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고용참사에 이은 ‘소득분배참사’를 나타내는 경제지표가 연이어 발표되면서 언론과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일제히 지적했다. 그러나 며칠 고개를 숙이는 듯 했던 정부와 여당은 ‘소득주도성장’을 지키기 위한 결사항전이라도 다짐한 듯, 일제히 ‘경제는 괜찮다’는 황당한 목소리를 주말동안 내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축사를 통해, 그리고 장하성 경제수석은 26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여전히 ‘현재 나타나고 있는 경제 문제는 전 정부 탓’이고 ‘현재 우리 경제상황은 구조적 변화를 겪는 것일 뿐 나쁜 상태가 아니며’, ‘소득분배가 악화된 지표를 보니 오히려 소득주도성장을 더 강화해야할 때’라는 뜻을 나타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5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영상축사에서 “우리는 올바른 경제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취업자 수와 고용률, 상용근로자 증가,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증가 등 전체적으로 보면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됐다. 성장률도 지난 정부보다 나아졌고 전반적인 가계 소득도 높아졌다. 올 상반기 수출도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취업자 수, 고용률, 상용근로자 수,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수의 증가를 내세우며 고용의 개선을 주장했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① 취업자 수
취업자 수의 절대숫자는 늘었다. 과거 통계를 보면 당연스럽게 매월 늘어야 되는 통계다. 취업자 수는 지난해 월평균 31만7000명(전년 동월 대비) 늘었다. 이전 5년 동안의 추이를 봐도 월평균 25만~40만명은 나오던 통계였다. 그러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이 본격 시작된 올해 급속히 내려앉았다. 2월부터 10만 명대로 주저앉은 뒤 7월엔 5000명이라는 충격적인 숫자로 내려앉았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유증이 이어지던 2010년 1월에 1만 명 감소한 뒤 8년6개월 만의 최악 수준이다. 이런 통계를 가지고 고용의 양이 개선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듣기에 민망하다.
7월의 충격적인 취업자수 발표가 나왔을 때, 청와대 및 여권인사들은 인구탓을 했다. 그러나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감안해도 경제 성장 등을 고려하면 월 20만 명 이상은 늘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도 지난 22일 국회에서 “월 10만~15만 명이면 정상적 취업자 증가”라고 했다. 정부도 올해 취업자 수 증가폭 목표를 당초 32만 명으로 잡았다가 18만 명으로 낮췄다.
② 고용률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고용률’도 살펴보자. 취업자수 통계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많은 비판이 따르자, 정부 및 좌편향 경제학자들이 고용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들고 나온 통계가 ‘고용률’이었다.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 중 취업자의 비율을 뜻하는 고용률은 그동안 꾸준히 상승해왔다. 분모인 인구 수가 계속 줄면 취업자 수가 제자리여도 고용률 수치는 증가로 나온다. 따라서 인구 증가가 둔화되는 국면으로 접어들면 고용률이 계속 상승해야 정상이라 하겠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말과는 달리, 올 들어 고용률은 작년에 비해 계속 낮아지고 있다. 올해 1월과 2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0.7%포인트, 0.1%포인트 높아졌지만 이후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다 6월 0.1%포인트 낮아졌다. 7월에는 고용률이 67%로 지난해(67.2%)보다 0.2%포인트로 하락 폭이 커졌다.
통계청이 처음 집계하기 시작한 1999년 6월 고용률은 60.3%로 출발해 전반적으로 상승세를 유지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월별 고용률이 전년보다 여러 차례 떨어졌지만 2010년 이후에는 단 5번을 제외하고는 월별 고용률이 매번 오르거나 전년 수준을 유지했다.
월별 고용률이 전년보다 떨어진 것은 △2010년 1월(전년 같은 달 대비 0.2%포인트 하락) △2012년 12월(0.1%포인트) △2013년 2월(0.2%포인트) △2013년 3월(0.2%포인트) △2013년 5월(0.1%포인트) 등이다. 노동시장이 극도로 침체될 때 고용률 하락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올해 6월부터의 월별 고용률 하락은 2013년 5월 이후 5년 1개월 만이다.
③ 상용근로자 증가로 고용의 질 개선?
문 대통령은 상용근로자 증가 역시 고용의 질이 좋아지고 있다는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이 또한 민간기업의 신규 일자리 증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일괄 전환 정책을 펴면서 특히 공공 부문에서의 정규직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그러나 상용근로자도 지난달 전년 대비 27만1000명 늘었는데, 작년보다 증가폭이 12만8000명이나 준 수치다.
