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수원
청수원은 강릉 소방서 맞은 편에 있던 작은 술집 이름이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면서 혼자 살던 내 또래의 여자가, 강릉이면 흔하게 먹을 수 있었던 해산물 안주가 주로 나왔던 누구라도 저렴하게 술을 먹을 수 있던 그런 술집이었다.
내가 그 술집에 가게 된 이유는 아마 청수원이라는 이름 때문일 것이다. 청수원과 허름한 술집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고급 한식집에나 어울릴만한 그런 청수원이라는 이름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나보다.
술집을 드나들면서,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까마득하다. 그녀가 대답은 했었던 것 같다.
프래그래머 일을 하다가, 별안간 술이 먹고 싶어지면 청수원에 가곤했다. 내 집에서 남대천 다리를 건너서 용지각을 지나면 청수원이었다. 별로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일을 하기에, 내가 술집에 가는 시간 역시 일정치 않았다. 다만, 손님이 많을 만한 시간은 피해서 갔다.
그래서 대부분 그녀 혼자 있을 때 방문했고, 그러다가 그녀와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했고, 난 그녀와 별로 할 얘기가 없었던 터라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을 썼다. 그녀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다. 거기에 나의 상상과 다른 이야기를 섞어서 중편 소설 하나를 완성했다.
난, 그것이 소설인지도 몰랐다. 스스로 취해서 썼을 뿐이다.
청수원에 단편 소설 8 개인가를 묶어서 책이 나왔다.
인터넷에 올렸다가 출판사에서 찾아왔다.
책이 나온다길래 신기했다. 내가 소설가가 된 것이다.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책을 낸 작가가 된 것이다.
그때 그녀와 나눈 이야기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녀의 이야기는 순전히 소설 속에 녹아있다. 난 조심스러웠다. 그녀의 힘든 삶이 혹시라도 밝혀져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까봐 겁났다. 강릉은 너무나 좁은 사회니까.
글을 쓰면서, 혹은 소설을 쓰면서, 그리고 살아가면서, 잠을 자면서, 생각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작가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을 했다.
그런데 문득 007 제임스 본드가 떠올랐다. 아! 그거다. 살인면허!
작가는 거짓말 면허를 가진 사람이다. 사실과 거짓말과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느닷없는 거짓말로 이야기를 완성한다. 물론 사기 치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상상 속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일반적인 거짓말과 무엇이 다를까? 하여간 다른 거짓말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작가가 쓴 글은 교묘한 거짓말로 이루어진 장난에 불과하다.
가만히 나를 생각해 봤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써야만 한다는 의무감과 거창한 작가정신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어쩌면, 나는 글을 쓸 동안은 다른 세상 속에서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세상이 어딘지는 나도 모른다. 그곳은 현실도 아닌 허상도 아닌, 제 3의 어떤 곳 일지도.
그곳은, 아무도 모르는 숨겨지고 알수 없는 곳이다. 누구도 가 본적이 없는 곳, 그래서 항상 새로운 곳, 그곳에 발을 디디는 순간, 빠져나올 수 없는 곳,
그곳은 작가의 지식과 상상과 경험과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와 세상의 아픔과 갈등 등이, 마치 콜로이드처럼 섞여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흘러나온 것들을 작가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글을 쓰다보면, 내가 쓰고 있는지 잠들어서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어느 순간은 머릿속과는 전혀 상관도 없이 손가락이 움직여서 자판을 헤매고 다닌다.
그것은 글을 쓴다기 보다 춤을 춘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맞은 것 같다. 작가도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 제 3 의 세상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에 대해, 작가인들 온전한 상태로는 받아 들일 수 없을테니까.
그래서 단 한번도 작가가 될 생각도 없었고, 글쓰기 연습도 한적이 없는 내가 미친 듯이 글을 쓰는 것이다.
글 쓰는 순간은, 무당이 되어 작두위에 올라타고 춤을 추는 것이다. 무당도 역시 현실과 자신이 모시는 신 사이에서 춤을 추니까.
책이 나오고, 청수원에 사람들이 몰렸다는 소문을 들었고, 그녀는 나를 원망했다고 했다.
난 틀림없이 그녀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글에서도 누구에게도 청수원의 위치나 그녀에 대해서도 말한 적 없었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지금도 미궁 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