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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4 / 축복권을 행사하세요 (창48:10-16)
음력으로 새해가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런데 말로는 복을 받으라 했지만 어떻게 살고 어떻게 믿어야 복을 받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주제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잘 들으시고 각자의 삶에 적용해서 여러분 모두가 실제로 복을 받고 간증할 수 있는 인생을 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고 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은 ‘복 자체가 될 것이라’는 뜻이지만, 우리식 표현으로는 ‘복덩이가 되리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복덩이가 되리라는 것은 또 무슨 뜻일까요?
신약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교회의 비밀을 말씀하시면서 그에게 천국의 열쇠를 준다고 하시며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고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고 말씀하셨듯이, 복의 근원이라는 말 역시 이 땅에서 복을 잠글 수도 있고 열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이 축복하면 복이 임하고 저주하면 저주가 임하게 하는 권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베드로나 다 모든 세대의 성도들을 향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대표하여 받았다는 점에서 현재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에게도 ‘축복의 권세’가 있음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여러분이 축복하는 것들을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이며, 여러분이 저주하는 것들은 하나님이 저주하실 것입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권입니다. 그리고 이 축복권을 행사하는 것이 성도 된 저와 여러분의 특권입니다.
본문에 보면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에게 달려옵니다. 자식 된 도리로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믿음의 조상에겐 축복의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요셉은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해서 요셉도 자기 아들들에게 선대가 축복하는 복을 받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축복하는 말이나 믿음, 꿈, 비전…. 이런 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눈으로는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는 오히려 그런 것들이 인생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요셉이 그러했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을 기회가 있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민수기 14:28절에는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하셨고, 마가복음 11:23에서는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잠언 18:21절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라고 했습니다.
다 ‘말과 관련한 언약’들입니다. 따라서 성경 말씀대로라면 성도가 하는 말에는 자신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나를 향하여 또는 내 자식을 향하여 또는 나의 이웃을 향하여 발설한 모든 말들이 종내에는 나 자신과 자식과 이웃의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축복권은 놀라운 특권인 동시에 무서운 책임이 요구됩니다. ‘축복권’ 속에는 ‘저주권’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 기적의 언어를 선포하면 기적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말은 삶을 부정적으로 만들고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이렇듯 어떤 말이든 성도의 귀를 통해 마음속에 들어온 말은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축복과 관련하여 요셉이 이런 사실을 믿었듯이 오늘 우리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여러분 각자의 축복권을 행사하세요. 스스로가 스스로를 축복하는 것을 어색해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축복받을 기회를 스스로가 소홀히 여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축복의 때는 결코 늦는 법이 없습니다. 아니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때야말로 즉각 축복을 선포해야 할 때입니다.
예전에 병원 목회를 할 당시에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났더니 어떤 분이 화를 내고 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분이 화를 내신 이유는 예배당을 일찍 나가야 할 사정이 있으셨는데 그날따라 제 설교가 좀 길었습니다. 자기는 다른 건 몰라도 예배 시간 마지막에 있는 축도는 꼭 받아야 하는데 목사님 설교가 왜 이리 안 끝나느냐며 화를 내고 나가셨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축복 기도를 받고자 하는 그분의 열정이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기회가 되면 그분께 꼭 알려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축복은 말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축도라는 절차에 있지 않고 예배 중의 모든 말 중에 있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목사의 설교가 길었더라도 그 전후에라도 나를 향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어서 내가 '아멘' 할 수 있었다면, 바로 그 부분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아멘은 ‘그대로 될 줄 믿습니다.’라는 뜻이기에 여러분이 화답한 아멘이 여러분에게 축복이 되어 여러분에게 그대로 되어질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예배 시간 내내가 나에게 축복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부름 때든, 대표기도 시간이든, 혹은 찬송할 때라든가 설교 중이든, 아멘 하는 그 모든 과정에 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타이밍에 나에게 복과 은혜를 주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배 자체가 이미 축복입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도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의 권세가 회복되시길 소망합니다.
이 시간 이후론 자신은 물론 여러분의 자녀들과 여러분께 소중한 사람들을 축복하는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 시대에서의 하나님의 축복은 모두가 아비 된 족장들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당시엔 축복받기를 원할 경우에는 무조건 족장인 아버지에게로 달려가야만 했습니다. 특히 임종 전에는 필히…. 상황이 이랬기에 요셉은 아버지 야곱에게로 달려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모세 이후 레위 지파가 제사장 그룹으로 분리되면서부터 하나님의 축복은 제사장들을 통해 임하다가, 신약 시대로 넘어오면서부터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축복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에 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자 하면 누구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 응답이 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요. 이렇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면 응답도 있게 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누구든, 어디서든, 무엇이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 것은 받은 줄로 여기라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도 믿고 구하면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실이 이러하니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에 다른 핑계가 없게 해야 합니다. 목사의 설교가 은혜스럽지 못하다면 그건 목사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예배에서의 내 자리를 비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혹 성가대가 실력이 없다면 그건 성가대가 노력할 부분입니다. 그렇더라도 그것이 예배 시간에 내가 축복받지 못할 이유는 되게 하지 마셔야 합니다.
오늘 드려지는 예배가 중요합니다. 내가 어디에 거하든 지금 있는 자리에서 받을 축복을 그 자리에서 받고자 하는 열정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요셉이 축복을 받기 위해 아버지 야곱에게로 달려왔듯이 어디서든 축복을 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달려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본문에서는 그렇게 달려 온 요셉과 그 아들들에게 야곱이 축복합니다. 이후 나머지 자식들도 축복하는데, 보면 장차 되어질 일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축복에는 예언적 성격이 있음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인즉 ‘축복의 선포’와 ‘축복의 실현’ 사이에는 시간적인 간격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선포’와 ‘실현’ 사이의 간격. 우리가 이 비밀을 알아야 축복을 기다릴 수도, 또한 받을 수도 있는 겁니다.
