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암 신용구 선생 제50주기 추모식 개최
- 제115차 경상원연원회 춘계 법회 및 총회도 함께 열려
천도교경상도연원회(운영위원장 장정갑) 주최로 2월 10일 오전 11시 천도교 교령을 역임한 묵암 신용구(1883~1967) 선생 제50주기 추모식이 서울, 부산, 창녕, 진주, 남해, 고성 등지에서 모인 천도교인 등 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성읍 소재 천도교고성교구(교구장 신상옥)에서 개최되었다.
부암 정덕재 경상도청장년회장의 집례로 봉행된 추모식은 정의적 진주시교구장이 묵암선생의 약력소개, 장정갑 경상도연원회운영위원장과 호암 이정희 교령의 추모사가 있었다. 이정희 교령은 추모사를 통해 영남 일대에 60만 명의 대포덕을 이룬 묵암선생의 덕을 기리고 포덕을 통한 대도중흥의 염원을 다짐하였고, 이어서 고성 송학동에 거주하는 유족 신상옥 고성교구장의 감사의 말씀 후 폐회하였다.
추모식 직후 제115차 경상도연회 춘계 법회 및 총회가 개최되었다. 총회에서는 지난해 사업보고와 결산보고가 있었고, 묵암선생 제50주기 추모식을 계기로 묵암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추진 등 올해 경상도연원회 사업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묵암 선생은 32세 되던 1914년 눌암 황태익 선생의 전도로 천도교에 입도하여 의암성사의 문하에서 동학 천도교의 진리를 전수받고 포덕에 전념하였다. 1919년 삼일운동 당시 경남도청 소재지였던 진주에 주석하며 경남일대의 삼일운동을 지도하다 피체되어 투옥되었고 이후 평생을 천도교 교화사업에 헌신하였다. 묵암 신용구선생은 1960년 4.19혁명 직후 천도교교령으로 선출되었고 정부는 1963년 대한민국 최초로 문화훈장을 수여한 바 있다. 1967년 천도교교령 재직 중 고성읍 자택에서 환원하여 3천여 명의 추모객이 모인 가운데 고성읍 남산공원 기슭에 안장되었다.
한편, 경남 고성의 천도교는 동학시절 대신사께서 고성접주로 성한서를 임명한 바 있고, 이후 동학혁명, 갑진개혁운동 당시 고성지역에도 많은 동학도가 참여하였고, 이후로는 눌암 황태익(1877~1953) 선생과 묵암선생을 중심으로 고성읍, 개천, 영오, 회화 등에서 세력을 형성했다. 고성군 마암면 성전리 일대는 한때 마을 전체가 천도교를 신앙하는 궁을촌을 이루기도 하였다. 눌암 황태익 선생은 삼일운동 당시 고성의 3.1운동과 창원의 삼진의거를 주도하다 피체되었고, 삼일운동 이듬해인 1920년 조선 총독 암살을 위한 경남결사대를 조직하였다가 실패하고 2년 간 옥고를 치루었다. 정부에서는 황태익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83년 대통령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고, 선생의 묘소 역시 고성읍 남산공원 기슭(남산빌라 뒤쪽)에 자리하고 있다.
눌암선생 묘소 안내판(고성교육청4거리에서 5백미터 동쪽). 안내판 옆 주택 마당을 지나 산길로 30미터 정도 오르면 눌암 선생의 묘소가 있다. 눌암선생 묘에서 오십여미터 위쪽에는 묵암 선생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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