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날을 흔드는구나. 일본의 강점 당시 우리의 혼을 빼앗기 위해 설날을 자기들의 신정(1월1일)에 지내도록 했고,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 설날을 구정이라 하여 쉬지도 못하게 하였지만 우리 민족은 결코 굴하지 않고 고유의 명절을 지켜냈다. 그런데 생각하지도 않았던 코로나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명목으로 가족마저도 4인으로 제약하고 그러다보니 성묘마저도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매일 5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하니 정부로서도, 국민들 스스로도 어찌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모든 공식적 모임이 취소되고 개인적으로도 4인 내에서만 식사를 해야 하니 함께 할 사람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매일 혼자서 밥 먹고 술 마시고 할 수 없으니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소소한 모임을 가질 수밖에,
이런 연유인지, 개인적인 사정인지 2개월이 다 가도록 아직도 금년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방향도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으니 조금은 답답하고 아프다. 그렇다고 멋진 목표를 세운다고 한들 코로나가 어떻게 진행될 지 알수가 없어 그 또한 실행이 가능할 것인지 불분명하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매년 실천하고자 하는 사자성어를 정해 가까운 예송 아우께 부탁하여 멋지게 써서 서재에 붙여놓고 매일 그걸 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해 왔는데 그 또한 이루지 못해 스스로의 산만함과 나태를 탓하고 있다. 이런 원인을 모르지 않고 어찌할 수 없으니 어쩔 것인가?
1월 20일부터 10일간에 다섯 번을 서울을 갔다 오고, 매일 1만보 이상을 걷고, 가끔 골프도 치고, 하다보니 설날이 되었다. 매년 하던 명절 전날 서울에서 내려온 공직후배들과의 모임도 취소하고 4명이서 단촐하게 저녁하고 설연휴를 그냥 서재에서 책보며 지냈다. 2월 16일 80명을 수용하는 모교 대회의실에서 20여 명이 참석하여 차기 총동창회장 추천을 위한 집행위원회를 하고, 식사도 하지 못하고 헤어져야 했다.
19일에는 골산회원 5명이 광주를 방문하여 승용차 2대에 나누어 타고 장성호수변길을 걷고, 전남대수련원에서 자고 입암산을 등반했다. 3명씩 나누어 각 방 쓰고 식사도 따로 했지만 코로나로 지친 심신을 달래기에는 충분해 모두들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며 즐거운 마음으로 상경했다.
일행들을 보내고 서재로 돌아와 청소하고 뒷정리하고 모처럼 마음을 잡고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어떤 일을 하던지 떠나지 않은 그 무엇이 있다. 그 무엇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