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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신앙체험수기공모]
가작 : 주님, 저는 발달장애 자녀를 둔 엄마예요
정구실 안나 (인천교구 선학동본당)
가톨릭평화신문 / 2018.03.18. (제1,456호)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714008&path=201803
아침 6시 30분. “건우야! 자전거 타러 가야지~”
“자~전~거”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준비를 하는 우리 집 첫째 아들은 발달장애 2급이다. 일주일에 5번 정도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원으로 자전거 라이딩을 다녀오는데, 첫째와 자전거 라이딩을 하게 된 지 16년이 되었다. 사춘기가 찾아온 5학년 때, 언어 표현이 어려운 아이는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울고, 꼬집고, 때리고, 부수고 하는 행동들이 많아져 급기야 가족들끼리 북경여행을 갔다가 입국이 거절되어 되돌아와야만 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 일로 자전거 라이딩을 시작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북경에서의 사건 이후 나는 몹시 지쳐 있었다. 약을 먹는 것만으로는 에너지가 잠재워지지 않아 늦은 밤에도 송도신도시까지 자전거 라이딩을 하고 올 때였는데 당시 첫째는, 운동과 함께 신약성경 필사를 했다. 글씨도 다 깨우치지 못한 상태였지만 성경 쓰기를 할 때는 이상행동을 언제 했느냐는 듯 어찌나 진지한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들곤 했다. 마태오복음부터 시작하여 마르코, 루카복음에 이어 요한복음까지 모두 다 완성한 그 날은 늦은 시간에 자전거 라이딩을 다녀왔다. 샤워하고 첫째가 성경 쓰기를 마치고 나니 자정이 훌쩍 지났고, 우리 가족은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미사를 드리는 꿈을 꾸었다. 본당 보좌신부님께서 성찬의 전례 때 쟁반처럼 커다란 성체를 “그리스도의 몸” 하시며 아주 조심조심 들어 올리셨다가 행여 성체가 잘못될까 봐 천천히 내려놓는 꿈이었다. 첫째가 신약성경 쓰기를 다 마친 다음에 꾼 꿈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건우를 예뻐해 주시는 신부님의 꿈이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나에겐 그 성체가 마치 건우처럼 느껴져 곤히 자는 남편과 아이들을 깨워서 꿈 이야기를 한 후, 가족 모두 새벽 미사를 다녀왔다. IMF 때, 중소기업을 하던 사촌 동생에게 남편이 보증을 서준 것이 잘못되어 더욱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성체 꿈은 나의 사고를 바꾸어놓았다. 발달장애가 있는 첫째로 인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고, 희생하며 산다고 생각했었는데 하느님께서는 첫째를 통해 우리 가족에게 분명 은총을 주실 거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안나야! 힘들테지만 건우를 감실 안에 계시는 예수님으로 생각하렴” 하고 친정어머님께서 말씀하셨을 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는데 성체 꿈을 꾸고 난 이후에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건우를 통해 하느님께서 분명히 선한 뜻을 이루실 거란 강한 믿음이 생겨났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건우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며, 그 아이가 행복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왜 하필 나에게 발달장애 자녀를 주셨냐는 원망이 아니라, 아이의 장애가 큰 십자가였지만 기꺼이 짊어지겠다고 생각을 하며, 사랑으로 대하니 형을 생각하는 동생들의 마음도 변했다. 사실 첫째는 발달장애, 둘째랑 셋째는 영재 판정을 받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평범 속에 비범을 꿈꾸자!” 하면서 세 아이를 공평하게 대해서 둘째랑 셋째는 서운한 점들도 많았을 텐데 학교에서 방학숙제로 내준 가족신문에 건우를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 집 사고뭉치인 건우 형,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행복을 안겨다주는 고마운 맏형!’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네. 정말 그렇잖아요. 형이 조금씩 무언가를 해내며 좋아지면 가족들 모두 기뻐하잖아요. 남들에게는 당연한 일인데 말이에요. 그래서 고마워요” 하면서 발달장애가 있는 형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렇게 예쁜 마음으로 보듬어주었다.
날씨가 화창한 어느 가을날, 삼형제와 함께 자전거 라이딩을 떠났는데 둘째가 잠깐 “스톱!” 하며 자전거를 멈추라고 하였다. “기현아! 네가 맨 앞에 가고, 그다음엔 건우 형이, 그리고 다음엔 엄마가 따라가세요. 저는 맨 마지막에서 기현이랑 형이랑 엄마를 지켜줄게요” 하는 것이었다. 첫째랑 둘째가 6학년, 셋째가 4학년 때였다. 사업으로 인해 늘 바쁜 아빠 대신에 엄마랑 떠난 자전거 라이딩이 다소 위험하다고 느껴져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발달장애가 있는 첫째 형으로 인해 둘째는 자신이 우리 집의 기둥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일찍 철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둘째가 대견하기도 했지만 안쓰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둘째가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반 학생들에게 장래희망을 적어서 내라고 했더니 대부분의 학생은 자신의 장래 희망만 간단하게 적어냈는데 둘째는 A4용지 한 장 반 분량에다 자신의 구체적인 진로와 함께 발달장애가 있는 형은 무슨 직업이 좋을지, 그리고 형을 먹여 살릴 계획까지 적어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담임선생님께서는 조그만 아이 머리가 이렇게 복잡해서야 되겠느냐며 걱정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엄마랑 아빠가 형을 책임질테니 너희는 걱정하지 말고 자유롭게 살라고 했지만, 아빠의 일로 집안 형편이 나빠진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크게 다쳐서 그 아이의 어깨는 한없이 무거웠을 것이다.
