모양으로 두드리기도 하고, 때로는 부드러움이 건반을 타고 흐르기도 한다. 다시금 무거움의 세계로 빠져 들기도 하고, 짧은 반복이 있기도 한다. 극단적인 절제의 끝을 즐기기 보다는 좀 더 부드럽게 넘어가는 연주스타일이다. 때로는 애를 끓는 절제가 더 객석을 흔들기도 한다.

 

Ⅲ. Finale
 
화려하고 빠른 기교가 여실히 드러나는 악장이다. 두 손으로 여러 건반을 동시에 터치하는 경우가 잦다. 그러다가 강하고 힘의 넘치는 소리들이 연이어 이어지고 나면 다시 결코 가볍지는 않지만, 무겁다고도 할 수 없는 반복이 있다. 그 뒤를 처음의 빠르고 강함이 객석이나 무대를 지배한다.

건반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달려 가는 빠른 손놀림이 있고, 짧은 연음이 있었다. 건반 위에 얹혀진 손의 엇갈림이 한참이나 있다 싶으면 어느새 강함과 짧음으로 끝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끝맺음이 있었다.

뭐랄까? 아름다움이 갑자기 멈춰 버린 느낌이라고 할까?

뜨거운 박수와 우뢰같은 함성이 무대 위의 연주자를 찬미했다.

오늘도 음악으로 인해 내 삶의 기억들을 주섬주섬 모아 볼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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