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음 해
김혜순
네 몸에서 내가 씨를 심은 새들이 울퉁불퉁 만져졌음, 해
네 피가 새의 피로 새로 채워졌음, 해
네 발걸음이 공중으로 겅중겅중 디뎌지는 나날
바보 멍청이 네가 네 몸의 문을 찾지 못하는 나날
내가 되고 싶은 네가 네 몸에서 나가고 싶어 안달했음, 해
습한 여름에도 발아래 땅이 한없이 멀어지는 그런 가을이 온 것 같고
네 목구멍이 목마름으로 타들어 가듯
네 몸의 새가 타올랐음, 해
키득키득 네 입술 밖으로 연기가 새어 나오고
내 몸에 앉고 싶은 새가 더 더 더 달아오르는 나날
쿵쿵 울리는 심장의 둥지에서
쿵 소리 한 번에 새 한 마리씩
미지근한 네 두 눈의 창문 밖으로 언뜻언뜻 아우성치는 새들이 엿보이는
그런 나날
불붙듯 날개가 크게 돋아났는데도 돌 속인 그런 나날
가슴 위에 얹은 네 오른손이 마치 네 엄마처럼
새들로 꽉 찬 네 가슴을 지그시 누르고
매일 그런 자세로 나를
네 안의 새들이 찬란했음, 해
—시집 『날개 환상통』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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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의 시절, 공기는 자유의 원소가 아니라 의심과 공포의 물질로 감지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더욱 더 단단하게 새장을 껴입은 듯하구요. 어쩌면 그래서 당신 안의 새들이 더 크게 아우성치고 있을지도 몰라요. 새의 꿈을 밟지 마세요. 새를 죽이기 쉬운 무지막지한 나날이지만, “새가 더 더 더 달아오르는 나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의 새들을 지켜야 해요. 시를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보아요. 시의 사운드에 심장을 맡겨 보아요. “새들이 울퉁불퉁 만져”질 거예요. 당신의, 당신의 뛰는 심장이며 타오르는 새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어요. 살아 있어서 꿈을 꾸고, 꿈을 꾸기에 살아 있습니다. “새들로 꽉 찬 네 가슴”, “네 안의 새들이 찬란했음, 해”. 이 시가 발음하는 “해”라는 마지막 음절을 느껴보아요. 그것은 높은음의 채찍질이 아니라 사랑의 빛으로 환합니다. 찬란하게 떠오르는 당신의 해입니다.
김행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