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이 뜬 이후 K- 운운 하는 표현이 많아졌다. K- music, K-culture 라는 말도 나오고 음악계에서는 K- 클래식이라는 말이 이제 꽤 의미 있게 쓰인다. 내친 김에 K-오페라라는 말을 한 번 생각해 본다.
K-오페라 라는 말이 만일 의미있는 것이 된다면 그것은 세계 시장에서 그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는 한국오페라가 가능할 때일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가?
오페라가 음악문화의 꽃, 더 나아가서 고급예술의 꽃이던 시절은 지나갔다. 영화와 텔레비전과 프로 스포츠가 없던 시절, 오페라는 제일 좋은 볼거리, 제일 좋은 들을 거리를 제공하는 장르였다. 그러니 가장 돈 많고 세력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고 자연 제일 중요한 사교의 장으로 역할하기도 했다.
약 백년 전 까지만 해도 이러한 사정은 큰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대중시대가 되고 통신과 축음기술의 발달로 음악감상이 손쉬어지면서 오페라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한 마디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오페라의 주된 생산지었던 유럽이 이제 오페라 극장의 규모를 줄여가고 있다. 투자가 옛날만큼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이제 최고의 인력들은 오페라 극장으로 모이지 않는다. 성공이 불투명하고 만일 성공하지 못하면 어두운 그늘에 머물러야하는 오페라 가수의 길은 이제 꿈의 길이 아니다.
서양에서 오페라의 쇠퇴가 일어나는 반면에 아시아에서의 오페라는 상대적으로 발전과 성장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오페라는 최근에 더욱 활발한 성장세를 보인다. 서울을 벗어나기 힘들던 이 장르가 대구라는 새로운 중심을 가진 것이 단적인 예라 하겠다. 이러한 성장은 뮤지컬이라는 라이벌 장르가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무엇이 이러한 성장을 가능하게 한 것인가?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양질의 성악가들이 풍부히 생산되고 있는 것을 손꼽을 수 있다. 금년이 200주년이어서 많은 베르디와 바그너의 작품이 공연되는데 이러한 공연을 무난히 소화해 낼 정도로 성악가의 풀이 넉넉한 것이다. 또 뒤집어서 성악가가 많으니 공연이 많아지게 되는, 즉 공급이 수요를 창출해 내는 면도 있다.
다음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오페라의 수요 또한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최고급의 예술가들과 값비싼 설비와 기술이 동원되는 반면 매우 제한적인 횟수의 공연 밖에 할 수 없는 오페라는 그 성격상 값이 싸지기 어렵다. 제작에 돈이 많이 들지만 동시에 많은 장소에서 그것도 여러 번 되풀이 상영할 수 있는 영화와는 큰 차이가 있고 심지어 음향의 확대를 통하여 인원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뮤지컬과도 비길 수가 없다. 따라서 오페라가 되려면 그 비싼 티켓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청중이 확보되어야 한다. 아니면 공공기관에서의 기금보조가 있어서 티켓 값을 내릴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다행히 한국의 경제 발전은 오페라를 볼 수 있는 수준의 시민들을 지속적으로 늘려왔고 다른 한 편으로 공공기관에서의 지원도 늘어왔다.
경제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일이지만 오페라 같은 고급문화에 대한 욕구가 늘어났다는 것 또한 언급할 수 있다. 사실 최근에 일어난 뮤지컬 붐은 영화와 프로 스포츠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문화적 욕구가 출구를 뮤지컬에서 찾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뮤지컬 붐이 오페라의 청중을 잠식하기 보다는 늘려주는 데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능하게 한다. 즉 뮤지컬로 갔던 고급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확실한 고급문화인 오페라로 연결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이다.
마찬가지 흐름 속에서 나오는 얘기이지만 오페라 극장이 세워지는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고급문화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오페라극장의 건립은 추진되기 어렵다. 과연 그 극장을 채울 수 있는 공연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최근에 부산에 오페라 극장이 새로 기획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다. 이제는 시민들에게 야구장이나 축구장 이상의 자랑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사소해보이지만 중요한 변화가 또 하나 있다. 오페라의 내용을 전달해주는 기술, 즉 자막이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자막이 드물었다. 원어로 부르는 오페라의 공연을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채 볼 수 밖에 없었다. 번역한 대사는 프로그램 속에 있었는데 어두운 극장 내에서 그 프로그램을 읽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때로 대사를 번역하여 한국어로 부를 때도 있었는데 그 불충분한 번역은 고사하고 원래 곡에 잘 들어맞지 않는 대사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어색했다. 알고 보면 격렬한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는 오페라를 그 내용도 모르는 채 본다는 것은 자막 없는 외국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답답한 일이다. 컴퓨터가 도와주는 지금의 자막기술은 마치 영화의 자막처럼 빠르고 정확하여 오페라의 진진한 내용을 감정풍부한 음악과 함께 전달해 주고 있으니 이처럼 감동있는 매체가 따로 없다. 즉 오페라가 이제 재미있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열거한 내용은 K-오페라의 필요조건은 될지 몰라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런데 K-오페라가 K-팝과 현저히 다른 점이 있다. K-팝과는 달리 K-오페라는 외국에 나가서 그 성가를 떨치는 것이 아니라 오페라 관객을 서울, 혹은 대구로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오페라는 가지고 나갈 수 없다. 음악가만 움직여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악가, 기술자, 극장, 청중, 문화환경이 다 함께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K-오페라의 모델은 외국의 청중들을 서울, 혹은 대구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뮤지컬을 보기 위하여 뉴욕이나 런던을 찾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볼 때 충분조건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항은, 위에 열거한 조건들 외에 우리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많은 오페라 공연을 가능하게 만드는, 그래서 좋은 성악가들을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티켓 구매력과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서울이나 대구에 와야 볼 수 있는 공연물이다. 한류를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열성적인 우리나라의 드라마 팬들이 결국 외국에서도 통하는 높은 질의 드라마를 만들었고 우리의 특유한 감성과 제도가 만들어낸 독특한 공연물들이 외국에서도 환영받지 않는가? 결국 답은 우리의 삶이다. 우리 삶 속에 오페라가 살아 숨쉬고 또 오페라에 우리의 삶이 녹아들어가게 되면 K-오페라는 오래지 않아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