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받으실 수난 예고(마17:22-23)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받으실 수난을 세 번이나 예고하신다(마16:21, 17:22, 20:17-19).
마가복음에서도 예루살렘 수난 예고를 세 번에 걸쳐서 언급하며(막8:30-32, 9:30-32, 10:32-34)
마찬가지로 누가복음도 세 번에 걸쳐서 언급한다(눅9:21-22, 13:31-35, 18:31-34).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수난 예고는 비슷하며 누가복음의 수난 예고만 다르게 기록한다.
이러한 차이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목적과 수난의 의미가 복음서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의 첫 번째 수난 예고는 예루살렘 수난의 준비단계에서 언급된다.
예루살렘 수난을 말하는 구조는
수난 예고의 앞과 뒤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정죄하는 내용이 배치된다.
이처럼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고발하는 문맥에서 예루살렘 수난을 예고된다.
따라서 본문이 언급된 단락의 구조는 교차 대칭 구조이다(마16:1-17:21).
교차 대칭의 구조는 총괄적인 설명에 적합하다.
예루살렘 수난 예고는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교회설립 내용 다음에 언급된다.
이러한 문맥의 흐름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 가운데서도 제자들의 충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첫 번째 수난 예고는 가이사랴 빌립보에 이르렀을 때 언급되며(마16:21),
예고 후에는 베드로가 수난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고 항변한다(마16:22-23).
그러나 예수께서는 수난 의미를 알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충성하라고 권면하신다(마16:22-28).
이러한 첫 번째 수난 예고와 대칭을 이루는 것이 세 번째 수난 예고이다.
세 번째 수난 예고는 제자들과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에서 언급하신다(마20:17-19).
세베대의 아내가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의 좌우 자리를 차지하기를 요구한다(마20:20-21).
이에 다른 제자들이 크게 분노한다(마20:24).
이는 제자들이 품고 있던 바를 세베대의 아내가 선수를 쳐서 빼앗았기 때문이다.
이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라고 가르치신다(마20:26-27).
이처럼 세 번째 수난 예고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과 천국의 질서를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 언급된다.
그러므로 중앙에 있는 두 번째 수난 예고는
앞의 첫 번째 수난 예고와 뒤의 세 번째 수난 예고의 핵심이다.
두 번째 수난 예고는 갈릴리에 모였을 때 이루어진다(마17:22-23).
갈릴리에서 예수께서는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서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날 것이다”
고 말씀하신다.
이에 제자들이 심히 근심한다(마17:22-23).
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수난을 당하시는가?
종말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뜻을 이루기 위함이다(갈4:4).
이는 율법 아래에 있는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함이다(갈4:5).
율법 아래에서 종(머슴)인 백성을 아들(자녀)로 온전케 하려는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함이다.
두 번째 수난 예고가 포함된 단위는 마태복음 17:22-20:16절이다.
이 단위는 평행 반복구조이며 반복구조는 강조하고 확증하는데 적합하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자신의 나라인 종말의 천국 율법과 천국의 질서를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확장하여 확증하신다.
두 번째 수난 예고는 성전세 사건을 시작하는 도입부이다.
성전세 사건은 제자들이 어떤 신분과 존재인지를 확인시킨 일이다.
성전세 사건의 핵심은 성전세를 내신 일이 아니라
예수와 제자들이 신분을 재확인하신 일이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께서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냐?
세상 임금이 누구에게서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라고 묻자(마17:25),
베드로는
“타인에게서 세금을 받습니다”
라고 대답한다(마17:26).
이에 예수께서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금을 면하리라”
라고 말씀하신다(마17:26).
이러한 말씀은 마태가 동족 유대인들에게 예수와 제자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하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그 아들로서 천국 왕이시며
제자들은 하나님 아들(자녀)이라는 것이다.
왕과 아들들은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다.
따라서 예수와 제자들은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다.
이는 모세율법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제자들이 율법 아래에 있다면 성전유지와 보수를 위한 성전세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이제 제자들은 율법 아래가 아니라 예수께 속한 천국의 서기관들이다.
