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타이틀을 모두 가진 고창 선운사의 송악
서해안 고속도로 고창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오면 한 달음에 선운사다. 주차장에서 선운사로 걸어 들어가는 입구, 관리사무소 옆에는 도솔천이라는 조그만 개울이 흐른다. 송악은 냇가 건너 절벽에 붙어서 겨울의 눈 밭도 아랑곳없이 사시사철 푸름을 자랑하고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쳐도 송악은 언 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선운사의 마스코트이다.
송악은 눈보라치는 매서운 추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늘 푸른 덩굴나무다. 따뜻한 남쪽의 섬지방과 서남 해안을 따라 인천 앞 바다까지 흔하게 자란다. 대부분의 송악은 다른 나무들과 햇빛 경쟁하여 쑥쑥 하늘로 뻗을 수 있는 조상의 음덕을 입지 못하고, 땅위를 이리저리 기어 다니거나 다른 물체에 빌붙어야 하는 슬 픈 운명을 타고났다. 어쩔 수 없이 주인 허락도 받지 않고 전세를 들지만 주인에게 가능한 폐를 덜 끼치는 배려도 할 줄 아는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나무다. 공기뿌리의 한 종류인 부착근(附着根)을 내밀어 자신의 몸을 붙여 가면서 빌려준 이에게 폐가 가지 않게 조심스럽게 타고 올라간다.
대부분 숲 속에서 큰 나무에게 신세를 지지만 바닷바람을 마주하는 시골집의 담장에 흔히 심기도 한다. 오 래두면 굵기가 10여cm에 이르러 튼튼히 담을 감싸게 되므로 강풍에 담이 넘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 래서 북한 이름은 아예 ‘담장나무’다. 소가 잎을 잘 먹으므로 남부지방의 순수 우리 이름은 소밥나무다. 늦 가을에 연노랑 꽃이 피어 이듬해 늦봄에 팥알 굵기의 새까만 열매가 된다. |
이곳 송악은 자연 상태에서 육지로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다. 가장 멀리 북으로 올라와 추위를 이겨내는 기특함뿐만 아니라 굵기나 나무 길이와 나이를 비롯한 모두에 있어서 우리나라 최고라는 타이틀을 다 가지 고 있다. 우선 나무의 뻗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송악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 송악은 개울가 작은 절 벽의 아래쪽에 뿌리를 박고 절벽에 붙어 오른편 반쯤을 온통 뒤덮었다. 줄기는 지난 세월의 험난함을 말해 주듯 아래서부터 구불구불하게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다. 바위에 오랫동안 붙어있다 색깔마저 바위처럼 닮 아버린 줄기는 이리저리 용트림으로 이어간다. 땅위 약 5m정도부터 비로소 가지가 나와 잎 달림을 한다. 갈래줄기를 합친 땅에 닿은 밑 둘레는 0.9m, 가슴높이에서는 0.5m에 이른다.
뿌리에서 절벽꼭대기에 걸치는 나무의 길이는 약 15m이고, 가지가 퍼져 있는 너비는 12.8m정도이다. 눈대 중으로 보아도 그가 빌려 쓰는 절벽의 넓이는 10여 평은 족히 된다.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는 아무런 자료 가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 나무 나이다. 절벽을 쳐다보면서 나이를 셈해본다. 다른 곳에서 송 악 줄기를 잘라 조사한 현미경사진을 보니 1년에 0.1cm가 자라기도 바쁘다. 이를 근거로 삼고, 이 송악은 노거수이니 다른 곳 송악보다 덜 자랐다고 본다면 나이는 ‘2~300년 이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얼치기 나 이지만 그래도 깜깜 모르는 것 보다는 낫다.
소개 입간판에는, 이 나무 밑에 있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속설이 있다고 했다. 가끔 머리가 좋아진다는 천연기념물 노거수를 만난다. 먹고 살기에 정신없던 옛 사람들이 머리 좋아지기를 빌었을 여유는 없을 것 같고 아무래도 요즈음 사람들이 만든 전설일 터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