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2,1-5; 로마 10,9-18; 마태 28,16-20
+ 찬미 예수님
그간 안녕하셨어요?
지지난 주에 본당의 날 기차 여행을 마치고 갑자기 사라져서 보고 싶으셨죠?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휴가와 피정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본당에 부임한 후 처음으로 장기간 본당을 비우다 보니 빨리 돌아오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라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이 절절히 와닿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전교 주일입니다.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우리 모두는 누군가 나에게 신앙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를 신앙의 길로 인도해 준 분, 나에게 교리를 가르쳐 준 분, 내 신앙을 키워 준 분들에게 감사드려야 하겠습니다.
예비자 교리반에서 질문을 드렸습니다. “누구의 권유로 성당에 나오게 되셨나요?” 누구의 권유가 가장 많을까요? 놀랍게도 많은 분께서 ‘스스로 나오셨다’, ‘제 발로 나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보좌신부 때에 예비자 교리반에서 들은 이야기인데요, 저희 반에 계셨던 어떤 분은 성당에 나오고 싶으셨는데 아무도 인도를 해 주지 않으셨답니다. 3년을 기다리시다가 결국 혼자 성당에 나오셔서 예비자 교리를 받으셨어요. 세례를 받으시고서는 너무 기뻐서 직장에 가셔서 ‘나 천주교에서 세례 받았다’고 자랑하셨는데, 같은 사무실에 계시던 분 중 3분의 1가량의 동료가 한 분씩 조용히 와서는 축하한다며, 당신도 성당 다닌다고 하시더랍니다.
이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직도 우리가 박해 시대를 살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저희 어머니와 같은 구역에 계신 자매님은 외짝 교우셨고, 시어머니는 교회에 나가고 계셨는데, 남편분이 어느 날 ‘어머니 다니는 교회에 나가겠다’고 하셨답니다. 자매님이 반 모임 때 그 얘기를 하시며 너무 속상해하셨대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가, “남편에게 성당에 나가보자고 얘기해 봤어요?”하고 물었더니, “아니요.” 하시길래 “한번 해 보라”고 하셨대요.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요? 남편이 흔쾌히 성당에 나가겠다고 하더니 예비자 교리 받고 세례받고 사목회 총무까지 하셨답니다.
물론 우리도 가족과 가까운 분들께 권해본 적은 있지만, 한두 차례 거절 당해본 뒤에는 공연히 분위기가 서먹해질까봐 다시 말을 꺼내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도 제가 신학교 입학할 때는 엄청나게 반대하셨는데, 7년이 지난 후 저희 집에서 구역회를 할 때 성가소리를 들으시더니 ‘주여 임하소서’라는 노래가 참 좋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비자 교리 받아보시겠느냐고 여쭈었더니 ‘무슨 요일에 하는데?’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때부터 예비자 교리반에 나가시고는, ‘한 번 들어서는 잘 모르겠다’시며 예비자 교리를 두 번 받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런 일을 통해 제가 깨달은 것은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단, 그때가 언제인지 모르니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저도 아버지가 세례받게 해 달라고 묵주의 9일 기도를 몇 년간 바쳤는데, 성모님은 기도를 까먹으시는 법이 없이 꼭 전구해주셨더라고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첫 번째 명령은 이처럼 ‘복음 선포’입니다. 이 ‘복음 선포’의 의무는 누구에게 있을까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 의무의 대상이 믿는 이들, 주교, 사제, 부제, 평신도, 선교사, 여행자, 부모, 수도자라 말합니다. 즉 이 의무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여행자들도 복음 선포를 하라고 나오는데요, 평신도 교령 14항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국제 활동이나 사업 또는 관광의 목적으로 외국에 여행을 하는 사람은 어디서든지 자신이 그리스도의 선포자로서 여행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참으로 그렇게 행동하여야 한다.”
또한 교회헌장 11항은 부모의 복음 선포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데요, “가정 교회에서 부모는 말과 모범으로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최초의 신앙 선포자가 되어야 하며, 각자의 고유한 소명을 특별한 배려로 육성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사용된 ‘신앙 선포자’(praecones)라는 단어는 공의회 문헌에서 주교에게 사용된 단어입니다.
우리는 이미 가정 교회를 이루고 있고 부모님은 자녀에게 최초의 신앙 선포자가 됩니다. 예전에는 아이가 태어나면 유아세례를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제가 보좌신부 때에 아이에게 유아세례를 주지 않는 부모님들이 계셨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아이가 나중에 싫어할 수도 있으니, 다 자라서 자기가 판단해서 원하는 종교를 갖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면전에서 말씀드리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럼 우리말은 왜 가르치나요? 나중에 아이가 ‘왜 나는 영어를 모국어로 해주지 않았느냐’며 항의하면 어쩌려고요? 또 왜 아이에게 물어보지 않고 부모님이 분유를 정하나요? 나중에 다 자란 다음에 ‘너 남양유업이 좋아? 매일유업이 좋아?’하고 물어보고 먹여야 하지 않을까요?> ‘아, 그때 되면 늦잖아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바로 그겁니다. 나중이면 늦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면 지체하지 않고 줍니다. 과연 우리는 내가 가진 신앙이 정말 좋은 것이고 지체하지 않고 전해주어야 할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도 아직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선뜻 믿음을 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내게 믿음이 부족한 이유는, 믿음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전해주는 가운데 자라납니다.
오래전에 저는 샤를 드 쿠베르탱(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아버지)이라는 화가의 “떠남”(Le Départ 또는 Le Départ des Missionnaries)이라는 그림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는데요, 네 명의 신부들이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이분들은 1864년, 우리나라로 선교를 오기 위해 고향인 프랑스를 떠나는 길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서양 선교사들의 평균 수명은 3년이었습니다. 순교하거나 기후와 음식이 맞지 않아 질병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으로 선교를 떠난다는 것은, 죽으러 간다는 뜻이었습니다.
결국 네 분 모두 2년 뒤인 1866년, 병인박해 때에 순교하셨습니다. 그중 한 분은 우리 대전교구의 갈매못 성지에서 순교하신 성 위앵 민 마르티노 루카(Martin Luc Huin) 신부님입니다. 위앵 민 신부님은, 1864년 7월 동료들과 함께 파리를 떠나 홍콩, 상해, 요동을 거쳐 10개월 만인 1865년 5월, 충청도 내포 지방에 상륙하여 조선 땅을 밟았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10개월 만인 1866년 3월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수하라는 성 다블뤼 주교님의 편지를 받고 자수하여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바닷가 모래사장인 갈매못에서 참수되셨습니다.
이때 신부님의 나이는 서른 살이었습니다. 순교하시기 전 위앵 민 신부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나는 젊어서 죽는 것이 겁나지 않고 원통하지도 않다. 다만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을 원통히 여긴다.”
혹시 내 주위에,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데, 내가 가진 소중한 신앙을 전해주지 못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그런 사람은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분을 주님의 자비에 맡겨 드리며, 나는 그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잠시 묵상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