모든 것이 여유로웠을 땐, 첫째의 장애가 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넉넉했던 집이었건만 보증 선 게 잘못되는 바람에 어려워지자 가족 중에 첫째가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였고, 마치 헐크처럼 변해서 학교, 가정, 밖에서 모두를 힘들게 했다. 그 파장으로 둘째와 셋째도 힘들었을 텐데 서로를 의지하고, 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끊임없이 도와주었다. 올봄에 가족들과 식사를 하는데 둘째가 “엄마를 통해 긍정적인 사고를, 형을 통해 다각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어 참 고마워요. 그 두 가지는 그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기에 제가 더 특별한 것 같아요!” 하고 말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은총의 순간이었다.
올해, 첫째는 인천 중구 장애인복지관에 있는 ‘해오름오케스트라’의 오디션에 합격해서 단원이 되었다. 5월 8일 어버이날에 클라리넷으로 오디션에 합격했으니 남편과 내겐 커다란 선물이었다. 해오름오케스트라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오케스트라를 후원해 주시는 이사님들과 복지관 직원들 그리고 부모님들을 모시고 작은 음악회를 열게 되었다. 그날 건우는 ‘이 시간 주님께 기도 합니다’와 ‘아침이슬’을 연주했다. 첫 곡을 마친 후 박수갈채를 받자 갑자기 놀란 얼굴을 하더니 클라리넷을 내려놓은 후 자신도 펄쩍펄쩍 뛰면서 손뼉을 쳤다. 그리곤 시키지도 않았는데 양손을 모아 공손하게 “감사합니다!” 하며 인사를 드린 후 ‘아침이슬’을 연주했다.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 나의 눈시울을 적시었다.
남편의 보증 건과 사고로 인해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힘겨웠을 때, 건우랑 나는 청년 미사를 가곤 했다. 조용한 분위기의 미사보다 기타, 드럼, 플루트, 피아노 등 여러 악기를 연주하며 음악 미사를 드리는 그런 분위기가 우리는 편했다. 미사에 대한 부담감이 덜했기 때문이었을 거로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건우는 음악을 좋아해서 청년 미사를 가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한 소리를 내고, 돌발행동들이 많았던 건우가 미사를 제대로 드리기까지는 2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유아방에서 아기들이랑 미사를 드렸고, 그다음엔 대성전 문밖에서, 그리고 맨 뒷자리에 앉아 미사를 드렸는데 소리를 지르거나 돌발행동을 해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세상에 오픈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몸으로 직접 체험하며 끊임없이 반복해서 연습하는 과정은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서는 그 방법이 가장 좋은 것 같아 미사뿐만 아니라 영화 보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마트에서 장보기 등을 함께했는데 제대로 하기까지는 수천 번, 수만 번의 연습이 필요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느닷없이 큰 소리로 울기도 하고, 드러누워 떼를 쓰기도 했으며, 지나가는 사람을 냅다 때리기도 해서 눈앞이 캄캄해진 적도 많았지만 그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아이는 차츰차츰 세상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아무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의젓하게 미사를 드린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기도’,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사명’, ‘내 발을 씻기신 예수’ 등 청년 미사를 드리러 갈 때마다 지친 내 마음을 달래주었던 그 노래들을 이젠 건우와 함께 클라리넷으로 연주한다는 사실이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해오름오케스트라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오케스트라인데 11월 말에 열렸던 ‘2017 허브콘서트’에서는 해오름오케스트라가 첫 번째 순서로 출연해 15분간 연주를 했다. 나는 그날, 그 시간에,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셨다는 걸 체험했다. 건우랑 내가 그렇게 클라리넷을 연주해냈다는 건 정말 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연주회는 우리 가족은 물론 건우를 사랑해주시는 많은 분께 큰 기쁨을 드렸다.
요즘은 시댁과 친정에 아프신 가족들에게 ‘위로’라는 이름으로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다. 건우랑 같이 클라리넷 연주를 들려드리는데 정말 위로가 되어드리는 것 같아 기쁘다. 여러 남매 중에 막내로 태어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동생에게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가 있다는 사실은 친정 식구들에게 언제나 안쓰럽게 여겨졌다. 더욱이 남편의 사고로 아이들이 한창 사춘기 때 집안 상황도 어렵게 되자 그런 마음들이 더 컸었는데 이제는 달라졌다. 어렵고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내고 첫째는 해봄비(보호작업장)에도 다니며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고 있고, 둘째랑 셋째는 대학 졸업 후 ROTC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시댁과 친정 식구들은 이런 우리 가족들을 자랑스러워한다.