더구나 저소득층에 많은 ‘임시·일용직’은 4월 17만9000명 감소한 데 이어 5월 23만9000명, 6월 24만7000명, 7월 23만2000명 줄었다. 이것은 가계소득 통계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소득1분위(소득하위 20%가구) 가구의 소득이 대폭 감소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상용직과 임시·일용직을 포함한 전체 임금 근로자 수 증가 폭은 올해 1월 32만2000명에서 5월 8만2000명까지 떨어졌고 지난달에는 4만 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④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의 증가는 고용의 질 개선을 의미하나?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증가는 청와대가 그동안 고용의 질 개선의 증거로 줄곧 주장해온 것이다.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빠르게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증가한다면 ‘종업원을 두지 않았던 자영업자가 고용원을 채용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7월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7만2000명 증가할 때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10만2000명 감소했다. 6월에는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7만4000명 증가할 때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9만 명 줄었다.
또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의 수가 늘어난 것 자체가 고용의 질과 양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근로소득자가 안정된 직장에서 해고된 후 편의점을 차리고 직원을 한 명 둔다면,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 수가 1명 늘어난 것으로 통계에 나타나겠지만, 해당 자영업자 고용의 질이 개선된 것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⑤ 경제성장률, 세계 경제성장률과의 격차 오히려 커져
문 대통령은 경제성장률이 지난 정부보다 높아졌다고 밝혔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3.1%를 기록해 2016년(2.8%)보다 0.3%포인트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정부 성장률보다 나아졌다고 말하기는 힘든 수준이다. 이명박 정부 5년 평균 성장률은 3.2%였다. 박근혜 정부 4년 평균 성장률은 2.95%였고, 2014년에는 3.3%였다. 정부가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2.9%로 낮췄고, 목표치가 달성되더라도 2년 평균 성장률은 3.0%가 된다.
또한 전 세계 경제성장률과 비교하면 오히려 경제가 뒷걸음질 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경제는 對外의존도가 커서 세계 경제의 성장률과 비슷한 추세를 보였는데, 2012년 이후로는 사실 세계 경제 성장률에 못미칠 때가 많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격차가 더 벌어졌다. 다른 국가들 성장률에 비해 한국의 성장률은 더 둔화되었다는 얘기다.
기획재정부의 경제전망을 보면, 올해 우리 경제는 2.9%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IMF가 전망한 세계 경제 성장률(3.9%)보다 1.0%포인트 낮다. 2012년(1.2%포인트) 이후 6년 만의 최대 폭이다.
싱가포르, 대만,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주요국가들 중에서 가장 낮은 축이다.
⑥ 가계소득 증대?
문 대통령의 가계소득 확대 주장도 ‘보고싶은 것만 보는’ 경향을 그대로 드러낸다. 대통령 말대로 ‘전반적인’ 가계소득은 늘었다.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53만1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2% 증가했다. 그러나 소득 수준별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소득 최하위 20%(1분위)의 소득은 7.6% 줄었다. 지난 1분기 8% 감소한 데 이어 또 줄어든 것이다. 하위 20~40%(2분위) 역시 1분기에 4% 줄어든 데 이어 2분기에도 2.1% 감소했다.
그럼에도 전반적인 가계소득이 증가한 것은 형편이 좋은 소득 4분위와 최상층인 5분위의 소득이 각각 4.9%, 10.3% 늘면서 전체 소득 증가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득분배의 평등도는 10년 만에 크게 악화됐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 분배를 개선하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의 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현실은 후퇴했다.
⓻ 상반기 수출 사상 최고, 문제는 ‘질’이다
'상반기 수출 사상 최고' 주장도 마찬가지다. 수출액 기준으로는 맞다. 문제는 수출의 ‘질’이다. 수출은 글로벌 경기가 좋아지기 시작한 3~4년 전부터 줄곧 증가하는 추세다. 상반기에도 수출액은 총 2967억9000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6.3% 늘었다. 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였다. 하지만 증가율만 놓고 보면 작년 상반기(15.7%)는 물론 작년 전체(15.8%)와 비교해도 절반 이하다. 세계 경제가 좋아지고 있는데 오히려 수출 증가가 둔화되었다는게 더 문제다. 또한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 의존도가 심해진 것도 문제다.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 증가율은 올 2월부터 마이너스 상태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25일 발언은 경제지표를 심각하게 왜곡되게 해석한 것이다. 현재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여권인사들은 경제 전문가들의 충고를 들으려하지 않는다. 인구 탓, 언론 탓, 前 정부 탓, 날씨 탓 등 끊임없이 책임을 전가하며, 경제지표 또한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보려고 한다. 급기야 통계 탓을 하기에 이르렀다. 얼마 전부터 통계 표본을 무리하게 늘린 탓에 고용 및 가계소득 통계가 악화된 것이라고 주장하더니, 26일 통계청장을 전격 경질했다. 13개월만에 통계청장을 교체했는데, 역대 통계청장 중 가장 단기간의 교체다.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 상황을 제대로 진단하고 직시해 문제를 고치려는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 부정’의 모습이 강하다. 앞으로는 통계 조작의 시도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