율법 아래의 종(머슴)에서 하나님 아들(자녀)이 된 자들이다.
율법을 고집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성전세를 내야 하는 종(머슴)이나
제자들은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는 하나님 아들(자녀)이다.
따라서 왕의 아들들처럼 제자들은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다.
이는 예수께서 성전보다 크시며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서 하신 말씀이다.
두 번째 수난 예고의 단위 구조는 다음과 같다.
이 단위 구조는 평행 반복구조이다.
이는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강조하며 확증하는데 적합한 구조이다.
a 갈릴리에 모일 때 가르치심- 천국의 새 질서(마18:1-35).
두 번째 수난 예고와 제자들의 근심(마17:22-23)
제자들은 천국의 아들들임(마17:24-27)
천국의 질서를 가르치심(마18:1-14)
범죄자가 용서받아서 하나가 된 천국(마18:15-20)
용서하는 자만 용서를 받음(마18:21-35)
b. 유대 지경에서 가르치심 – 천국의 율법(마19:1-20:16)
따르는 큰 무리를 치료하심(마19:1-2)
이혼에 대한 가르침(마19:3-12)
어린아이를 영접하고 안수하심(마19:13-15)
부자 청년의 질문에 답변하심(마19:16-22)
제자들에게 영생을 얻는 길을 가르치심(마19:23-30)
포도원 비유와 나중 된 자가 먼저 됨(마20:1-16)
첫 번째 수난 예고에서 수난의 주인공은 예수이시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최고 통치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에 의해서 수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시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고난과 부활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자신의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구약교회는 음부의 권세 아래에 있는 교회이다.
이는 모세의 말이 시행되는 모세 교회이며 땅에 속한 교회이다.
땅에 속하였다고 함은 휘장 밖 세상에 세워졌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모세 교회는 음부의 권세 아래에 있다.
그러나 신약교회는 아들의 말이 시행되는 아들의 교회이다.
이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았다(엡2:6).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았다 함은 그리스도의 통치에 참여한다는 말이다.
하늘에 앉았다고 함은 죄와 사망이나 음부의 권세가 어찌하지 못하는 영역,
하나님 안에 세워진 교회라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며 한 생명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한다.
신약교회는 하나님 안에 거하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어찌하지 못한다.
이처럼 구약교회는 모세의 말이 시행되는 모세 교회이며
이는 휘장 밖 죄와 음부의 권세 아래에 세워진 교회이다.
그러나 신약교회는 아들의 말이 시행되는 아들의 교회이며
이는 휘장 안의 영역인 하늘에 세워진 교회이다.
이처럼 신약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어찌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마태는 첫 번째 수난에 대해서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라고 기록한다(마16:21).
이는 예수의 수난과 부활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세 번째 수난 예고에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당할 처참한 고난을 자세하게 묘사한다.
그런데 두 번째 예고는 예루살렘에서 당하실 수난 예고의 핵심이다.
예루살렘 수난의 주인공은 인자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넘겨져서 죽임을 당할 것이지만 제삼 일에 살아날 것이다(마17:22-23).
이에 제자들은 매우 근심한다(마17:23).
이에 대하여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두 번째 수난 예고에서 제자들이 큰 근심을 하더라고 말한다.
첫 번째 예고에서는 베드로가 예수께서 수난당하심을 만류하였으며(마16:22-23),
세 번째 예고에서는 제자들이 서로 예수의 좌우에 앉겠다고 경쟁한다(마20:20-24).
그러나 두 번째 수난 예고에서는 제자들이 큰 근심에 휩싸였다고 말한다(마17:23).
이는 예수께서 당하실 수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도 예수를 다윗왕국의 재건을 위한 메시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예수께서 세상적인 다윗왕국을 재건할 왕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의 측근 중의 측근이 되겠다고 서로 경쟁한 것이다.
이처럼 제자들에게 있어서 인자의 수난은 큰 근심거리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자의 고난을 통해서 천국을 확정하시고 온전케 하실 것이다.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