첫째로 인해 우리 가족이 더 사랑하며 일어선 것 같아 고맙다. 그리고 위대한 유산이라고 자신할 만큼 삶에 힘이 되어주는 ‘신앙’을 남겨주신 부모님께도 정말 감사하다. 친정아버지께서는 공소회장님이셨다. 병원과 장례식장이 없었던 시골에서, 공직에 계셨던 아버지와 온화한 성품의 어머님은 늘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셨는데 그것은 우리 남매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받아들이는 삶, 당신들의 삶을 온전히 내어 맡기고,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며 예수님 닮은 삶을 살다 하늘나라로 가신 부모님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분들의 삶을 본받아 우리 가족들도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셋째는 고3 봄방학 때도 꽃동네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너는 왜 그렇게 봉사활동을 하려고 하니?”하고 물으면 “그렇게 물으시는 부모님은 왜 그렇게 봉사활동을 하시나요?” 하고 묻는다. 그런 아들을 보며 때로는 세상의 눈으로 봐 욕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기특하고 고맙다. 가정형편을 생각해서 ROTC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셋째는 지난 11월 말에 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떠났다. 좋은 직장을 마다한 채 “직장은 내년에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겠지만, 봉사활동은 지금 아니면 어려울 것 같아요” 하면서 떠난 아들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선물은 기도다. 성탄절에 카톡으로 보내온 사진 속에 있는 셋째의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비장애인들도 그런 경우가 있겠지만, 건우는 사춘기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찾아온 사춘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5년 전에 완전 폭탄처럼 찾아왔는데 머리를 박는 행동이 심해 한번 박을 때마다 열 바늘도 넘게 꿰매야만 해서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1년 반 정도를 100번도 넘게 머리를 박았던 첫째는 내가 김포 이웃살이로 한국어교사 봉사활동을 하러 다니면서 신기하게 그 행동을 멈췄다. 남편이랑 건우랑 같이 매주 일요일이면 소풍을 가듯이 다녀오는데 그 시간이 첫째에게는 행복한 시간인가보다. 3년 반이 되어가는 지금 첫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우리 가족 앞에 서 있다.
김포 이웃살이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봉사활동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가 얻는 것이 더 많다. 나의 직장인 학교에서 얻는 보람과 행복도 물론 크지만, 캄보디아, 필리핀, 태국, 미얀마, 베트남, 러시아, 파키스탄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학교 학생들과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 인간의 행복은 내가 누리고 싶은 것을 누렸을 때보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든 물질이든 베풀고 나누었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이웃살이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통해 그런 느낌이 더 크게 와 닿는 건, 사랑과 손길이 더 필요한 곳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작은 나의 손길에 비해 이웃살이를 통해 우리 가족이 얻은 은총은 참 많다. 우선은 건우의 오랜 숙제였던 머리 박는 행동이 감쪽같이 없어졌으며, 이웃살이에서 1년 동안 센터장을 하시다 캄보디아로 가시며 클라리넷을 선물해주신 김 신부님 덕분에 건우가 클라리넷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감사할 일이다. “헤~헤~” 거리는 소리를 클라리넷에다 불어넣어 보라고 하셨는데 의외로 건우가 클라리넷을 좋아했으며, 연주를 잘해서 해오름오케스트라에 들어가게 되었고, 행동에도 변화를 주었다. 그것은 또한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던 내게 좋은 논문 주제가 되어 완성되었고, 학회지에도 실린다고 하니 이건 정말 기적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웠을 땐 못 느꼈는데, 어려운 과정에서 기적과 같은 신기한 일들을 참 많이 체험했다. ‘운명’이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를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초인간적인 힘이라면 ‘기적’은 상식을 벗어난 기이하고 놀라운 일이라고 사전에 적혀있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하느님께 온전히 내어 맡기는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하니 기적과 같은 놀라운 일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 요즘 나는 아름다운 퍼즐이 완성되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첫째의 발달장애로 인해, 그리고 남편의 사고로 인해 잃은 것도 많았지만 그런 어려운 상황들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신앙의 끈을 놓지 않으니 내 삶을 더 큰 은총으로 채워주셨다.
발달장애가 있는 건우가 비록 부족한 점은 많지만, 세상 사람들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소망한다. 그것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발달장애 자녀를 둔 모든 부모들의 바람일 것이다. 또한, 손재주가 뛰어난 그 아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비누공예, 뜨개질, 퀼트, 요리, 클라리넷 연주가 고통 속에서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도구로 쓰였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건강해야 할 텐데 건우랑 자전거 라이딩을 하고 있으니 그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자전거 라이딩은 우리 가족이 힘들어할 때 곁에서 도와주셨던 많은 분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집에 도착할 무렵, 마침 기도를 한 후 성호를 긋는데 엄마 뒤에서 “아~멘!” 하는 건우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크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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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 주교님! 언제나 강건하시고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