예전에 병원 선교팀 중의 한 분이 십수 년을 질병으로 고통받는 중에 오랫동안 간구했어도 안 낫던 병이 목사님에게 안수받으니 그 즉시 나았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즉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 축복은 ‘때가 되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즉시가 맞소? 때가 되면이 맞소?”라며 따지실 분이 계실 겁니다만, 둘 다 맞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때가 되면’ ‘즉시’ 이루어집니다. 다만 이 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즉시 응답받기 위해서는 때가 되어야 합니다. 축복의 때는 반드시 있습니다. 다만 어느 누구도 그때를 알지 못하기에 그때가 되기까지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 인내의 시간을 견디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집사님의 간증을 보면 안수받으니 즉시 나았다고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분이 안수받는 순간 즉시 나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에겐 오랜 시간 기도했지만 낫지 않았음에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던 많은 지난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받을 ‘때가 되면’이라는 말은 저나 여러분이 축복받을 만한 믿음이 있을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시’ 축복받는다고 함은 저와 여러분에게 내게도 축복이 있을 것임을 믿기만 하면 그 순간 축복은 즉시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린 축복을 받기 위해 애쓸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축복이 내게도 이루어질 것을 믿는 믿음을 의심하지 않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싸움이요. 영적 싸움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아브라함이 처음 복의 근원의 축복을 받은 그 날로부터 그에게는 수많은 ‘믿지 못함의 날들’이 있었습니다.
복을 받을 약속은 받았으나 정작 복은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런저런 세상적인 방법들을 시도했습니다마는 그럴수록 축복의 때는 지연되기만 할 뿐임을 알지 못하고 살았더랬습니다.
결국 모든 시도는 허사가 되었고, 더는 뭔가를 해 볼 형편이 되지 못하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하나님이 다시 개입하셨습니다.
이렇듯 아브라함이 제힘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 싶을 때에는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더는 뭔가를 할 수 있는 능력도 형편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인정하는 순간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약속하셨습니다. “내년에 네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내년이라 함은 아브라함의 나이 100살이 되는 때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 그때가 되면 내 나이가 100살입니다. 말이 되는 말씀을 하셔야 믿죠.”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때라도 축복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100살이기에 안 되고, 못 한다가 아니라, 100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엔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습니까? 돈이 없어서 안 된다고요? 방법이 없어서 안 된다고요? 실력이나 도울 이가 없어 안 된다고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라는 믿음이 없어서 안 되고 못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자 하면 이것 하나만은 알아야 합니다. 축복은 내가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주셔야 할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으니 반드시 나도 받을 것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는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으려 함에 있어서는 절대로 내 생각이 나의 믿음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막 병원 근무를 시작한 의대생 두 명이 서로의 의학지식을 뽐내기 위해 병원 환자들의 병명 맞히기 내기를 하곤 했는데, 한번은 병원 복도를 걷고 있는 중에 한 남자가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허리를 숙이고 엉거주춤하며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한 학생이 말하기를 “저 남자는 류머티즘 관절염이 분명해.”라고 하자, 다른 학생이 “천만에, 허리 디스크야.”라고 단정했습니다.
잠시 후 남자가 학생들 앞에 다가오더니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아주 힘겹게 물었습니다.
“저…. 화…. 화장실이 어디죠?”
하나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내 생각이 나의 믿음이 되게 했다가는 우리도 이런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요셉을 보세요. 하나님의 꿈을 받았지만, 그에게 된 일은 수많은 연단과 괴롬의 날들뿐이었습니다. 결국에는 애굽의 총리로 임명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마는, 우린 알고 있습니다. 요셉에게 그런 축복이 있기까지 그에게는 믿음으로 견뎌내야 했던 수많은 고통의 시간들이 있었음을….
하나님의 축복은 한순간에 즉시 이루어지지만, 그때까지 우리에겐 때를 기다리며 견디고 살아야 할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안수받고 병 고침 받았다고 간증하신 집사님도 마찬가집니다. 몇 년을 옆에서 지켜봐서 잘 압니다. 그분이 안수 즉시 나음을 입기까지, 그 전의 수많은 시간들을 그분이 어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왔는지를….
결국 때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니 어려울 줄 알았던 기적이, 없을 줄만 알았던 축복이 즉시 이루어졌음을 간증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은 하나님의 성도들에게는 축복받을 권세와 축복할 권세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내게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우리에게는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기에 우린 사탄도 마귀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후로는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 자신의 말에 권세가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믿으세요.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의 선포에 축복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 권세를 가지고 이제 여러분의 가족을 축복하세요. 이 교회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축복하세요.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이 축복을 받는 사람들이 되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과 몸과 인생을 축복하려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여러분 모두를 복의 근원으로 삼아주셨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손이 빈손인 듯하여도 그 손엔 축복의 권세가 있습니다. 힘들고 지쳐 손끝 하나 까딱할 힘이 없다 할지라도 축복할 권세까지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축복의 능력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상황이나 형편이 어렵고 힘들다면 더더욱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받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제라도 여러분의 몸에 손을 얹어 치유되기를 축복하세요. 여러분의 가정과 가족을 향해 손을 뻗어 행복하기를 축복하세요. 여러분의 사업에 두 팔 벌려 성공하기를 축복하세요.
여러분이 축복한 대로 될 줄로 마음에 믿기로 하고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은 ‘때가 되면’ 또한 ‘즉시’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축복할 권세를 주셨으니 그 축복할 권세를 나와 가족과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전에, 누구보다 우선하여 여러분 스스로가 먼저 축복받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